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 맹의 슬픔
녹음된 걸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어서 녹음이 안 된 줄 알았는데 제 스마트폰 스승이신 임경환 선생님이 몇 번 터치 하니 녹음된 기록이 나옵니다.^^ 두 장의 사진과 대충 정리한 녹취록 올립니다. 녹취를 하면서 다시 들으니 재밌네요~
처음에
1 고정이 없는 과학· 철학, 즉 「사이엔즈」
「사이엔즈·S C I E N Z 」라고 하는 말은, Scientific Investigation of Essential Nature (과학적 본질의 탐구)의 머리글자 SCIEN 와 Zero(제로)의 Z에 의한 것이다.
「사이엔즈」는, 특정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들어맞는 것이고, 「과학적 본질의 탐구」를 평이하게 말하자면, 쉽게 「알았다」 「됐다」 하고 결론짓지 않는 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일상의 본다 · 듣는다고 하는 행위에서도, 보았기 때문에 · 들었기 때문에 이해했다 · 알았다고 결론짓지 않고,「사실·실제·진상真相은 어떨까」라고 하는 사고방식을 「사이엔즈」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을, 좀 더 살펴보면, 현상에서는「이런 것을 말한 사람」「저런 행위를 한사람」이라고, 발언이나 행동을 파악하여, 사람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 많이 있을 것이다.
범죄라고 말해지는 행위를 한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여겨지고, 모두가 기뻐할 것 같은 행위를 한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기 쉽다.
사이엔즈에 의하면,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도, 눈에 보이는 현상면의 언동보다, 그 언동에 이르게 된 그 사람의 마음 상태나 생각 등에 중점을 두게 된다. 사람의 언동이나, 모든 사상事象에 대해서, 인간이 지닌 감각 기관으로 파악한 것을 기초로 하여, 그 배경이나 바탕에 있는 내면·진상·원리를 알려고 하는 지능의 작용이, 과학이며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2 「사이엔즈」의 실현 ― 본질적인 것에 중점을 둔다
사회조직에 대하여 보면, 현재까지의 사회 통념에서는, 규범이나 질서를 중히 여기고 규율을 지킨다든가, 성실하게 일한다든가, 그러한 현상現象면의 것(행위)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인간교육·예의범절·도덕 등은, 마음을 소중히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역시 그 결과로서 좋은 행위를 하는 지 어떤 지를 중요시해서, 행위가 나쁘면 교육이나 예의범절의 효과가 없다고 본다. 좋은 행위를 하는 것이 좋은 인간으로서, 마음이나 생각이 좋다고 보고 있다.
반대로, 나쁜 행위를 하는 것은 나쁜 인간으로, 마음이나 생각이 나쁘다고 보여 진다.
올바른 마음이나 생각을 교육하며, 벌칙에 의해 나쁜 행위를 없애고, 누구나가 의무와 책임 규칙과 계약을 지키고,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고, 물건이 풍부해서 편리하게 되고,
…그러면, 사람의 행복이나 사회의 평화가 실현되는 것 같이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얕고, 행복이나 평화의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현상면을 정리정돈하는 것에 시종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나 사회 통념에 의해 「인간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관념이 강하기 때문에, 인간이나 사회를 본질적으로 보려고 하는 관점이 자라지 않는다. 따라서, 현상現状의 인간이나 사회조직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는 발상으로부터 빠져 나갈 수가 없다.
모든 동식물은, 자연체로서 그것답게 맥맥이 살아오고 있다. 왜, 인간에게는 노력이나 애씀, 인내와 참음, 규율이나 통제가 필요한 것인가. 그것은 인간의 본분인 지성을 발휘하는 삶과는, 역방향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체로 그것답게 사는 인간본래의 모습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사이엔즈는「인간이란, 사회란」하고, 그 본질을 과학 · 철학하는 사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 사이엔즈에 이르게 된 과정
제1장 사이엔즈 라고 하는 사고방법
제2장 사실ㆍ실제는 어떤가
제3장 본래ㆍ본질ㆍ정말은 어떤가
제4장 이상을 실현한다
본저는 위의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우리의 실천과 연구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 경과를 요약하자면,
「이상을 실현하자」라는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여러 활동을 해오는 가운데, 멈춰 서서 재검토해 보니…, 무엇을 실현하려 하고 있는 것인가. 정말의 목적은 무엇인가. 보편성이 있는 것을 바란다면, 먼저, 인간이나 사회에 대해 「본래·본질·정말은 어떤가」를 해명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현상現状의 인간 사회는 어떤가, 사회 속에서 살며,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의 「사실·실제는 어떨까」라고 검토해가자.
그렇게 하려면 , 사회는 이렇게 되어 있다, 인간이란 이런 것이다, 실제는 이렇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등, 서로 생각을 버텨서는 진행되지 않는다.
먼저, 인간의 생각이다 라는 것을 각자가 자각하고, 서로가 자신을 아는 것에 의해서,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상태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이엔즈라고 하는 사고방법」에 다다랐다.
이러한 활동이나 연구의 프로세스를 거슬러 올라가,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 해설해 보았다.
-----------------------------------------------------------------------------
-이전 단원들 보다 어려운 것 같다.
-사이엔즈 이거가 사실은 원래 연찬이라고 쓰던 말인데, 이게 야마기시 쓰던 단어가 되어서 거기를 나온 사람들이 나와서 처음에는 연찬과학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하다보니까 연찬이라는 말을 안 쓰고 사인엔즈 + 제로라고 쓴 것 같다. 제로라는 것이 영위에서 철저구명한다는 뜻입니다.
-책에 사이엔즈를 이렇게 요약했는데 “사람의 언동이나, 모든 사상에 대해서, 인간이 지닌 감각 기관으로 파악한 것을 기초로 하여, 그 배경이나 바탕에 있는 내면·진상·원리를 알려고 하는 지능의 작용이, 과학이며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감각이 아닌 걸 통해서 안 거는 사이엔즈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것일까? 요즘 에크하르트 툴레라는 책을 보고 있는데 현시되지 않는 세계, 감각기관으로 포착할 수 없는 세계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이점은 같이 이야기 해볼만한 것이 많다고 본다. 사이엔즈나 연찬은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포착되지 않는 것은 그동안 별로 다루지 않았다. 이런 부분이 이제 앞으로 많이 이야기 될 부분이 있다. 공자도 비슷하다. 감각기관을 통하지 않고 직관이나 톨레 처럼 현시되지 않는 세계라든지 순수의식이라든지는 별로 이야기 하지 않고 예수나 석가는 이야기를 한다. 예수나 석가는 그 세계를 언급을 했기 때문이다. 사이엔즈에서 하는 내관코스가 이런 것을 다룰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네이쳐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엔센셜 네이처는 본질을 말하는 것 인가봐요~
-본질이 감각기관 너머에 있는 순수한 그런 것이 아닌가봐요~
-전에는 그런 것이 과학적 탐구 부분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런 부분도 포함시켜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그런 이야기를 안했다. 형이상학적인 측면은 이야기 하지 않는다. 누가 죽음에 대해서 물어보면 사는 것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리오 라고 하기도 한다. 또 하도 평범한 말만 하니가 일부 사람들이 공자 제자 중 일부에게 비법을 따로 가르쳐주는 것 아닌가 하고 물으니 공자가 내가 말한 것이 전부다고 했다. 다만 제자들이 공자가 4가지를 끊었다고 했는데 무고, 무의, 무필, 무아가 그것이다. 에고를 넘어선 세계를 제자를 통해서는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도 보통사람들이 기이하게 들리는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이 이야기는 거의 안한다. 이번에 톨레 책을 보면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자라도 이야기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이라는 게 인간이 현실적으로 관찰할 수 없는 극미와 극대의 세계를 기계나 장지를 통해 사물의 본질을 꿰뚫으려는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걸기초로 해서 현실의 원리를 밝혀내는 것이 근대과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감각의 대상이 아닌 것이 감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기계를 통해서도 발견하지 못하는 세계, 툴레로 말하자면 현시되지 않는 세계를 이야기 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연찬적인 사고방식이 있으면서 그 영역을 현시되지 않는 세계까지 확대하는 것 같다.
-동물적 감각에 대해서 중요시 하는 쪽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동물적인 감각은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많지 않을까? 원초적인 것에 대해서 논하려고 하는 것 같다.
-사회화되지 이전의 것?
-인간은 모르는데 동물은 아는 것이 있다. 감각의 능력이 다르다. 여기서의 감각은 인간이 지닌 감각으로 한다고 하는데 과학에서는 다양한 감각들이 밝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감각이 떨어지는 것이 많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 같다. 여기서 말하는 네이처는 인간의 의식 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에서 파악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우리 골짜기에 다른 곳에 사는 땅 주인이 있다. 몇 년 전에 한번 봤는데 그때 그 사람의 이미지는 굉장히 순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무를 조금 베었다고 우리 마을 사람을 경찰에 고발한 것이다. 어제 보니 정말 화가 많은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처음 봤던 그 사람과 다르게 느껴졌다. 아하~ 이것도 전후사정 없이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요소가 결국 여러 가지 감각에서 얻은 본질에 대해서 단정하지 않고 생각해 보자는 것 아닌가 한다.
-감각이야기가 나오니 생각난 것이 있다. 감각도 서열이 있다고 한다. 중세 시대에는 청각이 중심이었다면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는 시각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를 한 사람은 촉각이 더 본질적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건 잘 모르겠다. 감각기관을 기초로 한다는 것이 지금 우리가 감각하고 있는 것이 진짜인지? 아니면 길들여진 것으로 보고 있는 건지?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감각기관으로 파악한 것을 기초로 한다는 것을 사이엔즈의 원리로 보자면 내 감각기관 조차도 제대로 감각하고 있나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다.
-동물적인 감각을 이야기했는데 사회를 살다보면 틀에다가 생각을 맞추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동물적인 감각이란 틀이 아니라 근본적인 감각 자체를 논해보자는 것인 것 같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요~
-감각의 문제는 종교적인 곳에서도 첨예한 논쟁이다. 감각을 억제하는 문파가 있고 감각을 극대화하는 문파가 있다. 핵심은 감각적인 것 너머의 인식에 가기 위한 것이다. 오감을 넘어서기 위해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아닐까합니다.
-“모든 동식물은, 자연체로서 그것답게 맥맥이 살아오고 있다. 왜, 인간에게는 노력이나 애씀, 인내와 참음, 규율이나 통제가 필요한 것인가?”로 되어 있는데 동물들도 인간처럼 살고 있지 않을까요? 사람만 이렇게 하고 있다고 단정짓는 것은 좀 그런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역방향이라는 건가요?
-이 책을 쓰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바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보통 이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좋은 행위를 하면 좋은 인간이고 나쁜 행위를 하면 나쁜인간 이라고...
-좋은 행위를 한다는 것이 선택적이지 않은가요? 좋은 행위를 한 사람도 나쁜 행위를 하기도 하니까 그렇게 나누는 것은 좀...
-일본에 갔을 때 연수소 참고 사항 중에 화장실에서 사용한 휴지를 우리는 휴지통에 버리는 데 거기는 변기에 버린다고 한다. 이 두루마리 휴지를 유럽에서는 화장실이 아닌 곳에 돌아다니는 것을 매우 놀라기도 한다고 한다. 명품에 대한 기준도 그렇고 문명을 돌아보는 관점이 많아지는 것 같다. 저도 아이들에게 제가 당연하게 여겼던 기준들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고 임시방편적인 것일 있는데 그런 기준들이 고정되어서 통용되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는 것 같다.
-나쁜 행위는 나쁜 해위를 한것이지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전주에 일가족을 죽인 사람도?
-그 행위가 있을 뿐인 것 같아요~ 그 행위를 나쁘다 좋다는 할 수 있지만 사람은...
-“사이엔즈에 의하면,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도, 눈에 보이는 현상면의 언동보다, 그 언동에 이르게 된 그 사람의 마음 상태나 생각 등에 중점을 두게 된다.”고 되어있으니까? 이렇게 보다 달라질까요?
-그 사람의 서사를 알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감각에 기초한다고 했잖아요~ 감각자체는 좋고 나쁜게 없는 것 같다. 휴지를 버리는 것을 보는 것은 저니까 휴지를 버리는 것은 나쁘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넘어가면 좋고 나쁨이 생기는 것 같다. 감각이후에 좋고 나쁨을 파악하는 것은 관념적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노력이나 애씀을 역방향으로 보는데 그것도 가치 판단이 내려져 있는 것이다. 노력 애씀도 감각하고 실재하는 것인데 실재로서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가 토끼를 잡는 것을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잣대가 있느냐? 입장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생존을 위해 사냥을 하는 것인데 옳고 그름에 문제가 아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아까 유럽 사람들이 두루마리 화장지가 밥상에 올라가 있는 것을 의아해 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틀에 박힌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휴지가 이렇게 쓰일수 있구나~ 많은 곳에서 쓰일 수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창의력이 더 생길 것 같다. 되돌려서 보면 어떨까?
-마트에서 봤는데 휴지에 화장실에서만 쓰세요~라고 쓰여있더라고요! 제품 설명에 그렇게 쓰여있더라구요~
-실제로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이 개인적인 것도 있지만 집단이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 선생님들도 좋다 나쁘다의 집단적 틀이 있는 것 같다. 행복하다는 것도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것을 알게 모르게 무의식속에서 고정되어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한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알아가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것 같다.
-요즘 식당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부모가 말리지 않는다고 한다. 말리면 오히려 부모가 화를 낸다고 한다. 선생님은 이것을 어떻게 보는가?
-같이 쓰는 공간이니까 소란스럽게 하면 안 된다고 본다.
-그러면 부모도 안 좋게 보게된다.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이 얼마 안 되서도 바뀐다. 선진국 어디서는 아이들 겨드랑이에 종이를 끼우고 다는 것을 연습하게 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의 폭을 최대로 좁혀서 다른 사람을 침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연습시키는 것이다. 어떻게 들리는가?
-답답할 것 같다.
-유럽에 학교 연수로 갔을 때 유럽에서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 있다. 어린 아이들(저학년 이하) 식당같은 데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했을 때 한 두 번 해서 안 되면 공개적인 장소에서 매우 심한 체벌을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당연한 문화로 여긴다고 해서 매우 놀랐다. 아이들에게 체벌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이 오히려 유럽은 반대이더라~
-그 행동이 나쁘다라고 하는 거 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방해가 될 수 있는 것을 아는 거하고 다른 것 같다. 혼나니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하고 다른 것 같다.
-어떤 나이까지는 인식보다는 감각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닐까?
-유럽의 경우도 아이들에 대한 변천의 과정을 알아보면 좋을 것 같다. 원래 처음부터 그랬는지 우리나라에서 그러면 군사문화라고 할 것이다. 유럽이 원래 처음부터 그랬는지 하는 과정에서 변했는지 궁금하다.
-공동체나 배려의 문화가 성숙해있는 것 같다.
-우리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억압된 사회에 살다보니 부모들이 이렇게 하는 것이다. 이 시기를 지나면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군사문화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가하고 아이들 멋대로 산다는 것이 부자유를 만드는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살 수 가없다. 엄청 부자유를 느낀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교육을 받은 아이가 자유롭다.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가서 겪는 에피소드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자기 집 잔디를 관리를 안했다가 마을에서 쫓겨났다는 일화가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성인 남녀의 시각인 것 같다.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청소년의 시각, 어린이의 시각이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장애우의 시각이 안착화 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어려서부터 교육받지 않은 사람들이 더 부자유를 느끼다고 했는데 사회자체가 부자유인 곳이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배려하는 것이 자유로운 것인가? 아이들이 그 시대에 뛰어노는 것이 자유로운 것인가? 라는 부분이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노력과 애씀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우리 사회자체는 이것에 선이라는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수준이 낮은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스즈카 공동체 사람들은 뛰어노는 아이들을 어떻게 볼까? 아이니까 뛰는 것이 당연하다고 볼까? 저도 잘 못한다. 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에 굉장한 가치를 두고 사는 것 같다. 이번에 아이들이랑 원주 어느 가게에 갔는데 아이들이 가게 물건을 막 먹더라 그걸 보고 불편했지만 그냥 한번 보고 있어봤다. 그런데 지나가고 나니까 별걱정이 없었다.
-우리시대가 사회적 통념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한쪽에서 옳다고 한들 한쪽에서는 부자유를 느낄 수 밖에 없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통념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통제가 없을 때 자유는 누릴 수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무방비한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절대자유라는 경지에서 볼 때 단일한 자유는 없다고 본다. 파시즘이나 전체주의가 자유를 하나로 만들려고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자유가 다양화되는 것이 아닐까한다.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갈수록 다양한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 너머의 자유가 펼쳐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두 분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 했는데 그것이 사실일까?하고 검토해가자는 것이 사이엔즈다. 이게 정말의 인간이나 사회의 본질일까? 어떤것이 행복이고 어떤것이 불행인지 자기부터 검토해가자는 것이다. 처음은 결국 자기 자신부터이다. 자기의 고정된 틀을 검토해가면서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검토해가자는 것이 아닐까?
-내가 자유롭고 타인이 부자유인 것이 자유인가? 아니면 그 역이 자유인가? 생각해 본적 있습니까?
-부자유가 들어가 있는데 자유일까요?
-내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자유인 것 같은데요
-그건 굉장히 좋은데 어려운 것 같다. 굉장히 어렵고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한번 보자는 것이다. 굉장히 어렵다라고 보는 것도 상당히 단정하고 보는 것이 아닐까? 그런 것을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하다 보면 하나 하나 나오지 않을까 한다.
-행위에 대해서 사람의 마음 상태에 중점을 두게 된다면 아이가 뛰어 다니면 그 마음의 상태에 중점을 둔다는 것은 뭐죠?
-식당에 아이는 가기 싫었어요~ 부모는 두 시간씩 이야기 하는데 아이는 밥을 먹고 한일이 없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부당하다. 심심하고 놀고 싶은 것이다. 행위는 뛰는 것이지만 마음상태는 아이가 지루하고 심심하고 놀고 싶은 것이다.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식당에 놀이방이나 오락실을 만들어 논 것 이다.
-저희 어머니와 통화할 때 아이들 목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면 어머니는 아이들이 건강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1학년아이들이 아무리 넘어지니까 뛰지 말아라 해도 뛴다. 5학년은 뛰지 않는다. 6학년은 어른 보다 늦게 걷는다.
-아이들 기르는데 식당을 데리고 자주가지는 않는다. 사실 피해 때문에 그렇다기 보다는 안전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다. 부모가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은 안전의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못 알아 듣고 인식을 못한다. 안전에 대한 의식은 어른아이도 있다.
-곡성 기차 마을을 갔는데 한국 사람과 외국 사람이 있었다. 아이들이 있는데 한국 사람은 절대 못 가게 하는데 외국 사람은 결정적인데 재제한다. 그냥 놔두면 안 될까 생각해 봤다. 내 욕구가 있으니까 아이를 잡는 것이 아닐까? 그 아이를 보는 것도 보는 거지만 내가 왜 아이를 잡고 있을까를 보는 것이 어떨까?
-앞으로 우리가 이야기 할 부분에 대해서 폭넓게 이야기 한 것 같다.
-이상을 실현하자라는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잠시 멈춰서 재검토 한다는 것은 정말 필요한 것 같다. 평가 토론을 하는데 너무 형식적이고 그렇다. 진짜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런 걸 중간에 이야기 하면 굉장히 김 빼는 이야기로 듣는데...
-배가 산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점검해보자는 것 같다. 뭔가를 하다보면 많은 문제에 직면할 것 같다. 그럴 때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아마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 각자 일을 하고 있는데 진짜 목적이 뭔가? 이야기 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내가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 진짜 목적이 무엇일까요? 한번 생각나는 사람은 이야기 해보지요?
-목표를 이야기 한 것인가요?
-목표를 넘어서 그 목표를 넘어서 달성하고 싶은 진짜 목적~
-그것을 스스로 잘 물어보기 드물다.
-일관되게 사는 선배가 있다. 이주민노동권을 위해 일한다. 그 선배에게 물었다. 형은 이게 왜하냐고 그랬더니 그 선배가 평등한 세상을 위해서 한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평등한 세상이 되면 형은 뭐가 좋으냐고~ 선배가 그건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지금부터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
-김창완이라는 가수가 이비에스에 나왔다. 김창완이 아주 어렸을 때 왜 사냐고 물어보고 다녔다고 안다. 어른들이 커보면 안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가 어른이 되었는데 아이가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 고민이 된다고 했다. 김창완은 사는 동안이 질문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답했다. 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죽지 못해 사는 것이다.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답을 못 얻었던 것 같다. 목적이 뭐냐고 물었는데 공자나 예수님도 이야기 할 수 있었을까?
-예수님은 만인의 구원을 위해 사시지 않았을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으로 살았다. 근데 하나님이 무슨 뜻을 가졌냐고 물으니 하나님은 아무 뜻이 없다고 하더라~
-아까 평등 사회 이야기 했는데 진짜 그렇게 한다고 하고 있는데 자기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다. 한참을 물어보면 보이는 게 있다. 내년에 나이가 70인데 내가 이야기 할 때 성숙한 인격이라는게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마음의 동요가 없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데 돌아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는 부끄럽다. 이거는 자기 스스로 검토했을 때 이야기 할 수 있다.
-살아 있으니까 사는 거 아닐까?
-사람이 죽어가는 것은 현상인데 사는 동안에 뭔가를 하는데 진짜로 하고 있는 자기 스스로의 목적을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이남곡 선생님의 진짜 목적을 듣고 싶습니다.
-그게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정말로 말하기가 쉽지 않아요~ 끊임없이 묻고 있습니다. 한참 묻다보면 뭔가 보이면 진짜 자유로운 상태가 된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행복해질 것 같다고 했는데 제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아직 못 찾았어요~ 죽을 때 까지 찾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보면 단순한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역 선생님이 그랬는데 자의식이 들어가면 다 허위라고 이야기 한다. 뭔가를 하고 싶어 하더라도 자의식이 들어가 있으면 가짜라는 것이다. 나에게는 다가왔다. 내가 뭐를 하고 싶다고 하는데 단순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자의식이나 허위의식이 없는 것 아닐까? 자칫 하면 이상을 내걸고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 중 자의식이 많은 경우가 많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 행복 등의 여러 가지 관념을 내려놓고 가보자고 서론에서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니까 행복 지수가 떨어지는 것 같다. 지속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한대 지속적이지 못하니까 문제다.
-그렇게 하니까 문제가 아닐까 행복했으면 그것으로 끝나면 된다. 그것을 지속하려면 이것 저것 어려울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행복하다기 보다는 꿈이 있어야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 꿈이 허망할 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행복하지 않을까요? 로또를 하나 샀을 때 일주일간에 충만감이 있으니까~ 그런 사람에게 꿈을 깨라고 하면 잔인하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연애 할 때는 좋은데 막상 결혼하면 환상이 깨진다.
-오늘 여기에온 각자의 목적을 생각해 보면 단서가 있을 수 있겠다. 나는 왜 여기에 왔을까? 지금 뭐가 좋으니까 왔을 것인데 그게 뭘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궁금한 것이 있는데 에즈원커뮤니티에 다녀온 분들이 이 책을 읽을 때 어떤 차이가 있어요~ 다녀 온 후하고 그 전하고...
-정다운 사회 같은 경우 어떤 바탕에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이해가 더 되는 것 같다.
첫댓글 동물적 감각, 촉감, 터치... 정답고 따뜻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