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강. 시간과 영원: 피조물의 한계와 창조주의 위대함 (고백록 11권 강해)
"주님의 연대는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늘 '오늘' 서 있습니다. 주님의 '오늘'은 과거로 물러가지도 않고 내일로 넘어가지도 않는 영원입니다."
고백록 11권에 접어들며,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은 개인적인 참회를 넘어 창조와 영원이라는 광활한 신학적, 철학적 우주로 비상합니다. 회심한 영혼이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시선은 결국 '나'에게서 '위대하신 하나님'으로 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10강은 기독교 철학사에서 가장 탁월한 성취로 꼽히는 '시간론'을 다룹니다. 우리는 이 강의를 통해 인간의 편협한 이성으로 하나님을 재단하려는 교만을 부수고, 영원하신 창조주 품에 우리의 불안한 삶을 의탁하는 위대한 평안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로 부수어야 할 것은 '창조 이전의 시간에 대한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당시 마니교도들을 비롯한 이단과 회의론자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이렇게 조롱 섞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들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면, 그 창조 이전의 수많은 시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셨단 말인가? 무위도식하며 놀고 계셨는가, 아니면 이런 호기심을 품는 자들을 보낼 지옥을 만들고 계셨는가?" 이것은 오늘날의 무신론자들도 즐겨 던지는 도발적인 질문입니다.
여기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 변증 역사상 가장 통쾌하고 천재적인 답변을 내놓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전에는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은 영원부터 존재했던 절대적인 배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물질과 함께 만들어내신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간이 창조되기도 전인 '창조 이전(Before)'이라는 말 자체가 논리적 모순입니다. 목회자 여러분, 이 진리는 우리에게 엄청난 신학적 해방감을 줍니다. 인간은 자신이 시간의 지배를 받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감히 창조주 하나님마저 시간의 틀 안에 가두려고 합니다. 우리는 강단에서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간 안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라, 시간을 창조하시고 시간 밖에서 영원토록 통치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심을 말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시간의 덧없음과 찢겨진 인간의 실존'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묻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과거는 이미 지나가서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재조차도 머무르는 법이 없이 순식간에 과거로 흘러가 버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 속을 살아가고 있단 말입니까? 여기서 그는 시간을 우주적 물리량이 아니라 '인간 영혼의 늘어남(Distention of the mind)'으로 해석합니다. 과거는 우리 영혼 속의 '기억(Memory)'으로, 미래는 '기대(Expectation)'로, 현재는 '주목(Attention)'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통찰은 목회적 돌봄에 있어 핵심적인 열쇠를 제공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시간 속으로 파편처럼 흩어져 찢겨진 존재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고통을 보십시오. 존재하지도 않는 과거의 상처(기억)에 얽매여 절망하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불안(기대)에 짓눌려 오늘 하루(현재)를 지옥처럼 살아갑니다. 이것이 영원의 고향을 잃어버리고 시간 속으로 추락한 피조물의 비참한 실존입니다. 우리의 목회는 과거의 죄책감과 미래의 두려움으로 인해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진 성도들을 십자가의 복음으로 치유하고 온전하게 하나로 모으는 거룩한 작업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찢겨진 우리의 영혼이 돌아가야 할 유일한 안식처인 '하나님의 영원한 현재(Eternal Present)'입니다. 우리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를 파편적으로 경험하지만, 시간 밖을 초월해 계신 하나님께는 과거나 미래가 없습니다. 그분에게는 창세 전의 영원부터 요한계시록의 종말까지 모든 우주의 역사가 '영원한 단 하나의 현재(오늘)'로 펼쳐져 있습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말씀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시간의 지배자이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속성입니다.
동역자 여러분, 이 진리가 왜 그토록 눈물겨운 위로가 됩니까? 영원한 현재 속에 계신 하나님은,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바로 '지금 여기'서 나를 위해 흘리시는 것처럼 동일하고 생생하게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제 무너진 나의 실패도, 내일 마주할 나의 막막함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는 완벽한 섭리의 한 조각일 뿐입니다.
10강을 통해 성도들의 시선을 흘러가는 째깍거리는 시계탑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보좌로 끌어올려 주십시오. 덧없이 사라져버릴 세상의 시간에 쫓기며 불안해하는 삶을 멈추게 하십시오. 나의 과거를 주님의 긍휼에, 나의 미래를 주님의 섭리에 전적으로 의탁할 때, 우리는 비로소 파도치는 시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안식'을 이 땅에서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11권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신학적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