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마한유적(월계동장고분-신촌리9호분-국립나주박물관-점심(사랑채)-복암리고분전시관-백호임제문학관-동학농민군희생자를 기리는 사죄의 비)지 답사
참여인원: 44명
월계동 장고분- 삼국시대 고분으로 모양이 전통악기인 장고 또는 장구와 비슷하다고 하여 예로부터 "장고분"이라고 불러왔고, 근처 마을도 "장구촌"이라고 했다. 1993년과 1995년에 전남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무덤의 규모와 구조가 밝혀졌다. 월계동 장고분은 무덤의 구조와 형태, 출토유물이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비슷한 점이 많아 고대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이 무덤을 만든 시기는 5~6세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월계동 장고분의 발굴과정과 한·일관계사를 설명하는 이건상 연구실장
월계동장고분 전경(가운데 부분이 석실)
전방후원분 형태의 월계동 장고분
나주신촌리9호분-반남 고분군에서 대표적인 신촌리 9호분은 일제시대의 1917년에 발굴되었으며, 하나의 봉분에서 11기의 옹관이 중첩되어 안치되었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금동관(국보 295호), 금동신발, 용봉문 환두대도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무덤 주인공이 강력한 힘을 가진 이지역 수장급 세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에서 백제의 대표적인 무덤양식인 굴식돌방무덤과는 달리 옹관을 고유한 무덤양식으로 발전시켜 대형으로 조성한 세력이 마한의 한 부류로 보고 있고, 오랫동안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다 제일 마지막으로 백제에 복속되었을 것으로 본다.
1917년 발굴당시 사진자료를 통해 발굴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노성태 원장
신촌리 9호분 전경
국립나주박물관 전경
이건상 실장의 옹관 조성과정과 구조에 대한 설명에 집중하는 남도역사학교 수강생들!
국보 295호 신촌리 금동관을 통해 나주지역의 위상을 알 수 있음을 설명하는 노성태 원장
영산강 유역에서만 발견되는 대형 옹관
대형 옹관
국보 295호 신촌리 금동관
점심은 나주에서 폼(?)나고 맛있는 사랑채 한정식으로!!
맛있으면 그만....느낌은 자유~~~
나주복암리고분전시관으로...
나주복암리고분 전시관에 대한 개요를 설명하는 이정호 관장-복암리고분은 1995년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의 영산강 유역 문화권 유적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발굴조사 결과, 복암리 3호분 안에는 영산강유역에서 나타난 모든 형태의 무덤방들이 모여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특히 만들어진 순서에 따라 차곡차곡 쌓여있는 듯한 모양새로 인해 '아파트형고분'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복암리 3호분 전시관에서 관장님 설명에 귀 기울이는 수강생들!
무덤방 안에 우리 지역 물건 뿐 아니라 백제계, 대가야계, 왜계 물건들이 피장자와 함께 묻혀있음을 설명하는 이정호 교수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 발굴과정 및 의의에 대한 이정호 교수 설명에 집중하는 수강생들! 멋짐!!
복원된 정촌고분 금동신발!
전시관내에서 찰칵! 너~무 더워~~ 그래도 좋아요....
백호(白湖 林悌(1549-1587)- 임제는 기질이 호방하고 예속에 구속받지 않았으며 혼란했던 시대를 비판하는 정신을 지녀 '풍류기남아'라 일컬어졌습니다. 39세로 짧은 생을 마쳤으나 그의 고뇌의 삶과 빼어난 정신을 1천여 수의 시와 산문, 소설로 남겨 16세기 조선에서 가장 개성적이며 뛰어난 문장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청초 우거진 골에>, <물곡사>, <남명소승>, <수성지>, <무어별> 등이 있다.
백호문학관 전시관 내부 모습
백호 임제의 물곡사에 대해 설명하는 노성태 원장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 후비보병(後備步兵) 제19대대에 희생된 동학군을 기리는 사죄의 비 앞에서...
첫댓글 김명수 선생님 감동입니다.
사진과 곁들인 멘트들도
좋고, 다시 한 번 공부하게
이끄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