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경 사진 위
정헌철 교수의 딸 결혼식
소우주 정석현
아주 옛날 반세기 전
사천 육군 항공학교에선 잠자리 비행기
이 착륙을 하며 엔진 소음이 사천만의 바다 물결을 일렁이게 하였다
중등 학생들이 국군 아저씨들에게 위문 편지를 보내왔다.
내가 받은 그 주인은 중학교 1학년 정헌철 군이었다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앎의 지속으로 친해졌다.
그 학생이 중학교 일학년 때 외출 나가서
남강 촉석루 의암에서 기념사진도 찍으며
가까운 친척같이 재미있는 대화도 많이 하였다.
세월이 흘러 제대 후 서울 생활을 할 때도
서로 편지는 주고받았다.
첫아들 돌 땐 자기 엄마가 애 이불을 싸서 보내주었다
어느덧 그 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갈 무렵 난 무조건 공부는 서울 와서 하라고 했다
옛말에 말은 나면 제주도 사람은 한양으로~라고 하였다
서울대학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때는 다 털어먹고 봉천동 서울대학교 후문에서
아들과 부인 셋이서 구차하게 살 때다
그 옆집에 방을 한 칸 얻어 숙식을 제공하여 그 학생이 학교에 다녔다.
반찬이 없어 간장 하나로 밥을 먹을 때도 있었다
쌀이 없어 밀가루 수집이을 많이도 해 먹었다.
몇 개월 있다가 그 학생은 다른 곳으로 갔다.
나도 하는 수 없이 고향으로 내려왔다.
내가 시골 내려와 열심히 농사를 지을 때 하루 다녀가고
여태 영영 서로 소식이 없었다.
서로 자기 생활에 충실해야 했기 때문이리라
반세기 후 3년 전 그 학생이 국립 경상대학교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 교수가 되어
대만 교환 교수로 가있을때 내 블로그 보고 안부 메일이 왔다.
매우 반가웠다.
귀국해서 작년엔 부인 윤 박사와 함께 집으로 선물을 싸 들고 찾아왔다
반갑기 그지없지만 누추한 시골집이라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용돈을 두둑이 주고 갔다
가고 난 뒤 눈물이 핑 돌았다.
부인은 요양원에 나는 궁핍하고 초라한 촌노라
올해 6월 19일 진주 켠벤션센터에서 둘째 딸 결혼식이라
동대구에 가서 버스를 타고 진주로 향했다
진주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데 마침 그 제자가 상세히 안내해주어 함께 갔다.
함께 인사를 나누는데
그 제자에게 오늘 나를 있게 한 아저씨라고
소개를 했다 부끄러웠다
혼주와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부인 윤 박사와도 악수하고
딸,사위에게 악수하며
열심히 행복하게 잘 살라고 하였다
옛날에 까까중 학생이 훌륭한 교수가 되어 사위를 보는 모습
감회가 무량하였다.
간다니까 쫒아 와서 차비도 주었다.
흐르는 세월 속에 강물 따라 많이도 흘렸다
차창 밖을 내다보며 옛날을 반추하며
푸르른 산천초목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부기
신랑은 일본 피죤 회사 직원이고
신부는 한국 피죤 회사 직원이라 몇년 열애 끝에 국제결혼을 한 엘리트였다
신부 하객은 물론 신랑 축하객들도 일본에서 많이 왔다.
2016년 6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