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재화 목사님께 삼가 조사를 바칩니다. 12년 전 10월 21일, 사모님께서 소천하셨을 때 이 자리에서 조사를 올렸는데 오늘은 목사님의 조사를 또 올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이 세상에 살게 하시더니 이제는 때가 차서 향년 93세에 호흡을 거두시니 육체는 흙으로, 영은 하나님 품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안타까워도 하나님의 섭리를 거역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 부부는 평소에 목사님을 존경하였습니다.
첫째는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목사님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아내를 동시에 사랑할 수 없어 아내는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목사님도 계시는데 성자처럼 높이 올라가지 않고 인자처럼 낮은 곳을 찾아 아내를 사랑하시는 모습이 너무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모습이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둘째는 5남 1녀를 어렵게 목회를 하시면서 명문 대학(서울대 5명, 한남대 1명)을 다 졸업시키신 기적 때문입니다. 자녀 교육을 당신이 맡아 책임져야 한다는 그런 인간적인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으셨습니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시고 오직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고 이재화 목사님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셨는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신 것입니다.
셋째는 그분의 목회하시는 모습과 그리스도인의 모범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은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섬기기 위해 일하셨습니다. 47세에 오정교회에 오셔서 16년간을 시무하시고 은퇴를 앞둔 63세에 퇴임하셨는데 그동안 수난의 역경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떠날 때를 알고 계셨습니다. 저희는 성역 40년을 맞춰 2월 28일에 퇴임하시는 목사님을 보며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사역 가운데 목사님을 향하신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후에 목사님은 자기가 그렇게 퇴임함으로 현재의 대덕교회와 대덕한빛교회를 세우게 되었다고 회고하셨습니다. 퇴임하신 뒤 바로 오정교회가 개척한 도정교회로 부임하셨습니다. 이곳이 현재의 대덕교회가 되었습니다. 70세 때 대덕교회 예배당 준공식을 마치자 새 목사님께 교회를 인계하고 이듬해에 그곳에서 은퇴식을 하셨습니다. 은퇴 후로도 옛 도정교회의 교회 터를 지키셨습니다. 엑스포 때 이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대토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73세의 노령에 갈렙 같은 불타는 의지로 다시 이곳 대덕한빛교회의 개척을 시작하셨습니다. 엑스포로 교회 용지를 회수당하자 학생들과 청년 몇 사람으로 한빛아파트 노인정에 오르간 하나를 갖다 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정말 땅만 가지고 새로운 교회를 개척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습니다. 도시 교회에서는 자기 교회와 합해서 새 교회를 시작하면 원로 목사로 평생 예우하겠다고 유혹해 왔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는 과거에 많은 교회를 개척했던 경험을 토대로 하나님을 믿고 계속 기도하셨습니다. 옛 대덕교회의 집사님이 서울에 계시는 어머니 권사님을 모시고 목사님을 방문했을 때 그 권사님은 목사님이 너무 딱해 호주머니에 있는 모든 돈을 털어 건축 헌금을 드리고 갔습니다. 목사님은 그것이 감사해서 서울로 감사 전화를 했더니 권사님은 다시 거액의 돈을 헌금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돕는 손길이 모였습니다. 목사님은 자기 힘으로 교회를 개척할 수 있다고 믿고 모금 운동을 벌이거나 아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이 한빛교회의 밑거름은 기도였습니다. 시편에 나온 다윗의 기도처럼 눈물로 침상을 띄우는 기도였습니다.
이번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때 혹 시간이 나면 식사를 하시지고 전화를 했는데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날 바로 충남대 병원으로 입원하셨는데 일주일 만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부족한 사람이 쓴 졸저 <묵상과 기도>는 집으로 보냈는데 뜯어보지도 못하신 채 가셨습니다.
세상에 교회는 많고 교인은 많은데 예수님을 닮아가는 교인은 적고, 목자는 많은데 선한 목자는 드문 이때 목사님은 본받고 싶은 선한 목자이셨습니다. 많은 분이 이분을 성자라고 부르며 칭송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분처럼 사는 것은 주저합니다. 저도 목사님을 모시면서 많은 내적 갈등을 경험했습니다. 내 안에서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마주치는 갈등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사십니까?”
그러나 그런 뒤에는 목사님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고 제 생각을 고쳤습니다.
이제는 제 훌륭한 멘토를 잃었습니다. 아니 우리 교계의 양심인 큰 별을 잃은 것입니다. 목사님께서는 눈도 흐리지 않고 기억력도 또렷또렷하셨는데 때가 차서 모세를 불러가시듯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불러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꾸준히 걸어오신 목사님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가신 줄을 믿습니다.
목사님, 이제 이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과 주를 위해 받은 핍박과 끊지 못한 정들을 다 끊어 버리시고 하나님 품에 고이 잠드소서. 눈물도 없고, 애통하는 것도 없고, 사망이나 곡하는 것도 없고, 해가 지지 않은 천국에서 편히 쉬소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 먼저 일어나 썩지 아니한 것으로 다시 살며,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신령한 것으로 다시 사시어 부활한 몸으로 뵙기를 원합니다.
2008년 1월 2일
평소에 넘치는 사랑을 받은 오정교회 장로
오승재 올림
* 이재화 목사는 오정교회 제4대 목사로 1961.12.21. -1977.07.04 까지 시무하신 분이다.
첫댓글 목자는 많으나 선한 목자가 드문 이때에 훌륭한 목사님께서 주님 품에 안기셨군요. 목사님이 뿌린 씨앗이 좋은 열매를 맺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