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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제주작가 스크랩 제주작가 봄호와 박태기꽃
김창집 추천 0 조회 109 12.04.12 00: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제주작가 봄호는 인천작가회의의와 연대를 했다.

인천과 제주를 연결하는 크루즈선 오하마나호가

출항을 시작하면서 두 지역이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다.

 

날마다 두 지역을 오가는 승객들을 통하여

전혀 관계가 없던 것처럼 보이던 두 곳이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우리 제주작가는 앞으로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연대를 통해

지역문학의 발전을 도모코자 한다.

 

이번에 다섯 시인의 각 2편씩 10편의 시로

‘공감과 연대’라는 이름으로 같이 했는데

그 중 다섯 편을 골라 박태기꽃과 함께 올린다.  

 

 

♧ 1번 국도를 걷다 - 천금순

 

엄동설한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한 걸음 한 걸음 누구랄 것도 없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임진각에서 제주 강정마을까지

장장 527킬로미터를 릴레이로 걷습니다

생명과 평화를 위하여

 

지난 날 삶이 지치고 힘들 때

마치, 연잎인 양 물위에 떠 있는 땅

제주를 먼 올레로 걸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제주 사람들의 흘린 땀과 눈물과

한숨이 깃든 갈색들판을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도 그냥 풍경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수많은 죽음이 모여 있는 곳

그곳을 걸으며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 글발글발 깃발을 꽂고

저마다의 사랑의 편지와 함께

깨끗한 물이 샘솟는 강정마을 할망물에 닿을 때까지

내가 아닌 우리는 계속 걸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그곳에 있기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회복을 위하여

겸손히 엎디어 오체투지 먼저 길을 걷던

그 한걸음 한걸음이 마음의 긴 띠가 되어

내가 아닌 우리는

지금 1번 국도를 따라 걷습니다

나는 길 위에서 행복합니다

 

길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요  

 

 

♧ 오월 흰 구름 - 정세훈

 

서울 변두리 김포시

종합병원 7층 흉부외과 병동 침상에 누워

창틀에 반쯤 걸린 오월 흰 구름을 본다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자의 혼백인가

그렇다면 저 혼백은 누구의 것인가

오월 구름치고는 그 색깔이

팔십년 대 영령처럼 너무 희고 선명하다

어제께는 부질없는 詩였던가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를 지었다

오전에 박영근 시인의 타계소식이 내게 왔다

하필이면 어이 이런 상황에서란 말인가

가야지 가야한다 마음은

그의 영전으로 달려가고 있지만

병상에 누인 몸은 이미 내 몸이 아닌 듯

그저 창틀에 걸린 오월 흰 구름만 바라본다

부평을 떠나 김포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 여기고 있을 인연에게

여전히 내 소식을 거짓으로 전한다

일 땜에 해외에 왔는데

그리하여 부득이 영전에 가지 못하니

유족에게 내 조의를 전해달라고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나의 수술을 맡은 흉부외과 의사는

예정대로 내일 아침 9시 30분에

내 몸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가슴을 열어 병든 폐를 수술하겠지

긍정적보다 부정적이 압도적이라는

그 험하고 막막한 수술을 하겠지

놀랍다 나에게 이토록 미련이 있었던가

어이해 이 상황에서 어저께 일인 듯

박영근 시인과 나누었던 말이 떠오르는가

 

김포로 요양 삼아 떠나오기 전

2003년, 그때도 파릇파릇한 오월이었다

팔십년 대 말을 거쳐 구십년 대까지

야간 일을 나가야 하는 나를 놓아주지 않고

낮술부터 하자하던 그가

이제 술보다는 밥이 함께 먹고 싶어졌다며

들어선 부평 진선미예식장 골목 설렁탕집

그날 우린 뜬금없는 말을 주고 받았다

“형은 오래 살 거 같아”

“나 보다는 자네가 더 오래 오래 살 거 같은데…”

 

한 시절 오월 흰 구름은 흘러가고,

흘러가듯 영근이도 가고,

그냥 나는 수술을 기다리고  

 

 

♧ 전염병 - 조혜영

    --쌍용자동차 텐트 농성장에서

 

그대들은,

장티푸스 이질, 콜레라 같은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또한 장티푸스 이질 콜레라 같은 병이

1군 법정 전염병이라는 것도

 

그대들은,

지랄 염병한다는 장티푸스나 콜레라가 발병하는 즉시

국가가 나서서 대책을 세우고

확산되는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

어떠한 일보다 체계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가

 

사스나 구제역 신종플루 같은 전염병이 돌아도

전쟁을 선포하듯 국가적으로

호들갑 떠는 당연한 모습을 보지 않았는가

 

참으로 어처구니없지 않는가

세균의 침투도 없는데 전염병처럼 감염돼

무서운 속도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실이

 

 

참으로 기가 막히지 않은가

이놈의 세균은 오로지 정리해고자와

그의 가족들한테만 침투하여

죽음의 지옥을 만든다는 사실이

 

더 많은 사람들을 죽어나가도록 만드는

이 끔찍한 국가적 질병관리 체계와

염병보다 무서운 자살, 그 자살이 전염병이 되어

사람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가는 오늘의 참담함이

 

그 전염병의 원인균이 해고라는 사실과

그 원인균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방치하여

지속적으로 확신시키는 자본과 국가권력의 모습이

 

1군법정 전염병보다 무서운 이 끔찍하고 잔인한

전염병의 확산을

국가가 나서서 1종 법정 전염병으로 선포하라  

 

 

♧ 나르시스, 나르시스 - 이성혜

 

찻잔이 키우는 아지랑이 너머 비죽이 벌어지는 노란 입술

무꽃 찾아 날아가던 나비, 긴 혀를 밀어 넣어 키스하고 싶겠다

 

나르키소스를 사랑하다 죽어 꽃이 됐다는 숲의 님프,

 

후리지아 꽃말이 순진 천진난만 깨끗한 향기라지?

웃기는 이야기다

좋아한다 한 마디 못하는 소심증에

상대방 가는 곳마다 따라붙는 스토커

숨어서 일거수일투족 훔쳐보는 관음증에

미소년을 탐한 건? 글쎄, 어떻게 봐야할까

 

나르키소스의 나르시시즘이 비극을 만들었다 탓하지 말라

 

너희가 원하는 결말, 둘의 결합이 해피엔딩이라면

총체적장애라는 상자에 휩쓸려간 둘의 생활은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불행으로 얽힌 끈은 짧을수록 좋다

 

노란 입술 후두두둑 터져 목젖이 드러나도

입맞춤해줄 나비 지나가지 않는다  

 

 

♧ 자궁 내막증 - 정민나

 

하나는 맞겠지

비와 바람눈이 버무려져 차갑고 매운 날

갈수록 화사한 왼쪽과 몸 속 자라나는 멍울 사이

끼어드는 오른쪽

네가 아니면 나는 사람 구실 못 한다

그녀 열쇠와 어둠이 딸각 소리를 내며

단번에 열릴 때

하나는 맞겠지

아래층이 울리도록 쿵쿵 그림자를 밟는

질투의 손

성큼성큼 떨구고 나가 새 구두에 새 양복 해 입고

자글자글 피어오르는 불면증

하나는 맞겠지

그녀 내장과 자궁에서 자라는 혹 뱃속이 많이 헐었네요

산부인과 의사의 회전문을 따라나오는 구름은

그녀 거식증과 폭식증이 드나드는 자동문

그래도 네가 엄말 돌봐야지 사방으로 찢어지는 그림자

새벽 다섯 시 마라톤 연습처럼

새로 산 운동화를 신고 길을 나서는

그의 수강증은 어쨌거나 분홍빛

생기와 웃음너머

하나는 맞겠지 그녀 안방에서 그녀 병실에서

자라는 혹…… 의혹?

만기가 되었거나

만성이 되었거나

 

너에게 맛있는 커피를 끓여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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