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임의 생각」과 「그대 그리움」
혼자서 길을 나섰다.
시카고(임대주택)로 가서 빈 방의 파벽돌에 흰색 페인트칠을 하였다. 창문을 여니 모과나무의 무성한 잎이 보였다.
이어폰을 켜고 우리 가곡을 들었다.
내가 요즘 가장 즐겨듣는 가곡 「임의 생각」이 흘러나왔다. 이 노래는 사실 내가 스무 살 시절 아내를 만나, 그녀를 통해 가곡을 알고 나서 즐겨 들으며 따라 불렀던 가곡이었다. 그러나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곡이었는데 최근에 유튜브를 통해 우연히 다시 듣게 된 가곡이었다.
밤은 깊어 삼경인데
임의 생각 절로 나고
바람 소리 풍경소리
이 내 마음 설레이네.
너와 살고지고
너와 살고지고
너와 나 더불어
내 사랑아 내 사랑아
(고봉인시, 장일남곡)
바리톤 김성길의 음성은 부드러우면서도 감미로웠다. 그의 음성에는 임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것 같았다. 노래를 따라 부르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너와 살고 지고~ 너와 살고 지고~” 하다가 “너와 나 더불어~” 하는 최고조의 선율이 나오면서 “내 사랑아~, 내 사랑아~”하고 부르짖을 때 나는 그만 저 가슴 밑바닥에서 부터 훅 하고 올라오는 슬픔과 회한을 느꼈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동안 넋을 잃고 그의 굵고도 간절히 절제된 음성을 들었다.
그래. 부디 그렇게 살자.
아~,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너와 나 더불어
그렇게 남은 생을 함께 살자.
그렇게 둘이서 살다 가자.
아침에 하늘하늘 보라색 블라우스에 연분홍 바지를 입고 영어수업을 받으러 집을 나서던 아내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흰머리가 희끗 희끗 하는데도 내 눈에는 귀여웠다. 마치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학교에 가는 소녀 같았다.
아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것을 보고 나는 얼른 창문가로 다가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아내가 우리 집 앞 골목을 빠져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어쩌면 저렇게 작을까, 45년을 보아 온 아내의 걸음걸이가 눈에 익었다.
그 걸음걸이는 야간학교 시절 수업에 늦지 않으려고 밤길을 허둥대며 달려오던 그 걸음걸이였다. 신도림동의 길가 가로등 밑에 서서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리노라면 저만치서 서둘러 걸어오던 그 걸음걸이였다. 나는 어둠속에서도 그녀를 알아보았다. 낯익은 그녀의 걸음걸이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늘 그랬다. 그녀를 기다리다가 이윽고 만나면 내 가슴은 언제나 설렜다.
그녀가 골목길로 사라진 후에는 언제나 마음이 허전하였다. 그렇게 그녀가 집을 나선 후 나는 그녀가 다시 집에 돌아올 때를 기다린다. 그럴 때면 늘 생각나는 시(詩)가 있다. 이 시는 제목이 그대로 한 편의 시이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아,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이 시는 이 한 줄로 족하다. 도대체 그리워 그리워 노래 부르며 한 평생을 살았어도 늘 그리운 이 마음을 무엇으로 내보일 수 있단 말이냐. 그녀가 내 집에서 함께 살고 있고, 부엌에서 무엇인가 소박한 음식을 만들며 도마 위에서 따독따독 소리를 내고 있을 때에도, 그녀가 다락방에 혼자 앉아 서툰 영어를 따라하며 공부를 하고 있을 때에도, 옥상에 올라가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릴 때에도, 심지어 그녀가 곁에 누워 숨을 고르며 자고 있을 때에도 나는 그녀가 보고 싶다. 그립다.
내 방에 올라와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에도, 나는 아래층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무슨 드라마를 보며 하하 호호 크게 웃는 소리가 나면 그때가 가장 즐겁다. 무엇이 저리도 재미있는 것일까, 집안이 떠나가도록 웃는 아내와 아이들, 나는 궁금해서 잠깐 아래층을 내려다본다. 아내는 소파의 가운데 앉고 두 딸이 양 옆에 붙어 앉아서 양쪽 팔을 하나씩 겨드랑이에 끼고 한참을 웃는다. 서른이 훨씬 지나 이제는 덩치도 제 어미보다 훨씬 큰 녀석들이 아내를 독점하고는 놓아줄 줄 모른다.
나는 그럴 때 은근히 샘이 난다. 내 아내를 녀석들이 빼앗아 간 것 같다. 아이들은 위층에서 내려오면 어김없이 아내에게 달려가면서 팔을 벌린다. 그러면 아내는 한없는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며 아이들을 안아준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다. 그러한 모습은 아이들이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이들을 끌어안은 아내의 모습은 아이들보다 작다.
어떨 때는 작은딸이 아내를 끌어안고 있을 때 큰딸이 내려올 때도 있다. 그러면 큰딸은 아내와 작은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려고 한다. 이때 작은딸은 아내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더 꼭 붙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큰딸은 할 수 없이 둘을 함께 끌어안는다. 그럴 때 보면 셋은 마치 한 덩어리 같다.
나를 만나던 시절 그렇게 꽃같이 아름답던 아내도 이제는 노인(老人)이 되었다. 아내는 작년에 공식적으로 노인이 되어 나랑 동사무소에 같이 가서 ‘어르신 무료교통카드’를 받았다. 나도 올해에는 아내의 것과 똑같은 교통카드를 받아왔다.
동사무소로 교통카드를 받으러 가던 작년 봄, 한참 걸어가다가 돌아보니 아내는 길가에 활짝 핀 벚꽃에 정신이 팔려 서 있었다. 언제나 그랬다. 길을 가다가 꽃을 보면 걸음을 멈추고 넋을 잃고 꽃을 바라보고 서 있는 그녀의 버릇은 아주 오래되었다. 나는 수많은 꽃들의 이름을 아내에게서 배웠다. 하지만 아무리 알려주어도 그 때 뿐이다.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 묻곤 한다.
같이 있어도 보고 싶고
돌아서면 다시 보고 싶고
안보이면 마냥 허전해 지는 그대
아내라는 이름의 여인이여
나는 지금도 그대가 그립다.
보고 싶다.
그리움이란 늘 이렇게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거늘 어쩌란 말이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낱말이 그리움이고
내 생(生)의 팔 할을
그리움에 빼앗겨 버렸는걸 어쩌란 말이냐.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류시화)
언젠가 그녀가 내 안에 들어와 살고 있은 후부터 나는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의 노예가 되고 말았음을 고백하리라.
https://youtu.be/2Um0PtfWXo0?si=ga4lIQ3UwJIt3pn2
첫댓글
살면서 인생 일대기 한 페이지를 그려 낼 수 있다면
성공이지요
김성만 작곡가 님
축하드립니다
찾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