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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일구고 다진 낙농기반 자랑스럽게 지킬 터” | |
주목받는 2세대 낙농인 조명 - 김 병 준·김 윤 희 씨 | |
이혜진 기자, Ree@chukkyung.co.kr |
등록일: 2011-12-30 오후 2:55:20 |
최문숙 씨(56)의 아들 김병준(33), 딸 김윤희(31)씨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문숙 씨의 남편이자 세남매의 아버지인 고 김기창씨가 1975년 의정부시 녹양동에서 젖소 1마리를 입식하면서 시작한 대원목장은 1995년 불의의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 최문숙 씨가 고 김창기 씨의 뜻을 받아 오늘에 이르렀다. 김병준, 김윤희 남매는 목장을 이어받아 아버지의 뜻을 받들고 있다. 농협대학을 졸업하고 지난해 파주축협에 입사한 막내아들 김병길씨까지 목장경영을 거들어 세 남매가 가업을 빛내고 있는 모습이다. # 유량 최대 농가에서 육종농가로 탈바꿈 대학교를 입학한 윤희씨는 집에서 나와 학교생활을 하면서 목장에 홀로 있는 엄마가 걱정돼 휴학한 사실도 숨긴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목장일을 시작해 올해 횟수로 11년째에 접어들었다. 윤희씨는 “무작정 휴학을 하고 양주로 돌아왔을 땐 엄마와 목부 2명이 함께 일을 하고 있어 착유에 집중된 농장 관리로 최대 3300kg까지 납유 하며 유량이 극에 달해있었다”고 말했다. 윤희씨는 본격적으로 손 걷고 목장일에 뛰어들기에 앞서 선진 낙농국들을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수정란을 이용한 육종농가를 방문한 후부터 육종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윤희씨.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육종농가의 개념이 도입되지 않은 터라 윤희씨는 캐나다의 육종농가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캐나다를 3차례 방문하며 육종농가의 꿈을 키워왔다. 그러던 중 2006년 농협 젖소개량사업소에서 우리나라에 육종농가 선정을 시범 사업으로 실시, 윤희씨의 강력한 의지로 참여하게 돼 그 꿈에 한발자국 다가섰다. 그 과정 중에 수많은 난관과 가족의 반대가 있었지만 윤희씨는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윤희씨는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되는 육종농가였기에 육종농가로 신청만 하면 육종농가로 지정받아 수정란을 이식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육종농가로 지정받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농협 젖소개량사업소에서 수정란이식 대상농가의 자격 기준은 보유 암소에 대하여 젖소개량사업소가 정한 질병검진을 완료하고 정기적인 질병검사로 지속적인 청정우군 유지가 가능한 농가만 청정 육종농가로 지정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윤희씨는 “육종농가를 신청하고 젖소개량사업소에서 질병검사를 했는데 일반 농가에서는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들이 속속히 나오면서 3톤이 넘던 착유량이 2톤 200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낙농가에 있어서 유량은 농가소득과 직결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윤희씨의 설득으로 가족들이 합심해 질병을 치료하며 우군관리에 힘써 비로소 제 7호 청정육종농가로 지정받았다. # 협업과 분업으로 생산성 향상 올해 들어 목장 경영에 뛰어든 지 11년차에 들어선 윤희씨는 오빠 병준씨 보다도 경력이 많다. 올해 4년차에 접어드는 병준씨 보다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목장을 진두지휘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윤희씨는 “저는 송아지부터 육성우만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오빠는 착유소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면서 “3년 전 오빠가 목장에 들어오면서 서로 관심분야가 달라 분업으로 전문성 있는 목장을 만들어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원목장은 송아지 우사부터 큰 소들이 머물고 있는 착유우사까지 어느 한 부분 소홀함 없이 관리되고 있다. | ||||
최문숙 씨는 “여느 목장과는 달리 우리집 송아지들은 산책도 하고 넓은 운동장을 뛰어놀기도 한다”면서 “딸이 송아지 사양관리에 관심이 많아 송아지의 균형 발달을 위해 낮 시간 동안 송아지를 운동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남들은 유별나다고 하기도 하지만 육종농가에 있어서 송아지는 소중한 자산이자 자신의 딸에게는 희망이기 때문에 이를 말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송아지들의 사양관리는 온전히 윤희씨 몫이다. 오빠 병준씨도 윤희씨가 송아지 돌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을 기특하게 여기고 있다. 병준씨는 “동생이 송아지부터 건유우, 육성우를 전담해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착유에만 전념할 수 있어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는 하루 세 번 착유하는 대원목장의 특성상 새벽에 착유를 해야 한다. 원칙적으론 오빠 병준씨가 착유를 해야 하지만 재작년 결혼을 해 동두천 시내로 분가한 병준씨를 위해 윤희씨가 새벽 착유를 대신하고 있다. 철저한 분업 속에 협업하는 분야는 바로 새벽 착유 시간이다. # 시련을 이겨내며 미래를 그리다 대원목장의 남매에게 지난해는 잊지 못할 한해였다. 인근 양돈농가에서 발생한 구제역으로 인해 200두, 전두수를 살처분하고 이제 갓 70여 마리의 소를 돌보고 있다. 언제나 꽉차있던 우사가 텅 빈 모습을 바라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는 어머니 최문숙 씨는 “청정육종농가를 만들기 위해 값비싼 정액은 물론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불어 닥친 구제역 여파는 피해가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무엇보다도 아들딸과 함께 일궈온 터전을 통째로 묻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아들딸이 이를 계기로 한단계 더 성장했으면 한다”고 속내를 내비췄다. 최문숙 씨는 “남편이 고인이 되고 혼자 목장을 꾸려갈 당시 숱한 시련과 역경이 많았었다”면서 “2006년 로봇 착유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자취를 감춘 판매자 때문에 AS 조차 받지 못했을 때, 로봇착유기를 포기하고 헤링본 착유시설을 새로 설치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나 작은 것 하나를 지키려다 목장 전체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큰 결심을 하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는 남편 김기창씨가 늘 자신에게 강조했던 말이었고 지금은 최문숙씨가 아들과 딸에게 늘 하는 말이다. 최문숙씨는 아들과 딸이 그때 자신이 했던 것처럼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낸다면 더 강하게 성장 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덧붙였다. 대원목장은 위기는 또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빠른 시간에 소를 입식해 재건하기보다는 혈통등록우를 소량 입식해 수정을 통한 송아지를 생산, 목장을 재건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윤희·병준 씨는 “살처분 했을 당시의 아픔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차근차근히 새로이 목장을 꾸려나가며 기초부터 다져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2톤 500kg가량 납유하던 원유를 700kg 남짓 납유 하고 있지만 착유량이 많았을 때와는 달리 일 3회 착유를 통해 소와 송아지 하나하나를 더 면밀히 관찰하고 관리하며 더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고 있다고 그들은 설명했다. 어린 아들딸에게 목장을 맡기고 한발 물러선 최문숙 씨는 “새로운 CEO가 생기려면 일단 CEO자리를 비워둬야한다”면서 “아들딸이 앞으로 그려나갈 목장의 터전을 꾸리는데 지금은 값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희씨는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은일을 하기에 힘든줄 모른다”면서 “앞으로도 오빠와 함께 대원목장을 하나의 브랜드처럼 키워나가는게 꿈”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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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보셨네요..
신년이라 2세들 이야기를 쓰고 싶다 하면서 기자가 왔었어요..
우리 아이들 좀 많이 이끌어 주시고 많이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사진은 예전의 사진입니다..
제가 아파서 사진을 못 찍었거든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근데, 자꾸 엄마가 그리 아프시면 안되는데^^
CEO자리 공석으로 두시고 훌 훌 털고 편한 마음으로 지내십시요~~
아직 노년으로 가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왜이리 잔병치레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신이 해이해져서일까요???
두놈 다 열심히 하려하니 많이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