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나길 왜들 달아나?’
《귀머거리 너구리와 백석 동화나라》 글 백석 | 그림 이수지 | 웅진주니어
2024.6.13 어린이도서연구회 강동지회 김은지(13기)
책의 표지를 보면서 한 번, 차례를 보고 또 한 번. 책을 덮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어? 뭐지?’하면서 몇 번은 더 들쳐봤다. 생각했던 그림책과는 조금 다른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편하게 한 번 읽는 책이라면, ‘신선하다’ 정도로 마무리했을 법도 한데, 감상문이라는 커다란 숙제가 있었기에 막연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도서관 대여 책장에 꽂혀 있길 며칠, 갑작스레 작은 아이가 책을 읽어 달라며 나에게 건네었다. 무릎에 앉혀놓고 책을 펴 소리 내어 읽고 있노라니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호기심이 생겼다. ‘어? 이게 뭐지?’ 그 첫 번째는 운율이었다. 4편의 동화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 ‘~네.’로 문장을 맺는다. 생소하지만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의성어와 의태어도 만날 수 있었다. 장문의 시 같기도 했고, 할머니가 두런두런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 같기도 했다. 이 책은 어린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시처럼 낭송할 수 있게 쓴 백석 시인의 동화시라고 한다. 백석 시인은 이 책을 통하여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동물을 통하여 우리네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두 번째 궁금증이었다. 왜 동물이었을까? 접점이 크게 없는 것 같은 동물들이 모여 전하는 이야기가 모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삶의 모습을 빗대고 있구나 싶었다.
선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옛날이야기의 대표 교훈이 담긴 것 같은 《개구리네 한솥밥》,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본질에 대해 말하는 《집게네 네 형제》, 부당함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성장을 위한 질문을 던지는 《오징어와 검복》 이야기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하고, 머무르게 했지만 유독 《귀머거리 너구리》를 곱씹어 보게 되었다.
아무 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에 반응하지 못했던 너구리와 그를 보고 용감하다고 생각했던 동물들. 너구리는 듣지 못하기에 말을 할 수 없어 한 번도 물어보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해 그저 무심하게 넘겼던 것일까? 다른 동물들은 너구리가 귀머거리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그렇다면 산 아래로 내려왔을 때만 만난 것일까? 연거푸 물음이 생겼다. 이따금씩 목이 터져라 부르지만 노느라 집중해 못 들었다는 아들 둘의 말에 속이 터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나도 내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조금만 관계가 있었더라면 알 수 있었을 너구리의 상태인데 각자의 목적을 위해 한 공간에 있을 뿐 동물들은 아무 소통이 없다. 그래서 알지 못했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 결국엔 싸움에 지고 만다. 너구리도, 동물들도 각자의 입장이 있었다.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고 생각하기 보다 개인주의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잘못 판단하고 실패한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좋은 독서는 나에게 와닿고 공감, 힘이 되는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터치해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이라 했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혹은 잊어버리고 지냈던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마주하기 조금 불편한 질문들, 조금은 외면하고 싶은 상황들.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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