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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장 부활의 생명, 곧 영생 얻는 뜻이라 (거짓 능력과 표적에 스스로 속는 자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
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10:10)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20:31)
우리 성경 한군데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고후4:3-6입니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
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가 우리를 전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
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복음이 가리웠으면 누구에게 가리웠다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죄 용서와 구원과 생명의 복음을 받지
않는 것은 망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오늘 본문 4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한 이것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
도, 누가 뭐라 해도 확실히 믿는 것 맞습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
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을 때 우리 자신이 망하는 자들이 아니라, 바로 그 빛을 아는
마음이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지금 예수님이 오신 것은 무엇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
고요? 우리가 본문 두 곳을 읽었는데 예수님이 오신 것은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으로서 그래서 이 성경이 기록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생명에 관한 말씀을 나누
므로 큰 은혜에 들겠습니다.
이 성경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의 뜻이 계
시되어 있는, 조금도 오류가 없는 절대 무흠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시
피 성경은 학문적인 것이나 작품이나, 인간에게 지식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심
사를 위로하기 위해서 주신 것도 아닙니다. 인간에게 어떤 재미를 주는 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만일에 재미있느냐를 찾는다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자기 생활이 잘되고 세상 복을 얻기 위해 찾는
다면 그것 또한 저주입니다. 성경은 분명한 하나의 내용을 가지고 있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하늘의 것, 영적인 것으로서 바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큰 줄거리는 생명입니다. 죽은 영
혼에 부활의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일을 다루고 있는 것이 성경이요, 내용입니다.
성경은 3,500년 전, 모세부터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신구약을 기록한 저자가 약 40여 명입니다. 그
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동시대 사람이 아닌 3,500여 년에 걸쳐서 40여 명이 기록한 것임에도 통
일성에 전혀 흠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로써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밖에는 달리 의
심할 여지가 조금도 없습니다. 3,500여 년 기간에 서로 만난 적도 없고 본적도 없지만, 성영님께서
기록하게 하심으로써 통일성을 이룬 것에 전혀 손색없고 흠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달되면서 감
동을 주고 생명을 얻는 말씀이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 자마다 죄 용서받고 생명을 얻는 기쁨 속에서 또 사람들에게 전파되게 하려고 수 많은 순교자
가 나오게 되고 기꺼이 고난받기를 마다하지 않는, 많은 사람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인지, 그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성경의 뜻과 말씀을 알기를 힘쓰는 것이
돼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피조물로서의 사람이 할 겸손이요 자세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 여러 가지를 말할 수가 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에게 생명
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전 뜻이 무엇이냐? '생명 주시는 하나
님의 뜻이 들어있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요10:10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
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보고 사람을 양으로 보고 말씀한 것이니 바
로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그것이 성경이 쓰인 목적이요 내용이라는 말입니
다. 구약은 '옛 약속'이라는 말인데 바로 '죽음에 처한 너희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살리
신다'는 생명에 대한 약속으로 그것이 구약의 전체 내용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살
리라' 그런 '살리라'는 미래를 향한 생명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리고 신약은 '새로운 약속'이라는
말인데 '너희는 이제 살았다'입니다. '이제 너희는 생명을 가졌다, 그러므로 이제 영원히 살리라'
는 약속, 영생한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의 공통점, 전부가 생명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 뜻은 사람에게 생명 주시는 것이니, 사람이 말씀에 온 마음을 두고 생명의
충만한 가운데로 나가는 것에 전심하지 않으면 생명에 들어올 수가 없게 되어 망하는 것입니다.
사31:1에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
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仰慕)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
하지 아니하거니와 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가 애굽은 세상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 세상은 사단
이 주관합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의 말과 병사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기 때문에, 즉 세상과 세상 사람의 힘과 권력을 의지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화가 있
으리라는 것입니다. 그 뒤 3에서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
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도우심을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보다 더 세상
이나 세상 사람들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치실 것인데 그때는 다 함께 멸망한다는 말씀
이라는 것, 우리가 충분히 알아듣는 것입니다. 세상의 물질, 세상의 왕, 세상의 문명, 세상의 번
영을 의지하면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함께 멸망할 것임을 말씀한 것입니다.
육체는 살 동안에 필요한 떡을 먹고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같이 우리 영혼도 살 동안 끊임없이 말
씀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의 지성과 이성은 필요한 지식을 받아들입니다. 그처럼 우리의 지성과 이
성에 말씀을 받아들여 지배받아야 합니다. 우리 영은 삼위의 하나님과 예수님의 부활하신 생명을
받아들여야 하고, 영이요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의
충만한 가운데로 온전케 세워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기도에 나라이 임하
옵시며 했는데 여기서 그 '나라'는 바로 천국,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 생명으로 충만하여 차고 넘
치는 나라를 말합니다.
그래서 나라가 임하옵시기를 기도할 때, 아버지의 생명의 충만한 나라가 온전히 우리를 지배해주
시기를 소원하는 이 뜻을 자기고, 알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생명 안에 있는 예수님의 평안으로
기쁨으로 건강으로 지배하여 주셔서, 사망으로 지배받던 근심이 떠나가고 고통과 불안과 가난과
저주가 온전히 떠나가고 불평과 시기와 질투와 원망과 미움과 용서 못 하는 이런 악에서 나를 구
해주시라고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이같이 생명을 구하는 기도를 끊임없이 하도록 기도를 가르쳐주
신 것입니다. 그 생명이 지배하는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기만 한다면, 우리 각자 각자가 참생명이
무엇인지를 영의 지각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아버지 나라 생명의 나라가 임하
시고 지배하여 주시도록 계속 기도하면서 생명의 충만을 얻는 뜻을 행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기도
한다는 것은 엎드려서 "생명 주세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 배웠지 않습니까? 기도했으면 그것
을 얻기 위하여 그 같은 삶을 사는 것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영원불변의 생명, 사망이 물러가는 생명, 불안과 두려움이 물러가는 생명, 질병
이 물러가는 생명....,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이 구원이시고 생명의 이름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름 앞에 귀신이 떠나고 예수님의 생명이 충만하면 병들지 않는 것입니다. 저주가 발 붙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나라 예수님의 생명으로, 나와 가정과 모든 사람을 지배하셔서 생명
으로 살게 해주시기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에서 생명을 깨닫고 생명을 경험하면 그
순간부터 생명을 알지 못하고 살던 때에 자기를 지배하던 근심과 불안, 고통, 질병, 삶의 가난에서
자유를 얻고 그것에서 놓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대로 생명을 얻게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라는 것은 우리는 이제 너무
나 잘 압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 생명 얻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또
한, 이것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보이신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생명에 대한 약속이 쓰
여 있으니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생명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그 생명을 가지기를 원할 때에, 예수
님의 생명을 얻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가 그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눅24:27에
모세가 전한 구약의 율법도 모든 선지자의 글도 예수님에 대해 쓰였다고 했습니다. 요5:39에 성경
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요5:37에 아버지께서도 친히 예수님을 증거하셨
다고 했습니다. 요15:26에 진리의 성영님이 오신 것도 예수님을 증거하시려 오셨다고 했습니다.
요15:27에 성도도 예수님을 증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같이 성경이 예수님을 만나 생명을 얻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쓰인 목적은 생명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생명을 얻는 것에 있습니다. 그
런데 사람들이 지엽적인 것들에만 붙들려서 믿음에 엄청난 오류에 빠져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이
휴머니즘화가 되고 샤머니즘화가 되어 있어 영생하는 생명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자기
열심에 의해 구원받은 것인 줄로 스스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쓰인 뜻, 창조주 하나
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뜻을 모르면 이런 엄청난 오류에 빠지는 것입니다. 성경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려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받
고 죽으신 엄청난 사건이, 세상 사는데 돈 잘 벌게 해주고 안 팔리는 집 팔게 해주고, 사업이나
장사나 잘 되게 해주기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고 죽으신 것은, 영원히 형벌에 떨어질 나의 죄를 대신 지고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 친히 오셔
서 형벌 받을 자처럼 십자가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죄를 범한 나를 구원하여 아버
지의 나라로 들이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해 고난받고 나를 위해 피 흘리
신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내가 죄에서 용서받고 영생의 생명을 얻게 된
이 놀라운 사랑,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주신 이 사랑을 무엇으로 갚을 수가 있겠습니까? 나를 예수
님의 피를 다시 나게 하시고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하신 이 엄청난 사랑을 어떻게 감각
없이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이것이 너무나 어마어마해서, 사람의 말로는 어
떻게 설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기록된 말씀의 뜻을 따라서 이 같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신 이 엄청난 복을 받게 된 것을
참으로 믿습니까? 여러분의 복이 되었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원수가 있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원수가 예수님을 바로 믿지 못하게
하려는 온갖 술수(術數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온갖 모략이나 술책)로 방해하
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사단이라고 했는데 요8:44에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말했고 시78:57에 호7:16에 속이는 활같이 빗간다고 했고 골2:8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했습니다. 그래서 고후2:11에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해서 사단에게 속지 않아야 하는 것이 믿음의 능력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속
이는 자입니다. '사단'은 '반역한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반역했을 때는 사단이라 부르고, 인
간과 하나님 사이를 가르는 일을 했을 때는 '디아볼로스''마귀'라고 합니다. 사단은 자신이 하나님
이 될 수 있다고 스스로 속은 자입니다. 자기 영화에 취해서 자기가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속은
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자입니다. 속이는 것이 사단의 성품이기 때문
에 끊임없이 사람을 속이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께 대적할 수 있다고 스스로 속은 자이기 때문에
지금도 속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에덴동산에 속이는 자로 나타나 처음 사람을 속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했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처음 사람을 통해 속는 것은 죄라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사단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성경의 뜻을 깨닫지 못하도록 계속하여 속이는 일을 하고 눈을 가려놓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두에 읽어본 고후4:4에서 말하듯이 사단은 세상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에 온갖
잡다한 우상들을 만들어 섬기게 하고, 온갖 미신들을 만들어 믿게 하고, 온갖 종교들을 만들어 섬
기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복음의 빛이 비취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빛을
받은 자가 계속 복음을 전하는 일로 빛을 비춰 줘야 하기에 롬10:14,15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
니 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
이여 했습니다. 그렇기에 믿는 자는 속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고 반드시 말씀을 바로 아는 밝음
으로 속지 않는 믿음이 돼야 합니다. 시5:4-6에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
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그러
니까 죄와 속이는 것은 같다는 말입니다. 죄는 악을 낳고 악은 오만을 낳고 오만은 거짓말을 낳
으니 이것이 어디로서 왔느냐? 속이는 자에게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8:1에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했습니다. 왜 지식은 교만하게 합니까? 지식에 속기 때문이다. '지식이 있으면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지식만 있으면, 이 땅에서 파라다이스(paradise)를 누리고 살 것이다'하고 스스로 지식에
속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식이 있으면 명예도 누릴 수 있고 지식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
하지만, 지식이 인간을 영생케 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지식이 있으면'하고 지식에 속은 자는 교만
한 자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다고 해도 지식이 높으면 성경을 지식으로 대하게 되는 교만에
빠지기가 매우 쉬운 것입니다. 머리가 높아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의 이루려고 쫓아간 인생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절대로 내려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신 안에 예수님이 계실 수도
없을뿐더러 자신도 자신에게 열심히 속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속임으로 가르치고 뿌리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는 곳으로 끌어들이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열심
히 하지만, 예수님을 만날 수 없는 다른 길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지식에 속은 사람
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행위로 열심히 행하는 것으로 치우치고, 열심히 봉사로 충성하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복 주실 것이라고 스스로 속고 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오만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경험을 내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지식 가지고 경험하여
이룬 것을 내세우며 높이는 이것이 자기 경험에 속은 것이요, 오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물
질이 많으면 산다고, 재물이 많아야 복이요 사는 것이라고 하는 그것은 물질에 속은 것이요, 물질
에 속은 자를 성경은 거만한 자라고 말합니다. 그다음 성경은 어리석은 것이 죄라고 말했습니다.
잠14:8에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
니라고 했어요.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살길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
으면 멸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아
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잘 기울여 듣고 그 말씀을 새겨듣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새기고
말씀을 따라서 자기의 나아가야 하는 길이 어떤 길인지를 알고 가는 것입니다. 그같이 하나님의 뜻
을 잘 아는 지혜가 있으니 마침내 도우시는 성영님의 믿음이 되어 예수님을 만나 영생하게 되는 것
입니다. 이같이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길을 알고 가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어리
석음이 앞잡이가 되어서 스스로 속고 속이는 것입니다.
렘5:27에 조롱에 새들이 가득함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했습니다. 참으로 오늘날 기독
교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속임을 가지고 속임이 가득한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속임인지,
속이는 것인지 자신도 도무지 모르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므로 믿는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르
게 아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이루지 않은 것은 다 '어리석은 자요' 존
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시49:20)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없는 것, 심지어 하나님이 없다고까지 말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들은 어리석은 자요, 자신이 속은
자요, 다른 사람도 속이는 자(사단)라는 것입니다.
그다음 적그리스도가 속이는 자요 속은 자입니다. 살후2:9,10에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
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했습니다. 악한 자는 자기가 하나님
의 일한다고 스스로 속아서 나와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
얻지 못할 곳으로 끌어들여 멸망으로 같이 들어가게 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결국 사단의 역사를
따라, 즉 사단에게 이끌려 나왔다는 말이에요. 그들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 뭐라는 것입니까?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도 없는 성영의 불 받았다는 그런 류의 속이는 거짓 능력과 표적이 지금 얼마나 판
을 치고 있습니까? 거짓 기적의 속임이 정말 대단합니다. 병이 낫는다든가 귀신이 정체를 드러낸다
든가, 천국을 지옥을 보여준다든가, 음성을 들려준다든가 하는 속임의 일들은 이제 하나님이 주신
것처럼 속는 것이 예사로운 것이 돼 버렸습니다. 심지어 이빨이 금이빨이 되었다든가 금가루가 하
늘에서 날린다든가 하는 이런 불의의 모든 속이는 것들에 따라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에 왜
속고 쫓아다니느냐?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했으니 멸망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답이
잖습니까? 왜 쫓아다니는가? 왜 속는가? 멸망하는 자들이니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는 저희가 진리
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이들에겐 진리를 알려주고 가르쳐줘도 안 듣는다는 거예요. 믿지 않는다
는 것입니다. 왜? 멸망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자기들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성
영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사요 능력이라고, 그것이 믿는 증거인 줄로 구원받은 증거인 줄로 스스로
속은 자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고후11:4에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
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
는구나 했습니다. 위에 열거한 것들이 다 다른 예수 다른 영을 받은 일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고 나왔으면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야 할텐데 입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분명히 말하는데, 복음
전할 때도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잖아요?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 얻는다고, 우리는 죄인이라고 예수
님을 믿어 죄 용서받는다고 전하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을 전하여 교회 나왔으면 예수님이 초점이
되고 예수님만이 자기가 들어가야 할 길인 것을 알고 예수님을 찾고 따라야 하는데 이처럼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에 잘도 용납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믿는다는 그 속에는 또 함정을 가지고 있더라는 말입니다. 앞에서 말
한 대로 그 같은 방향으로 이끌어서,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한단 말입니다. 천주교라고
예수님 안 믿는다고 합니까? 그들이 예수님 믿는다고 해서 구원 있나요? 없어요. 그러니까 다른 영
을 받게 한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포장이고 다른 영을 받게 하는 것, 그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그
것을 너희가 잘 용납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이방인들의 수효가 많지 않았던 때임에도 사
도 바울이 이것을 말했던 것인데 오늘날은 기독교 전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다른 복음을 좇
아가고 있습니다. 그중 여러분은 오직 예수님 안에 들어와 생명을 얻고 영생을 얻은 슬기로운 자들
로 부르심을 입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사람들이 스스로 속은 것 중의 하나는 정해진 기도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정해진 기도 자리가 있어야 기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다 성경이 말씀하지 않은 다른 복
음입니다. 강대상 바로 밑에 가까이 있어야 기도가 잘 되고, 예수님이라고 하는 초상화 밑에서 하
면 기도가 잘 되고 하는 이런 자기 신심에서 만들어진 다른 복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장소도 시
간도 초월합니다! 새벽기도 따로 없어요. 우린 스물네시간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동고동락하면
서 성영님께 묻고 기도하는 것이고, 내 안에 계시니 다른 사람하고 얘기하는 중에서도 또 내 안에
서는 예수님과 얘기하는 거예요. 떨쳐내려 해도 떨쳐낼 수 없는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
에의 관계가 되어서, 시간도 장소도 공간도 다 초월 돼 버린 관계로서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신심으로 행하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자기 양심에 맞는 것들은 다 망할 다른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현상을 믿고 의지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 죄
를 용서하신 것을 믿고 구원 얻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믿는다면서 말씀에도 없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은 잘못된 것, 속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시간과 장소
를 초월했습니다. 궁궐도 좋고 초가집도 좋고 어디서든 함께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곳마다 하나님은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죄를 용서하신 구주이심을 믿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과 함께 있으려고 찾는 자마다 그가 어디
있든지 함께 계시는 것이요 골방이나 길을 가는 중에나 함께 계시며 들으시고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다음 타락한 자는 '속은 자'라고 했습니다. 타락한 자라니까 뭐 음란한 것, 세상 죄짓고 돌아다니
는 것, 술 마시고 방탕한 것을 말하는 것인 줄로만 알면 잘못 아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타락이라고
말한 것은 음란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딛3:3에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
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行樂)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라고 했고 골2:8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
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도 그리스도를 좇는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니면 타락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바로 하나님 앞
에 행하는 모든 것이 자기가 원하는 복을 받기 위한 것이면 타락한 자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
이 사람의 유전이요 헛된 속임수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것도 생명과 연결이 되지 않으면 다 타락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혹시 복을 받으
려고 누구에게 칭찬 들으려고 하는 이것들이 다 타락이며 다른 복음입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예배하
고 헌금하는 것도 생명을 위하여서, 생명에 관계되어 하지 않으면 타락한 것이요, 헌금도 목사님 보
라고 하고, 할 수 없이 하는 생명과 연결되지 않은 헌금, 다 타락입니다. 속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교회 생활도 생명과 연관되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서 자리 채워야 하고 오늘 안 나오면 나
쁜 일 생길까봐 오는 것, 다 타락입니다. 목사의 말씀이 어느 날은 이해가 안 될지라도 자기의 드리
는 예배는 오직 생명을 위한 예배가 돼야 합니다.
나를 죄에서,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하신 삼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 교회나 목사가 이
해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을 위해, 생명에다 두고 예배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목사가 때
론 상처 주는 말도 할 수 있습니다. 실망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엔간하면 목사의 말씀이
성경의 뜻이요, 진리임을 믿는다면 목사는 보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목사 시험하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에게 시험당할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것 절대 허락지 않으십니다. 절대로! 제가
무엇을 말한 것인지를 이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일주일 동안 하나님 안에서 산 것이 감사하고 앞으로도 자기의 의탁할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고....,그런데 제가 '하나님'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들어야 합니까? '아버지와 아들
과 성영님'의 삼위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겁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삼위가 다 포함된 하
나님으로 알고 듣고 자신이 그 믿음이 돼 있는 겁니다. 아멘입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
배드리러 오는 것, 생명을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면 속은 것이라는 것 알기 바랍니다. 모든 관심은
자기에게 생명 주시는 예수님의 생명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속지 않는 하나님의 참 형상이
시므로, 우리가 속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속지 않는 것이요, 속
지 아니할 예수님의 뜻을 따라야 생명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밖의 것들에
속고 따라가는 것을, 여러분이 다 보고 있지 않습니까?
병들어 죽는 것도 그에게 진리가 없어서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우리 죄를
사하셨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나니 하셨으니 이것이 진리예요. 영도 혼도 육
체도 다 새롭게 된 새로운 피조물이다. 새로운 피조물인데 왜 병들어 죽습니까? 하나님은 미쁘시니
믿는 자가 아버지 나라로 들어가는 날까지는 악한 병으로 죽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붙은 그의 지체가 되어, 나의 병 때문에 채찍에 맞아주셨고 죄를 다 담당하셨다는
그 믿음에 거한다면, 약속대로 건강한 것이고 속지 않는 것이고 예수님의 재림을 맞는 복이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제가 겁 없이 큰 소리치는 정도로 듣고 "아, 저러다가 앞으로 병들면 어쩌려
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진리의 사람입니다. 저는 진리를 세우기를 너무나 원하는 사람입
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만에 하나 내가 병들어 고생하고 죽을 일이면 그것은
제가 하나님께 죄를 범한 까닭인 것이지 그렇다고 진리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아셨습니까?
나를 새롭게 하신 속지 않는 진리의 법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진리에 관심을 갖게 되면 자연적
으로 세상의 것, 마음속에 있던 욕심도, 세상에 두었던 마음도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게 돼 있습
니다. 죄를 지었어도 고민하고 자포자기하지 말고 회개하면 예수님께는 얼마든지 용서하시는 은혜
가 있으니 용서를 믿고 예수님 안에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라고 하는 것은 속지 않는
자라는 말입니다. 속지 않는 자를 성도라고 하는 거예요. 죽음에도 속지 않고, 우리는 죽는 게 아
니에요. 겉껍데기 벗고 예수님처럼 신영한 몸으로 부활하여 아버지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달
걀을 깨서 알맹이만 먹고 껍데기는 쓰레기통에 넣듯이, 우리 육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속사
람 부활의 몸을 입으면 껍질 벗고 영원히 살러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 속지 않고 불안에 속지
않고 병에 속지 않아야 하는 것, 아멘입니까? 근심에 불안에 속아서 한 달 전부터 미리 당겨서, 몇
년 뒤엣것을 미리 당겨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일 것도 염려하지 말라 오늘 걱정 오늘로 족
하다 하셨는데 그냥 한 달 후의 것, 십 년, 이십 년 것까지 당겨서 염려하는 것 그러지 말라는 것
입니다. 우리는 앞날을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미래의 일들은 아버지께 맡기는 것
입니다. 오늘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고 앞날을 책임지신다는 살아 있는 말씀을 믿으면
반드시 이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종자는 속지 않은 자입니다. 마1장의 족보는 속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입니
다. 속지 않은 이들을 통해서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습니다. 속지 않은 신앙의 계보
속에서 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노아는 믿음으로 방주를 지었다고 했는데, 바로 속지 않았단
말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속았지만, 노아는 속지 않았습니다. 광명 천지에 배를 지으라고 하
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고,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함에도 속지 않고 배를 지었습니다. 참 종자는 속
지 않습니다. 속지 않은 계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태어났고, 속지 않은 사람들을 통해서 오늘날도
사람들이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속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렇
기에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속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부정적인 것을 인간에게 줄 수 없습니다. 연단과 시험의 구분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준 것이라고 함부로 말하면서 스스로 자기에게 속아서 아들딸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내게
이것을 이루어주시면 저것을 해주시면 내 자식 내 아들 바친다고 하는 우습지도 않은 이런 미련에
매인 자가 많습니다만, 다 속이는 것이고 속은 어리석음입니다. 참 종자는 속지 않습니다. 이 세
상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없다고 속아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인간은 살 수 없는 것으로 알게 된 분, 유일한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만이 속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에게 생명 얻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속지 않는 것은 예수님으로 살
때입니다. 성경에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생명입니다. 예수님
으로 주시는 생명, 속지 않는 형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 그래서 생명을 주
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 중심으로 쓰여 있습니다. 성영님이 속지 않은 사람들로 세우신
속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하고 그래서 이 세상에 속지 않은 곳은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의 교회밖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모임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점점 더 온갖 이름의 모임들이 많아집니다. 왜 그렇
습니까? 그들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문화가 발달하면 할수록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그 속 깊은 곳에서 오히려 고독과 소외감이 몰려들기 때문에 그래서 모여서 외로움과 소
외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 속이는 것이요 속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속지 않은 모임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 된 성도들이 모인 교회라고 말씀하고 있습
니다. 믿는 자의 모임만이 속지 않는 모임이요, 그 속에 생명이 있다고, 그 모임에 복이 있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겁니다. 아멘!!
제 12 장 부활의 생명, 곧 영생 얻는 뜻이라.p219-p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