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아인슈타인 박사를 조(弔)함. 1955년 4월 20일 조선일보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박사는 그의 76회의 탄생을 마지한지 1개월 후인 지난 4월 18일 프린스톤 대학병원에서 장거(長逝)하였다.
동(同) 박사가 비록 노년이라 하지만 학계를 위하여 좀 더 많은 공적이 있으리라고 기대하였던 오인(吾人)은 돌연 부음(訃音)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유태인의 혈통을 가지고 독일에 출생한 아인슈타인 박사는 20세기에 위대한 과학자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1905년에 동 박사는 26세 되던 해에 발표한 특수상대성원리(特殊相對性原理)는 당시 학계를 놀라게 하였으며 다시 박사는 1914년으로부터 16년까지 상대성원리를 완성해 21년에 노벨물리학상까지 받았다. 당시에 이 학설이 우주물리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켜 개기일식 관측소에서 이 학설을 시험하여 보았던 것을 기억에 새로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사는 소량의 물질이 엄대(嚴大)한 량의 에네르기를 생산할 수 있음을 밝힘으로써 원자 이론을 창시하였고 이것이 금일의 원자탄생산을 가능케 하였다는 사실로 보아 박사의 과학적 두뇌가 얼마나 우수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동 박사의 일생은 학문연구에 종시(終始)되었다. 푸라크 백림(白林)대학의 교수로 있다가 1933년 나치스 독일에서 추방 되여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도래(한 후에 **하여 프린스대학 고등 물리학 연구소에 교수로 있었다. 따라서 박사의 개인생활이 유족하고 행복스럽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다른 학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박사는 오로지 학문의 연구와 발견에만 큰 낙으로 삼았던 것이다.
박사는 인간 평화문제에 언급한 바 있으나 이것은 별개문제이며 박사는 물리학자로서 학계에 남긴 불멸의 족적이 좀 더 광범위로 나타났다면 인류문화에 기여한 바가 여하히 컷으리라는 것을 생각할 때 박사의 공적을 높이 평가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박사의 76세를 일기로 종료된 것은 금후에도 오히려 존침될 것은 틀림없다. 인류사회가 여러 가지 요소로 구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인류문화를 향상 발전시킨 것은 오로지 이 학자뿐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학자가 나오고 학자를 우대하는 사회만이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는 새삼스러이 느끼게 된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독일학자도 아니오, 미국학자도 아니오, 곧 인류 사회학자일 것이다. 우리가 동 박사의 서거를 애도할 뿐 하나의 의미는 이에 있는 것이다. 미대통령 아이젠하워씨는 동 박사 서거에 대하여 원자시대에 가장 큰 위인이라고 하며 20세기에 지식을 확장한 사람은 다시없다고 하였다. 불국(佛國)의 저명한 과학자들은 현대 물리학자에 있어서 불멸의 족적을 남겼다 하며 이태리 물리학자들은 세계 위대한 인물 중 한사람을 잃었다고 애도. 각국 원수 들 급 수상들이 다 애도를 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