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강가에서 바라 본 숙소 풍경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 게르 밖으로 나오니 어제보다 바람이 잔잔하다. 세면장으로 가 간단히 샤워를 하고 숙소를 나와 강가를 거닌다. 8월인데도 몽골의 새벽 공기는 꽤 서늘하다. 우리 숙소와 붙어 있는 다른 숙소를 지나 강가에 도달하니 세상은 아직 잠이 깨지 않아 적막한 가운데 강물 흐르는 소리와 내 걸음에 부딪히는 자갈 소리만이 나의 발걸음에 리듬을 실어준다.

숙소 옆을 흐르는 강
사막이 대부분인 몽골에서는 물이 귀한 것으로 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 칭기스칸 시절부터 강이나 호숫가에서 빨래를 하거나 방뇨를 하는 등 물을 더럽혔을 때는 현장에서 처형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몽골사람들은 강이나 호수에서 빨래를 하거나 물을 더럽히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만약 물을 더럽혀서 가축들이 병에 걸릴 것을 사전에 예방하는 그들만의 물을 사랑하는 철학이기도 하다.


산 꼭대기에 있는 산양 조형물
강가에서 나와 꼭대기에 산양이 보이는 산을 오른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은 경사도 심하지만 오르는 길목엔 바위가 부숴져 생긴 조그만 돌들이 많아 미끄럽다. 산 정상에는 시멘트로 만든 산양 조형물 3점이 강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관리가 되지 않아 여기저기 깨진 곳이 많이 보인다. 그래도 멀리서 보면 몽골 산양들이 산꼭대기에서 강을 굽어보며 노는 것처럼 보이니 여행객에겐 또 하나의 즐거움을 준다.

산꼭대기에서 본 게르들이 찐방처럼 보인다
아직 아침 해가 뜨지 않은 강가의 숙소들은 고요한 가운데 여행객들의 숙소인 게르들이 여기저기 이제 막 익히려고 솥 위에 올려놓은 찐빵처럼 보인다. 내가 배가 고픈 것일까?

아침 햇살를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강가
심호흡을 하며 산을 한 바퀴 둘러보고 강가로 내려오니 초원이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들어 에덴의 동산을 연상케 한다.
오늘은 우리가 식사당번이다. 숙소 식당에 가 어제 저녁 주문했던 빵을 가져오고 버터와 쨈을 준비하고 뜨거운 물을 끓여 일행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해 준다. 베개처럼 생긴 빵은 딱딱해 먹기 좋게 자르기가 쉽지 않지만 신선한 우유를 듬뿍 넣어 만들어 고소한 게 맛있다. 그런데 일행들은 아침부터 딱딱한 빵을 먹기가 거북스러운지 빵이 많이 남는다. 버리기가 아까워 내 가방에 몇 개 챙겨 넣는다.

에르덴달라이에서 울란바토르 가는 길
이제 고비사막 여행을 마치고 울란바토르로 돌아간다. 흙먼지에 이정표도 없는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초원을 달리며 난생 처음 여행 중 스스로 식사를 만들어 먹고 호텔이나 빈관이 아닌 게르에서 잠을 잔 고비사막을 뒤로 하고 울란바토르로 향한다. 에르덴달라이에서 만달고비를 거쳐 울란바토르까지 가는 여정인데 에르덴달라이에서 만달고비까지 약 120km의 사막초원 자갈길인데 두 시간 반가량 걸리고 만달고비에서 울란바토르까지는 약 300km의 포장도로인데 5시간 정도 걸린단다. 만달고비에서 점심을 먹는 것을 감안하면 오후 6시가 넘어야 울란바토르에 도착하는 것이다.

몽골 고비사막 초원 길
언제 다시 이 광활한 초원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만달고비로 향하는 오전 내내 초원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창 밖 초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일주일이란 시간이 길다면 길겠지만 한 순간에 지나간 것만 같아 아쉽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좁은 스타렉스 차에서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시달린 어느 여행 때보다 힘들었지만 내 인생에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을 소중한 고비사막 여행이 될 것이다.

고비사막 여행 중 처음 본 이정표
고비사막에도 이정표는 있다. 물론 고비사막 여행 하면서 처음 보는 것이지만 화강암을 깎아 세운 비석 모양의 이정표가 길가에 서 있는데 커다랗게 금색으로 쓴 지명과 그 아래 조그만 지도가 그려져 있지만 몽골 글자에 까막눈인 일반 여행객들에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사막 우물에서 물을 마시는 가축들
만달고비로 가는 중간 초원에 말과 소들이 모여 물을 마시고 있다. 사람이 두레박으로 우물에서 물을 퍼 구유처럼 생긴 통에 물을 부어 주면 말들이 몰려 와 물을 먹는다. 그런데 물을 먹는데도 힘센 놈이 먼저 먹는다. 힘센 놈이 먼저 먹고 난 후에야 어리거나 힘이 약한 녀석이 물을 먹는데 욕심 많은 녀석은 배가 퉁퉁한데도 자리를 비켜 주지 않는다. 말들이 물을 먹는데 소가 물을 먹으려 하면 뒷발질로 밀어낸다. 말이 소보다 힘이 센 모양이다. 나도 어릴 적 시골 우물에서 물을 깃던 생각도 나고 언제 이런 걸 해 볼까 싶어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구유에 부어 준다.

만달고비의 식당
몇 일전 욜린암으로 갈 때 점심을 먹었던 만달고비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울란바토르로 향한다. 이제부터는 포장도로다. 점심을 먹은 식곤증도 몰려오고 차의 흔들림도 적당해지니 잠이 쏟아진다.

울란바토르 교외 농촌
울란바토르가 가까워지는지 멀리 산 위에 방송용인지 군사용인지 모르겠지만 커다란 안테나시설 설치된 게 보이고 칭기스칸 공항으로 향하는 항공기도 낮게 날고 있다. 초원에는 다른 곳에 비해 말들과 유목민이 사용하는 게르 앞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이 많이 보인다.

시 외곽에 자리한 마을
시 외곽으로 들어서면서 언덕 쪽으로 판잣집이 많은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마을 앞 도랑이 쓰레기와 오수로 뒤범벅이다. 영하 40도가 넘는 혹독한 겨울 추위와 엄청나게 내리는 눈으로 몽골인들의 삶이자 생명 그 자체였던 가축들이 동사하자 초원을 떠난 사람들과 자녀교육을 위해 이주해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란다. 몽골의 국토가 156만㎢로 한반도 면적의 7배나 되지만 이 나라의 전체 인구 3백만 명의 절반인 150만 명 정도가 울란바토르에 살고 있어 이로 인해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우선 늘어난 인구로 인해 교통체증이 심하고, 유연탄을 활용한 난방 방식 때문에 대기오염이 심해서 겨울철에는 창문을 열 수 없을 만큼 대기의 질이 나쁘고 이로 인한 암 발생률도 상당히 높을 뿐만 아니라 갑자기 몰려든 인구를 시장에서 수용할 수 없으니 일자리가 부족해서 도시빈민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상하수도와 난방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도시 외곽에 자리 잡은 빈민들은 특별한 수입원이 없어 더욱더 심각한 가난에 내몰리게 되어 일자리가 없는 가장들은 알코올에 의지한 삶을 살고, 가정이 깨어지고, 청소년들은 범죄와 비행에 쉽게 노출되고, 아이들은 학업도 이어나가지 못한 채 방치되는 등 사회문제가 심각하단다.

울란바토르 달동네
도시가 무계획적으로 팽창되는 바람에 울란바토르로 들어가는 교외 지역에는 산동네, 달동네가 많다. 마당이 있는 집에는 현대식 가옥과 함께 게르가 마당 한 켠에 세워져 있는 집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전통과 현대의 동거인 셈이다.

울란바토르를 달리는 한국산 중고 버스

주유소에서 주유 중인 한국산 중고 관광버스
시내에는 차들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주로 한국 차와 일본차들이다. 영업용 버스나 트럭 등은 중고 한국 차를 그대로 들여와 사용하는 것들이 많아서 아직 ㅇㅇ여객, ***학원 따위의 로고를 그대로 붙이고 다니는 차들이 숱하게 눈에 띈다. 상대적으로 새 승용차는 일제가 많다. 그리고 이곳의 매서운 겨울 추위를 짐작케 하는 격납고 같은 주차시설이 도로변에 죽 서있는 광경이 아주 이채롭다.

울란바토르 시내는 교통체증이 심하다
금요일 저녁 울란바토르 시내의 교통체증은 상상을 초월한다. 좁은 도로에 엄청나게 밀려드는 차량들로 거의 차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인데도 우리 차량 기사는 그 틈을 비집고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간다. 길 한가운데서 중앙선을 넘어 유턴하는데도 신호등을 무시하고 지나가는데도 교통경찰 하나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런 걸까? 퇴근시간인 6시가 넘었다고 교통경찰이 다 퇴근한 걸까? 아니면 해결책이 안 보이니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일까? 예정시간 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울란바토르 현지 여행사 부담으로 패키지여행 때처럼 호텔 한식당에서 제육볶음으로 저녁을 먹고 우리가 묵을 호텔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