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무기> '지뢰' 파묻을 땐 든든, 파헤칠 땐 벌벌
작성자: 이경혁
작성일: 2021-09-24 14:24:22
지뢰
방어작전서 최소 자원으로 최대 효과
대전차지뢰 한 개로 기갑차량도 날려
매설 후 통제·제거 어려워 점차 퇴장
‘스타크래프트’ 튀어 올라 쫓는 AI 지뢰
‘폴아웃 4’ 신체 부위별 피해 입히는 덫
윈도 ‘지뢰찾기’ 한 번 건들면 게임 오버
지상전에서 방어는 적이 의도한 방향으로 진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도시나 거점 같은 주요 목표물의 점령과 접근을 방해하기 위해 방어선을 구축하고, 화력을 배치하는 방어작전은 원하는 곳을 노려 공격할 수 있는 공격작전에 비해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을 요구한다. 그런 방어작전에서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그러나 그 후폭풍이 감당되지 않아 악마의 무기로도 불리는 무기가 있다. 바로 지뢰다.
접근을 거부하는 강력함, 그러나 함부로 쓰지 못한다
땅속에 매설하면 일정한 압력을 감지해 자동으로 폭발해 피해를 주는 지뢰는 화약무기 발전 이전부터도 그 개념 자체는 실전에서 운용되고 있었다. 고대 전쟁을 다룬 영화 등에서도 보이는 날카로운 말뚝이나 바늘을 땅에 묻어 활용하는 방식이 대표적이었다. 촘촘하게 매설해 둔 이 방식은 꼭 눈에 보이지 않게 깔아두는 것 외에도 공성전 등에서 취약한 성벽으로의 접근을 저지하기 위해 사용하거나, 적이 근접하면 크게 피해를 주는 아군 궁병부대로 적 기병의 돌진을 저지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장에 등장했다.
이처럼 지뢰의 가장 큰 의미는 화약식이 아닌 시대에도 드러나는데, 바로 적의 접근을 저지하거나 늦추는 용도였다. 고전 시대 지뢰와 비슷한 무기들은 두 발로 걸어 움직이는 보병 적의 진격 자체를 늦추거나 특정 경로로의 진입을 차단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물론 이런 무기들이 깔려 있는 것을 알게 되면 적 또한 장애물을 제거하거나 우회로를 선택하는 등의 회피는 가능했지만, 이미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것만으로도 적 진격의 속도를 늦춘다는 목적은 성공이었다. 본격적인 무기 외에도 급하게 적의 진출을 막기 위해 뿌리는 마름쇠(땅에 뿌려 적의 접근을 차단하는 뾰족한 쇠가시들로 된 무기)와 같이 긴급하게 적의 경로를 차단하는 용도도 지뢰 이전부터 존재했던 개념이다.
본격적인 화약무기 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용도는 지뢰라는 이름으로 전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단 매설만 해 두면 확실하게 적의 진격을 차단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화약시대 이후 지뢰는 현대 전장의 기동력을 담당하는 차량형 병기들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며 대세로 떠올랐다. 한 대에 수십 억 원을 호가하는 기갑차량을 대전차지뢰 한 발로 날려버릴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가성비는 특히 군사력이 약한 쪽에서 게릴라전이나 방어전을 수행할 때 자주 고려하는 전략적 요소에 지뢰를 추가하도록 만들었다.
높은 가성비, 설치만 해 두면 별도의 인력과 감시가 필요 없는 편리함까지 갖춘 무기로서 지뢰는 각광받았다. 그러나 지뢰가 가진 그 편리함이 과도하게 오래 남으면서 오늘날 지뢰는 전략적·외교적으로 쉽게 쓰기 어려운 무기가 됐다. 매설 이후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였다.
전쟁이 끝난 뒤 병력과 장비는 철수하지만 한번 매설한 지뢰는 쉽게 제거하기 어렵다. 은밀하게 매설해야 하는 특성은 모든 적대적 공격행위가 멈춘 뒤에도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계속 지뢰를 위협적인 존재로 남겨 놓는다. 탐지 방지를 위해 나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지뢰를 찾아내는 일은 너무나 어렵고, 폭우 같은 재해를 만나면 매설해 둔 지뢰가 떠내려가 엉뚱한 곳에서 폭발하기도 하는 등 지뢰는 후속조치의 어려움으로 여러 조약에 의해 쉽게 사용하기 어려운 무기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게임 속 지뢰의 전략적·전술적 측면
지뢰가 갖는 실전에서의 의미는 여러 게임에서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그대로 반영되며 지뢰를 상대해야 하는 플레이어들에게 공포와 짜증, 번거로움을 일으키는 악명 높은 무기로 등장한다. 적의 접근 자체를 거부하는 지역 거부 개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례는 아무래도 고전 전략 명작 ‘스타크래프트’일 것이다.
테란 진영의 고속 정찰 유닛인 벌처를 업그레이드하면 장착되는 ‘스파이더 마인’은 현존하는 지뢰보다 훨씬 발전한 인공지능형 능동 지뢰다. 벌처 1기에 3발씩 주어지는 스파이더 마인은 사실상 벌처 가격을 생각하면 무료에 가까운 가성비인데, 1발이 터졌을 때 만들어내는 피해량은 어마어마해서 꽤 높은 체력을 가진 프로토스의 드라군, 테란의 시즈탱크 등도 한 발에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스파이더 마인은 일단 땅에 매설해 두면 적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적이 유효거리까지 들어올 경우 이 지뢰는 자동으로 지면 위에 튀어 올라 적을 향해 달려간다. 달려가는 동안 피격되지 않을 경우 근접해 폭발하며 근처에 광대역의 폭발 피해를 입힌다. 유닛들이 조밀하게 뭉쳐 있을 경우라면 한 발에 수십 개의 유닛이 먼지가 되는 사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은신 감지기능을 갖춘 옵저버 같은 유닛을 통해 지뢰가 매설됐음을 확인할 수 있고, 확인된 지뢰는 원거리에서 공격해 없앨 수 있기에 지뢰가 완전 무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전과 마찬가지로 지뢰지대를 그냥 걸어 들어갔다가는 막대한 피해를 입기 때문에 결국 지대를 우회하거나 일일이 제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지뢰 매설의 전략적 목표는 달성된다. 이렇게 작동하는 지뢰지대의 생성과 회피를 놓고 게임은 전략적인 선택의 갈래를 늘려나가는 형태로 진행된다.
‘스타크래프트’ 에서 전략적 차원에서 지뢰가 갖는 의미를 볼 수 있었다면, 핵전쟁 이후 세계를 다룬 롤플레잉 게임 ‘폴아웃’ 시리즈에서는 전술적 차원에서 의미가 강하게 드러난다. 1인칭 혹은 3인칭 시점으로 폐허 속을 모험하게 되는 플레이어는 어두운 던전이나 깊은 하수도처럼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걸어갈 때 짜증을 겪게 되는데, 바로 이 지뢰들 때문이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데다 폭발 피해량도 만만치 않아 걸핏하면 지뢰를 밟는 경우를 겪게 된다. 게다가 ‘폴아웃’ 시리즈는 단순히 체력을 깎는 데 그치지 않고 신체 부위별로 피해량에 따라 부가적인 페널티가 발생하는데, 지뢰는 원래 무기 그대로 플레이어 캐릭터의 발과 다리에 부상을 입히기 때문에 지뢰를 밟는 즉시 이동속도에 큰 손해를 입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방금 전 지뢰를 밟아 피해를 입고서는 잠깐 전투나 탐험으로 생각이 넘어가게 되면 여기가 지뢰지대라는 사실을 까먹어버린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지뢰를 밟게 되면 ‘아 맞다 지뢰!’ 하는 자책감과 함께 또 치료제를 써야 하는 자원 낭비와 시간 지체로 인한 짜증을 피하기 어렵다. 아예 적과 전투하려고 달려가다 연속으로 지뢰 세 개를 밟으며 즉사 직전에 몰리는 경우도 많아 그냥 다시 세이브 파일을 불러오는 선택을 하는 플레이어도 적지 않다.
여러 가지 지뢰의 의미 중에서도 게임을 통해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윈도 기본 게임인 ‘지뢰찾기’일 것이다. 지뢰의 위치를 발견하면 깃발을 꽂아 주의를 표시하고, 단 하나의 지뢰만 잘못 건드려도 바로 게임 오버가 되는 이 게임의 규칙은 지뢰에 대한 무서움과 함께 전문가가 아니면 함부로 손대면 안 되는 것이라는 교훈을 포함한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