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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시작(1-2)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거나 무능하신 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모든 사건이 연결되어 위대하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박국은 모든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1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2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1-2)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람, 곧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 일이 수년 내에 부흥하고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곧 유다를 심판하신다는 말씀이 속히 이뤄지기를 원하다고 기도합니다.
(1) 표제(1)
3장을 하박국의 기도라고 합니다. 하박국은 1-2장에서는 하나님께 질문을 했었으나, 이제는 기도로 그의 자세가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2장에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반드시 심판하셔서 공의를 세우실 것임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의인의 성실함과 믿음인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2) 기도의 시작(2)
하박국은 자신이 하나님의 소식을 들었고 그의 행하심으로 인해 놀랐다고 고백합니다. 바벨론을 불러 유다를 치시려는 계획으로 인해 놀랐다는 뜻입니다. 그러나이제 그는 그 일을 ‘부흥케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여기서 ‘부흥케 하다’의 원어는 ‘하야’로서 ‘살다’라는 동사의 피엘 명령형입니다. 그 일에 생명을 부여해 달라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벨론을 들어 유다를 치시는 일을 행해달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게 된 하박국의 믿음을 잘 표현하는 문구입니다. ‘진노 중에도 긍휼을 기억하소서’라는 2절 끝부분의 표현은 바벨론이 유다를 침략할 것을 이제 받아들이지만, 그 과정 중에 유다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하박국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게 되어 2:40이 말하는 ‘의인’다운 모습을 갖게 되었고, 그러한 의인 가운데는 현재의 일을 향한 떨림이 있지만 그 떨림을 넘어서는 믿음이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전쟁의 용사이신 하나님(3-12)
하나님의 통치와 권능은 막연한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충분히 눈으로 보고 안 것이고, 지금 우리 삶에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엄위하심이 오히려 안전을 보장해 주는 큰 힘이 됩니다. 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3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 (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4그의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의 손에서 나오니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졌도다 5역병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의 발 밑에서 나오는도다 6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여러 나라가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의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7내가 본즉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는도다 8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향하여 성내심이니이까 9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화살을 바로 쏘셨나이다 (셀라) 주께서 강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10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11날아가는 주의 화살의 빛과 번쩍이는 주의 창의 광채로 말미암아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12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을 두르셨으며 분을 내사 여러 나라를 밟으셨나이다(3-12)
3절부터는 열방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시고 그 전쟁을 수행하시는 용사로서의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데만과 바란 산에서부터 오신다고 묘사합니다. 데만은 요단 동편의 에돔 지역이고, 바란 산은 시내산과 에돔 사이에 있는 지역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지역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임하시는 분입니다. 3절 하반절부터 5절까지는 하나님의 전쟁하시는 모습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인데,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세상에 가득하고, 하나님의 빛은 마치 날카로운 뿔처럼 빛나며, 그가 가시는 길에는 전염병이 앞뒤에 가득합니다. 전염병은 하나님의 전쟁의 결과 많은 원수들이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문구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크시며 원수들을 물리치시는 강한 용사이심을 나타냅니다. 6절은 용사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땅과 열방과 산이 무너지고 엎드러질 것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7절은 하나님께서 열방을 무너뜨리실 것을 구산과 미디안의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열방 중에 하나님을 대적할 이가 없는 것입니다.
8-11절은 하나님의 전쟁하시는 모습을 피조 세계의 여러 요소들을 비유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특별히 이 구절들에서 하나님은 피조세계를 향해 전쟁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물 이미지는 고대 근동에서 죽음과 무질서를 상징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물을 상대로 승리하시고 다스리십니다. 물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 세계들이 하나님 앞에 굴복하며 그분의 통치를 받아들입니다. 하나씩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8절은 하나님께서 말을 타시고 병거를 타신다고 말함으로써 전쟁의 이미지를 더 구체화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전쟁은 강들과 바다를 향해서 노여워하심이라고 표현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물들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물들이 하나님께 복종하고 순종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9절은 하나님께서 화살을 꺼내시고 저주의 말씀으로 땅을 쪼개셔서 그 땅의 쪼개진 부분들이 물로 채워져 강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10절은 산들이 주님 앞에서 흔들리고 바다가 주님께 손을 들고 항복했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물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피조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묘사한 것입니다. 11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해와 달과 별들과 같이 빛을 내는 광명체들조차 하나님의 빛 앞에서 멈추었다고 말합니다. 8-11절은 창세기 1장에서 물들을 다스리시고 땅을 드러내시고 광명체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권세를 용사의 하나님 이미지로 새롭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12절은 이 문단의 마지막 구절로서, 8-11절에서 하나님께서 창조의 권세로 피조물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시는 용사 이미지를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로 연결 짓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짓밟으시고, 열방을 밟으시고 승리하셨다는 것입니다. 피조세계와의 전쟁 이미지는 결국 바벨론과 같은 열방에게 승리하시는 하나님을 묘사하기 위한 시적 기법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구원의 용사이신 하나님(13-15)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 죄에 대해 징계의 채찍을 드십니다. 때로는 욥의 경우처럼 우리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시기 위해 환난을 허락하기도 하십니다. 두 경우 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필요한 구원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도가 믿음 안에서 당하는 환난은 인내와 연단을 통해 구원의 소망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13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 14그들이 회오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15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13-15)
13-15절은 앞서 묘사된 전쟁의 용사로서의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서술해나갑니다. 13절은 하나님의 전쟁이 바로 주의 백성과 언약백성의 지도자인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집 머리를 치시고, 목부터 발끝까지 모두 발가벗기실 것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는 사실상 다윗 왕조의 후계자인 유다왕국의 왕들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13절은 다윗 언약의 회복에 대한 약속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언약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전쟁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14절은 하나님께서 기름부음 받은 자와 언약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의 머리를 창으로 찌르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창’으로 번역된 ‘마태’는 ‘막대기’,‘지파’를 뜻하는 말인데, 9절에서도 사용되었고 ‘화살’로 번역되었습니다. 14절은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무찔러 승리하신 것처럼 다윗 왕국의 대적들을 무찔러 승리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5절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말을 타심으로 바다를 밟고 승리하셨다고 선언하면서, 다시금 피조 세계를 다스리시는 이미지를 재활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승리하시는 최고의 용사이시기에, 유다 왕국의 대적들에게 패배하시지 않는 영원한 승리의 주인공이십니다. 지금 눈앞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심지어 바벨론이 유다를 이기는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패배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이끌어가시는 궁극적인 승리의 일부분인 것이라고 하박국은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고백(16-19)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은 곳에 이르게 하시고, 두려워하지 않게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16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16-19)
이렇게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를 확신하게 된 하박국은 16-19절에서 자신의 현실로 되돌아와서, 그 승리에 대한 확신을 현재의 삶에 적용합니다. 16절에는 유다를 향해 전쟁하러 올라올 바벨론에 대한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넘어서게 만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함께 어우러져 표현되어 있습니다.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썩이는 것이 뼈에 들어온다는 것은 바벨론에게 패배하게 될 전쟁의 처참함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기다린다’는 것은 그 전쟁에서 결국 하나님이 승리하시고 유다를 회복시킬 것에 대한 신뢰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두려움과 신뢰의 이중주는 17절과 18절에서 각각 더 자세히 나타납니다. 17절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 이미지를 활용하는데, 이 나무들은 시내산 언약의 축복과 저주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입니다(참조. 신 28:28-32). 이 나무들에 열매가 없다는 것은 단순한 기근 이상의 것들, 즉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여 전쟁에서 패배하게 됨을 뜻합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18절에서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과 즐거움을 노래합니다. 전쟁의 용사되신 하나님께서 다윗의 나라를 궁극적으로 회복시켜주실 것을 신뢰한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이 구절이 하박국 3장의 마지막에 나타난다는 것은 장차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 왕국이 다시 회복되어 열방에 대해 승리를 거두게될 것임을 하박국이 믿음으로 선포한다는 뜻이 됩니다. 하박국은 눈 앞에 펼쳐지는 일들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의심하였으나, 하나님과의 두 번의 대화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에 복종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신실함으로 반응하게 되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고통 속에서 오히려 왕 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겠다는 결단을 노래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참 믿음의 사람이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께 죄에 대한 징계의 채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어떤 일이 있든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으리라는 결단을 다시 한 번 확고하게 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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