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편은 치매였습니다
긴긴세월 12년동안 내 옆에서 살다가 가셨습니다
직업은 군인였고 36년이란 긴긴세월을 근무하시고 전역했는데
어느날 예고도없이 치매가 찾아 왔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무섭고 황당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받아들이고 병원에서 약다 타다먹고 운동도 하고 했죠
저는 그때부터 남편에게 올인하고 살았습니다
바로 요양보호사자격증을 취득해서 전문인력도 못되지만 최선을 다 하면서 살았습니다
언제나 웃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았죠
안돼 하지마 이런말은 금물입니다
뭐든 하고 싶다는건 다 해 줬습니다
울진이 고향인데 그길 혼자가겠다는겁니다
발병한지 5년이 지난뒤였는데
한글도 알고 핸드폰도 쓸줄알아서 혼자 보냈습니다
물론 옷속주머니마다 연락처를 적으서 넣어뒀고요
도착했을무릅에 전화했더니 큰집에 도착했지만 아무도 없다고
큰형님 형수님 다 돌라가셔서 빈집이 였거든요
그런데 그길 왜 가겠다는건지 몰라서 그냥 보냈는데
엄마 아빠 산소도 못찾겠다고 합니다
못찾으면 그냥 오라고했더니 울진나가서 하룻밤 자고 오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울진 나왔다고 전화왔고 숙소 잡아서 방에 들어왔다고 전화왔습니다
여보야 잘 자아
사랑해 내일 잘 해서 집으로 돌아와 나 당신없어면 안돼 알았지
나는 이런 달달한 멘트를 날렸습니다
알았어 내일 올라갈께
그렇게 무사히 그 먼 울진고향도 갔다 왔습니다
길을 잃거나 하는일은 없었죠
한동안 집에 와서는 아주 얌전하게 잘 지냈습니다
나는 남편에게 한번도 소리치지 않았습니다
일을 저절려 놔도 그냥 묵묵히 치우면 끝입니다
때론 폭력도 쓰고 아주 난폭해질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주 잘 살았답니다
치매환자랑 사는건 지옥이라고 하지만 그건 맘먹기에 달렸습니다
애기다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3살 애기가 무슨일을 할수있나요
모든걸 다 손봐줘야 하지않나요
나는 그러고 살았습니다
나중에는 혼자 밥도 못먹고 씻는건 커능 대소변도 못가려서
모든걸 다 해줘야 했습니다
아들과 딸은 요양원에 보내자고 했지만 저는 그럴수없었습니다
평생을 처 자식먹여 살린 사람을 어떻게 그러대로 보냅니까
나는 최선을 다해 돌봐드렸고
지금도 우리 남편이 그립고 보고싶습니다
여보 사랑해 하고 뽀뽀 해주면 무지 좋아하든 우리 남편
천진하게 웃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제 가고없지만 그 빈자리는 언제나 나를 허전하게 합니다
여보야 그곳에서는 편안하지 아프지 않고
대전현충원으로 모셨습니다
납골당에 들어가는걸 무지 싫어하셨는데 당신 소원대로
땅에 묻쳐서 아주 좋았답니다
일년에 몇번이 고작이지만 아들 딸 손자들과 함께 나들이가는 기분으로 간답니다
보고 싶다 여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