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 식
2000년『문학사상』등단
시집『시를 줄까 꽃을 줄까』외
큰 나무 큰 그늘 아래
― 하늘 여행 떠나시는 박제천 시인께 부쳐
선생님, 박제천 선생님
지금 어디쯤 가고 계십니까
하늘길 너무 멀어 그 모습 보이지 않고
흰 구름만 허공을 노 저으며 흘러갑니다
하루 아침에 길라잡이를 잃게 된
문학아카데미 회원들은 갈 곳 몰라 헤매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큰 나무였습니다
그 큰 그늘 아래 큰 복을 누렸고
시의 세계를 배워 익혔습니다
선생님이 떠나신 뒤 텅 빈 자라를 보고야
얼마나 큰 나무였고 큰 그늘이었는지
겨우 깨닫게 되었습니다
장자를 사랑하고
오브제를 사랑했던 시인
시는 감정의 산물이 아니다
관념의 늪에 빠지지 말고
사물을 매개로 보여주라
무엇을 쓸까보다 어떻게 쓸까
생각의 뿌리 잡아채어
뿌리까지 뽑겠다는 심정으로 쓰라시던
금쪽같은 말씀이 귀에 쟁쟁합니다
멀리서 찾으려 말고 눈앞에 보이는
순간적 풍경의 묘사로 시를 시작하라던
그 가르침 골수에 새기겠습니다
시인은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나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 중에
선택적이며 운명적인 것이니
지식으로의 앎보다는 생활 속 삶의 공간에서
詩眼을 키워야한다고 늘 말씀하셨지요
저희는 시인으로서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하늘나라로 황망히 이사하신 박제천 선생님
큰 나무 큰 그늘을 잃고 헤매는
저희 무지렁이들을 굽어살피시고
선생님의 천부적 예술혼을 아낌없이 부어주소서
선생님이 그리울 때마다
생전에 나눈 아름답던 추억 되새기며
보석처럼 빛나고 꽃처럼 향기로운 시를 읽겠습니다
그동안 병마에 싸우면서 육체적으로 겪으시던 고통과
세상살이 무거웠던 짐 모두 내려놓으시고
부디 영생복락 누리소서
카페 게시글
2024 여름호
방산 박제천 1주기 추모시 특집/큰 나무 큰 그늘 아래/이영식
원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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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2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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