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금붕어입니다.
권영희
나는 금붕어입니다. 아주 쪼그마하긴 해도 금붕어는 금붕어입니다. 준이네 작은 어항에서 살지요. 아니, 사실은 어항이라기보다는 조그만 유리컵이라고 해야겠네요. 어쨌든 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지나가면 준이는
“아휴, 귀여워!”
“너, 정말 헤엄 잘 치는구나.”
하며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가 뻐끔뻐끔 입을 툭 내밀면 준이는 벌써 동그란 먹이를 어항 속으로 뿌려 줍니다. 사실 나는 동그란 것은 아주 싫어하지만 준이가 주는 거니까 그냥 먹긴 먹습니다.
동글동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납니다. 그놈의 동그라미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이제 잊을 때도 되었지만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머리가 다 지끈지끈 아파옵니다. 슥, 물속으로 동그란 것만 툭 내려오면 등지느러미 위로부터 진땀까지 쭈르르 흐릅니다.
“아유,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네.”
동그란 먹이를 보고 있으니 벌써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하네요. 이럴 땐 두통약이라도 하나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머리 아픈 걸 한 번에 싸악 날려 준다는 그 두통약 말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동그란 것에 몸서리를 치느냐고요? 그건 다 까닭이 있습니다.
나는 금붕어입니다. 정말 금붕어입니다. 파랑초등학교 옆 커다란 연못이 내 고향이라고 합니다. 너무 어릴 때 떠나와 그 연못이 어떤 곳인지 잘 생각은 나지 않지만 언제나 그 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내 몸보다 열 배는 더 크다는 금붕어 어른을 만난 적은 없지만 나는 자랑스러운 금붕어의 핏줄을 이어받은 금붕어입니다. 언젠가는 내가 태어난 그 곳으로 꼭 돌아갈 것입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큰길가에 작은 어항과 물고기를 파는 수족관 집입니다. 나는 그 곳 창가에서 늘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볼 때마다 은근히 신이 났습니다. 예쁜 빛깔 내 몸을 물속에서 살랑살랑 흔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나를 보고는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유리 어항 속에 살짝 비치는 나를 보고 내가 반한 적도 있었으니까 내가 얼마나 멋진지 아시겠죠? 사실 어항 속 금붕어 치고 나보다 고운 빛깔을 지닌 물고기는 흔하지 않거든요.
“아저씨, 여기 금붕어 좀 파세요.”
부서져 내리는 햇살을 듬뿍 받으며 깜빡깜빡 졸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디선가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목소리만 듣고도 소름이 싹 끼치는 것 같았습니다. 꺼칠꺼칠한 수염 자국이 군데군데 나 있고, 낡은 점퍼를 입고 서 있는 한 아저씨. 그 아저씨가 내가 앉아 있는 꽃봉오리 모양의 예쁜 어항 앞에 턱 다가섰을 땐 ‘아!’ 지느러미 일곱 장이 바짝 오그라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바르르 온 몸이 떨려옵니다. 원래 제가 겁이 아주 많거든요. 이제껏 걱정 하나 없이 곱디곱게 자라 더 그런 것 같아요.
“몇 마리나 필요하십니까?”
손님이 없어 하품을 쩍쩍 하던 수족관 집 아저씨는 얼른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그 아저씨에게 다가갔습니다.
“아, 예. 한 스무 마리만 주십시오.”
“예? 스무 마리나요?”
“예. 스무 마리 주십시오. 아니 좀 더 사야 하나?”
“집에 어항이 굉장히 크신가 봐요?”
수족관 집 주인 아저씨는 아직 이렇게 많은 금붕어를 팔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금붕어 사러 온 아저씨가 이상한지 계속 쳐다보다가 얼른 비닐봉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자, 스무 마리라……. 어느 녀석이 좋을까? 특별히 예쁜 놈으로 골라 드리겠습니다.”
‘특별히 예쁜 놈이라면…….’
이제껏 예쁜 것 하나로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던 나는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 제발 저를 팔지 마세요.’
눈을 꼭 감고 생전 처음으로 기도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끝내 그 커다란 비닐봉지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 때는 정말 나의 이 예쁜 빛깔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 수족관 집 어항은 정말 내게 너무나 편안한 곳이었으니까요.
“아니, 이렇게 많은 금붕어를 왜…….”
수족관 집 아저씨는 아직도 궁금하다며 그 아저씨, 아니 이제 내 새 주인 아저씨를 쳐다봤습니다.
“아, 예. 요 앞 학교에서 장사나 한 번 해 보려고요.”
“이 금붕어로요?”
“예. 아이들에게 한 번에 500원씩 돈을 받고 동그란 그물을 주고, 그 그물이 떨어질 때까 지 금붕어를 잡으면 금붕어를 아이에게 주는 장사요.”
그렇게 말하고 난 새 주인아저씨는 담배를 꺼내 물고는 한숨을 푹푹 내쉬기까지 했습니다.
“아, 이놈의 세상 왜 이리 되는 게 없는지. 아이들 코 묻은 돈이지만서도……. 집에서 못 난 나만 바라보는 자식 때문에 이거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내 고향인 커다란 연못 옆 파랑 초등학교에서 동그란 그물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린 지 벌써 꽤 여러 날이 흘렀습니다. 햇볕이 커다란 어항 속에 사르르 내려앉을 때가 되면 재잘재잘 아이들이 우우 몰려 나옵니다. 동그란 그물을 하나씩 들고는 내게만 그렇게 그물을 띄웁니다.
그물 위에 살짝 앉았다가 ‘털썩’ 다시 물속으로……. 하루에도 한 스무 번은 그렇게 툭 떨어지곤 했습니다. 사실, 말이 그물이지 물속에 오래 있으면 종이처럼 얇은 그물이 툭 떨어져 버리거든요. 걸리는 족족 금붕어를 가져가면 우리 주인아저씨는 어떡하라고요. 처음엔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주인아저씨가 너무 원망스럽고 미웠지만 아저씨가 동전을 한 주머니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 날은 아저씨도, 아이도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아저씨는 얼굴만 그렇게 우락부락 무섭게 생겼지 마음은 너무너무 곱습니다. 그 커다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쓱쓱 문지르며 아이 몰래 눈물을 닦아내는 것까지 봤으니까요. 이제 정말 아저씨가 밉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도 모르게 그 때부터 동그란 것만 보면 파르르 떨리는 병에 걸렸나 봅니다.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축구공도 너무 무섭고, 동그란 해님도 어떤 때는 보기 싫을 때가 있었으니까요.
“아빠, 이거 한 번 하는데 얼마죠?”
해님이 어항 속을 비추고 있어서 이제 아이들이 나올 때가 되었구나 하고 졸리는 눈을 슬며시 비비고 있을 때였습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소리 나는 쪽을 바라봤습니다. 어! 준이입니다. 준이는 내 새 주인아저씨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입니다.
“아니, 준아. 너 웬일이니?”
“응, 아빠. 혼자 너무너무 심심해서…….”
“나도 이거 한 번 해 보면 안 돼?”
“아, 그럼 되지. 되고말고.”
주인아저씨는 담배만 뻐끔뻐끔 피우다 준이를 보더니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습니다. 아저씨는 준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두 볼도 어루만졌습니다. 아저씨의 어두운 얼굴도 준이만 보면 활짝 펴졌습니다. 준이는 동그란 그물을 슥 들더니 물속으로 살짝 집어넣고 바로 내게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리곤 재빨리 ‘쑤욱’ 내가 드디어 어항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하, 역시 우리 아들이네, 헛헛헛. 이제 집에 가지고 가서 잘 키우세요."
한 번에 나를 쓱 건져 올린 준이가 대견한지 주인아저씨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헛헛헛, 허허허…….”
“훗후 허허.”
그 때를 생각하니 다시 머리가 너무 아파 양 지느러미로 머리를 꼭 누릅니다. 두통약도 좋지만 이 방법도 머리 아플 때는 조금 낫게 해주는 것 같거든요. 준이가 던져놓은 동그란 먹이를 눈을 딱 감고 한 두어 개 먹고 배가 볼록하니 또 잠이 옵니다.
“준아, 준아. 우리 한잠 잘까?”
“준아, 준아.”
하얀 유리컵 속에 담긴 나만 바라보던 준이는 가만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습니다.
“붕아, 저게 우리 엄마가 계신 곳이다.”
준이는 나를 보고 언제나 “붕아, 붕아.” 하고 부릅니다. 준이의 동생 붕이라고 언제나 “붕아, 붕아.” 합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준이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습니다.
“어! 왜 그래, 준이야?”
준이는 작지만 아주 씩씩한 아이입니다. 아무리 슬퍼도, 아빠가 일을 나가고 혼자 있어도 절대 울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근데 지금 곧 눈물이 똑똑 떨어질 것 같습니다.
“우리 엄마가 묻혀 계신 곳이야. 아빠가, 우리 아빠가 조금만 더 기다리면 우리 엄마가 계신 곳에 갈 수 있대. 예전에 엄마, 아빠, 준이가 살던 곳. 그 곳에 다시 가서 살 수 있대.”
준이가 울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립니다. 나도 얼굴도 모르는 엄마, 아빠가 보고 싶었거든요. 파랑초등학교 옆의 커다란 연못에 가면 나도 엄마나, 아빠를 만날 수 있을 텐데……. 준이는 작은 주먹을 꼭 쥐더니 눈물을 쓱 닦습니다.
“붕아, 조금만 기다려. 너도 네 고향에 꼭 데려다 줄게. 너도 엄마, 아빠 보고 싶지?”
준이는 동그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작은 유리컵 속의 나를 빤히 쳐다봅니다. 나도 그만 뽀르르 뽀르르 유리컵 속에 눈물방울을 떨어뜨렸습니다.
“야, 울지 마. 너 자꾸 울면 내 동생 안 한다.”
그러더니 준이는 톡톡 꿀밤 때리는 흉내까지 냅니다.
문틈 사이로 가느다란 햇살이 쭉 길게 기지개를 폅니다. 준이의 눈물이 묻은 얼룩덜룩한 얼굴에 기다랗게 줄을 그어 놓습니다. 준이도 나도 살짝 한 쪽 눈을 찡긋거리고는 동그랗게 입을 벌리고 웃습니다.
근데 정말, 정말 이상합니다. 그렇게 동그랗게 입을 벌려 웃어도, 동글동글 맴을 돌아도 이제 머리가 안 아픕니다. 준이의 동그란 눈을 봐도 머리가 하나도 안 아픕니다. 왜 그런지 아무리 동글동글 머리를 굴려도 정말 모르겠습니다. 왜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