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경 및 목적
화병은 우울, 불안, 분노의 부정정서 중 분노로 인해 발생한 정신장애로, 한국의 전통적인 질병 개념이다.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y Association, APA)의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에서는 분노와 관련된 장애가 따로 정의되어있지 않고, DSM 4판의 부록에서 한국의 문화관련증후군으로 화병을 소개하기도 하였으나 5판에서는 문화관련증후군에 대한 내용이 전반적으로 축소되면서 화병이 삭제되었다.
화병은 국내 유병률이 4.2~13.3%로 일차의료현장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신경정신과 질환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만성적인 경과를 보이고, 유병기간이 길어질수록 타 질환과 공병되는 경우가 많으며, 갱년기증후군이나 갑상샘 기능장애 등 신체질환에 의해서도 화병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진료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국내에서 2013년 화병임상진료지침이 출판되었으나, 근거중심의학적 방법론에 따라 개발되지 않았고 최근 변화하는 임상 현장의 모습과 최신 근거들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화병은 한국의 문화관련증후군이라는 질환의 특성상, 지금까지 주로 국내에서 연구가 수행되었고 국제적인 임상연구나 임상진료지침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화병 환자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는 더 많은 연구를 포함하여 간접성을 높이더라도 더 많은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개정을 진행하고자 하였다.
현재 의학계에서는 독립된 질환 개념으로서 ‘분노장애’를 다루고 있지 않고 있고, 다만 일부 연구들에서 다른 정신장애 및 신체질환에 동반된 정서적 특성으로서 분노 지표를 측정하고 연관성을 확인하는 데 그치고 있다. 본 임상진료지침 개발위원회에서는 일부 질환에서 분노가 동반될 경우에는 화병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보고, ‘타질환이 병행된 화병’에 대해서도 권고안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를 위해, 화병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의 주제로 화병을 비롯하여 2013년 화병임상진료지침에서 화병과 공병율이 높은 것으로 보고된 우울증과 고혈압의 분노증상을 선정하고, 전통적인 화병의 양상으로 꼽히는 중년 여성의 화병과 연관하여 갱년기 여성의 분노 증상을 선정하였다. 또한 최근 직업적 스트레스 문제가 이슈가 됨에 따라 전통적인 화병 뿐 아니라 직장인군에서의 스트레스 관리에 대해 다루고자 직장인의 분노관리에 대한 심신중재법을 검색하여 수록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화병임상진료지침의 개정을 위하여 대한한방신경정신과학회를 중심으로 총괄위원회와 개발위원회를 구성하고, 기존 화병임상진료지침을 분석·검토하여 개정 계획을 수립하였다. 본 임상진료지침은 근거중심의학적 방법론에 따라 최신의 근거와 전문가의 경험, 환자의 가치와 선호, 한의계 일차의료현장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하였다. 개정된 화병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은 기존 화병임상진료지침에 비해 화병의 병인·병리를 더욱 충실히 보완하였고, 실제 임상에서 활용되고 있는 상담과 명상에 대한 임상질문을 추가하였다. 본 임상진료지침은 신규직접(De Novo) 개발에 준하는 과정에 따라 핵심질문을 선정하고, 화병과 관련된 국내외 근거들에 대하여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 분석을 시행하였다. 체계적 문헌고찰과 메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근거수준과 권고등급 및 권고안 초안을 작성한 뒤, 델파이 방법을 이용하여 전문가 합의를 거쳐 권고안을 최종 확정하였다.
2. 질환개요
1) 화병
화병은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되지 못하여 화의 양상으로 폭발하는 증상이 있는 증후군이다. 신체증상으로 가슴 답답함, 열감, 치밀어 오름, 목이나 명치에 덩어리가 뭉친 느낌 등이 나타나고 심리적으로 억울하고 분한 감정, 마음의 응어리나 한(恨)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증상들은 뚜렷한 스트레스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기존의 정신장애의 분류는 우울을 기반으로 하는 기분장애(우울장애)와 불안을 기반으로 하는 불안 장애를 명확하게 제시하지만, 분노와 관련한 정신장애의 경우는 그 기준과 범주에 대하여 명확하게 묘사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현재 화병 환자들은 양방의료기관에서 화병에 공병된 질환 및 병발된 증상에 대한 치료를 받고 있을 뿐, ‘화병’에 대한 진단 및 치료는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화병 진료는 전적으로 한의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