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사우 가을 맞이 나들이
충청남도 공주시는 서기 475년부터 538년까지 백제의 도읍지였던 곳이다.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지명은 웅천(熊川)이었는데, 백제가 멸망한 뒤에 당나라에서 웅진(熊津)이란 지명을 붙였다. 그러다가 신라 경덕왕 때에는 웅주(熊州)로 고쳤고, 고려 태조가 공주(公州)로 바꾸었다.
‘熊’은 곰, 혹은 ‘고마’라는 우리말로 해석하는데, ‘곰’이 ‘공’으로 바뀌어서 지금의 지명인 공주가 되었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여기에서 ‘熊’은 임금, 혹은 신이라는 뜻으로 쓰여서 웅천, 웅주, 웅진 모두 임금이 있는 나라의 도읍지라는 뜻이다. ‘公’는 제후라는 뜻이니 ‘熊’보다는 한 단계 낮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산성(公山城)은 백제의 왕궁이 있었던 곳이다. 그러다가 신라 때에는 웅천주의 치소(治所)로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충청 감영이 옮겨오기도 했고, 이괄의 난을 피해 인조가 이곳에 머물기도 했다. 강을 끼고 있는 절벽은 험하고 높아서 방어하기에 좋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무령왕은 백제 25대 왕이다. 일본에서 태어났던 그는 할아버지인 동성왕이 시해당하면서 왕위에 올랐다. 무령왕릉은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백제 유일의 왕릉이다. 1971년에 우연히 발견되면서 수많은 유물이 나왔지만 초기 대응을 잘못하는 바람에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왕을 지키는 신령한 동물상과 무령왕의 생애를 적은 묘지석(墓誌石)이 유명하다.
우금치(牛金峙)는 1894년에 조선의 관군과 일본군이 합친 연합군과 동학군이 처절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공주에서 논산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곳에는 위령탑과 전적관이 있다. 이 전투에서 동학군이 패함으로써 2차 농민전쟁의 승패가 결정되었다.
곰사당은 고마나루 솔숲에 있다. 원래 금강의 물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웅신단(熊神壇)이 있었는데, 이 부근에 곰신을 모시기 위한 사당을 건립했다.
갑사(甲寺)는 420년에 아도화상(我道和尙)이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신라 때에 의상이 중수하여 화엄종을 펼치는 사찰의 하나인 화엄십찰로 삼았다. 보물로 지정된 철당간지주와 동종, 월인석보목판, 대웅전 등이 있으며, 고려시대의 약사여래 입상 등이 있다. 또한 사찰 부근에 임진왜란 때 의병 승장이었던 영규대사 비와 묘소가 있다.
마곡사(麻谷寺)는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했다는 사찰이다. 자장이 절을 지을 때 찾아온 사람들이 삼대(麻)와 많아서 이름으로 삼았다고도 하고, 9세기에 무염(無染)이란 승려가 절을 지을 때 스승인 마곡보철(麻谷寶徹)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설이 있다. 이 절은 갑사와 더불어 풍광이 빼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봄은 마곡사, 가을은 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보물로 지정된 대광보전, 오층석탑, 석가모니불탱화 등이 유명하다.
공주의 명소는 많고 모두 의미가 있지만 1박2일 청산사우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더웠지만 그래도 가을을 느낄 수 있는 답사였다.
첫댓글
늦깍이 국문과 2012학번 학생입니다 과락이 있어서 5년만에 졸업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교수님 그대로 젊음을 유지하고 계시네요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아울러 금년 73세인 제 건강도 지키며 교수님 카페 간간히 돌아볼수 있기를요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건강하고 즐겁게 늘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친구들과 늦가을쯤에 공주와 부여를 2박 3일 일정으로 다녀오려고 하는데 교수님의 글을 읽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