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콩은 누가 땄을까 / 김유진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통유리 안이에요 은행나무 아래로 뒤꿈치를 들고 지나가는 사
람들을 볼 수 있는 이 안엔 음악이 가득 찼어요 '돌고 돌고 돌고'의 노랫말이 내 회목*을
휘감고 있어요 옆 테이블의 사람들이 노랫말에 말을 풀고 있어요 마스크를 쓴 사람이
옆 사람의 어깨를 때리며 웃습니다 마스크가 들썩거려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내 가슴
처럼요 들썩이는 가슴을 재우는 이 커피콩은 누가 땄을까요
바닥을 봅니다 에폭시 바른 바닥이 조명에 반짝입니다 젖은 바위 같아요 우산을 쓰고
바위에 앉아 바다를 본 적이 있어요 돌아오는 내내 젖은 바지를 떼어내느라 바다를 본
자세를 후회했어요 바다의 밑그림을 그려놓고 그림 속에서 헤엄치고 싶었던 시간이
내 옆에 앉아 있어요 이 시간이 옆사람에게까지 튈까요 시간을 톡톡 밀어내게하는 이
향기, 이 커피콩은 누가 볶았을까요
커피가 식어서 뜨거운 물 한 잔 채워왔어요 소매까지 따스해집니다 의자에 걸쳐둔 니트
의 보라색이 바래가고 있습니다 보랏빛을 나에게 건네주고 나답게 칠해주고 잠시 쉬고
있어요 토막 난 빛에도 옅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걸치기엔 너무 진해 꽉 끼는 색들, 자꾸
입다보면 소매가 느슨해질까요 식어가는 커피처럼
혼자 있기 싫어서 커피를 마시러 왔습니다 원산지는 아주 멀리 있습니다 집에서는 생각
들이 부풀어 오르니까 게으른 소매가 너무 많으니까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며 소매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커피잔을 잡으면 관찰자의 자세가 됩니다 햇살이 닿는 곳은 그림자가
지나갈 때마다 소란을 떱니다 이곳에 없는 사람의 머리카락이 굴곡마다 반짝거립니다 가
슴을 두드리는 커피처럼
* 회목 : 손목 발목의 잘록한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