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만주방면
국경지대에 있는 동포들이 서로 연락이 민속하여 두만강을 건어 북간도 일대에 전파가 속히 되었다. 간도 훈춘에서는 3월 8일 이래로 각지 대표자들이 여러 번 회합하여 13일에 먼저 용정서부터 시작하여 독립선언대회를 열고 크게 시위행렬을 하였고 그 다음엔 화룡 연길 안도 동령 훈춘 각 고을에 차례로 선언식을 거행하고 비분강개한 기분이 장백산 같이 높아졌다.
4월부터는 각지에서 의열단(義烈團)이 조직되어 직접 군사훈련을 행하고 동 24일에는 이동휘 이범윤 진학신 등 군인들이 훈춘에 모여 속히 무력을 양성하여 국경 침입하기를 계획하고 노령과 상해 방면과 연락하여 국민의회 간도지부를조직하여 가지고 각지에 지회를 세우고 문무 양방에 노력하여 일변 군사 겸 보통교육을 겸한 중등학교를 세우고 독립의식을 고취하고 일인들의 지도하에 있던 민회는 모두 해소되고 일인들의 사냥개라던 자는 모두 사살하고 이 친일파를 막기 위하여 촌촌에 자위단을 조직하고 혹은 맹호단이라고 칭하여 불량분자를 일소하여 민기가 양양 되었더라.
서간도 방면에 있어서는 북간도와 도서로 연락하고 통화 유하 장백 집안 임강 관전 해룡 화인 무송 화전 여러 고을에 3월 8일 이후로 역시 각 고을에서 선언식을 거행하고 시위행렬도 하여 서로 기세를 다투어 성대히 거행하였다.
장백현에서는 천도교인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하여 일본헌병 주재소를 습격하여 충돌된 이후로 이와 같은 충돌이 각처에 연출하고 4월에 와서는 의용단 독립단 다물단 일심회 등이 발기되어 각지에 서로 호응하여 운동하던 중 관전현을 중심한 부민회가 가장 독립운동을 맹렬히 하여 가장 조직적으로 어지러움이 없으니 백성의 신뢰가 많고 그 외에 또 별동대가 있어 청년들에게 군사적 훈련을 행하고 화전현에서는 의군강습소가 있어 수다한 장정이 맹렬히 훈련하여 후일의 국경침입을 도모하여 이것이 모두 동 3성에 있는 동포들의 운동 상황이다.
따라서 노령 연해주까지 전파되어 3월로부터 신한촌에 있는 민회에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으나 노국의 국제적 고려로 인하여 중지되었다가 12일에 이르러 집집마다 태극기를 높이 달고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후 문창범의 지휘로 국민의회를 조직하고 가두에서 시위행렬을 행하며 국문과 노문으로 기록한 선언서 일본영사관 노국 관청과 각국 영사에게 다 보내고 운동이 매우 활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