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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의 삶에 이입되는 거대한 논픽션
이국종 교수의 <골든 아워>를 읽고
2019. 1. 향기 이영란
며칠만 있으면 다시 학교가 문을 연다. 5년 동안 몸 담았던 익숙한 공간을 2월 말까지는 또 당연하듯이 드나들 것이다. 같은 공간이었지만 변화도 많았다. 그동안 주차장 쪽에 있었던 터줏대감 격이었던 목련나무가 무사히 운동장 쪽 화단으로 이사를 갔고, 씨름장은 주차공간으로 메꾸어졌다. 목련 주변의 벚나무는 운동장 축구골대 뒤쪽으로 강당 앞쪽으로 옮겨 심어져 무사히 적응을 마쳤다. 학교 정면 쪽 화단에는 오랫동안 그 누구에게서도 무엇이 필요한지 따뜻한 질문 한번 받지 못한 티가 나는 덩치만 큰 나무들이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1년 전에 화단 흙을 갈아 엎고, 수국이나 데이지, 꽃잔디, 덩굴장미 등 아기자기한 식물들이 함께 할 수 있었다. 또 화단 사이로 나무 데크가 놓여져서 화단을 지나는 일은 기분 좋은 산책이 되어 주었다. 나는 일과가 마쳐진 오후시간 일부러 화단 사이를 거닐곤 했다. 누군가가 가져 준 관심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불러 일으켰다. 나도 화단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곳을 거닐었던 기억은 모네가 그렸던 일본식 정원 그림처럼 기억에 남아 있다.
학년을 마치기 전 가장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가 성적처리이다. 방학이지만 학교를 부지런히 나가서 한가한 시간에 마무리를 하기 위해 애를 썼다. 수행평가 결과를 하나하나 챙겨서 입력하고 과목별로 서술형 평어를 적어야 한다.
과목이 7~8개 정도이고 창의적 체험활동, 동아리활동, 진로기록 등에 이런 식의 평가를 아이들 수만큼 곱하기를 해야 하니 일이 많다. 가장 진땀을 흘리는 평가가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란이다. 20년 넘게 해 온 일이건만 아이들 평가를 적으면서 새삼스런 회의에 시달렸다. 그래서 교과 평가의 경우 되도록 교사의 평가는 배제한 채, 학생들의 결과물과 활동에 대한 자신들의 소감 위주로 적기위해 노력했다.
사회과 안**
선사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대표적인 유적과 유물을 통해 파악하는 능력이 양호함. 백제의 장수였던 계백장군에 대한 자료를 PPT로 제작하여 친구들 앞에서 발표함. 사회과 수업에서 공책에 수업자료를 정리하기 위해 노력하며 역사적 사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음.
실과 정 **
발명 아이디어 기법을 이용하여 머리띠와 고무줄을 결합한 물건을 구상하여 제작함.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레이첼 카슨을 선정, 생애와 업적, <침묵의 봄>이라는 동영상을 친구들에게 소개함. 실 꿰기, 시작 매듭짓기, 끝 매듭짓기, 홈질 등 간단한 바느질 기능을 익혀 작은 소품을 쓸모 있게 완성한 후 조금 어려웠지만 다 만들고 난 후의 뿌듯함과 계속 해보고 싶다는 소감을 남김.
그러나 종합의견란은 그야말로 교사의 의견으로 채워지는 부분이다. 독후감을 앞에 썼다고 해서 다음 독후감이 쉽게 써지지 않는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을 쓸 때마다 머리는 다시 하얗게 포맷되는 기분이었다. 쓰는 것도 어려웠거니와 그런 평가를 내리는 너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쏟았는가에 대한 답변이 궁색했다. 교사가 기준선을 그어 놓고, 그 곳을 통과한 아이는 우수하고 탁월하고, 통과 못한 아이는 의욕이 없고는 한 사람을 평가하는 일이 얼마나 주제 넘은 일인지도 모르고 그동안 쏟아부었을 판단의 말들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었다는 자책이 누가 질책이라도 한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친화력이 좋아 잘 어울려 지내며, 서로의 감정이나 행동을 조절하면서 생활하기 위해 노력함. 신체에너지가 왕성하여 체육시간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평소에도 공을 이용한 경기를 자주 함. 수업시간에 PPT프로그램을 이용한 발표나 책을 읽고 나서 발표를 할 때 조사한 내용과 자신의 생각을 함께 넣어 전달하는 능력이 양호함. 수학과의 경우 안정적인 연산기능이 정착될 때까지 꾸준한 보충에 노력을 기울이기를 권장함. 사회과 학습에 관심을 가지고 학습장 정리에 노력하며 역사관련 내용에도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음. 일기나 과제를 챙기고 주변 정리정돈 등 생활전반에 걸쳐 자기관리에 조금만 더 노력하면 발전이 기대되는 친구임.
완곡한 어법, 기대하고 권유한다는 식의 문장으로 최대한 다듬어 적은 내용들이다. 학기말만 되면 교사들은 눈에 핏발이 서는데, 과도한 학교업무에서는 사실과 객관성을 가장한 날이 선 말들로 채워지기 쉽다. 좀 여유있는 시간에 아이들을 향한 내 평가는 최대한 부드러워지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로 채워지기를 소망했다.
글은 화면을 아무리 열심히 째려보고 있어도 저절로 써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보충수업을 빼먹은 큰 아이는 오전 내내 자고 있었고, 나는 책을 읽다가 노트북을 노려보다 걷어 치웠다. 보충수업에 결석함으로써 생길 곤란할 일은 아이의 일이었고 무슨 글을 쓸 때마다 머리 속은 리셋되어 망망한 바다에 떠 있는 기분은 나의 일이었다. 하도 많이 입어 체취가 배인 니트 여남은장을 손빨래했다. 어른용 옷이 아이 옷처럼 되어버리는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꾹꾹 눌러서 물기를 짜고, 수건으로 물기를 흡수시켜 빨래걸이에 얌전히 펴서 말렸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기가 바닥에 뚝뚝 떨어진 걸 마른 걸레로 받쳐 두었다. 해는 지고 글은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그랬다. 모두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는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국종 교수는 우연히 세바시 유투브에서 알게 되었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은 클릭 해 볼만한 주제였다. 가족밴드에 공유를 시켰고 함께 감상까지 했기 때문에 2017년 8월이라는 시기까지 정확히 기록으로 남아있다. 중증외상학과라는 낯선 분야를 새로 접할 수 있었고,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은 선진국 수준이 아니었나 싶었는데 그게 아닐 수 있다는데 대한 놀라움과 의문, 세상을 향한 그의 시선이 다소 냉소적이라는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진정성이 나의 첫인상이었다. 내가 알게 된 시점으로부터 2년여 동안 그의 이름은 한때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거론 될 정도의 유명세를 떨쳤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시댁에 있었을 때 건우가 기침이 심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시아버지께서 역증을 내며 그런 말씀을 하셨다.
“너희 둘은 애들이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갈 생각을 안 하고 그렇게 미련스럽게 있냐”
명절이었던가, 병원에 가기에도 애매했거니와 아이 둘 다 건강체질이어서 웬만하면 이겨내리라 생각했기에 그러려니 하고 있었던 터인데 졸지에 미련한 부모로 취급되었다. 진료수준이 높아진만큼 세균도 진화를 거듭하여 요즘은 웬만한 감기도 병원신세를 지지않는 일이 쉽지 않다. 서로 더 커다란 대포를 만들어 내는 격으로.
평균수명 100세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시대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여기저기서 고장이 나는 신호를 보이고, 또 신체의 이상징후에 소심한 진료까지 더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나는 아직까지 건강검진 항목에 포함되어 있는 위 내시경이나 대장 내시경 같은 검사도 한번 해 보지 않았고, 그런 질환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고, 또 생긴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막연한 낙관론 내지는 게으름의 합리화로 살고 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몰리는 검사에 나까지 한 사람 더 보태고 싶지 않다는 이상한 심리도 포함되어 있으며, 병원이라는 사무적인 공간에서 특유의 방식으로 취급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같은 증상을 가지고 내리는 의사의 판단도 제각각 다르다.
지난 해는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을까가 아닌, 어떻게 남은 5학년을 버텨 나갈 수 있을까의 고민으로 하루하루를 지낸 날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내게 시간은 콧웃음을 치며 비웃고 있었다. 내 말은 수업에서 스며들지 않았고, 아이들은 내 시야에서 벗어나는 쉬는 시간만 되면 주먹다짐이 일어나는 일은 예사였다. 겉돈다는 느낌만큼 힘들고 속상한 감정이 있을까? 만나고 싶지 않지만, 매일 만날 수 밖에 없었던 나는 그 속에서 끈을 더듬어 찾아내어야만 했다. 일과 후에는 남편에게 그만 두고 싶다고 투덜댔고, 머리 속에는 돈이 안되어도 좋으니 책방이나 차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어차 있었다. 끈을 찾는 일이 능력 밖의 일이라는 걸 몸이 먼저 알아챘다. 생리가 불규칙하고 불순했다. 일에 부딪히는 것이 두근두근 불안했고, 아이들도 주변 사람들도 두려웠다. 갱년기 증상일까 안되겠다 싶어 찾은 한의원에서는 갑상선 혹이 너무 크다고 정밀조직검사를 권했다. 새통영병원 내과에서 20여만원의 검사비용을 들여 머리가 벗겨지고 밋밋한 인상의 의사가 들려 준 결과 역시 민둥맨둥했다. 갑상선기능저하증은 아니고, 결절의 크기가 3.7cm 정도로 큰데 생긴 모양이 악성은 아니어서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환자가 원하면 조직검사를 해 볼 수 있지만, 의사 입장에서는 꼭 해야 된다고는 판단할 수 없다.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던 중 1월 초, 이모를 따라 서울의 갑상선 전문병원을 찾게 되었다. 전문병원이란 그 부분을 아주 크게 보는 병원을 의미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전문병원은 아주 세련되게 사무적이었고, 또 통영에서 했던 검사를 포함하여 다른 검사도 당연한 듯이 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내 나이 또래의 의사는 결절의 크기가 너무 크고, 여러 개여서 반드시 수술을 권장한다고 했다. 모양에 상관없이 일정크기를 넘어서면 수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몸에 쓸모가 없는 혹 안에는 암세포를 비롯한 유해물질이 들어있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나는 새통영의 의사가 하도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 기억이 생생한 탓에 쉽게 그 제안을 쉬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바빠서 점심 먹을 시간도 없다는 의사를 세 번이나 면담한 끝에 수술 날짜를 잡고 수술 전 검사를 모두 마치고 통영으로 내려 올 수 있었다. 의사 개인에 따라 내리는 판단이 얼마나 다를 수 있음을 느끼게 해 준 개인적인 경험이었다. 앞으로 더욱 더 뻔질나게 드나들 확률이 높은 병원이겠지만, 그래도 자주 가고 싶은 곳은 아니다. 당연히.
이국종 교수에게 어느정도의 신뢰감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이슈에 편승하여 갑작스럽게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 의구심을 갖고 집어든 <골든 아워>는 나의 그런 선입견을 여지없이 박살을 내 주었다. 2012년부터 2002년에서의 기억을 더듬어 복원해 낸 그의 기록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처럼 그가 해 온 일들에 더 진정성을 부여하고, 그의 진심을 읽어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자료가 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2018년 10월에 출간된 그의 책은 각종 온라인 서점에서 단숨에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중증외상센터 건립에 그가 기울인 노력의 시간들이 그토록 힘겨웠다면 독자들과 일반 시민들은 그를 순식간에 이해하고 뜻을 함께 해 주었다. 작가 김훈의 <칼의 노래>를 모범하여 썼다는 고백처럼 문체에서도 내용에서도 곳곳에서 어른거렸다.
그가 일하는 곳을 병원의 막장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갑작스럽게 치명적인 사고를 당한 환자를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은 잘 없다. 진료가 불가능해서 큰 병원으로 곧바로 이송되는 것만 해도 다행이고, 시간만 지체되는 각종 검사를 하느라 골든 아워가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런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 또한 일용직 노동자, 배달원, 군인,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주부, 어부, 조직폭력배 등 우리 사회의 주류가 아닐 뿐더러 주류의 사람들은 그런 위험한 사고에 노출될 기회도 거의 없기 때문에 중증외상외과에 대한 관심은 덜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에게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를 만나는 곳, 부서진 유리창이라 표현하는 환자의 복부를 열다가 피칠갑이 되는 그와 동료들의 삶을 읽다보면 그 곳의 의사들이 환자가 죽음의 경계로 넘어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표현도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가 지금까지 이직의 유혹을 물리치고, 돈이 되는 진료를 요구하는 사립대병원 의사로서 그 위태로운 자리를 지켜내어 온 원동력은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순결한 명제였던 것 같다. 미국이나 런던에서 보고 배워 온 중증외상의료시스템을 구축하기는커녕 병원에서 설 자리조차 분명하지 않았던 그가 지나온 시간의 궤적은 의사로서의 삶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겹친다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독자들이 그의 외로움과 두려움에 감정이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와 함께 있었던 동료들이다. 의사 정경원, 간호사 김지영을 비롯하여 환자를 치료한다는 대의 아래 협력했던 정형외과 의사들, 마취과 의사들, 그리고 평생지기였던 의사 정용식 등 이국종 교수와 함께 했던 이들에게 감사하다고 우리가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킨 책이었다. 또 민주당 소속이었던 허윤정 의원을 비롯하여 남경필, 김문수, 정진석, 진수희 등 당시 집권당이었던 의원이나 장관직을 맡고 있던 낯익은 인물들도 이국종 교수의 일들에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이어서 이미지를 바꿀 수 있었다.
인생의 바닥을 친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좀 멀리서 바라보면 올라갈 일만 남았을 것이다. 2006년 LG트윈스가 시즌 최하위의 성적을 거두었을 때 그 패배에 주저 앉지만 않으면 새 시즌에서 나아질 확률은 현저히 높아진다. 전문 작가의 글이 아니라는 느낌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토바이 배달사고를 당해 24살 청년이 다리를 절단해야 할 상황에서는 함께 안타까워했고, 두 남매를 두고 죽은 아버지의 사망보험금만 빼 간 무정한 친모의 이야기에 경악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대학병원 관계자들이 모진 말을 뱉어 낼 때에는 옆에서 따지고 싶었고, 이국종 교수를 돕는 주변 인물들에게는 이미 여러 번 인사를 나누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 느낌이 비단 나의 것만이 아니었기에 이 책이 그렇게 급속도로 반향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그 밖에도 나는 이 책의 수혜자가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의사나 간호사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병원에 가서 느끼는 지독한 사무적 태도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되었다. 간호사들이 왜 그렇게 못 견디고 자주 그만 두는지, 의사의 어깨 위에 놓인 타인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를 가늠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최고 소득자라 불리우는 의사라는 직업 역시 생의 무게를 비켜가지 않는다는 것을 생생하게 그려낸 거대한 논픽션이었다.
최근 <밥보다 일기>라는 책을 낸 서민 교수는 다양한 계층이 글을 써야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였다.
“우리나라 드라마에는 왜 의사, 변호사, 검사, 파일럿, 경찰들이 다 김태희, 김수현, 전지현이고, 삼각관계에다 연애만 하는 줄 아세요? 그게 다 그런 실제의 삶을 경험해 보지 못한 펜대 작가들이 쓰기 때문이예요. 실제 현장에서 그렇나요? 아니잖아요! 얼마나 전쟁터이고 다 치열하게 사는지 우리 모르지 않잖아요? 다양한 계층에서 다양한 작가들이 나와야만 그런 이야기들을 알게 되고 우리 사회의 다양성이 확보됩니다.”
치열한 삶을 살아낸 자 만이 그렇게 할 말이 많을 것이다. 2권의 두꺼운 책으로도 다 못 채운 그의 이야기에 병원의 속속들이를 다 훑어내린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이기호는 말한다. 윤리를, 부끄러움을 열정을 책으로 소설로 배울 수는 없다고! 그것이 우리가 소설이나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고, 진실이 눈앞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뻔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가? 각자가 처한 지금 그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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