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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노에서 융구요 가는 풍경
오늘은 푸노를 떠나 페루의 국경마을인 융구요를 거처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티티카카 호수를 건너 라파즈까지 가는 일정이다. 인솔자가 푸노에서 라파즈까지는 출입국 심사시간에 따라 다르나 8~9시간 걸린다고 한다. 아침 5시 반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7시 전용버스로 푸노를 떠난다. 융구요로 가는 길은 끊임없이 티티카카 호수를 왼쪽에 끼고 고원을 달린다.
▶ 융구요에 있는 페루 출입국사무소
▶ 융구요 마을
▶ 융구요에서 환전
3시간을 달려 페루의 국경마을인 융구요 출입국사무소 앞에 도착한다. 여행 가방은 버스에 실어 볼리비아 출입국사무소로 보내고 우리 일행들은 페루 출입국사무소로 향한다. 출국수속은 간단하다. 여권을 제시하면 여권사진의 얼굴과 대조하고 출국 스템프를 찍으면 끝이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인근에 있는 환전소에서 페루에서 남은 돈(솔)과 달러를 조금 환전한다. 그런데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공항이나 국경에서 환전을 하면 좀 손해 보기 마련이지만 라파즈에서는 페루 돈을 환전하기 어렵고 당장 코파카바나에서 점심 먹을 볼리비아 돈이 없었기에 이곳에서 환전하기로 한다.
▶ 페루-볼리비아 국경
▶ 볼리비아 출입국사무소
환전을 마치고 걸어서 볼리비아 출입국사무소로 향한다.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은 아치형 돌문이다. 이곳에서 페루와 안녕을 하고 아치형 돌문을 배경으로 기념촬영도 한다. 아치형 돌문을 지나면 볼리비아 코파카바나의 작은 마을에 볼리비아 출입국사무소가 있다. 여기서 볼리비아 입국 수속을 하는데 비자확인을 꼼꼼히 한다. 다른 나라는 비자없이 입국할 수 있는데 볼리비아만은 비자를 받아야 하고 황열병 예방주사도 맞아야 한다. 한국에서 볼리비아 비자 받을 때 생각이 난다. 황열병 예방 확인서, 예금 잔액증명서, 숙박 확인서, 여행 계획서 등 준비해야 할 서류도 많고 스페인어로 돼 있는 주한 볼리비아 대사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개인 신상 명세를 입력하고 및 여권 및 준비 서류 등을 스캔해 넣어야 하는 등 나이 든 사람들에겐 어려운 작업으로 조금만 틀려도 대사관에서 다시 해오라고 퇴자 놓는다. 그것도 오전 밖에 비자 접수를 하지 않아 한 번 퇴자를 맞으면 당일 정정해서 재접수가 불가능하다. 세 번 만에 볼리비아 비자를 받으며 여행사에 중도금까지 내지 않았다면 여행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날 정도다. 볼리비아 여행을 마치면서도 왜 이렇게 까다롭게 비자를 내 주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드루차로 점심식사
▶ 코파카바나 해변 전경
▶ 코파카바나 해변을 배경으로
볼리비아는 페루보다 1시간 빠르니 우리나라보다 13시간 느린 것이다. 볼리비아 티티카카 호숫가의 마을인 코파카바나에서 내려 호숫가 식당에서 티티카카 호수의 명물이란 트루차 구이로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 후 호숫가를 걷다보니 그 물이 어찌나 맑은지 호수 바닥까지 보인다. 브라질의 코파카바나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해수욕장 해변인 것처럼 티티카카호수의 코파카바나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원지처럼 보인다.
▶ 구릉 정상에서 본 코파카바나
코파카바나를 출발한 버스는 마을을 지나 뒷산 언덕을 힘겹게 오르기 시작한다. 산이라기보다는 구릉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구릉 정상에 오르니 시계에 있는 고도계는 4,180M를 나타내고 차창으로 비춰지는 아래 티티카카 호수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 산 페드로 데 티퀴나 마을
▶ 산 페드로 데 티퀴나 선착장
▶ 차를 실어 나르는 바지선
코파카바나를 출발한지 약 20여분 만에 작은 어촌 마을의 선착장에 도착한다. 이곳은 라파즈(LAPAZ)로 가기 위해서 배를 타야하는 산 페드로 데 티퀴나(San Pedro de Tiquina)라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의 광장에는 잉카 왕국의 건국자이자 초대 왕인 '만코 카팍'(Manco Cápac)의 동상이 우뚝 서있다. 티티카카의 어원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되지만, 그중 '모든 것이 시작되고 태어난 곳‘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이는' 바로 잉카제국의 신화가 시작되었다’는 곳이 바로 티티카카 호수내의 있는 태양의 섬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은 작은 보트에 승선해서 호수를 건너고 관광버스와 화물차는 뗏목처럼 생긴 바지선으로 호수를 건넌다. 작은 보트로 850m 거리의 호수를 건너는데 불과 10여분도 안 걸리지만 버스는 조금 후에야 도착한다.
▶ 해군 함정으로 보이는 배
보트로 건너 도착한 곳은 산 파블로 데 티퀴나(San Pablo de Tiquina)란 곳인데 이곳에는 볼리비아 해군본부가 위치해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나보다. 해군 함정으로 보이는 배가 순회하고 있고 티티카카 호수에 볼리비아의 커다란 구축함은 없었지만, 그래도 몇 척의 꽤 규모가 큰 해군 함선이 보인다. 볼리비아 해군은 바다가 없기에 이곳 티티카카 호수에 해군본부를 설치할 수 밖에 없다. 볼리비아의 남태평양 출구였던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지역은 칠레~볼리비아 간 합의에 따라 볼리비아 영토가 된 곳으로, 구아노와 초석, 은 같은 중요 자원들이 풍부하며 훔볼트 해류가 지나는 황금어장이자 볼리비아가 남태평양으로 나가는 출구였으나, 태평양 전쟁에서 칠레에 패해 안토파가스 지역을 빼앗겨 바다로 나가는 출구가 막혀 내륙국가가 된 것이다.
▶ 산 파블로 데 티퀴나에서 라파즈로 가는 풍경
산 파블로 데 티퀴나에서 출발해 라파즈 수도로 가는 길은 거의 비포장도로이며 확장 공사를 하느라고 파 헤쳐 놓은 곳이 많다. 그리고 그 길은 고원으로 멀리 보이는 눈 산과 황량한 들판이다. 산은 민둥산이지만 간간히 숲을 이루고 있는데, 모두가 유칼립투스 나무다. 숲을 조성하기 위해 호주에서 묘목을 수입해 번식시킨 것이라고 한다. 버스는 해발 4천m가 넘는 길을 가고 있다. 눈 덮인 안데스 산맥이 보이고 볼리비아의 설산들이 호수와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 주는데 자유여행을 한다면 그 길을 버스로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들판에는 소와 양떼가 풀을 뜯고 있는 농촌마을 지나는데 흙먼지가 날리는 도로변에는 새로운 아스팔트 포장공사가 한창이다. 볼리비아의 관광산업의 보고(寶庫)는 아무래도 티티카카 호수이니, 라파즈에서 티티카카 호수로 가는 이 길을 오직 관광산업을 위해 과감히 투자하는 것 같다. 도로변의 가로수까지도 유칼리티스 나무인 것을 보면, 이 나무가 이곳 기후풍토에 가장 적합하나 보다.
▶ 시몬 볼리바르
식민지 시절 스페인은 라틴아메리카를 본국을 키우기 위한 밑거름으로 밖에 여기지 않아 식민지에서 생산되는 물품 중 본국과 경쟁이 될 만한 것은 모두 금지시켰고, 스페인에서 라틴아메리카로 들어가는 수입 물품에 대해서는 높은 관세를 매겼다.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들이 이를 달가워할 리가 없었다. 이에 대해 스페인은 혁명 및 계몽 사상이 담긴 책들을 금서로 규정하고,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을 얽매는 전략을 구사했다. 1813년 그의 고향인 베네수엘라를 시작으로 남미 독립운동을 시작해 300년의 스페인 통치로부터 남미를 해방시킨 영웅 시몬 볼리바르에서 그 이름을 딴 나라가 볼리비아다.
▶ 급경사를 따라 시내로
▶ 차량으로 가득찬 라파즈 도로
큰 도시가 멀리 보이기 시작하고 서서히 차량도 붐비기 시작한다. 그런데 도시 외곽지역은 온통 길거리 바닥이 파헤치면서 도로포장과 더불어 도로 배수로 공사가 한창이라 차량이 지날 때마다 차체가 요동치며 흙먼지가 날린다. 건물 공사현장도 많았지만, 건축 도중에 중단한 폐건물도 많이 눈에 띄어 좀 산만하다. 4,000m 고원에서 3,400m 호텔이 있는 곳까지 좁고 급경사인 도로를 따라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느낀 라파즈의 첫인상은 서글펐다. 무슨 한 나라의 수도가 이토록 무허가 판자촌처럼 지어질 수 있는지. 집들은 철골이 그대로 드러나거나 조악한 붉은 벽돌 그대로 마무리해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거리에는 쓰레기들이 널려있고, 좁은 도로에 낡은 차들이 무질서하게 엉켜 다닌다. 독한 매연으로 금세 목이 따끔거리고 얼굴을 닦으면 누렇게 먼지가 묻어난다.
▶ 라파즈를 둘러 싼 산등성이에 배곡히 들어선 집
이 가난하고 높은 도시에서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높은 곳에 산다고 한다. 4,000m까지 동네가 만들어져 있으니. 도시를 둘러싼 산등성이에 빼곡하게 들어찬 집들이 어딘가 초현실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4,000m의 높이에 집을 짓고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숨조차 쉬기 어려운 높이에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사랑을 하고 살아가는 인생의 무게는 어떨까. 한 눈에 드러나는 곤궁한 살림살이 때문일까.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키 작은 사람들 때문일까. 마음이 자꾸만 가라앉는다. 가난이 불행이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가난해도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쉽게 말해서도 안 될 것 같다.
▶ 라파즈 시내버스 미크로
고원에서 라파스 시내로 내려오는데 버스도 아니고 지프차도 아닌 차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있어 알고 보니 라파스 시내버스다. 우리나라 마을버스 크기와 비슷한데 앞에는 지프처럼 생겼다. 라파스도 비탈이나 바닥이나 바둑판처럼 되어있기는 하지만 도로가 좁고 가팔라 큰 버스가 다닐 수가 없어 미니버스로 운영하고 있으며 버스 앞에 마이크로(micro)라고 붙이고 다니는데 이 사람들은 글자 그대로 발음하기 때문에 미크로라고 읽으며 미크로는 버스를 뜻하는 것 같다.
▶ 라파즈 시내 환전소
푸노에서 출발한지 아홉 시간 만에 라파즈 호텔에 도착한다. 호텔 도착해 방에 여행 가방을 내려놓은 우리 일행은 인솔자를 따라 인근에 있는 환전소로 환전을 하러 간다. 여행사와 여행 계약시 포함되어 있지 않은 내일 삽겹살 중식비, 오늘 밤 라파즈 야경 투어 및 우유니 여행 중 숙소 및 차량 업그레이드를 위해 추가로 환전을 해 인솔자에게 건넨다.
▶ 마녀시장 가는 도로의 노점상
▶ 마녀시장 입구
▶ 전통 옷 가게
▶ 마녀시장 악기점
▶ 주술용품 가게
다시 호텔로 돌아와 호텔 바로 옆에 있는 마녀 시장 구경에 나선다. 마녀시장으로 가는 도로에는 인도를 점령하고 옷을 파는 상인들과 도로를 메운 차량들로 매우 혼잡하다. 관광객들에게는 라파스에서 가장 유명한 시장이라는 마녀시장은 호텔 부근 언덕에 있는 몇 개의 골목에 있는 시장으로 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초, 부정을 막는 부적 등을 원주민들이 이곳에서 팔기 시작하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새 집을 지을 때 마당에 묻으면 행운이 온다는 믿음 때문에 지금도 가게마다 말린 새끼 라마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있고 또 각종 주술용품과 부적, 말린 토끼, 벌레 등도 많아 보는 입장에서는 조금 섬뜩한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는 날씨도 잔뜩 흐린 가운데 간간히 보슬비도 내려 더 을씨년스러웠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골목에는 라마 털로 만든 질 좋은 스웨터나 티셔츠 등을 팔기도 한다. 골목을 따라 가면 가게들이 늘어서있고 대체로 가방, 알파카 옷, 목도리 등 기념품부터 조그만 조각이나 장식품, 기타 같은 악기 가게들도 있다.
▶ 낄리낄리 전망대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대절한 버스를 타고 찾아간 낄리낄리 전망대. 그곳은 라파즈의 슬픈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이다. 사방이 확 트인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라파즈의 야경은 사방 온천지가 주홍빛 불빛들로 너울거린다. 벌거벗은 황갈색 산들의 어깨 위로 촘촘히 들어선 건물들. 좁고 가파른 골목. 철근 골조가 그대로 남아있는 집들. 파노라마 사진도 찍고 일행들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문득 ‘아직 유리도 달지 못한 저 허술한 창 안에도 어깨를 마주 대고 앉아 저녁을 먹는 가족들이 있겠지, 누군가는 집 앞 가파른 골목에 주저앉아 사랑 때문에 울기도 하겠지, 저 아래 불빛이 흐르는 도로에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과 그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활기찬 목소리로 손님들을 부르겠지 등등의 생각이 든다. 세상 어느 곳이나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따지고 보면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득 신경림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 낄리낄리 전망대에서 바라 본 라파즈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일렁이는 불빛들을 더듬어본다. 성냥갑처럼 포개어진 집 안에서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아이를 혼내는 엄마의 성난 목소리, 지지직거리는 라디오의 소음까지 들려올 것만 같다. 창 너머로 입맞춤을 나누는 연인의 포개어진 얼굴, 숙제를 하기 위해 공책을 펴든 아이의 손,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 가장의 고단한 등이 보일 것만 같다. 삶은 누구의 등에나 같은 무게로 매달린 짐 같은 것이리라. 목숨을 지니고 태어난 이상, 누구나 예외 없이 울고, 웃으며, 싸우고,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겠지. 야경을 보고 돌아오는 길, 어디선가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가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슬퍼서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슬픈 곳이다. 우리들의 삶이 그러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