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마음으로
- 살림길 어울마당 열린 음악회 -
2023년 11월 11~12일, 서울 강북 인수마을에서 〈살림학연구소 서울 세움잔치〉가 열렸습니다. 살림꾼들은 한 달여 전 강원 홍천에서 열린 세움잔치에 이어 서울에서도 그 뜻과 신명 나누었는데요. 경남, 강원, 경기, 서울에서 모인 살림꾼들과 더불어, 이번에는 살림학연구소에 관심 있는 분들과 인수마을 이웃들에게도 잔치를 활짝 열어 더 풍성한 어울림 누렸습니다.
잔치 첫날에는 마을찻집 고운울림에서 깊어진 가을밤과 어울리는 〈살림길 어울마당 열린 음악회〉가 열렸어요. 이끔이를 맡은 살림꾼 혜현, 성호 님은 노래 ‘살림길 평화 온 누리에’를 함께 부르며 등장했습니다. “이번 어울마당은 이곳에 모인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설명으로 음악회를 시작했는데요. 세움잔치 열리기 전, 모두에게 ‘가을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와 노래’를 주제로 미리 사연과 노래 신청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사연 보낸 이는 신청한 노래를 불러주었으면 하는 이를 미리 추천하는 방식으로 꾸려졌습니다.
▲ 살림길 어울마당 이끔이를 맡은 살림꾼 성호, 혜현 님
사연 소개에 앞서 살림꾼 사무엘 님이 소박한 공연을 준비해주었어요. ‘조율’이라는 노래를 개사해 기타연주와 함께 나누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흥얼거리던 살림꾼들도 고친 후렴구 노랫말이 나오자 한목소리로 따라 부르며 따뜻한 눈빛 주고받았습니다.
깨어서 살고 살리며 곱디곱게 살아가요
마을들 함께 어울려 생명평화 지어가요
(노래 ‘조율’ 고쳐부름)
▲ 기타연주와 함께 노래 '조율'을 공연으로 나눈 살림꾼 사무엘 님
첫 사연 주인공은 인수마을에서 살림 육아하는 살림꾼 민혁 님이었어요. “아름다운 밤이에요!”라는 짧고 유쾌한 사연과 함께, 마을 동생 익현 님에게 ‘기찻길’이란 노래를 불러달라고 신청했지요. 이 노래는 익현 님이 노랫말을 직접 지은 곡이기도 해서 더 의미가 깊었습니다. 익현 님은 뜨거운 손뼉을 받으며 앞으로 나왔고 ‘기찻길’에 이어 ‘소녀’라는 노래 두 곡을 나누었어요. 떨리지만 진심 어린 목소리에 함께 모인 이들 모두 조용히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기찻길은 꼬불꼬불 타고 갈 땐 모르지만
돌아보면 꼬불꼬불 그렇게 지나가네
인생길도 꼬불꼬불 그때는 몰랐었지만
돌아보면 꼬불꼬불 기찻길은 인생길
(노래 ‘기찻길’)
▲ 직접 노랫말 지은 '기찻길'을 불러준 익현 님(오른쪽)과 고운 화음 쌓아준 보라 님(왼쪽)
사연 사이마다 작은 공연이 준비되어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인수마을에서 그림 그리는 벗으로 만나 공연까지 함께하게 된 용헌, 장희 님 순서였습니다. 만남 이야기와 어울리게 노래도 ‘스케치북’이라는 곡을 준비해주었어요. 담담히 노래해가는 두 사람 모습에 보는 이들도 평안한 마음으로 함께했습니다. 노래 간주 때 “살림학연구소라는 하얀 도화지에 함께 예쁜 색깔 칠해보아요!”라는 용헌 님 이야기에 살림꾼들 모두 웃음짓고 손뼉으로 화답하기도 했습니다.
▲ 그림 그리는 벗으로 만나 '스케치북' 노래 공연까지 함께하게 된 용헌, 장희 님
두 번째 사연은 인수마을밥상에서 밥 짓는 살림꾼 미정 님이 보내주었어요. 미정 님은 “기후가 달라져 잎 물드는 빛이 예년과 같지 않은데, 그럴수록 무엇을 탓하지 않고 겨울을 준비하는 생명들에게 고마운 마음 든다”며, “이 가을에 함께 살림길 걷는 분들의 고운 빛 만날 수 있어 고맙다”는 마음도 전했습니다. 덧붙여 ‘달님에게’라는 노래를, 밥상에서 함께 밥 짓는 예빈 님에게 불러달라고 요청했어요. 앞으로 나온 예빈 님은 “작게나마 살림꾼들과 공연 나눌 기회가 있어 기쁘다”며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참된 길을 가고 싶은 그 마음만 있다면
길을 잃지 않을 거야 밤길 가는 나를 보렴
너는 네 길 잘 갈 거야 네 앞길을 비춰줄게
(노래 ‘달님에게’)
▲ 함께 밥 짓는 벗의 신청곡 '달님에게'를 불러준 예빈 님(오른쪽)
이끔이들 소개로 등장한 다음 공연 모둠은 바로 ‘두둠칫언니들’이었어요. 지난 홍천 세움잔치에서 언니들의 흥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인수마을 살림꾼 지수, 미정, 지연, 미숙 님이 뜨거운 손뼉을 받으며 나왔지요. 노래 ‘주문’, ‘살림살이라네’에 맞추어 흥 넘치는 몸짓을 보여주었고, 함께하는 이들 모두 웃음꽃 피우며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일상살림 든든히 꾸려가면서도 함께 신명 나누려고 틈틈이 합 맞추고 연습해왔을 언니들 마음이 느껴지는 공연이었어요.
하늘과 땅 사람 함께 지금 여기 살리고
바라보고 잇고 짓고 살림길을 걷겠네
(노래 ‘살림살이라네’ -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고쳐부름)
▲ 홍천 세움잔치에 이어 더 큰 흥 나누어준 '두둠칫언니들' 지수, 미숙, 미정, 지연 님
세 번째 사연 주인공은 육아하며 직장생활 하는 살림꾼 나경 님이었어요. 나경 님은 마을 동생이자 연구소 세움잔치 때마다 영상으로 잔치 풍경 담는 살림꾼 도영 님과 나눈 이야기를 사연에 담았습니다. 잔치 모습 담느라 함께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에 도영 님은 “너무 행복해요!”라고 답했다고 해요. 잔치에 소외되는 이 없도록 살피는 마음, 어떤 자리에서도 행복하게 살림길 짓는 마음이, 사연 듣는 이들에게도 곱게 전해졌습니다. 도영 님은 이때만큼은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앞으로 나와, 노래 ‘꿈꾸지 않으면’을 진심 어린 목소리로 불러주었어요.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마음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네
(노래 ‘꿈꾸지 않으면’)
▲ 살림길 짓는 행복 나누며 노래 '꿈꾸지 않으면'을 불러준 도영 님
다음은 인수마을 빛알찬중학교에서 소리모아부르기 수업으로 만나는 성희선생님과 푸른이 서현이가 함께 공연을 꾸려주었습니다. 빛알찬중학교 학생들이 시에 가락을 붙이거나 직접 가락과 노랫말을 지은 노래들이 있는데, 살림길 평화 짓는 길에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해요. 곧이어 ‘선물’, ‘너도 그렇다’라는 아름다운 노래 두 곡이 맑고 고운 목소리에 담겨 잔치 공간을 메웠습니다.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노래 ‘선물’)
▲ 빛알찬중학교 소리모아부르기 수업으로 만나는 푸른이 서현과 성희선생님
네 번째 사연은 인수마을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지내는 살림꾼 혜령 님이 보내주었어요. 얼마 전 학생들과 다녀온 가을 들살이에서 시, 그림, 평화라는 주제를 많이 머금었는데, 그 마음 이 자리에서도 나누고 싶었다고 해요. 잔치에 함께한 마을학교 어린이들, 선생님들과 노래 ‘갈바람 불어와, 가을하늘’을 부르고 싶다고 신청했는데요. 무대로 나오기보다 있는 자리에서 함께 노래 부르고 싶다고 했어요. 곳곳에서 새싹이 움터 오르듯 맑고 고운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 불렀습니다.
갈바람 불어와 산 물들어가면
내 마음도 따라 가을이 됩니다
하늘은 높아만 가고 들판은 그윽해지고
가을은 깊어갑니다 내 마음도 깊어갑니다
(노래 ‘갈바람 불어와, 가을하늘’)
▲ 자리에서 일어나 한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어린이들과 선생님들
다섯 번째 사연 주인공은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살림꾼 용헌 님이었어요. 3년 전 청년 공동체방에서 함께 살았던 마을 형을 떠올리며 보낸 사연이었는데요. “함께 사는 것이 무언인지 잘 몰랐던 나를 형이 많이 참아주고 기다려주었다”며 “지금에야 그것이 가을단풍처럼 진한 형제애이자 나를 살리는 살림이었음을 깨달았다”고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혼인해 새로운 살림 꾸리고 있는 형 재홍 님에게 용헌 님은 ‘아마도 그건’라는 노래를 신청했어요. 재홍 님은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나왔고, 노랫말 하나하나에 마음 담아 노래를 나누었습니다.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거야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이제야 그 마음을 알아버렸네
그대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을
(노래 ‘아마도 그건’)
▲ 청년 공동체방에서 함께 살았던 동생 용헌 님의 신청곡을 부르는 재홍 님
다음으로 지난 홍천 세움잔치 때 재미있고 참신한 공연을 펼친 ‘의용대’ 공연이 펼쳐졌어요. 인수마을 의용대 의진, 용헌, 대범 님과 멋진 목소리로 합을 맞춘 서현 님이 함께했습니다. 하늘과 땅, 물의 기운 받아 일상에서 수련하며 살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마을 아이들과 신나게 놀기 위해 팔 힘을 기르고, 마을 배움터에 밥을 날라주기 위해 다리 힘을 기르는 등 유쾌하고 재밌는 살림수련 모습이 담겼습니다. 보는 이들 모두 또 한 번 배꼽 잡으며 큰 웃음 나누었지요.
▲ 살림수련의 진면목을 보여준 '의용대' 용헌, 대범, 의진, 서현 님
마지막 사연은 홍천에서 수학과 과학으로 학생들 만나는 (달)진영 님이 보내주었습니다. 진영 님은 “가을 하면 풍성하게 거두는 열매들이 생각난다”며 “신명나는 잔치에 함께해서 기쁘다”는 인사를 전해주었어요. 홍천 삼일학림 학생들이 노랫말 고쳐 부른 ‘은혜’라는 노래를 신청했는데요. 불러주었으면 하는 이를 따로 정하지 않고 이 자리에 있는 누구든 불러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 노래를 평소에도 자주 부르고 좋아한다는 예빈 님 이끔으로 모두가 한목소리로 노래 불렀어요.
넓고도 넓은 이 세상 가운데
더불어 삶 마을로 함께하니
마을 사랑 풍성히 누리는 삶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이죠
(노래 ‘은혜’)
▲ 어울마당 함께한 이들 한목소리로 부른 '은혜'
모든 사연 나눔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인수마을 살림꾼들로 이루어진 소리모아부르기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살림꾼들이 밝게 살아가길 응원하는 마음 담아 ‘저 달’이라는 노래를 준비했다고 해요. 깊어진 가을밤과 어울리는 그윽한 소리에, 함께 모인 이들 모두 달처럼 밝아진 마음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 인수마을 소리모아부르기 모둠 살림꾼들
〈살림길 어울마당 열린 음악회〉를 마치며 이끔이 성호, 혜현 님은 하늘 땅 사람 곱게 어울려 살림길 평화 온 누리에 퍼지길 바란다는 마음 전했어요. 늦은 저녁이었지만 누구 하나 피곤한 기색 없이 서로 밝게 인사 나누고, 내일 다시 만나자는 다정한 인사로 〈살림학연구소 서울 세움잔치〉 첫날을 갈무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