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삼백스물두 번째
오늘이 제일 좋은 날
‘9988234’. 웬만큼 나이 든 사람이라면 이 숫자의 의미를 모르지 않을 겁니다.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다가 2~3일 아프고 죽는다(死, 4)’라는 간절한 희망 사항이 담긴 숫자지요? 그런데 그렇게 되던가요? 죽기 직전의 증세가 나타나면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가 생명을 연장합니다. 본의는 아니겠지만, 장기간 병실에 누워 고생하다가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조금 나아지게 하려고 병원에 끌려다니지 말고 매우 힘든 치료는 하지 않는 게 좋다’고 권하는 의사가 있습니다. 죽음 가까이에 있는 환자를 어림잡아 4,000명쯤 만난 길병원 신경외과 박광우 교수입니다. 그는 환자의 병세를 살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렇게 솔직하게 말한답니다. “당신의 병은 낫지 않는다. 아마 내일은 더 나빠질지 모른다. 그러니까 기운이 있을 때 좋은 곳에 가고 좋은 추억을 만들라.” 그리 권한답니다. 최선을 다해 생명을 살려야 하는 의사가 이렇게 권하는 이유는 불과 몇 %의 확률에 얽매여 병상에 누운 채 자기 인생을 내팽개치는 환자들이 너무 안타까워 그런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 공부’라는 책을 썼습니다. 끝을 알면 남은 삶을 어떻게 사용할지 계획할 수 있지 않으냐, ‘잘 죽는 법’에 관한 내비게이션이 되고자 썼답니다. 오늘이 제일 좋은 날, 그런데 내일만을 바라보다가 남은 삶을 허비하고 후회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머리에 꽂히는 말이 ‘오늘이 제일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 제일 좋은 날을 허비해서는 안 되지요. ‘남의 길에서 사는 것은 죽는 것이고, 나의 길에서 죽는 것은 사는 것이다.’ 일본에서 하이쿠俳句의 신神이라 불리는 에도시대의 시인 마쓰오 바쇼 松尾芭蕉가 남긴 말입니다. ‘남을 따라 사는 길’이 아니라 ‘나의 길’을 고민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