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년(1617, 광해군9) 가을에 흉도의 이른바 큰 논의가 장차 시작될 것 같았다. 9월에 성묘를 위해 휴가를 받아 10월에 괴산으로 내려갔다. 이듬해 초하룻날 고향을 출발하여 처음에는 수원에서 우거하려 하였으나 초엿샛날 양사에서 합계하여 멀리 유배 보낼 것을 청하였다. 초이렛날 수원을 출발하여 궐문 밖에서 명령을 기다리느라 용산리에서 머물다가 청파 역졸의 집에서 묵었다. 다음 날 청파의 옛 마을로 옮겨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연히 쓰다〔丁巳秋 兇徒所謂大論將發 九月掃墳受由 十月下槐山 翌年初一日 自故山發行 初擬寓居水原 初六日 兩司合啓請遠竄 初七日 自水原發行 待命于門外 寓龍山里 投宿靑坡驛卒家 翌日 移靑坡舊洞 雨中偶書〕
늙은 몸으로 지금 옮겨 다니니 / 白首今遷次
청파는 예전에 노닐던 곳이지 / 靑坡昔所遊
친한 벗들 대부분 세상 떠났으니 / 親朋多喪逝
재가 된 지 몇 해인가 / 灰燼幾春秋
숲 성글어 산들이 다투어 나오고 / 林缺山爭出
다리 기울어 물은 어지러이 흐르네 / 橋傾水散流
부질없이 버들 빛만 남아 / 空餘楊柳色
안개비가 시름겹게 하누나 / 煙雨使人愁
[주-D001] 흉도(兇徒)의 …… 논의 :
이이첨(李爾瞻), 박승종(朴承宗) 등이 주도한 인목대비(仁穆大妃) 폐위 논의를 말한다. 1617년(광해군9) 3월에 이이첨, 박승종, 유희분(柳希奮) 등 대북파(大北派)가 장원서(掌苑署)에 모여 광해군의 계모인 인목대비 김씨의 폐위를 논의하였고, 11월에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였으며 12월에는 이를 반대하는 기자헌(奇自獻)과 이항복(李恒福) 등을 유배보냈다.
ⓒ 충남대학교 한자문화연구소 | 강원모 김문갑 이규춘 (공역)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