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에 대표적인 만석꾼은 경주의 최 부자와 청송의 심 부자(송소 고택)댁이다. 최 부자가 12대로 이어왔다면 심 부자는 9대를 이어왔다. 둘 다 대단한 부의 대물림이다.
그 청송 심부자댁을 찾았다
이곳 마을이름은 덕천마을이다
벚꽃이 피는 봄에 찾았으면 더욱 좋았을 마을이다
이곳 대표가옥은 송소고택이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영조(英祖)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沈處大)의 7대손 송소(松韶) 심호택(沈琥澤)이 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동에 이거하면서 지었다고 전하는 것으로 1880년경에 건립되었다.
‘송소세장(松韶世莊)’이란 현판을 달고 9대간 만석의 부를 지녔던 주택이다. 대문 위에는 송소 고택이 아니라 근대 서예가 위창 오세창의 전서로 깔끔하게 쓴 송소고장(松韶古莊)이라 쓰여있다.
만석지기로 99칸 집을 짓기에 도움을 준 것은 바로 이 진천방의 공이란다 마을로 치고 들어오는 이 하천을 막았기에 덕천마을이 더욱 넓어졌고 그래서 아흔아홉칸 대 저택을 지을 수 있었단다
송소고택에는 10채의 건물이 경내에 있는데 그 중 측간(안채·사랑채)과 대문간채는 개화기 이후의 건물이다.
한때인 1990년대 이 저택이 2억 정도 매물로 나와 없어질 뻔 했는데 심재오 종손의 풍산금속 동료의 임대 후 집안 누나의 구입으로 현재가 되었단다 당시 100억대의 빚을 진 상태였다는데 우여곡절 끝에 그런 고난을 이기고 현재의 송소고택이 되었으니 천만다행이다
그 외의 건물에도 중수시 1912년 이래의 개화형 흔적이 보여 1880년대 건축구조가 온당하게 보존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단다.
영화촬영 때문인지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데 이렇게 사람없이 불을 때다가 혹시 나무로된 소중한 집들이 타진 않을까 염려된다
대문간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의 기와를 이은 맞배지붕인데 대문 좌우로 행랑채가 있다. 대문간채와 이웃한 북방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마당채가 있다.
안채 앞마당에 화단이 있고 그 남쪽에 우물이 있는데 주변에 잘생긴 나무들이 서 있다. 안채 남쪽 샛담 안쪽에 은행·단풍·옥매화·향나무·전나무가 있어 운치를 자아낸다.
안채에 안방과 함께 사랑방이 공존하는 구성인데 사랑방이 앞에, 안방이 뒤편에 자리잡았고, 그들은 보통 살림집에 비하여 규모가 장대해서 부잣집답다고 할 만하다.
사당채는 안채와의 사이에 담장이 있어 일곽을 따로 형성한 셈이 되었다. 솟을삼문을 들어서면 사당채가 있는데 보통의 가묘(家廟) 형상이 아니고 정자의 유형이며 기거할 수 있게 구조된 방이 있고 정실(淨室)이 있는 구성이다.
송소고택 옆 송정고택으로 이동했다
이곳 청송군 덕천마을에는 내로라하는 명문가, 심부잣집 중 하나인 송정고택도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전라도 김제평야 같은 넓은 땅이 없는 경상도 그것도 산이 많은 북부 청송지방에서 어떻게 만석꾼이 가능했을까? 경주 안강 평야의 토지를 소유했기에 가능했단다.
심호택은 송소고택을 지을 때, 자신의 세 아들의 집도 각각 지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둘째 아들 송정 심상광(松庭 沈相光)의 집, 송정고택이다. 이처럼 대대로 청송 심씨(靑松沈氏)가 자리를 잡았기에 이곳은 청송 심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송정고택은 한옥 터가 무려 3천 평에 이른다. 터의 크기 자체로도 부유함을 알 수 있지만, 많은 물자가 드나드는 가문임을 상징하는 웅장한 솟을대문이 사람을 압도한다.
송정고택 옆에는 청원당이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품격있는 다도와 한식 그리고 숙박까지 제공하는 곳이다
단아한 주인장 성격에 맞도록 아기자기하니 집 내부를 정갈하고도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마을 한쪽엔 요즘 잊혀져가는 풍경도 살려 놓았다 이곳은 옛 담배잎 말리는 창고 같다
종이 울리는 1960년대 예배당도 있다
오래된 책이 카페 한쪽에 한가득 꽂혀있는 리빙카페 백일홍도 정겹다
이번엔 송소고택을 기준으로 오른쪽 마을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악은공 9세손인 찰방 심당의 종택인 찰방공종택이다
마을중간 쯤에 있는 지금의 집은 1933년에 지어 100년도 안되지만 소박하고 검소하여 정감이 간다.
돌탑을 가지런히 쌓은 곳도 있다
초전 댁은 2칸짜리 사랑채가 힘 있고 멋있게 지었다 청마루 위 대들보가 세 개가 나란히 힘 받치고 있고 건물지은 연대를 안채 처마 끝 기와에 가경(嘉慶1795~1820) 11년을 새겨놓아 1806년에 지은 것을 알 수 있다.
마을 끝 부분에 있는 창실 고택은 송소 심호택의 동생 심시택이 1917년 분가하면서 지은 규모 큰 집이다.
마을 한쪽엔 고풍스런 나무 숲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하천변을 50m 정도 걸으면 요동재사가 있다
악은공 심원부는 조선개국공신이자 한양 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심덕부의 형제로 세종의 장인 심온의 숙부이다
형제인 심덕부는 찬란한 길을 걸었으나 악은공은 두문동에서 절의를 지킨 은사였다
마지막으로 지키기 쉽지 않은 만석꾼 이야기로 이번 여행 포스팅을 마무리한다
이 심부자댁에서도 여러 대 만석꾼으로 이어오다가 7대손 송소 심호택(1862~1930)때 밤에 복면하고 침입한 도적 떼들이 위협한 사건이 있었다 재치 있는 마나님이 “사람을 해치지는 마라”하고는 곳간 문을 열어주고 마음껏 가져가게 했단다. 그러고는 남은 재산으로 지은 것이 오늘날 청송의 송소 고택이다.
흔히 ‘부자는 본능을 통제하고 가난한자는 본능대로 산다.’는데 예전에는 본능대로 살았던 사람은 부자 되고 본능을 통제한 사람은 오히려 가난했다.
[출처] 덕천 민속마을과 청송 송소고택|작성자 안동처사 택전 윤동원
저 솟대처럼 하늘에 오르고자 또는 하늘의 뜻에 따르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땅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