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조복성(趙福成)속장 어머니 친기(親忌)예배
1956. 7. 23 (음 6. 16)
조복성 속장은 경성(京城)출신인 백천(白川) 조(趙) 씨이다. 무남독녀로 태어나서 실명되긴 전에 어머님의 사랑으로 한자도 배우고 학교에 다녀 약간의 신학지식도 얻어 보통 여성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여류신사이다. 불행하게도 중년에 몹쓸 병을 겪고 나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여 백약이 무효로 고치지 못하여 어머님은 몹시도 애지중지하는 딸이 맹인이 된 것을 퍽 원통하게 여기였다.
그 집이 무교(武橋)에 있는 고로 어머님의 허락을 얻어 무교성결교회(武橋聖潔敎會)에 다니며 비록 육신의 눈은 어두워도 영의 눈이 밝아져 그 곳에서 세례 입교식을 받고 열심으로 기도하며 다니었다.
조 속장의 말을 들으면 아버님은 속장 생세(生世) 두 살 적에 별세를 하셔서 아버님의 얼굴도 모를 지경이고 어머님 함안(咸安) 조(趙) 씨만이 계셔서 자기를 유난히 사랑하시고 무육(撫育) 하신 은혜는 언제든 잊을 수 없다 한다.
제가 어머님을 모시고 있으며 국립맹아원(國立盲啞院)에 입학하여 졸업한 후에 같은 원생인 전태환(田泰煥)선생과 결혼하고 어머님을 끝까지 모시고 살기를 결심하였더니 불행하게도 16년 전인 오늘 곧 음력 6월16일에 별세하시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이 애통하였다. 그러나 할 수 없는 일이라.
남편 전태환 선생과 의논하고 살길을 연구하던 중 전 선생은 본원(本院)의 선생으로 채용(採用) 되여 본원주택에 우거하며 조 속장은 보통사회의 요청을 받아 안마술을 행하여 보통 병자에게도 의약대신 효능이 있어 기적을 나타내고 있다. 나도 종종 몸이 괴로울 때 안마를 받아보면 특효가 있다.
오늘도 그 어머님 떠나신 날이라 본 교회 목사와(궁정교회 최요한목사) 나를 청)하여 갔었다. 나는 조속장(趙屬長)더러 말하기를 나는 이 자리에 참석할 때 특히 장원식(張元植) 목사를 생각한다. 장 목사는 근본 정동교회(貞洞敎會) 전도사로 있으며 교회를 많이 도와주던 선생으로 성결교회로 이적하여 목사가 되였고 조속장을 특히 딸같이 사랑하여 전태환과 결혼 시에 주례하여 주시고 이 날이면 나도 오고 장 목사도 오곤하여 퍽 다정하게 지내였더니 이 시간에 그가 궐석(闕席)된 것은 6.25 사변 시에 남같이 피난가지 못하고 딸한테 의지하더니 딸은 그 아버지를 버리고 저희끼리만 떠나 버렸다. 늙은 장 목사(는 방안에 혼자 있다 굶어 죽어 버렸다 한다. 이 얼마나 애끓는 비통인가. 이 글을 쓸 때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 패자(悖子)들의 죄를 통갈(通曷)한다. 그런데 효재(孝哉)라.
조 속장은 이 맹아원(萌芽院)에 와 계신 후로는 우리 교회에 출석하시고 깨끗한 믿음 뜨거운 믿음은 일반교우들의 모본이 되심으로 본 교회에서 속장으로 임명하였다. 속장도 슬하에 딸 한명이 있다. 이름은 신애(信愛)이다. 나는 신애야 불렀다. 너는 너의 아버님, 어머님 밑에 아들도 없는 외딸이다 너는 부모 공양할 것을 네가 아느냐. 너의 어머님은 친어머님을 생각하시고 해마다 이 기념식을 행하시는 그 효심을 네가 배워 생전 사후에 네가 섬겨야 한다. 사랑하는 신애야 네가 아느냐 하고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