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너희는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라(願爾國臨)
마태복음 6:10
상동교회
夫敎會內眞信篤信者多, 而問其希望則來世而已, 現世無關云. 此何誤也? 若如此則吾等之天堂, 反如佛敎之天堂, 吾等之善只如儒者之獨善也. 故讚頌歌曰 有一福地在彼遠處, 又曰 我是行路之旅, 不過一夜留宿, 卽天國與今世少無關係云. 故敎友自然傲視今世, 余見年前有一敎友擲敎科書曰 此皆魔物云. 是何誤解也? 有一西人只知天國, 不知有自國, 恒言我無關自國, 領事聞之不給旅券云. 是皆來世觀之敎人也. 敎人之來世觀不似世人之來世觀也. 世人之來世觀, 如鄭鑑錄風水之說皆迷信也. 種豆得豆種瓜得瓜, 是敎人之未來也. 安有不種而收果乎? 天地寧廢, 聖旨不廢. 雖一點一劃, 皆得成也. 故天國確實無疑也. 且來世之國在於今日, 故主曰今日之事今日足矣. 由此觀之, 未來之天國在今日之如何也. 得天國在今日, 失天國在今日也. 故主常以豫備爲訓者以此也. 愚智處世之譬萬兩, 譬喩皆以此也. 天國不在未來, 天國在現世, 更言之, 福音者非來世之物也. 卽現世之物也. 然則敎友之希望, 可忘現世而只望來世乎? 誤解甚也. 故悔改云者卽現世之事也. 非來世之事也. 눅十六章. 나사로之事, 可以參照也. 傳道于地極亦現世之事也. 決非來世之事也. 重生亦現世之事也. 主曰此在地之事, 非在天之事也. 此國決非來世之國也, 卽現世之國也. 余欲大聲疾呼者卽此也. 主自身卽天國也, 故曰天國近矣. 悔改信福音云, 故宗敎自身先慕義國, 身先天國化, 家先天國化後, 社會與國家皆天國化, 主已成天國於天上, 而別降臨于地上焉, 書曰 俟我后后來其蘇矣. 東面而征西夷怨, 南面而征北狄怨, 臨者自上來下者也. 如后來臨, 臨則民其蘇矣. 民何不願也? 今世之人, 病入膏肓, 氣息奄奄臨死, 誰能救之乎? 故福音有醫病之權, 主在世醫病驅鬼, 使苦痛者得蘇, 是메시야之神權也. 메시야王國臨則天下無事, 兵器化爲農器, 幼兒遊於獅窟而無傷, 如癈得蘇, 如旱得雨, 豈非祈願者乎? 今之世基督人之祈禱, 使之平安也. 此不可徒享者也, 必勞于今世, 流旱必得者也. 요한之後天國, 必用力者得之也. 農夫夏勞秋穫. 姜邯贊戰勝契丹而歸, 顯宗以月桂花揷頭, 迎于郊外, 使之入都, 榮耀一世矣. 今世宗敎與政治必和云, 而宗敎不可干政治, 然福音有責任, 勞賃問題, 公娼問題, 不可岸視也. 主曾痛罵바리새人曰 禍哉禍哉! 皆岸視當局故也. 執法者如有感化則法曹界天國臨矣, 實業者如有感化則實業界天國臨矣, 敎育界如有感化則敎育界天國臨矣. 故今日敎會之所要者, 使當局理解福音故也. 今世甚無理解, 反視如巫覡之輩, 陰崇有巫覡者, 當應擊錚而此猶擁護, 欲疾視基督敎, 做出許多惡評, 或至比之阿片, 甚哉今世之無理解也! 願當局理解焉. 롬十四章十七졀. 曰神之國不在飮食也. 今世之人以食爲天, 反以物質爲天國, 汲汲乎物質而陷罪失敗者多矣. 故一靑年法律學者, 問何以永生也? 主答曰 汝以財施貧者云, 則靑年嚬蹙而歸之, 反以物質以天國視之也. 某說敎者曰 非水與聖神, 重生者不得入天國云. 水則物質故得物質者入天國云. 此何誤也? 或曰天國在某主義云, 社會主義果天國之主義乎? 主曰天國在此在彼, 勿信云. 必指此而言也. 故天國如保羅之言在賴神, 而義及平康且喜悅也. 義非聖神不能得, 且非義不能守. 非平康不能享, 非喜悅不能包容也. 天國先建設于人之心內表現于外, 非聖神不能也. 神之義與人之義異焉, 信主贖罪, 重生入國皆其義也. 世之國民無信不立, 國民精潔無罪, 可謂義也. 此國願臨于世. 亞門!
대개 교회 안에는 참된 신자, 돈독한 신자가 많지만 그 희망을 물으면 내세뿐이고 현세는 무관하다고 이릅니다. 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입니까? 만일 이와 같다면 우리의 천당은 도리어 불교의 천당과 같아지고, 우리의 선(善)은 유교의 독선(獨善)과 같아집니다. 그러므로 찬송가에 이르기를 ‘저 복지(福地)가 멀리 있네’ 하였고, 또 ‘나는 바로 길 가는 나그네, 하룻밤 유숙할 뿐이지’라고 하여, 곧 천국은 지금 세상과 조금도 관계가 없다고 이릅니다. 그리하여 교우들은 자연히 지금 세상을 무시하게 됩니다.
나는 연전에 어떤 교우 한 사람이 학교 교과서를 내버리면서 ‘이게 다 마귀의 물건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큰 오해입니까? 어떤 서양 사람이 다만 천국만 알고 자기 나라인 자국은 모른다고 하면서 ‘나는 우리나라와 무관하다’라고 하였답니다. 그러자 그 나라 영사(領事)가 그 말을 듣고 여권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다 내세관(來世觀)의 교인입니다. 교인의 내세관은 세상 사람의 내세관과 다릅니다. 세상 사람의 내세관은 <정감록(鄭鑑錄)>의 풍수지리설 같은 것으로써 모두 미신입니다. ‘팥 심은 데 팥 나고, 오이 심은 데 오이 나는 것’이 바로 교인의 미래입니다. 어찌 씨를 뿌리지도 않고 과일을 거두겠습니까? 천지가 차라리 없어질지언정 주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고, 한 점, 한 획이라도 모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의심할 것 없이 확실합니다.
또한 내세의 나라는 오늘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오늘의 일은 오늘로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볼 것 같으면, 미래의 천국은 오늘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천국을 얻는 것도 오늘에 있고, 천국을 잃는 것도 오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늘 ‘예비하라’고 가르친 것이 이 때문입니다. 천국은 미래에 있지 않고 현세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은 내세의 것이 아니고 바로 현세의 것입니다. 그런즉 교우의 희망이 현세를 잊고, 내세만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오해가 심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라고 하는 것은 바로 현세의 일이고 내세의 일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나사로의 일을 참조할 만합니다.
지옥에 전도하는 것도 역시 현세의 일이고, 결코 내세의 일이 아닙니다. 거듭나는 중생도 현세의 일입니다. 주께서 ‘이는 하늘에 있지 않고, 땅의 일이라’ 하셨으니, 이 나라는 결코 내세의 나라가 아니고 바로 현세의 나라입니다. 내가 큰 소리로 부르짖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바로 천국이십니다. 그리하여 이르기를 ‘천국이 가까우니 회개하여 복음을 믿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자신이 먼저 의의 나라를 사모하여 자기 자신이 천국을 이루고, 가정이 먼저 천국이 뒨 뒤에야, 사회와 국가가 다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하늘에 천국을 이루시고 지상에 강림하신 것입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우리 임금을 기다렸더니, 임금이 오셨으니 우리는 이제 살아났다’라고 하였고, 또 ‘우리 임금이 동쪽 오랑캐의 두목을 치러 가면 서쪽 오랑캐의 백성들이 자기 나라를 먼저 쳐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남쪽을 향하여 가면 북쪽 백성들이 원망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임(臨)한다는 것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우리 임금이 내림한즉 백성들이 살아날 것인데 백성들이 왜 바라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사람은 병이 골수 속에 깊숙이 박혀서 숨이 까물까물 붙어 있어 죽기 직전에 있습니다. 누가 능히 구원해 주겠습니까? 그러므로 복음에는 병을 고치는 권능이 있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병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몰아내어 고통 받는 자를 살려 주셨으니, 이것이 바로 메시야의 권능입니다. 메시야 왕국이 임한즉 천하는 평화롭게되고, 전쟁의 무기는 농사 도구로 바뀌고, 어린 아이가 사자 굴에서 놀아도 다치지 않습니다. 나쁜 병을 고쳐서 되살아난 것과 같고, 가물에 비를 얻은 것과 같으니 어찌 기원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세상에 기독교인의 기도는 평안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저 평화를 누리는 자에게는 불가합니다. 반드시 노력하는 오늘날 세상에서 땀을 흘려야 반드시 얻을 것입니다. 천국은 애쓰는 자가 얻습니다. 농부는 여름에 수고하고 가을에 거둡니다. 강감찬 장군이 거란[契丹]을 이기고 돌아올 때, 고려 왕 현종은 월계화를 머리에 꽂아주고, 교외까지 나가 마중을 하고, 그를 데리고 도성에 들어오니 그 영화는 한 시대에 빛났습니다.
오늘의 종교는 정치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종교는 정치를 간섭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그런데 복음에는 책임이 있으니 노임 문제, 공창(公娼) 문제를 무시해서는 아니 됩니다. 주님이 일찍이 바리새인을 준렬하게 나무라기를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하셨는데, 이는 바리새인들이 당국의 처사를 남 보듯 하였기 때문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만일 감화한다면 법조계에 천국이 임할 것이고, 실업하는 사람이 만일 감화한다면 실업계에 천국이 임할 것이고, 교육자가 감화한다면 교육계에 천국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교회가 필요로 하는 바는 당국으로 하여금 복음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세상에서 교회에 대하여 너무 이해가 없어서 도리어 무당의 무리와 비교해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몰래 무당을 숭배하는 자가 있으면 징을 쳐서 거두어들이도록 해야 하는데 오히려 옹호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미워하게 하려고 온갖 악평을 다하여 어떤 이는 아편에 비유하는 데까지 이르니, 너무 심하구나, 오늘날 이해하지 못함이여! 당국은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4:17에 이르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데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날 사람들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 것보다 도리어 물질로써 천국을 삼아 물질을 가지려고 마음을 졸이다가 죄에 빠지고 실패하는 자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청년 법률학자가 ‘어찌하여야 영생을 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주께서 ‘너의 재물을 가난한 자에게 베풀어주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입을 삐죽거리며 돌아가서 도리어 물질을 천국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어느 설교자가 이르기를 ‘물과 성신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며, ‘물은 물질이기 때문에, 물질을 얻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라고 하였는데, 이 얼마나 잘못 된 말입니까? 어떤 이는 ‘천국이 어떤 주의[主義]에 있다’고 하는데, 사회주의(社會主義)가 과연 천국의 주의이겠습니까? 주께서 ‘천국이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다고 하는 것은 믿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는 반드시 ‘여기’를 지적해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바울의 말과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의(義)를 얻고, 평강하고 또한 희열하는 데 있습니다. 성신이 아니면 의를 얻을 수 없는데, 또한 의가 아니면 지킬 수 없고, 평강이 아니면 누릴 수 없고, 희열이 아니면 포용할 수가 없습니다. 천국은 먼저 사람의 마음속에 건설하고 밖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성신이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사람의 의와 다릅니다. 주님을 믿어 속죄함을 받고, 거듭 나서 주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그 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믿음이 없으면 설 수가 없으니, 국민이 정결하고 죄를 없게 하여야 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나라가 세상에 임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