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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二回 衞宣公築臺納媳 高渠彌乘間易君
제12회: 위선공이 대를 쌓아 며느리를 들이고, 고거미가 기회를 틈타 군주를 바꾸다.
卻說,衛宣公名晉,為人淫縱不檢。自為公子時,與其父莊公之妾名夷姜者私通,生下一子,寄養於民間,取名曰急子。宣公即位之日,元配邢妃無寵。只有夷姜得幸,如同夫婦。就許立急子為嗣,屬之於右公子職。時急子長成,已一十六歲,為之聘齊僖公長女。使者返國,宣公聞齊女有絕世之姿,心貪其色,而難於啟口。乃搆名匠築高臺於淇河之上,朱欄華棟,重宮複室,極其華麗,名曰新臺。先以聘宋為名,遣開急子。然後使左公子洩如齊,迎姜氏逕至新臺,自己納之,是為宣姜。
한편, 위선공(衛宣公)의 이름은 진(晉)이고, 위인이 음탕하며 행동이 제멋대로였다. 그는 아버지 장공(莊公)의 첩 이강(夷姜)과 사통하여 아들을 낳아 민간에 맡겨 길렀는데 이름을 급자(急子)라고 했다. 선공이 즉위할 때 본부인 형비(邢妃)는 총애를 받지 못했다. 오직 이강만이 총애를 입어서 마치 부부와 같았다. 그래서 급자를 세자로 세우고, 우공자(右公子) 직(職)을 스승으로 삼았다. 급자가 장성하여 16세가 되었을 때, 제희공(齊喜公)의 장녀를 맞이하여 배필을 삼으려 했다. 사자가 돌아와서 제희공의 딸이 절세 미녀라는 말을 선공이 듣고 마음속으로 그 미색을 탐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자기 입으로 말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이름난 장인들을 동원하여, 기수(淇水) 가에 높은 누대를 짓고, 붉은 난간과 화려한 기둥에 겹겹이 늘어선 궁궐에 수많은 방이 있어 지극히 화려했으며, 이름을 신대(新臺)라고 붙였다. 먼저 급자를 송나라에 사신으로 보내고, 그런 뒤에 좌공자(左公子) 설(泄)을 제나라에 파견하여 강씨를 맞이하여 신대에 데려와서, 자신의 부인으로 삼았다. 이가 선강(宣姜)이다.
時人作新臺之詩,以刺其淫亂:「新臺有泚,河水瀰瀰,燕婉之求,籧篨不鮮!魚網之設,鴻則離之。燕婉之求,得此戚施!」籧篨、戚施,皆醜惡之貌,以喻宣公。言姜氏本求佳偶,不意乃配此醜惡也。後人讀史至此,言齊僖公二女,長宣姜,次文姜,宣姜淫於舅,文姜淫於兄,人倫天理,至此滅絕矣!有詩歎曰:「妖豔春秋首二姜,致令齊衛紊綱常。天生尤物殃人國,不及無鹽佐伯王!」 急子自宋回家,復命於新臺。宣公命以庶母之禮,謁見姜氏。急子全無幾微怨恨之意。宣公自納齊女,只往新臺朝歡暮樂,將夷姜又撇一邊。
당시 사람이 신대에 관한 시를 지었는데 선공의 음란함을 비꼬기 위해서였다. 그 시에 이르기를, “신대는 강가에 있어, 강물이 출렁이네. 고운 임을 만나려고 왔건만, 새가슴이 웬 말이냐! 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쳤는데, 도리어 기러기만 걸렸구나. 고운 임을 만나러 왔건만, 이 꼽추를 만났도다.” 했다. 거저(籧篨 ; 새가슴)와 척시(戚施 ; 꼽추)는 모두 추악한 몰골인데, 선공을 빗댄 말이다. 강씨가 본디 좋은 배우자를 찾아왔건만 뜻밖에 추악한 사람의 짝이 되었다는 뜻이다. 후세 사람들이 역사서를 읽다가 제희공의 두 딸 인 장녀 선강과 차녀 문강이, 선강은 시아버지와 살게 되고, 차녀인 문강은 자기 오라비와 정을 통하는 대목에 이르자, 인륜과 천리가 여기에 이르러 끊기게 되었다고 한탄하면서 시를 지어 이르기를, “춘추에서 요염하기로는 선강과 문강이 제일인데, 제나라와 위나라의 삼강오륜이 두 여인으로 인해 문란해졌다. 하늘이 미인으로 나라에 재앙을 내렸다고 하겠으나, 임금을 도와 패왕으로 만든 무염(齊宣王의 왕비 鍾離春)도 있지 않았던가?” 했다. 이윽고 급자가 송나라에서 돌아와 신대에 와서 복명했다. 선공이 급자에게 명하여 서모의 예로 강씨를 알현하게 했다. 그러나 급자는 추호도 원망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선공이 제나라 여자(선강)를 맞이한 이후로는 오로지 신대에만 머물면서, 밤낮으로 환락을 즐기니 자연히 이강을 한쪽으로 밀어버렸다.
一住三年,與齊姜連生二子,長曰壽,次曰朔。自古道:「母愛子貴」。宣公因偏寵齊姜,將昔日憐愛急子之情,都移在壽與朔身上。心中便想百年之後,把衛國江山,傳與壽朔兄弟,他便心滿意足,反似多了急子一人。只因公子壽天性孝友,與急子如同胞一般相愛,每在父母面前,周旋其兄。那急子又溫柔敬慎,無有失德,所以宣公未曾顯露其意。私下將公子壽囑託左公子洩,異日扶他為君。那公子朔雖與壽一母所生,賢愚迥然不同;年齒尚幼,天生狡猾,恃其母之得寵,陰蓄死士,心懷非望。
위선공은 한번 살기 시작해서 3년 동안 제나라 강씨 사이에 연달아 아들 둘을 낳았는데, 큰아들을 수(壽)라 했고 작은아들을 삭(朔)이라 했다. 예로부터 이르기를, ‘그 어미가 총애를 받으면 그 자식도 귀해진다.’고 했다. 선공은 제나라 강씨를 너무 총애하여, 옛날 급자를 사랑하던 마음을 모두 수와 삭에게 옮겨갔다. 마음속으로 장차 백 년 후(죽은 후)에 위나라의 강산을 수와 삭에게 전할 생각을 품고, 옛날 급자 한 아들만을 사랑했던 것보다 더 흡족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공자 수는 천성이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어서 급자와 같은 어머니에게서 낳은 친형제처럼 서로 가까이 지냈다. 매양 부모 면전에 있을 때 그 형을 위해 주선했다. 급자 또한 성격이 온유하고, 매사에 조심하여 조금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공은 (세자를 바꾸려는) 뜻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공자 수를 좌공자 설(泄)에게 맡기면서 장래에 그를 군주가 될 수 있도록 도우라고 은밀히 당부했다. 그러나 공자 삭은 공자 수와는 같은 어머니가 낳은 형제였지만 어질고 어리석음이 현저하게 차이가 났다. 나이가 가장 어렸던 공자 삭은 천성이 교활하였으며, 그 어머니가 총애를 입고 있다는 것을 믿고 비밀리에 자객을 길러 장래에 엉뚱한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不惟憎嫌急子,並親兄公子壽,也像贅疣一般;只是事有緩急,先除急子要緊。常把說話挑激母親,說:「父親眼下,雖然將我母子看待。有急子在先,他為兄,我等為弟;異日傳位,蔑不得長幼之序。況夷姜被你奪寵,心懷積忿。若急子為君,彼為國母,我母子無安身之地矣!」齊姜原是急子所聘,今日跟隨宣公,生子得時,也覺急子與己有礙。遂與公子朔合謀,每每讒譖急子於父親之前。
공자 삭은 급자뿐만 아니라 그 친형 공자 수도 함께 혹처럼 증오했다. 그렇지만 일이란 먼저 할 것과 뒤에 할 것이 있어 먼저 급자를 제거하는 일이 긴급하다고 생각해서. 항상 그 모친을 충동질하여 말하기를, “부친이 보고 있으니 급자는 어쩔 수 없이 우리 모자를 대우하고 있습니다. 급자가 앞에 있어 그는 형이고 우리들은 동생입니다. 다음 날 위나라의 군주 자리를 전할 때 장유의 순서에 따라 전해질 것이고, 더욱이 이강은 어머니에게 총애를 빼앗겨서 마음속에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만약 급자가 군주가 되면 이강은 국모가 될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 모자가 몸 둘 곳이 없어집니다.” 했다. 제나라 강씨는 원래 급자의 배필로 위나라에 시집와서 지금은 선공의 부인이 되어 아들을 낳았을 때 급자가 자기에게 장애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내 선강은 공자삭과 같이 모의하여 선공 앞에서 기회만 있으면 급자를 헐뜯었다.
一日,急子誕日,公子壽治酒相賀,朔亦與席。坐間急子與公子壽說話甚密。公子朔插嘴不下,託病先別,一逕到母親齊姜面前,雙眼垂淚,扯個大謊,告訴道:「孩兒好意同自己哥哥與急子上壽,急子飲酒半酣,戲謔之間,呼孩兒為兒子。孩兒心中不平,說他幾句。他說:『你母親原是我的妻子,你便稱我為父,於理應該。』孩兒再待開口,他便奮臂要打。虧自己哥哥勸住,孩兒逃席而來。受此大辱,望母親稟知父侯,與孩兒做主!」齊姜信以為然。待宣公入宮,嗚嗚咽咽的告訴出來,如此如此,這般這般。
하루는 급자의 생일날이었다. 공자 수가 축하의 술자리를 마련하여 공자 삭도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급자와 공자수는 자리에서 담화가 매우 다정했다. 공자 삭은 대화에 끼지 못해 아프다는 핑계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그 모친 선강에게 달려가서,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크게 꾸며 하소연하기를, “제가 좋은 마음으로 형님과 급자에게 축하의 잔을 올렸습니다. 급자가 술이 거나하게 취하여 저를 희롱하면서 저를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좋지 않은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급자가 저보고 몇 마디 하기를, ‘너의 모친은 원래 나의 부인이었다. 따라서 너는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야 이치에 맞는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항의하려 하자 그가 팔을 치켜들어 때리려고 하는 것을 수 형님이 말려서 자리를 피해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큰 욕을 보았으니 모친께서는 부군께 말씀드려 처리해 주십시오.” 했다. 제나라 강씨(선강)가 그 말을 믿고 선공이 퇴청하여 내궁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말없이 흐느껴 울면서 이렇게 저렇게 이러쿵저러쿵 호소했다.
又裝點幾句道:「他還要玷污妾身,說:『我母夷姜,原是父親的庶母,尚然收納為妻。況你母親原是我舊妻,父親只算借貸一般,少不得與衛國江山,一同還我。』」宣公召公子壽問之,壽答曰:「並無此說。」宣公半疑半信,但遣內侍傳諭夷姜,責備他不能教訓其子。夷姜怨氣填胸,無處伸訴,投繯而死。髯翁有詩歎曰:「父妾如何與子通?聚麀傳笑衛淫風。夷姜此日投繯晚,何似當初守節終!」急子痛念其母,惟恐父親嗔怪,暗地啼哭。公子朔又與齊姜謗說急子,因生母死於非命,口出怨言,日後要將母子償命。
또 몇 마디를 더 꾸며서 말하기를, “급자가 저를 욕보이려고, ‘내 어머니 이강은 원래 할아버지의 서모를 아버지가 첩으로 삼았다. 더욱이 네 모친은 원래 나의 배필로 제나라에서 데려왔다. 부친은 단지 잠시 빌렸다고 생각하니 머지않아 위나라의 강산과 함께 나에게 돌려주지 않겠느냐?’라고 했답니다.” 하니, 선공이 공자수를 불러 물었으나, 수가 대답하기를,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전혀 없습니다.” 했다. 선공이 반신반의하면서 내관을 보내 이강에게 전하기를, 아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다고 꾸짖었다. 이강은 원망이 가슴 속에 찼으나 하소연할 곳이 없어 마침내 목을 매달아 죽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한탄하기를, “아버지의 첩이 어떻게 아들과 정을 통하였는고? 부자가 한 여인을 취하니 위나라의 음풍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강은 이날에 와서야 목매어 죽었는데, 어찌하여 처음부터 절개를 지켜 죽지 못했는가?” 했다. 급자가 그 모친을 애통해하면서 그리워했으나 부친이 성낼까 두려워 남몰래 흐느껴 울었다. 공자 삭과 선강이 급자를 비방하면서 말하기를, 그의 생모가 비명에 죽었다고 원망하면서, 다음에 우리 모자의 목숨으로 갚을 것이라고 한다고 했다.
宣公本不信有此事。無奈妒妾讒子,日夜攛掇,定要宣公殺急子,以絕後患,不由宣公不聽。但展轉躊躇,終是殺之無名,必須假手他人,死於道路,方可掩人耳目。其時,適齊僖公約會伐紀,徵兵於衛。宣公乃與公子朔商議,假以往訂師期為名,遣急子如齊,授以白旄。此去莘野,是往齊的要路,舟行至此,必然登陸。在彼安排急子,他必不作準備。公子朔向來私蓄死士,今日正用得著,教他假裝盜賊,伏於莘野。只認白旄過去,便趕出一齊下手。以旄復命,自有重賞。公子朔處分已定,回復齊姜,齊姜心下十分歡喜。
위선공은 원래 이런 말을 믿지 않았다. 질투 많은 첩과 참소하는 아들이 급자를 죽여 후환을 끊으라고 밤낮으로 부추겼으나 선공은 차마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며 주저하던 선공은 마침내 급자를 아무도 모르게 죽여야겠다고 결심했다. 남의 손을 빌려 길가는 도중에 죽여야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마침 제희공이 기(紀)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구원군을 위나라에 청하면서 회견하기를 청해 왔다. 위선공과 공자 삭이 상의하여, 군사를 보낼 날짜를 정한다는 핑계로 급자를 제나라에 보내면서 백모(白旄 ; 흰 쇠꼬리 깃발)를 주었다. 제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신야(莘野)를 거쳐야 하는데 거기까지 배를 타고 가다가, 반드시 육로를 이용해야 했다. 거기에서 급자를 처리한다면,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공자 삭은 그동안 기르던 자객들을 오늘 쓰게 되어, 그들에게 도적으로 가장하여 신야에 잠복하였다가, 백모가 지나가면 일제히 쫓아가서 죽인 후, (그 증거로) 백모를 가지고 와서 복명하면 큰 상을 내리겠다고 했다. 공자 삭은 자객들에게 처분을 내린 후 제나라 강씨에게 보고하자 강씨가 매우 기뻐했다.
卻說,公子壽見父親屏去從人,獨召弟朔議事,心懷疑惑。入宮來見母親,探其語氣。齊姜不知隱瞞,盡吐其實。囑咐曰:「此乃汝父主意。欲除我母子後患,不可洩漏他人。」公子壽知其計已成,諫之無益。私下來見急子,告以父親之計:「此去莘野必由之路,多凶少吉。不如出奔他國,別作良圖。」急子曰:「為人子者,以從命為孝。棄父之命,即為逆子。世間豈有無父之國,即欲出奔,將安往哉?」遂束裝下舟,毅然就道。
한편, 공자 수는 그의 부친이 좌우의 시종들을 물리치고 나서 아우 삭과 의논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의심했다. 그 즉시 입궁하여 모친을 뵙고 기색을 살폈다. 제나라 강씨가 숨기지 못하고 사실을 실토하고 당부하기를, “이 일은 너의 아버지가 주관하여 우리 모자의 후환을 없애려고 하는 일이다. 절대 타인에게 누설하면 안 된다.” 했다. 공자 수는 음모가 이미 정해져서 간해 봐야 소용이 없음을 알고, 몰래 급자를 만나 부친의 계획을 알리기를, “이번에 형님께서 신야를 통해 가시는 일은 화는 많고 좋은 일은 적으니, 다른 나라로 달아나서 따로 좋은 계책을 마련하는 게 좋겠습니다.” 하니, 급자가 말하기를, “사람의 자식이 된 자는 부모의 명을 따르는 것이 효도이다. 그 부친의 명을 버리면 거역하는 자식이 된다. 세상에 어찌 아버지가 없이 사는 나라가 있겠느냐? 달아나고자 한들 어디로 가겠는가?” 했다. 급자는 즉시 행장을 꾸려서 배에 올라 의연히 길을 나섰다.
公子壽泣勸不從,思想:「吾兄真仁人也!此行若死於盜賊之手,父親立我為嗣,何以自明?子不可以無父,弟不可以無兄,吾當先兄而行,代他一死,吾兄必然獲免。父親聞吾之死,倘能感悟,慈孝兩全,落得留名萬古。」於是別以一舟載酒,亟往河下,請急子餞別。急子辭以:「君命在身,不敢逗遛。」公子壽乃移樽過舟,滿斟以進。未及開言,不覺淚珠墮於杯中。急子忙接而飲之。公子壽曰:「酒已污矣!」急子曰:「正欲飲吾弟之情也。」公子壽拭淚言曰:「今日此酒,乃吾弟兄永訣之酒。哥哥若鑒小弟之情,多飲幾杯。」
공자 수가 눈물을 흘리며 명에 따르지 말 것을 권하면서 생각하기를, “우리 형님은 진실로 어진 사람이다. 이번 행차로 만약 도적의 손에 죽는다면, 부친께서는 나를 세워 후사로 삼을 것이다. 무엇으로 스스로 설명하겠는가? 부모가 없는 아들이 없고 형님이 없는 아우가 없다고 했다. 내가 마땅히 형님보다 먼저 가서 그를 대신하여 한번 죽는다면, 형님은 반드시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부친이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만약 뉘우치면 사랑과 효도가 다 이루어지니, 만고에 이름이나마 남기지 않겠는가?” 했다. 이에 공자 수가 따로 배 한 척에 술을 싣고 급히 하류로 가서 급자와 전별하기를 청했다. 급자가 거절하면서 말하기를, “군주의 명을 받은 몸인데 어찌 감히 지체할 수가 있겠느냐?” 하니, 공자 수가 술독을 급자가 탄 배로 옮기게 하고 술을 가득 따라 올리면서 미처 말하기도 전에 자기도 모르게 흘린 눈물이 술잔 속으로 떨어졌다. 급자가 황급히 술잔을 받아 마셨다. 공자 수가 말하기를, “술이 더럽게 되었습니다.” 하니, 급자가 말하기를, “마시려는 것은 내 아우의 정이니라.” 했다. 공자수가 눈물을 닦으면서 말하기를, “오늘 술은 우리 형제가 영결하는 술입니다. 형님께서 만약 이 동생의 정을 조금이나마 생각해 주신다면 제가 드리는 몇 잔의 술을 마셔주십시오.” 했다.
急子曰:「敢不盡量!」兩人淚眼相對,彼此勸酬。公子壽有心留量。急子到手便吞,不覺盡醉,倒於席上,鼾鼾睡去。公子壽謂從人曰:「君命不可遲也,我當代往。」即取急子手中白旄,故意建於舟首,用自己仆從相隨。囑咐急子隨行人眾,好生守候。袖中出一簡,付之曰:「俟世子酒醒後,可呈看也。」即命發舟。行近莘野,方欲整車登岸,那些埋伏的死士,望見河中行旌飄颺,認得白旄,定是急子到來。一聲呼哨,如蜂而集。公子壽挺然出喝曰:「吾乃本國衛侯長子,奉使往齊。汝等何人,敢來邀截?」
급자가 말하기를, “감히 양껏 마시겠는가.” 했다. 두 사람은 눈물 젖은 눈으로 서로 대하고 술을 권했다. 마음속으로 작정한 바가 있었던 공자 수는 급자에게 계속 술을 권해 마시게 했다. 공자 수가 주는 술잔을 모두 받아서 마신 급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매우 취해 자리에 쓰러져 코를 골며 잠에 떨어졌다. 공자 수가 따라온 수행원들에게 말하기를, “군주의 명은 지체할 수 없으니 내가 대신하여 가겠다.” 하고, 즉시 급자의 손에서 백모를 빼앗아 일부러 뱃머리에 세우고 자기의 종복들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급자의 수행원들에게 그를 잘 보살피라고 당부한 공자 수는 소매 속에서 죽간 한 개를 꺼내 주며 말하기를, “세자께서 술에서 깨어나시면 드리도록 하라!” 했다. 즉시 배를 출발시켜, 신야에 가까이 갔다. 곧 마차로 바꿔 타려고 강변에 올랐다. 그때 매복하고 있던 자객들은 강 가운데 바람에 나부끼는 백모 깃발을 보고 그것이 급자가 타고 온 배라고 생각했다. 함성을 지르면서 마치 벌떼같이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공자 수가 앞으로 나와 외치기를, “나는 곧 위나라의 선공의 장자인데, 사신으로 제나라에 가는 길이다. 너희 놈들은 누구이기에 감히 길을 막느냐?” 했다.
眾賊齊聲曰:「吾等奉衛侯密旨,來取汝首!」挺刀便砍。從者見勢頭兇猛,不知來歷,一時驚散。可憐壽子引頸受刀,賊黨取頭,盛於木匣,一齊下船,偃旄而歸。再說急子酒量原淺,一時便醒,不見了公子壽,從人將簡緘呈上。急子拆而看之,簡上只有八個字云:「弟已代行,兄宜速避。」急子不覺墮淚曰:「弟為我犯難,吾當速往。不然,恐誤殺吾弟也!」喜得仆從俱在,就乘了公子壽之舟,催趲舟人速行。真個似電流光絕,鳥逝超群。其夜月明如水,急子心念其弟,目不交睫。
여러 도적들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위선공의 밀명을 받아 너의 목을 취하러 왔다.” 하고, 칼을 휘둘러 내리쳤다. 종복들이 도적들의 흉맹한 기세를 보고 그 내력을 알지도 못한 채 놀라서 일시에 흩어졌다. 가엽게도 공자 수는 목을 늘여 칼을 맞았고, 도적들이 공자수의 머리를 주어서 나무상자에 담았다. 도적들은 일제히 배에 올라 백모 깃발을 나부끼며 돌아갔다. 한편, 급자는 주량이 원래 적어, 얼마 후에 곧 깨어나니 공자수가 보이지 않았다. 수행원이 봉함된 죽간을 바쳐서 겉봉을 뜯어 보니, 죽간에는 여덟 개의 글자로 이르기를, ‘아우가 형님 대신 이미 길을 떠났으니 형님께서는 속히 몸을 피하십시오.’라고 했다. 급자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아우가 나를 위하여 죽으려고 하는데, 나는 마땅히 동생이 있는 곳으로 빨리 가야겠다. 그러지 않으면 내 아우를 잘못 죽이겠구나!” 했다. 종자들이 모두 남아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 급자는 즉시 공자 수가 남겨놓고 간 배를 타고 뱃사람들을 재촉하여 빨리 저어 갔다. 번개같이 미끄러져 가는 배를 보고 놀란 물새들이 날아갔다. 그날 밤의 달빛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이 유난히 밝았다. 급자가 아우를 염려하는 마음에 눈을 붙이지 못했다.
注視鷁首之前,望見公子壽之舟,喜曰:「天幸吾弟尚在!」從人稟曰:「此來舟,非去舟也!」急子心疑,教攏船上去。兩船相近,樓櫓俱明。只見舟中一班賊黨,並不見公子壽之面。急子愈疑,乃佯問曰:「主公所命,曾了事否?」眾賊聽得說出秘密,卻認為公子朔差來接應的,乃捧函以對曰:「事已了矣。」急子取函啟視,見是公子壽之首,仰天大哭曰:「天乎冤哉!」眾賊駭然,問曰:「父殺其子,何故稱冤?」急子曰:「我乃真急子也。得罪於父,父命殺我。此吾弟壽也。何罪而殺之?可速斷我頭,歸獻父親,可贖誤殺之罪。」
급자가 뱃머리 앞을 주시하다가 공자 수의 배를 바라보고 기뻐서 말하기를, “천행으로 내 아우가 아직 살아있구나!” 하니, 종자가 말하기를, “저기 오는 배는 (공자님이 타고) 갔던 배가 아닙니다.” 했다. 급자가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 배를 붙이게 했다. 두 배가 가까이 다가서자 배의 망루가 분명하게 보였다. 배 위에는 다만 도적들만 타고 있고 공자 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급자가 더욱 의심이 들어 자기가 위선공이 보낸 사람인 체하고 묻기를, “주공의 명을 이미 거행하였는가?” 하니, 비밀을 말하는 것을 도적들이 듣고, 공자 삭이 보내 마중 나오는 사람으로 생각하여, 상자를 급자에게 바치면서 말하기를, “일은 이미 끝났습니다.” 했다. 급자가 상자를 열어보니 공자의 머리가 들어있었다. 급자가 하늘을 우러러 통곡을 하며 말하기를. “하늘이여 원통합니다.” 했다. 도적들이 놀라 묻기를, “부친이 그 아들을 죽였는데 어찌하여 원통하다고 하십니까?” 했다. 급자가 말하기를, “내가 바로 급자이니라. 부친에게서 죄를 얻어 부친이 나를 죽이라고 명했다. 이 사람은 내 동생 수인데 무슨 죄로 죽였는가? 빨리 나의 목을 베어 부친에게 갖다 바쳐 잘못 죽인 죄를 속죄해라!” 했다.
賊黨中有認得二公子者,於月下細認之曰:「真誤矣!」眾賊遂將急子斬首,並納函中。從人亦皆四散。《衛風》有《乘舟》之詩,正詠兄弟爭死之事。詩曰: 「二子乘舟,汎汎其景,願言思子,中心養養!二子乘舟,汎汎其逝,願言思子,不瑕有害!」詩人不敢明言,但追想乘舟之人,以寓悲思之意也。再說眾賊連夜奔入衛城,先見公子朔,呈上白旄。然後將二子先後被殺事情,細述一遍,猶恐誤殺得罪。誰知一箭射雙鵰,正中了公子朔的隱懷。自出金帛,厚賞眾賊。卻入宮來見母親說:「公子壽載旌先行,自隕其命。喜得急子後到,天教他自吐真名,償了哥哥之命。」
도적들 중에 두 공자를 알고 있는 자가 있어서 달빛에 급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고 말하기를, “정말로 잘못 죽였다.”고 했다. 도적들이 마침내 급자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베어 함께 상자 속에 넣었다. 급자를 따라온 종복들은 모두 놀라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시경> 「위풍」에 있는 『두 아들이 배를 타네(二子乘舟)』시는 바로 형제가 다투어 죽으려고 한 일을 읊은 것이다. 시에 이르기를, “두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니 둥둥 떠가는 그림자로다. 그리워하여 그대를 생각하니 가슴 속이 울렁거리는구나. 두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니 둥둥 떠가는구나. 그리워하여 그대를 생각하니 어떤 해로움을 당하지나 않을까?” 했다. 시인은 감히 누구인지를 밝히지 못하고 단지 배를 탄 형제들을 추모함으로 슬픈 이야기를 빗대어 말한 것이다. 한편, 도적들은 밤낮으로 위나라 도성으로 달려가서 먼저 공자 삭을 찾아서 백모를 바치고. 그런 다음에 두 공자를 선후로 죽인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오히려 잘못 죽인 죄를 추궁당할까 염려했다. 그러나 두 사람을 죽인 일은 화살 하나로 두 마리의 수리를 잡은 격이 되어, 그것은 바로 공자 삭의 감춘 속내를 바로 맞힌 것이었다. 공자 삭은 황금과 비단을 내어 도적들에게 상을 후하게 주고, 즉시 궁궐로 들어가 모친에게 말하기를, “공자 수가 기를 꽂고 먼저 가다가 스스로 목숨을 버렸습니다. 하늘이 도와서 다행히 급자가 뒤를 쫓아가서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말하여 죽일 수 있었기 때문에 형님의 목숨을 보상했습니다.” 했다.
齊姜雖痛公子壽,卻幸除了急子,拔去眼中之釘,正是憂喜相半。母子商量,且教慢與宣公說知。卻說左公子洩,原受急子之託,右公子職,原受公子壽之託,二人各自關心。遣人打探消息,回報如此如此。起先未免各為其主,到此同病相憐,合在一處商議。候宣公早朝,二人直入朝堂,拜倒在地,放聲大哭。宣公驚問何故,公子洩,公子職二人一辭,將急子與公子壽被殺情由,細述一遍:「乞收拾屍首埋葬,以盡當初相託之情。」說罷哭聲轉高。宣公雖怪急子,卻還憐愛公子壽。忽聞二子同時被害,嚇得面如土色,半晌不言。痛定生悲,淚如雨下。連聲嘆曰:「齊姜誤我,齊姜誤我!」
제나라 강씨가 비록 공자수의 죽음을 애통해하였으나, 반면에 급자를 죽인 것을 다행으로 여겨, 마치 눈에 가시를 뽑은 것처럼 후련하게 생각했다. 이것은 근심과 기쁨이 반반이었다. 모자가 생각하기를, 위선공에게는 천천히 기회를 보아 고하기로 했다. 한편, 좌공자 설은 본디 급자를 보좌하라는 명을 받았고, 우공자 직은 공자 수를 보좌하라는 명을 받아, 각자 두 공자에 대해서 마음을 쓰고 있었다. 사람을 보내 소식을 탐문하니, 그들이 돌아와 두 공자가 죽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두 사람이 각기 그 주인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 동병상련의 생각으로 서로 만나 상의하여 아침 일찍 선공을 함께 찾아가 두 공자의 죽음을 고하기로 했다. 두 사람이 조당에 아침 일찍 나가 땅에 엎드려 절을 올린 후에, 목을 놓아 크게 울었다. 선공이 놀라 그 연유를 물었다. 공자 설과 공자 직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급자와 공자 수가 피살된 정황을 상세히 고한 후에 이르기를, “시체를 수습하여 매장하고 당초에 보좌하던 정을 다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을 마치자 더욱 슬피 울었다. 선공은 급자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생각을 갖지 않았으나, 공자 수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었는데, 갑자기 두 아들이 동시에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얼굴색이 흙빛이 되더니 한동안 말을 못했다. 애통함이 슬픔이 되어 눈물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 연이어 한탄하기를, “제강이 나를 그르쳤구나! 제강이 나를 그르쳤구나!” 했다.
即召公子朔問之,朔辭不知。宣公大怒,就著公子朔拘拿殺人之賊。公子朔口中應承,只是支吾,那肯獻出賊黨。宣公自受驚之後,又想念公子壽,感成一病,閉眼便見夷姜、急子、壽子一班,在前啼啼哭哭。祈禱不效,半月而亡。公子朔發喪襲位,是為惠公。時朔年一十五歲,將左右二公子罷官不用。庶兄公子碩字昭伯,心中不服,連夜奔齊。公子洩與公子職怨恨惠公,每思為急子及公子壽報仇,未得其便。
곧 위선공이 공자 삭을 불러 (공자 수의 죽음에 대해) 물으니, 공자 삭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선공이 대로하여 공자 삭에게 명하여 두 공자를 살해한 도적들을 잡아오라고 명했다. 공자 삭은 입으로만 응하면서 도적들을 잡아 바치겠다고 얼버무렸다. 선공은 두 공자의 살해로 놀란 후에, 또한 공자 수를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한 나머지 병을 얻었다. 눈을 감으면 이강, 급자, 공자 수가 같이 선공 앞에 나타나서 흐느껴 울어대곤 했다. 기도를 해도 효험이 없었고 반 달 만에 죽고 말았다. 공자 삭이 발상하고 군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가 위혜공(衛惠公)이다. 그때 삭의 나이가 15세였다. 좌우 두 공자를 파직하고 쓰지 않았다. 서형인 공자 석은 자가 소백(昭伯)인데, 마음속으로 불만을 품고 밤을 도와 제나라로 달아났다. 공자 설과 공자 직도 혜공에게 원한을 품고 항상 급자와 공자 수의 원수를 갚을 생각을 했으나 기회를 잡지 못했다.
話分兩頭。卻說衛侯朔初即位之年,因助齊攻紀,為鄭所敗,正在銜恨。忽聞鄭國有使命至,問其來意。知鄭厲公出奔,群臣迎故君忽復位,心中大喜。即發車徒,護送昭公還國。祭足再拜,謝昔日不能保護之罪。昭公雖不治罪,心中怏怏,恩禮稍減於昔日。祭足亦覺跼蹐不安,每每稱疾不朝。高渠彌素失愛於昭公,及昭公復國,恐為所害,陰養死士,為弒忽立亹之計。時鄭厲公在蔡,亦厚結蔡人。遣人傳語檀伯。欲借櫟為巢窟,檀伯不從。於是使蔡人假作商賈,於櫟地往來交易,因而厚結櫟人,暗約為助,乘機殺了檀伯。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 위나라 군주 삭이 즉위한 해에 제나라를 도와 기(紀)나라를 쳤으나, 정나라에게 패하여 원한을 품었다. 갑자기 정나라에서 사신이 왔다고 하여, 사신이 온 뜻을 물으니, (사신이 말하기를) 정여공이 달아나서 여러 신하들이 옛 군주 홀을 맞아 복위시키려고 한다고 했다. 위혜공(삭)이 마음속으로 대단히 기뻐하며, 즉시 전차와 군사를 동원하여 정소공(홀)을 호송하여 정나라에 귀국시켰다. 제족이 소공에게 재배하고, 옛날에 그를 보호하지 못한 죄를 사과했다. 소공이 비록 제족에게 죄를 묻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는 달갑게 생각하지 않아서, 은혜와 예절이 옛날보다 조금 줄었다. 제족 역시 두려워 몸을 사리며 불안하여 매일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고거미도 본디 소공에게 총애를 잃어서 소공이 복위되자 살해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몰래 자객을 길러 홀(소공)을 죽이고 공자 미를 옹립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때 정여공(돌)은 채나라에 있으면서 또한 채나라 사람들과 교분을 두텁게 맺었다. 여공이 단백에게 사람을 보내 전하기를, 역성(櫟城)을 빌려 소굴로 삼고자 했으나, 단백이 따르지 않았다. 이에 채나라 사람들을 상인으로 변장시켜 역(櫟) 땅으로 보내 장사를 하게 하면서 그곳 사람들과 친교를 맺게 하고, 협력하기로 비밀리에 약속하여, 기회를 틈타 단백을 죽였다.
厲公遂居櫟,增城濬池,大治甲兵,將謀襲鄭,遂為敵國。祭足聞報大驚,急奏昭公,命大夫傅瑕屯兵大陵,以遏厲公來路。厲公知鄭有備,遣人轉央魯侯,謝罪於宋,許以復國之後,仍補前賂未納之數。魯使至宋,宋莊公貪心又起,結連蔡衛,共納厲公。時衛侯朔有送昭公復國之勞,昭公並不修禮往謝,所以亦怨昭公,反與宋公協謀,因即位以來,並未與諸侯相會,乃自將而往。公子洩謂公子職曰:「國君遠出,吾等舉事,此其時矣!」公子職曰:「如欲舉事,先定所立,人民有主,方保不亂。」
여공(돌)은 마침내 역성(櫟城)에 거주하며 성을 증축하고 해자를 깊이 파며 군사를 크게 정비하여 장차 정나라를 공격하는 적국이 되려고 모의하였다. 제족이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급히 소공에게 아뢰니, 대부 부하(傅瑕)에게 명하여 대릉(大陵)에 군가를 주둔시켜서 여공의 침입로를 막으라고 했다. 여공이 정나라의 대비책을 알고 사자를 노환공에게 보내어, 송나라에 (예전의 약속 불이행을) 사죄하고, 만약 군주 자리를 되찾으면 지난번 주기로 한 뇌물 중 미납한 것을 채워 주겠다는 말을 전하게 했다. 노나라 사자가 송나라에 당도하여 정여공의 뜻을 전하자 송장공의 탐욕이 다시 일어나 채나라와 위나라와 연맹하여 함께 여공을 정나라에 들이기로 했다. 그때 위혜공 삭은 정소공 홀을 복위시키는 노고가 있었으나, 정소공이 그 일에 대해 아무런 감사도 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한 소공을 원망하고 도리어 송장공의 모의에 협조하게 되었다. 자신이 위나라 군주가 된 이래 제후들과 서로 모인 적이 없다고 생각한 위혜공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다. 공자 설이 공자 직에게 말하기를, “나라의 군주가 멀리 나갔으니, 우리가 이때 거사해야 하오!” 하니, 공자 직이 말하기를, “만약 거사를 하려면 먼저 군주를 정하여야만 합니다. 백성들은 군주가 있어야만 비로소 어지럽지 않게 됩니다.” 했다.
正密議間,閽人報:「大夫寧跪有事相訪。」兩公子迎入。寧跪曰:「二公子忘乘舟之冤乎?今日機會,不可失也!」公子職曰:「正議擁戴,未得其人。」寧跪曰:「吾觀群公子中,惟黔牟仁厚可輔,且周王之婿,可以彈壓國人。」三人遂歃血定議。乃暗約急子壽子原舊一班從人,假傳一個諜報,只說:「衛侯伐鄭,兵敗身死。」於是迎公子黔牟即位。百官朝見已畢,然後宣播衛朔構陷二兄,致父忿死之惡。重為急壽二子發喪,改葬其柩。遣使告立君於周。寧跪引兵營於郊外,以遏惠公歸路。
두 사람이 은밀히 의논하고 있는데 문지기가 보고하기를, “대부 영궤(寧跪)가 일이 있다고 방문했습니다.” 하니, 두 공자가 맞아들였다. 영궤가 말하기를, “두 공자께서는 (급자와 공자 수가) 배를 타고 가다가 죽은 원통한 일을 잊었습니까? 지금이 기회이니 놓치지 마십시오.” 했다. 공자직이 말하기를, “추대할 사람을 아직 정하지 못했소.” 하니, 영궤가 말하기를, “내가 보기에는 여러 공자들 중에 오직 검모(黔牟)가 어질고 후덕하여 가히 보좌할 만합니다. 또한 주왕의 사위이니 나라 사람들을 복종시킬 수 있습니다.” 했다. 세 사람이 (희생의) 피를 입술에 발라 의논을 정했다. 곧 비밀리에 급자와 공자 수의 옛 종자들을 찾아 약속하기를, ‘위혜공이 정나라를 치다가 싸움에서 패하여 난군 중에 죽었다.’라는 헛소문을 퍼트리게 했다. 이에 공자 검모를 맞이하여 즉위시켰다. 백관이 조회를 마친 후에, 삭(위혜공)이 두 형을 모함하여 죽이고, 아버지가 화병으로 죽었다고 백성들에게 널리 알렸다. 다시 급자와 수를 위해 발상하고 그들의 시신을 다시 장사지냈다. 사자를 주나라에 보내어 검모가 위나라 군주에 즉위하였음을 고하고, 영궤는 군사들을 이끌고 위나라 변경에 나가 혜공이 돌아오는 길을 막았다.
公子洩欲殺宣姜,公子職止之曰:「姜雖有罪,然齊侯之妹也,殺之恐得罪於齊。不如留之,以結齊好。」乃使宣姜出居別宮,月致廩餼無缺。再說,宋、魯、蔡、衛,共是四國合兵伐鄭。祭足自引兵至大陵,與傅瑕合力拒敵,隨機應變,未嘗挫失。四國不能取勝,只得引回。單說衛侯朔伐鄭無功,回至中途,聞二公子作亂,已立黔牟,乃出奔於齊國。齊襄公曰:「吾甥也。」厚其館餼,許以興兵復國。朔遂與襄公立約:「如歸國之日,內府寶玉,盡作酬儀。」襄公大喜。忽報魯侯使到。因齊侯求婚於周,周王允之,使魯侯主婚,要以王姬下嫁。
공자 설이 선강(제나라 강씨)을 죽이려고 하자 공자 직이 만류하며 말하기를, “선강이 비록 죄는 있지만 제양공(諸兒)의 누이라 만약 우리가 죽인다면 제나라에 죄를 짓는 것이 두렵습니다. 살려두어 제나라와 우호를 맺는 것이 좋습니다.” 했다. 곧 선강을 궁 밖으로 내보내 별궁에 머물게 하고, 매달 식량에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한편, 송나라, 노나라, 채나라, 위나라가 군사를 합하여 정나라로 쳐들어갔다. 제족이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대릉(大陵)에 이르러 부하(傅瑕)와 힘을 합쳐 임기응변으로 막아내어 잘 버텼다. 네 나라가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회군했다. 한편, 위혜공 삭은 정나라 정벌에 나섰다가 아무런 전공도 못 올리고 회군하다가, 두 공자가 난을 일으켜 이미 검모를 군주로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제나라로 도망쳤다. 제양공이 위혜공을 “내 조카다.”라고 부르면서 숙식을 넉넉하게 마련해주고, 군사를 일으켜 나라를 되찾게 해주겠다고 허락했다. 위혜공 삭이 제양공과 약속하기를, ‘만약 귀국하는 날에 위나라 창고에 있는 보물을 모두 보답으로 드리겠습니다.’ 하니, 양공이 크게 기뻐했다. 갑자기 노환공의 사자가 도착했다고 알렸다. 노나라의 사자는 제양공이 주나라에 혼사를 구한 것을 주왕이 허락했으며 노환공으로 하여금 혼사를 주관하도록 명했다고 전했다. 요컨대주나라 왕녀를 제양공에게 시집보내기로 허락했음을 통고한 것이었다.
魯侯欲親自至齊,面議其事。襄公想起妹子文姜,久不相會,何不一同請來?遂遣使至魯,並迎文姜。諸大夫請問伐衛之期。襄公曰:「黔牟亦天子婿也。寡人方圖婚於周,此事姑且遲之。」但恐衛人殺害宣姜,遣公孫無知納公子碩於衛。私囑無知,要公子碩烝於宣姜,以為復朔之地。公孫無知領命,同公子碩歸衛,與新君黔牟相見。時公子碩內子已卒,無知將齊侯之意,遍致衛國君臣,並致宣姜。那宣姜倒也心肯。衛國眾臣,素惡宣姜僭位中宮,今日欲貶其名號,無不樂從。只是公子碩念父子之倫,堅不允從。
노후가 친히 제나라에 와서 혼사에 대해 상의하려 한다고 하자, 제양공이 여동생 문강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음을 생각하고는, 어찌 문강도 함께 오기를 청하지 않았겠는가? 곧 사신을 노나라에 보내 아울러 문강을 맞이하게 했다. 제나라의 여러 대부가 위나라를 정벌할 시기를 묻자 양공이 말하기를, “검모는 주나라 천자의 사위이고 과인은 이제 주나라에 혼인하려고 한다. 그 일은 잠시 미뤄둬야겠다.” 했다. 그러나 위나라 사람들이 선강을 살해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공손무지(公孫無知)로 하여금 (제나라에 망명하고 있는) 공자 석을 데리고 위나라에 가게 했다. 제양공은 공자 석이 선강과 관계하게 하면 위혜공 삭을 복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공손무지에게 은밀히 당부했다. 공손무지가 양공의 명령을 받고 공자석과 함께 위나라에 가서 새 군주 검모를 알현했다. 그때 공자 석의 부인은 이미 죽고 없었다. 공손무지가 제양공의 뜻을 위나라의 군주와 신하들에게 두루 알리고 또한 선강에게도 전했다. 선강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위나라의 여러 신하들은 평소에 선강이 중궁의 자리를 참칭한 것을 미워하여, 오늘에 이르러 그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라고 제양공의 뜻을 따르지 않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오로지 공자 석만이 부자간의 윤리를 생각하여 완강하게 거절했다.
無知私言於公子職曰:「此事不諧,何以復寡君之命?」公子職恐失齊歡,定下計策,請公子碩飲宴,使女樂侑酒,灌得他爛醉,扶入別宮,與宣姜同宿,醉中成就其事。醒後悔之,已無及矣。宣姜與公子碩遂為夫婦。後生男女五人:長男齊子早卒,次戴公申,次文公燬;女二,為宋桓公,許穆公夫人。史臣有詩嘆曰:「子婦如何攘作妻,子烝庶母報非遲!夷姜生子宣姜繼,家法源流未足奇。」此詩言昔日宣公烝父妾夷姜,而生急子。今其子昭伯,亦烝宣姜而生男女五人。家法相傳,不但新臺之報也。
공손무지가 공자 직에게 은밀히 말하기를, “이 일이 잘 처리되지 않으면 내가 돌아가서 주군에게 어떻게 복명할 수 있겠소?” 하니, 공자 직이 제양공에게 환심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미리 계책을 정하여 공자 석을 연회에 청한 후에 기녀들로 하여금 술을 권하게 하여 흠뻑 취하도록 만들었다. 술에 취한 공자 석을 별궁에 부축해 들여서 선강과 함께 자게 했다. 취중에 그 일을 이루고 술에서 깨어나 후회했지만, 이미 어쩔 수가 없었다. 선강과 공자 석은 결국 부부가 되어 후에 5남매를 낳았다. 장남 제(齊)는 어려서 죽고, 차자는 대공(戴公) 신(申)이며 삼남은 문공(文公) 훼(燬)이다. 두 딸은 송나라 환공(桓公)과 허나라 목공(穆公)의 부인이 되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한탄하기를, “어찌하여 며느리를 훔쳐서 부인으로 삼았는가? 그 아들이 서모를 범하니 업보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강이 낳은 아들이 선강을 계실로 삼으니, 그 집안의 가법이 원류라 이상할 것도 없다.” 했다. 이 시는 옛날 선공이 그 부친의 첩이었던 이강을 범하여 급자를 낳고, 지금 소백(공자 석)이 선강을 범하여 5남매를 낳은 일을 언급한 것다. 집안의 가법이 전해 내려온 것은 다만 신대(新臺)의 업보만은 아니었다.
話分兩頭。再說,鄭祭足自大陵回,因舊君子突在櫟,終為鄭患,思一制禦之策。想齊與厲公原有戰紀之仇,今日謀納厲公,惟齊不與。況且新君嗣位,正好修睦。又聞魯侯為齊主婚,齊魯之交將合。於是奏知昭公,自賷禮帛,往齊結好,因而結魯。若得二國相助,可以敵宋。自古道:「智者千慮,必有一失。」祭足但知防備厲公,卻不知高渠彌毒謀已就,只慮祭足多智,不敢動手。今見祭足遠行,肆無忌憚。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 정나라의 제족은 대릉에서 도성으로 돌아와, 옛 군주인 여공 돌(突)이 역성에 주둔하고 있는 것이 결국 정나라의 우환이라 생각하여, 여공을 막을 한 가지 계책을 생각했다. 옛날 제희공이 기(紀)나라를 정벌할 때, 정여공이 노나라와 같이 기나라를 도와 제나라를 물리친 일로 해서 두 나라는 원수의 나라가 되고 말았으나, 지금은 여공을 복위시키려는 데 오로지 제양공만이 함께하지 않음을 상기했다. 더욱이 소공(홀)이 다시 복위하여 마침 제나라와 수교를 맺으려고 하고, 또한 노환공이 제양공을 위해 혼사를 주재하여 제나라와 노나라가 수교를 맺을 것이었다. 이에 제족은 소공에게 알리고 스스로 폐백을 가지고 제나라에 가서 친선을 맺고 이어서 노나라와도 수교를 맺으려고 했다. 만약에 두 나라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송나라를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옛말에 ‘지혜로운 사람은 천 가지를 생각하지만, 반드시 한 가지 실수가 있다’고 했다. 제족은 단지 여공(厲公)을 대비하고 있었지만, 고거미의 악독한 음모가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고거미는 오로지 제족이 꾀가 많으므로 감히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제족이 제나라로 먼 길을 떠나자,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다.
乃密使人迎公子亹在家,乘昭公冬行蒸祭,伏死士於半路,突起弒之,託言為盜所殺。遂奉公子亹為君。使人以公子亹之命,召祭足回國,與高渠彌並執國政。可憐昭公復國,未滿三載,遂遭逆臣之禍!髯仙讀史至此,論昭公自為世子時,已知高渠彌之惡。及兩次為君,不能剪除兇人,留以自禍,豈非優柔不斷之禍?有詩嘆云:「明知惡草自當鉏,蛇虎如何與共居?我不制人人制我,當年枉自識高渠!」
그리하여 비밀리에 사람을 시켜 공자 미를 집으로 맞이해 오고, 소공이 겨울철의 증제(烝祭)를 올리기 위해 출타한 틈을 타서, 고거미는 자객을 길가에 매복시켜 놓았다. 갑자기 자객들이 일어나 소공을 시해했다. 소공이 도적들의 습격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고 백성들에게 공포하고, 공자 미를 받들어 군주의 자리에 앉혔다. 공자 미는 사자를 제나라로 보내어 제족에게 환국하여 고거미와 함께 국정을 돌보라는 명을 전하게 했다. 가련하게도 소공은 복위한 지 3년도 채 안 되어서 역신으로부터 화를 당했다. 염선(髥仙)이 사서를 읽다가 이 대목에 이르자 논하기를, ‘소공이 세자 때부터 이미 고거미의 악독함을 알고 있었고, 또한 두 번이나 군주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흉악한 자를 잘라내지 못하고 있다가 스스로 화를 당하였으니, 어찌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인하여 화를 당한 게 아니겠는가?’ 했다. 시를 지어 한탄하기를, “나쁜 풀인 줄 알면 마땅히 호미로 파버려야 하거늘, 뱀과 호랑이가 어찌 같이 살 수 있겠는가? 내가 남을 제압하지 못하면 남이 나를 제압할 텐데, 그 당시에 정소공은 고거미를 잘못 알았도다.” 했다.
不知鄭子亹如何結束,且看下回分解。
정나라 공자 미는 어찌 될 것인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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