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운 같이 먹어야
식구죠
아암 그렇구 말구요
식구
같은 밥을 먹고,
서로의 침묵을 나누는 이름 없는
사랑.
식구는
빛 바랜 커튼 너머로 스며드는 오후의 정적,
서로의 그림자 위에 조용히 겹쳐지는 숨결,
말 없이 스치는 손끝 하나에도
오래된 애틋함이 은은히 번져 있는 풍경
이다.
식구는 선택할 수 없는 타인의 현존이며,
그 곁에 머무는 고독의 또 다른 형태다.
함께 있다는 것은,
끝없이 낯선 존재들과 책임을 나누는 일이다.
이 작업은 하나의 프레임 안에 머무는 존재들의 거리와 밀도를 기록한다.
빛과 그림자, 초점과 잔상의 언어를 통해,
식구라는 이름 아래 묶인 공존과 고독의 구조를 사유한다.
카메라는 단지 장면을 재현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관계의 윤리를 드러내는 창이 된다.
작업노트 – 식구에 대하여
이 작업은 ‘식구’라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 수 있는 관계를 카메라로 사유하는 시도이다.
같은 공간에 머물며, 같은 식탁을 나누고, 같은 침묵을 견디는 존재들.
그들의 표정 없는 순간, 시선이 어긋난 거리, 침묵이 머무는 공간 속에서
나는 관계의 본질을 묻고자 했다.
사진은 단순한 재현의 도구가 아니다.
이 작업에서의 사진은 시간을 축적하고, 관계의 밀도를 감지하는 철학적 장치이다.
한 프레임 안에 잡힌 인물들은 서로를 마주보지 않고,
그러나 어딘가 겹쳐져 있고, 공유된 빛과 그림자 안에서 조용히 이어져 있다.
나는 이 이미지들을 통해
‘식구’라는 말에 내포된 실존적 책임과 감정의 잔상,
그리고 보이지 않는 윤리적 거리를 탐색하고자 했다.
이것은 가족에 대한 찬미도, 해체도 아니다.
단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를 정지된 이미지 속에 잠시 붙들어 두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