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신자가 힘을 얻을 곳(信者의 得力處)
데살로니가전서 2:13-16
이태원교회(梨院 1930.8.3)
말샴머付托. 사도二十章三二節. 항상묵상. 詩一章二節. 左右勿偏. 슈一章七節. 活潑有力. 히四章十二節. 不廢. 太五章十八節. 言在爾內. 요十五章七節. 我言潔爾. 仝三節. 成主言. 太八章十七節. 主一言之則, 太八章八節.
言者 表示自己之如何, 興戎興福, 故聖書, 戒以勿妄言, 얍三章三節. 唯唯否否, 過此則惡也. 太五章三八節. 云. 以此觀之, 地獄之火, 生於言也. 天國之火, 生於言也. 故愼於言者, 近於救援也. 神亦欲示自己, 而先以言爲之, 觀刱一章則可知矣. 神之言, 千眞萬眞, 使人可信, 或有行而不言者, 然未有言而不行者, 故信之義在此, 不如人言之互相變易, 而不可信者. 保羅嘗言于빌입보人曰, 賜能力者之內, 我無所不能, 빌四章十三節, 云. 保羅於人類中, 大有能力, 而其所得力, 果自何而得也? 知處卑賤, 知處豊備, 熟知飢飽, 熟知豊嗇, 果無所不能, 其力果自何而得也? 主之言卽勉勵于保羅之內, 故賴其力而能之也. 累試累驗, 百無一失, 保羅嘗欲往亞細亞傳道, 而聖神不許, 更使往馬基頓, 果依其言而往, 如約拿之, 欲往多數神不許, 更使往이늬위傳道, 人之言反覆無常, 而神之言, 永遠不變也. 故吾等信之得力也, 一神之言, ◇能潔罪, 요한十五章三節. 人若陷罪, 無所希望, 社會排之, 隣里斥之, 無所容身, 主一言赦之, 使之爲潔人, 如潔癩者, 太陽之熱 能消不潔之菌, 主嘗過거라사村, 有軍隊之鬼, 遠見主至, 大呼請赦, 此何故也, 此不潔之鬼, 一見救主之榮光, 不能堪當故大呼, 刱記曰, 自古人無見神者, 見之者死. 此何故, 墮落後人不能近上帝, 亦不能堪當故也. 二神之言, ◇有克己之力, 天下可勝, 自己不可勝也, 昔亞力山大王, 能征服天下, 而不能勝一杯之酒, 故死于酒病, 大衛王 能勝掃羅王, 而致太平, 而不能勝一女之惑, 陷于大罪, 所謂自己者, 强于天下也明矣. 主言能使人克己 克之方, 卽忍之已而也. 主曰 終忍得救, 人有九思, 思而後忍, 忍之道, 實非易, 易經無限之苦難而得之, 故主曰終忍, 主道卽忍之道, 有一西人與夫人言爭, 欲忍之, 入地下室, 又有科擧者, 講經幾畢, 思及榮光之來, 忘置而落矣, 故終忍爲貴也. 三神之言, ◇有成功之力, 요한十五章七節, 吾等之成功, 在神之言, 如葡萄樹如枝附樹, 枝不附則枯, 吾等不從主言則枯, 此何故也? 主言眞理故也. 如我欲往而乘車也, 細看主之行事, 一不違神之言而行行其事云, 欲成主之言, 太八章十七節. 故主之言卽神之言也. 百夫長知此, 請于主曰, 第一言之則倏愈, 太八章八節, 云. 神以言成世界, 而一人之病 能不以言愈之乎? 故請之. 昔約書亞征迦南, 主命之曰, 爾守律勿偏左右, 슈一章七節. 云. 約書亞以此意發兵, 征迦南, 所向無所不克也. 吾等欲成事業, 捨主之言而勿爲可也. 故保羅傳道. 各處立敎會. 而第三次上京, 知死期將至, 慮敎會動搖, 亦臨發請에베소長老, 謂曰 擧敎會托于主之言, 사도二十章三十二節. 知主必保佑, 敎會內勿收入他道, 必講究主言, 晝夜黙想, 則如柳立溪邊, 必日滋長矣. 且主言活潑有力, 히四章十二節. 能使敎人之心, 常常運動不休, 如天地運行, 神以言造世界, 其眞理常常不休, 進進邁往矣. 天地可廢, 神之言一點不廢, 太五章十八節. 如是運動于敎人之心內, 吾等當體驗不休, 亦邁邁進進可矣.
부탁할 말씀. (사도행전 20:32).
항상 묵상. (시편 1:2).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여호수아 1:7).
살아 있고 활력이 있나니. (히브리서 4:12).
없어지지 아니함. (마태복음 5:18).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함. (요한복음 15:7).
내 말로 너희는 이미 깨끗해 졌으니. (요한복음 15:3).
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 (마태복음 8:17).
주의 한 마디 말씀의 법칙. (마태복음 8:8).
말이란 자기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으로 전쟁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복도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서>에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야고보서 3:3). 그저 ‘예, 예와 아니오, 아니오!’ 할 뿐이지, 여기서 지나치면 악이 된다고 하였습니다.(마태복음 5:38). 이로써 볼 것 같으면 지옥의 불꽃도 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중하게 말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데 가깝습니다.
하나님도 자신을 나타내실 때, 먼저 말로써 하셨습니다.(창세기 1장). 하나님의 말씀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진실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믿고 있습니다. 간혹 실행에 옮기고 말하지 않는 것이 있으나, 말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올바른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말을 해 놓고 그것을 변경하여 믿을 수 없게 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바울이 일찍이 빌립보에 사는 사람에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큰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가 얻은 바의 능력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지위가 낮고 천한 데 처할 줄도 알고, 풍부하여 잘 구비된 데도 처할 줄도 알아서, 굶주림과 배부름을 익히 알았고, 풍부함과 인색함도 익히 알게 되었으니, 할 수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힘은 과연 어디서부터 얻은 것입니까? 주님의 말씀은 바로 바울이 부지런하고 힘쓰게 하셨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 여러 번 시험을 당하였어도 백가지 중에 한 가지도 실수함이 없었습니다.
바울이 일찍이 아시아에 가서 전도하려고 할 때 성신께서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마케도니아로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그 말씀대로 갔으나, 요나 같은 이는 여러 번 가려고 하였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아 다시 니느웨로 가서 전도하였습니다. 사람의 말은 반복무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불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힘을 얻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 죄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5:3).
사람이 죄에 빠지면 희망이 없어집니다. 사회에서 배척하고, 이웃도 돌아보지 않으니 몸 둘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말씀 한마디로 용서해 주시면 한센병자도 깨끗이 낫게 해 준 것처럼 태양의 열기가 불결한 병균을 소멸시켜 주는 것과 같아집니다.
주님께서 일찍이 거라 사 지방을 지나실 때에,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이 주님이 오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용서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이 불결한 귀신이 주님의 영광스러운 빛을 한번 보자 감당할 수가 없어서 크게 부르짖은 것입니다. <창세기>에 이르기를 ‘예로부터 사람은 하나님을 본 일이 없는데 본 사람은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타락한 사람들은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가 없고 또한 감당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 극기(克己)의 힘이 있습니다.
천하는 이길 수 있어도 자기는 이길 수 없습니다.
옛날 알렉산더 대왕은 천하는 정복할 수 있었으나 한 잔의 술을 이기지 못하여 술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다윗 왕은 적군을 태평을 이루었으나, 여자의 유혹을 못 이겨 대죄에 빠졌습니다. 이른바 자기라고 하는 것은 천하보다 강한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극기하도록 할 수 있는데 극기하는 방법은 바로 참는 것뿐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끝까지 인내하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는데, 사람은 아홉 번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 참아야 합니다. 참는 도리는 실제로 쉽지 않습니다. 쉽다는 것은 무한한 고난을 겪은 뒤에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끝까지 인내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도는 바로 참는 도입니다.
어느 서양 사람이 부인과 언쟁을 하다가 참으려고 지하실에 들어갔습니다. 또 과거를 보던 자가 <경서>를 외는 시험인 강(講)을 하다가 영광스러운 미래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만 외던 글을 잊어먹어 낙방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참는 것이 귀합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말씀은 ◇ 성공할 수 있는 힘입니다. (요한복음 15:7).
우리의 성공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마치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만일 붙어있지 않으면 말라버립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말라버립니다.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주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내가 길을 가려고 할 때 수레를 타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행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고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할 때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마태복음 8:17).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백부장(百夫長)이 이것을 알고 주님에게 청하기를 ‘그냥 말씀으로만 해 주시면 빨리 낫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마태복음 8:8). 하나님은 말로써 세계를 이루셨으니 한 사람의 병을 말로써 고칠 수 없겠습니까? 그래서 청한 것입니다. 옛날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치러갈 때 주님께서 명령하시기를 ‘율법을 지켜 행하며,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여호수아 1:7). 여호수아가 이 뜻을 가지고 병력을 출동시켜 가나안을 정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가는 곳마다 이기지 않는 데가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사업을 성취시키려면 주님의 말씀을 버리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전도할 때 각처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예루살렘에 상경하여서는 죽음이 장차 다가옴을 알고 교회가 동요될 것을 염려하여, 출발에 앞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청하여 이르기를 교회를 주님의 말씀으로 부탁하였습니다.(사도행전 20:32). 이는 주님께서 반드시 도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다른 도(道)를 받아들이지 말고, 반드시 주님의 말씀을 강구(講究)하며 주야로 묵상하게 되면 마치 시냇가의 버들 같아서 나날이 자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넘칩니다.(히브리서 4:12). 그리하여 능히 교인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항상 쉬지 않고 운동하게 하여 천지의 운행과 같이 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말로써 세계를 만드셨으니, 그 진리도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나아갑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폐기할 수 없습니다.(마태복음 5:18).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교인들의 마음속에서 운동하게 하고, 우리는 또한 마땅히 쉬지 않고 몸소 체험하여 힘쓰고 힘써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