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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 등과 더불어 전통적으로 공동 서신으로 불렸던 본 서신은 2세기의 옛 수리아어 역에 포함되어 있었고, 비록 로마와 칼타고에서는 오랫동안 의문시되었으나, 예루살렘과 수리아에서는 일찍부터 인정되었던 것 같다.
3, 4세기에 유명했던 오리겐, 예루살렘의 시릴, 나지안스의 그레고리, 아다나시우스, 제롬, 어거스틴 등은 본 서신을 일찍부터 성경으로 인정하였다.
(1) 저자
이 서신의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야고보라고 밝히고 있다(1: 1). 신약에는 네 명의 야고보가 있지만, 대체로 예수님의 동생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를 이 서신의 저자로 본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이 편지가 쓰여지기 전인 A.D. 44년경에 이미 순교하였으며(행 12: 2), 또 다른 두 야고보는 이 편지의 저자가 될 만큼 큰 영향력이나 위치를 갖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 행 12: 2 -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예수님의 동생 중에서 야고보는 가장 나이 많은 동생이었을 것이다.
* 마 13: 55 -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며 예수님의 사역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 요 7: 2-5 –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본 후 변화되어 초대 교회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다.
* 고전 15: 7 -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 행 15: 13, 19 - ⑬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⑲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 갈 1: 19 -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 갈 2: 9 -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는 A. D. 62년경에 순교하였다.
① 본서의 저자는 자신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만 부르고 사도라고 부르지 않는다.
② 만일 본 서신이 사도의 저작이었다면, 역사상 그 정경성이 의문시 되지 않았을 것이다.
③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 중요한 세 명의 제자들 중 한 사람이었던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일찍 순교하였으므로(주후 44년경) 본 서신의 저자일 수 없다.
④ 야고보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들과 거의 동등한 권위를 가진 지도적 인물이었다.
* 행 12: 17 -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주후 63년경에 순교하였다고 한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는 대제사장 아나누스의 명에 의해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하며,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뜨림을 당한 다음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고 한다.
(2) 저작 연대
전통적으로 학자들은 본서의 저작 연대를 A.D. 49-60년 사이의 어느 때로 추정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두 가지 견해가 있다.
① 전기 연대설(A. D. 45-49년)
본서 안에 이방인 신자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에, A. D. 49년에 열렸던 예루살렘 총회 이전에 본서가 쓰여졌다고 보는 견해이다. 본 서신은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회의(주후 49년경) 이전에, 그러니까 주후 45년에서 48년 사이의 어느 때에 쓰였을 것이다. 본 서신을 받은 자들은 동방의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
② 후기 연대설(A. D. 60년경)
바울은 로마서를 통하여 '이신칭의' 교리를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가르쳤는데 이 교리를 잘못 이해한 신자들은 생활 속에서 믿음을 제대로 적용시키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빠지는 일이 많았다. 이에 야고보는 믿음의 생활적인 측면을 가르쳐야 할 필요를 느끼고 본서를 썼다는 견해이다. 따라서 야고보서는 로마서가 기록된 이후인 A.D. 60년경에 쓰여졌을 것이다.
(3) 수신자
본 서신의 수신자는 1: 1에 기록된 대로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이다. 그런데 이 열두 지파의 개념 속에는 영적 이스라엘이 된 이방인 신자의 개념이 없기에 유대인 신자가 본 서신의 수신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팔레스타인 경내에 유대인들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전 영역에 흩어져 살고 있던 디아스포라로 추정된다.
(4) 저작 동기
본서의 수신자들은 유대 밖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교회의 지도자들과 접촉할 기회가 적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많은 시련이 있었다(1: 2-4).
경건치 못한 부자들의 횡포와 학대 때문에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했고(5: 1-6), 일부 성도들의 신앙은 형식에 치우쳤으며(1: 22-27. 2: 14-26), 사랑이 식어져서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2: 1-13).
또한 말과 행동이 거칠어서(3: 1-12. 3: 13 – 4: 3). 성도의 교제가 단절되어 갔다. 이 때문에 야고보는 이들을 격려하고, 잘못된 신앙 자세를 시정하며, 또한 "믿음과 행함"에 대한 바른 인식을 교훈하기 위해 본서를 기록하였다.
(5) 목적
본 서신의 특징적 주제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사도 바울은 율법적 행위의 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을 믿는 믿음의 의를 구별하면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복음 진리를 강조하였다.
본 서신의 저자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과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구별하면서 '사람이 믿음만으로가 아니고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표현하였다.
야고보의 표현 자체는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으나 성경의 복음 진리나 야고보의 의도는 분명하다. 바울도 산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남을 분명히 가르쳤다(롬 6 장).
* 갈 5: 6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 살전 1: 3 -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야고보서는 로마서 말씀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의 말씀이다. 어쩌면 정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로마서의 주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였다. 그러나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로마서 3: 27에 보면,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또한 롬 4: 2에서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을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다.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서의 말씀을 보면 전혀 다르다. 야고보서 2: 20-26을 보면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 이에 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바울은 로마서에서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고,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하였다.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드리는 그 믿음의 행함을 통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의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린 그 이야기의 결론을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라고 내리고 있다.
어떻게 한 성경 안에서 이렇게 서로 다른 주장을 할 수 있을까요?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고 가르치는 가톨릭교회의 비복음적인 가르침에 반발하여 로마서 말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기치로 들고 일어섰다.
그러면 루터의 눈에는 야고보서의 주장이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루터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을 가지고 가톨릭과 싸울 때에 가톨릭 학자들은 주로 야고보서 말씀을 가지고 반박하고 나섰다. 그렇기 때문에 루터는 야고보서에 대해서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말하였다.
오늘 우리는 '지푸라기 서신서'라고 평가하였던 야고보서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 말씀이 지금 성도들에게 요청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 66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다. 학창 시절에 교회 선생님 중에는 너희들은 아가서는 읽지 말라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다. 너무나 성적인 표현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으니까, 미성년자들이 보기에는 적당치 않다는 견해였다. 그러나 아가서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인 된 우리들을 향해서 외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루터가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으로 인해 (행함만 강조하던 시대, 그래서 복음의 진수를 놓치고 있던 시대에 - 그 복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야고보서를 평가절하 하였지만, 야고보서 말씀 역시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 쓰인 진리의 말씀이다.
디모데후서 3: 16-17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야고보서에는 많은 실천적인 교훈의 말씀들이 있다. 때론 구약의 율법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야고보서 말씀은 결코 로마서에서 강조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무시하거나 반대하는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로마서 12: 1의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는 말씀의 연장이라고 보아야 한다.
믿음은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꺼내어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믿음은 또한 보이는 것으로 내 안에 있는 그 믿음이 진짜 믿음이라면, 살아 있는 믿음이라면, 내 삶은 반드시 그 믿는 대로 나타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야고보서와 로마서의 말씀은 서로 다른 말씀이 아니라, 강조점이 서로 다른 데에 있다. 로마서 말씀이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됨을 강조하였다면, 야고보서는 이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17세기 영국의 목사였던 '토마스 맨톤'은 야고보서 강해를 시작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들은 모두 안락에 치중하고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많다. 우리들은 마치 예수님에 대한 메마르고 열매 없는 약간의 지식만 가지면 다 되는 것으로 여긴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우리들을 위해서 모든 일들이 이루어졌으므로, 우리들에 의해서 되어야 할 일들은 아무것도 없다고 간주한다.' 토마스 맨톤 목사님은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방종과 태만의 구실로 삼는 것을 개탄했다.
오늘날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방종과 태만, 불성실함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오해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내가 구원받아 천국 가는 것은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예수 믿고 세상에서 좀, 나태하게 살아가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살아가도 상관이 없다는 식의 태도이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을 욕되게 하는 생각인지 모른다.
혹 우리 가운데 그러한 생각이 있었다면, 야고보서 말씀을 통해서 다 날려버리기 바란다. 성도의 마땅한 삶을 회복하기 바라며, 다시 한번 우리는 이 야고보서의 말씀을 통해서 나를 깨우는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들으시기 바란다. 내 심령을 향해 탄식하며 부르짖는 성령의 음성으로 들어야 한다.
(6) 내용분해
1. 기본적 교훈(1-2장)
1) 인사(1:1)
2) 시험에 관한 교훈(1:2-18)
3) 믿음과 행함(1:19-2:26)
(1) 도의 실천자가 될 것(1:19-27)
(2) 공정한 실천자가 될 것(2:1-13)
(3) 믿음과 행함(2:14-26)
2. 실제적 교훈(3-4장)
1) 개인적 교훈(3장)
(1) 말을 삼갈 것(1-12)
(2) 참된 지혜를 구할 것(13-18)
2) 교회적 교훈(4장)
(1) 정욕을 제어할 것(1-10)
(2) 서로 비방치 말 것(11,12)
(3) 주의 뜻을 따를 것(13-17)
3. 결론적 권면(5장)
(1) 부자에 대한 경고(1-6)
(2) 재림까지 참을 것(7-11)
(3) 맹세하지 말 것(12장)
(4) 기도할 것(13-18)
(5) 미혹된 자를 구할 것(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