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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 上編(주역 상편).
2.重地坤(중건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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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坤(곤)은 아내나 어머니처럼
모든 것을 수용하고 가야 하는 시기이다.
하늘처럼 앞장서서 리드 할 것이 아니라,
중전처럼 임금을 모시고 가야 하는 모심을 알려준다.
▣ 坤 元亨 利牝馬之貞
곤 이형 이빈마지정
君子有攸往 先迷後得主
군자우유왕 선미후득주
利西南得朋 東北喪朋 安貞吉
이서남득붕 동북상붕 안정길
[풀이]
坤(곤)은 왕비의 일에 크게 형통하니
암말처럼 바르게 써야 이롭다.
그렇게 해야만 군자가 와서
나를 짝을 하니 따라갈 바가 있다.
무턱대고 앞서서 설쳐대기만 하면 혼미하고,
상황을 잘 살펴 뒤에 따라가면 주인을 얻을 것이다.
서남으로 가면 벗을 얻어 이롭고,
동북으로 가면 벗을 잃지만 안정되어 길하리라.
[해설]
坤(곤)은 순한 것이 아니라 순종한다.
자기 주장 없이 아버지와 남편을 모시고
따라가는 母心(모심)의 알파와 오메가를 알려준다.
坤卦(곤괘)의 근본은 절대 앞서지 않고
아래에서 절대 손순한 자세로 지극한 모심을 다하는 것이다.
"重地坤(중지곤,䷁)는 天風姤(천풍구,䷫)가
天山遯(천산돈,䷠) →天地否(천지비,䷋)
→風地觀(풍지관,䷓) →山地剝(산지박,䷖)까지
이르러도 陰(음)이 매번 아래에 있고,
끝내 陽(양)을 올라타거나 넘어서지 않으니
순응과 순종의 극치를 보인다.
乾(건), 坤(곤), 坎(감), 離(리) 4正卦(정괘) 중에서
아래로 하강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은
坎(감)의 水(수)와 坤(곤)의 土(토) 뿐이다.
여기 한 줌의 흙을 물에 던지면 반드시 아래로 떨어지듯
坤(곤)의 흙은 순순히 아래로 가라앉는다.
대체로 흙의 성질은 억지로 떠맡아 실어가는 것으로서,
위에 타거나 뛰어넘는 불순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坤卦(곤괘)가 순응하는 극치이다."
坤(곤)의 '元亨利貞(원형이정)'은
乾(건)으로부터 받은 하늘의 씨를 잘 육성하여
그 결실을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기에 "坤(곤)의 元(원)'은
하늘의 씨를 받음이 가장 큰 역사이고,
'坤(곤)의 亨(형)'은 그 씨를 잘 키워냄이 가장 훌륭하고,
'坤(곤)의 利貞(이정)'은 암말처럼 정조를 잘 지키며
하늘과 더불어 행복을 지니고 가야
그 이로움이 분명함을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君子有攸往(군자유유왕)'이라 한 것 또한
坤卦(곤괘)가 '원형이정'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군자가 와서 씨를 뿌릴 수 있는 필요하고 충분한
조건을 모두 갖춘 모슴이 된다.
한편 坤卦(곤괘)는 우두머리 왕비가 되어
형통함을 '坤元(곤원)'으로 삼고,
'君子有攸往(군자유유왕)'은 티끌 하나 없는
순수한 坤(곤)의 세계로 군자가 들어가서
임금이 될 만한 것으로 여긴다.
坤卦(곤괘)의 근본은 '女(여)'가 '后(후)'가 되는
姤卦(구괘)이다.
그래서 坤(곤)은 조용하다, 부드럽다, 순종하다는 뜻으로
자기 스스로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군과 남편과 시절연인에 따르는 순종의 미덕을 나타낸다.
그러기에 하늘을 나타내는 '龍(용)'은
스스로 변화를 시도하면서 활동하지만,
땅을 나타내는 '말'은 길들이고 복종하게 하여
사람에게 직접 쓰이도록 함이 그 뜻이 다르다.
孔子(공자)는 「문언」에서 일렀다.
"坤(곤)의 성질은 지극히 부드러우나
움직이기 시작하면 굳세기 짝이 없고,
지극히 고요하나 그 성질은 반듯하다.
그러기에 뒤에 가 있더라도 주인의 자리를 얻으니
상도를 지닌다.
이는 만물을 품을 때마다 모두 빛을 냄이다.
坤道(곤도)는 순리를 좇아 하늘의 도를 받들어 가니
이것이야 말로 때에 맞게 행함이다
[文言曰 坤至柔而動也剛至靜而德方 後得主而有常
문언왈 곤지유이동야강지정이덕방 후덕주이유상
含萬物而化光 坤其道順乎 承天而時行]."
함만물이화광 곤기도순호 승천이시행
다산은 周易(주역)에 시비가 많은 '十翼(십익)'을 두고
이렇게 적고 있다.
"「문언」을 본래 「단전」과 「상전」이 이어진 글을
東萊(동래, 산동) 사람 費直(비직)이 처음으로 분리하였는데,
鄭玄(정현)이 「문언」이란 두 글자를 보고 별편이라
생각하여 첨가한 것이다.
「문언」은 공자가 고문을 인용한 것이고,
「문언전」은 공자가 직접 지은 것이니,
후학들은 이를 자세히 알아야 한다.
공자는 '重天乾(중천건)'과 '重地坤(중지곤)'을
특별히 거듭하여 아름다움을 기리며 반복해 읊어 감탄하였다.
혹자들은 「문언전」을 鄭康成(정강성)이 더하였느니,
왕필이 더하였느니 異說(이설)이 믾으나 다 그른 소리다."
坤卦(곤괘)를 읽던 공자의 감탄이 이렇게 터져나왔다.
"至哉(지재)라! 坤元(곤원)이여! 대단하십니다, 대단해요.
하늘 아래 존재하는 만가지 물건 중
어느 것 하나도 빼놓지 아니하고,
그 모두를 다 생산[萬物資生,만물자생]해 낸다 하니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그러기에 坤(곤)은 하늘 뜻에 무조건 순종하는군요
[乃天承天,내천승천].
아마도 그렇게 순종했기 때문에 하늘이 만물을 살아가도록
배려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坤厚載物,곤후재물]."
어느 누가 갖출 만큼 다 갖추고도 남에게 순종할 수 있을까?
坤(곤)과 같은 후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참고로 국토의 산과 오곡의 신을 모시는 社稷壇(사직단)의
사직례는 북향하는 종묘제례와 달리 남향을 하며
社稷樂(사직락)에서는 坤(곤)의 후덕을 높이 칭송한다.
이어지는 공자님 말씀이다.
"坤(곤)은 한량없는 하늘의 덕과 하나가 될 능력도 지녔고요
[德合无疆,덕합무강],
그뿐 아니라 하늘이 비춰주는 그 많은 큰 빛도 가슴에
모두 품을 수 있고[含弘光大,함홍광대],
그 넓고 광대한 빛으로 인하여 만물 하나하나가
다 함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었습니다
[品物咸亨,품물함형]."
즉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만들어 생산해냈습니다.
이 능력은 부드럽고 순종하는 坤道(곤도)의 성질을
닮은 저 암말처럼[牝馬地類,빈마지류],
경계가 없는 무한한 땅을 내달리면서도
[行地无疆,행지무강],
오로지 유순중정한 道(도)를 잃지 않았기에
이롭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柔順利貞,유순이정]."
이는 공자가 문왕의 卦辭(괘사) 첫 구절을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토해낸 彖辭(단사)이다.
공자는 다시 이어서 坤(곤)의 장단점을 이렇게 말한다.
"君子(군자)가 하늘보다 앞서가면 길을 잃고 헤맬 것이며,
뒤에서 순종하며 따르기만 해도 상도를 얻을 것이다
[君子攸行 先迷失道 後順得常, 군자유행 선미실도 후순득상]."
그는 先迷後順(선미후순)한 道(도)를 지킬 때에만
坤(곤)은 정녕 아름답다고 강조한다."
坤道(곤도)는 남을 위하여 쓰일 수는 있지만
스스로를 위해서는 움직일 수가 없기에,
뒤따르며 더줄어 조화할 수는 있고,
앞서서 先唱(선창)할 수 없기에
군자가 갈 곳이 있어 이롭다고 한다.
여기 나오는 "往(왕)'이란
坤(곤)이 무리하게 남에게 쓰임을 구한다는 말이다.
坤(곤)이 잘할 수 없는,
남보다 앞장서는 일을하면 미혹되어 道(도)를 잃고,
하늘의 뒤를 따르면 순응하여 主君(주군)을 얻으니,
이것이 바로 이롭게 되는 이유라고 밝히고 있다.
坤道(곤도)는 또 여자의 성숙하는 단계를 밝힌다.
'西南得朋(서남득붕)'은 가족들과 함께
처녀의 신분으로 사는 기간이고,
시집가서 처녀를 상실하고 부인으로 사는 것을
'東北喪朋(동북상붕)'이다.
이는 마치 처녀가 죽어야 각시가 되고, 부인이 되고,
아주머니가 되고, 엄마가 되어, 할머니로 대접 받고
살아가는 단계를 말한다.
'西南得朋(서남득붕)'은 시집가기 전에 같은 형제끼리
살아가는 모습이요[乃與類行,내여류행],
'東北喪朋(동북상붕)' 은 마침내 시집가서 남편과 함께
가족을 이루어 경사를 얻고 사는 삶이 아니겠는가
[乃終有慶,내종유경].
목은의 '貞齋(정재)', 성호의 '서남득붕동북상붕'
남효원이 '붕우의 도' 는 坤道(곤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지욱의 다음과 같은 禪解(선해)도 대단하다.
"坤(곤)이란 順(순)으로, 천도로 보면 陰(음)이 되고,
지도로 보면 柔(유)가 되고, 인도로 보면 仁(인)이 되며,
性理(성리)로 보면 寂(적)이 되며,
修道(수도)로 보면 止(지)가 되며,
器界(기계)로 보면 載(재)가 되며,
장부로 보면 腹(복)이 되고,
집으로 보면 妻(처)가 되며,
나라로 보면 신하가 되니,
그 소행에 거역함이 없다.
그렇지만 牝馬(빈마)의 貞(정)이
군자의 坤德(곤덕)을 체득하고 수도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하늘의 圓解(원해)로써 행하여야만
마침내 성공이 있을 것이다.
만일 定慧(정혜)가 있지 않고,
먼저 定行(정행)을 하면 暗證(암증)의 迷惑(미혹)을 이루고,
오직 지혜를 닦은 후에 용사가 되면 주장을 얻어 이롭게 되며,
눈과 귀가 편안하게 淸凉池(청량지)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서남으로 가면 다만 陰(음)의 柔(유)를 만나서
성사가 되지 못하고,
동북으로 가면 그 陰(음)이 붕당을 잃지만
지혜와 더불어 상응하는 지라,
바야흐로 定慧均平(정혜균평)한 貞(정)에 安吉(안길)할 것이다."
고사로, 은나라 紂王(주왕)의 폭정에 항거하는
제후와 백성들은 서남쪽의 주나라 문왕에게로 몰려 왔고,
반대로 동북은 은나라 紂王(주왕)은 날로 지지자를
잃어만 간 일이 있었다.
하지만 坤(곤)의 시절에는 紂(주)를 섬기는 척하며
순종의 자세를 취해야 살아 남았다.
그러기에 문왕의 서남은 뜻을 같이하는 세력이 늘어나
마침내 은의 紂(주)를 물리치는 경사가 찾아왔던 것이다.
한편, 최근 발굴된 마왕퇴의 『백서주역』을 해설한
장상평의 설명에서는 전통적인 해석과 차이를
두고 있는 점들이 여럿 눈에 띈다.
"크게 형통하니, 암말이 오는 것이 순조로운지 점을 쳐서 물었다,
군자는 가려는 곳으로 갔다.
처음에는 길을 잃었지만 나중에 주인을 만나니 순조로웠다.
서남쪽에서는 재물을 얻은 적이 있었고,
동북쪽에서 재물을 잃은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편안한지 그 여부에 대해서 점을 쳐보니 모두 길했었다."
이처럼 『백서주역』은 해석의 차이뿐 아니라
'東北亡朋(동북망붕)'처럼 문자가 아예 다른 곳도 적지 않다.
땅[地,지]은 하늘의 자궁이며 坤(곤)은 자궁의 用事(용사)다.
상형으로 坤(곤)은 절구공이[丨,곤]의 쉽 없는 사랑을
절구[臼,구]에 받아들이고,
만물의 꽃과 만물의 열매를 땅[土,토]위에 피우고
맺으면 申(신)내는 꼴이다.
그러니 땅을 무진장보살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地(지)와 土神(토신)은 기세가 다르다.
흙은 體(체)이고 土神(토신)은 用(용)이다.
그러기에 '兒(아)'는 어린아이의 쥐집[子宮,자궁]으로
천방지축을 모르고 자궁을 머리에 인 체 뛰어다니고,
春情(춘정)을 느끼는 처녀의 쥐집은 '舂(용)'이며,
남편을 받들어 모시는 부인의 쥐집을 '舁(여)'라 하였다.
이처럼 엄마가 되고 부인이 되어야 자식을 낳고,
또 엄마가 되어야 조상과 어른을 모시고 형제들과 함께
살아가는 厚德載物(후덕재물)을 배워 나갈 수 있다.
온화하고 공손함이 덕을 닦는 기초이고,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는 후한 덕이라야 만물을 실으니,
군자가 마땅히 힘쓸 일이다.
저 광활한 대지가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을 품고,
깊은 강과 넓은 바다를 가리지 않으며 날짐승과 들짐승,
개똥과 소똥마저도 마다하지 않고 빠짐없이
다 받아들이고 가는 것은 후한 덕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던가.
이것이 바로 땅과 다른 坤(곤)의 기질이다[地勢坤,지세곤].
만약에 坤(곤)의 德(덕)이 박하여 얼음장이 된다면,
그 어느 것 하나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냉랭한 凍土(동토)를 만들어 결국에는
씨알 한 톨 뿌리 내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거기에다 후함이 莫無可奈(막무가내)면
하늘과 맞장을 뜨는 것도 불사하기에,
적어도 '直方(직방)'이란 옵션을 쓰기에 충분하다.
무릇 '坤道(곤도)'가 '黃裳元吉(황상원길)'하고
'黃中通理(황중통리)'를 얻는다면
분명 載物(재물)도 넉넉할 것이므로,
坤道(곤도)가 배워야 할 군자의 자세는 바로 후덕재물로
오곡백과와 금은보화가 가득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파는 『서경』에서
"신하가 백성 위에 있는 것은 덕이 있기 때문이요,
임금이 아래에 있는 것은
백성에게 덕을 베풀기 위함이다"라고 인용하였는데,
공자는 이런 왕도를 모르는 정치인의 덕은
좁쌀 한 되박도 되지 않는 형편 없는 자들이라ㅕㄴ서서
貶下(폄하)해 버린다.
그려면서 정치하자고 덤비는 소인배들은 많아도
주공처럼 진정한 정치인이 없음을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