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과 인조(人組) 혁명(革命)과 이괄난(李适亂)
선조(宣祖)의 아들 광해군(光海君) 혼(楎)이 임금이 됨에 조정(朝廷)에 당쟁(黨爭)이 심(甚)하여 북인(北人) 중에 대북(大北) 소북(小北)이 생겼고 대북(大北)에서 이이첨(李爾瞻)과 소북(小北)에 유영경(柳永慶) 등이 서로 권세(權勢)를 다투다가 필경(畢竟) 유당(柳黨)이 실패(失敗)하고 대북(大北)이 세(勢)를 얻어 이이첨(李爾瞻) 정인홍(鄭仁弘)의 무리가 광해군(光海君)을 꾀어 형(兄) 임해군(臨海君) 진(珒)과 적제(嫡弟) 영창대군(永昌大君) 의(義)와 질(姪) 능양군(綾陽君) 전(佺)과 연흥(延興) 부원군(府院君) 김제남(金悌男)과 시인(詩人) 권필(權韠) 등의 원옥(冤獄)을 일으켜 왕손(王孫) 대신(大臣) 명사(名士) 수백인(數百人)을 다 죽이고 적모(嫡母)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廢)하여 서궁(西宮)에 가두며 정이(鄭李)의 당(黨)이 조정(朝廷)에 가득하여 온갖 학정(虐政)을 함부로 자행(恣行)하니 국인(國人)이 크게 불평(不平)한지라. 이 때 서인(西人) 중 가장 낙척불우(落拓不遇)하던 이귀(李貴) 김혹(金鍙) 등이 꾀하여 계해(癸亥) 3월 13일에 광해군(光海君)을 쫓아내고 선조(先祖)의 손(孫) 능양군(綾陽君) 종(倧)을 맞아 임금으로 삼으니 이가 인조(仁祖)시라. 이에 대북당(大北黨)이 다 몰락(沒落)되고 오롯이 서인(西人)의 천하(天下)가 되었더니 혁명후(革命後)에 공(功)을 의논할 새 이괄(李适)로 이등공(二等功)을 정(定)하여 평안병사(平安兵使)를 삼았더니 괄(适)이 크게 불평(不平)하여 그 이듬해 영변(寧邊)에서 반(叛)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여러 고을을 항복받고 갑자(甲子) 2월 10일에 경성(京城)이 함락(陷落)된지라. 임금은 공주(公州)로 파천(播遷)하시고 장만정(張晩鄭) 충신(忠臣) 등으로 하여금 힘써 싸워 괄난(适亂)을 평정(平定)하니라.
- 한글
선조의 아들 광해군 혼이 임금이 되었을 때, 조정에 당쟁이 심했습니다. 북인 내에서 대북과 소북이 갈라졌고, 대북의 이이첨과 소북의 유영경 등이 권력 다툼을 벌이다 결국 유당이 실패하고 대북이 세력을 잡았습니다.
대북의 이이첨, 정인홍 등이 광해군을 꾀어 형 임해군, 적자 영창대군, 조카 능양군, 연흥부원군 김제남, 시인 권필 등을 모함하여 수백 명의 왕족, 대신, 명사들을 죽이고 적모 인목대비를 폐위시켰습니다. 정이당이 조정을 장악하여 갖은 학정을 자행하자, 국민들이 크게 불평하였습니다.
이 때 서인 가운데 이귀, 김혹 등이 꾀하여 계해년 3월 13일에 광해군을 쫓아내고 선조의 손자 능양군 종을 임금으로 세웠는데, 이가 바로 인조입니다. 대북당이 몰락하고 서인의 천하가 되었지만, 이괄이 크게 불만을 품고 영변에서 반란을 일으켜 갑자 2월 10일에 경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임금은 공주로 파천했고, 장만정, 충신 등이 힘써 싸워 이괄의 난을 평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