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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정죄=율법(사단의 참소)에 속지 말라
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0.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
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
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영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7:18-8:2)
오늘 '율법(사단의 참소)에 속지 마라' 다시 말해 '사단이 율법으로 정죄하는 것에 속지 말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율법으로 살던 사람이 복음을 만나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을 얻고 자유하게
되어 그 감사를 외치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여러분이 잘 듣고 믿음을 바로 하여 영혼에 큰
자유 얻는 복된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누구나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여 죄
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웬일인지 죄를 이기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씀벅 죄를 짓는 일 때
문에 고통 하는 영혼에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려면 그리고 믿는 세월이 십 년 이상이 되었
다면 성경의 뜻은 간파돼 있어야 하고 믿음이 그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영혼이 성영
님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앉히신 바가 되었다는 믿음이 확실히 있어야 합니다. 죽은 뒤에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 믿을 때 자기 영(거듭난 영)이 어디에 있는지 성영님으로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니, 내가 지금 여기 있는데...., 나 세상에 있는데, 뭔 말을 하는 것이냐!'한다면 자기 신앙 문
제를 좀 심각하게 돌아봐야 할 일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일, 우리 영의 일이기에 영으로 듣는 것입
니다. 성영님으로 말하고 성영님으로 듣는다는 말입니다. 자기의 영이 어디 있는지 아는 것이 성영
님으로 믿는 믿음의 영감입니다. 만일에 오늘 말씀에 대하여 알아듣지 못하고 자신에게 영감이 없
다면, 구원도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걸려있다면 구원의 문제가 걸린 것으로서
너무나 중요한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 듣고 영적 이해가 되기 바라고, 그러므로 영적 자유를 얻고,
성영님으로 하늘 보좌 우편에 가 있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할 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또는 거룩하신 분, 또는 의로우신 분, 자비하
신 분 이런 등등으로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품 중의 하나는 공의입니다. 구약의
아모스가 그 공의의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공의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선이시고 사단은 악이므로 그 선악을 정확히 판단하여 의인(예수님)은 상을 주고 악인(사단)은 형
벌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나, 악한 자 사단에게 속하여 사는 자요,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거절하면, 사단과 함께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주어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언약하신 대로 많은
후손이 있게 하시고, 그 후손들과 하나님의 백성으로 언약을 맺고, 백성이 지켜야 하는 규범과 율
법의 조항들을 주셨습니다. 학자들 말에 의하면 율법 조항이 613가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의
기준인 613가지의 율법을 일생 온전히 지키면 하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창조된 피
조물이기에 지켜낼 수도 없을뿐더러(약2:10,11) 또한 원래 성품에 죄를 가졌기에 기켜낼 힘이 아예
없습니다. 육체로 지음을 받은 사람은 애초에 죄를 지었든 안 지었든 관계없이 하나님의 의가 없습
니다. 왜냐면 예수님만이 하늘 들어가는 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우리의 의가 되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영님으로 우리 안에 오시니, 우리에게 의가 있게 되어 하늘에
들어가 예수님 보좌 우편에 임하신 바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지키라고 주신 613가지의 율법은 하나라도 범하면 죽는 법입니다. 그
런데 이 백성이 애굽에 열 가지의 재앙을 내려 이적을 보이시고 그 모진 학대와 고역에서 구출하
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이시겠다는 언약을 듣게 되니 '젖고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이라고 하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니 처음엔 이들이 신이 나고 좋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
을 다 준행하겠나이다"하고 백성이 세 번을 약속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보니, 마음이 기뻐서 '아! 이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께 약속했으니 말씀대로 살려면 우선 죄를 짓지 않아야 하잖습니까? 그래서 죄 안 지으려고 하는
데, 결심하고 노력하는데도 웬일인지 자꾸 무너지는 자신을 보고 절망감을 가지듯이, 이스라엘 백
성들도 "지키겠나이다, 준행하겠습니다" 했지마는 지킬 수 없는 자신들의 연약함에 부딪히곤 했습
니다. 이들의 마음은 지키기를 원하지만, 죄의 본성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듣고도 어기는 자는 살려두지 말라 하신 대로, 안식일에 일한 자는 고의적 죄
이므로 돌로 쳐 죽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돌로 쳐 죽이고, 부모를 대적하여
업신여기는 자를 돌로 쳐 죽이고, 그같이 율법을 범한 자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어느결에
자신도 율법을 범하는 것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체감하게 된 것입니다. '아! 나도 돌로
맞아 죽겠구나! 나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 하는 데, 왜 내게 지킬 힘이 없는가! 아, 나의 이 연약
함을 어찌해야 하는가! 아! 나도 돌로 맞아 죽게 되었으니, 이 사망에서 나를 구할 자 누굽니까?
하나님 제 마음은 하나님 법을 지키기를 너무나 원하는 데 지킬 수가 없는 나를 봅니다. 이제 저는
어찌합니까? 어찌합니까?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저는 살고 싶습니다'
하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함을 절감하고 하나님께 손들고 나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의 탄식,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내용, "네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
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
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
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라고 탄식
한 이것, 육신의 법에 묶인, 마음은 법을 지키려 하나 지킬 수 없어 또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마
는, 죽음의 법에 꽁꽁 묶인 나를 누가 구원해줄 수 있는가? 하는 상한 심영의 탄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범하면 죽는 법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죽이는 데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같이 지
킬 수 없는 자신의 죄성을 보고 그 상한 심영이 되어 하나님께 나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서는 인간이 혈과 육으로는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다. 또한, 인간은 죄 아래 갇혀서 하나님께
서 주시는 살길 앞에 나오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하는 데 뜻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여러분에게 처한 처지라는 것부터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
되 육신이 약하도다"하셨지 않습니까? 이 말은 '아! 제자들이 하루 내내 예수님 따라다니느라 지
치고 육신이 너무 피곤하니까 깨어있어 기도하지 못하고 그냥 쓰러져 자버렸다' 그런 말이 아닙니
다. 다 그렇게 말하고 있잖습니까? 육신이 약하다고 하는 것은 마음은 원하고 원하지마는, 육신으
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일은 육신의 일이 아니라 영적인 일인데, 그 영적인 일은 육
신으로 할 수 없다는 말이에요. 육신으로는 단 한 시간이라도 깨어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육신
이 죄에 속하고 죄에 팔려 죄의 종이니, 그러므로 육신이 약하도다. 육신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
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다른 사람이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다'고 자신하며 호언장담하던 베드로가 곧이어 빌라도의 뜰에서 예수님
을 모른다고 잡아떼고 예수님을 저주하며 맹세까지 했다고 했잖습니까?(마26장) 바로 육신은 하나
님과 원수가 되어 있다는 것과 육신으로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는 그 육신의 약함에 대하여 적
나라하게 보인 것이 아닙니까? 그렇기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육신은 하나님과 원수라고 성
경이 확실히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육신은 죽음에 넣고 죄에서 건져,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시려고 정
결한 소나 양으로 제물을 삼아 피를 흘려서 나오게 하시고, 이제 피 흘려 단번에 대속하실 메시아
를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기까지 이스라엘
은 사단에게 밤낮으로 참소를 받아야 했습니다. 계12:10에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
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어졌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
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했습니다. 여기서 참소하던 자는 사단을 말합니다. 사단이 하나님의 백
성을 밤낮으로 참소하며,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백성이 율법을 범해 죄를 지
었는데 왜 빨리 형벌하지 않느냐? 하나님 당신의 백성이 율법을 다 준행하겠다고 약속했지 않느냐?
그런데도 율법을 범한 저들을 왜 빨리 심판하지 않느냐? 이것이 공의의 하나님이냐? 죄의 삯은 사
망이라고, 죄인은 형벌한다고 했으니 빨리 죄를 지은 저들을 심판하라고 율법의 법조문들을 들고
밤낮으로 고발하며 재촉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공의이시니 자기의 백성일지라도 형벌하실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롬8:3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하신 대로 율법의 요구인
형벌을 오셔서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죄와 저주를 한 몸에 지시고 죽으신 것은, 이제
죄가 살았다는 것입니까? 죽었다는 것입니까? 죄가 완전히 죽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새겨듣기를 바
랍니다. 예수님이 피 흘리신 것은 죄가 깨끗이 청산되었다는 것이요, 무덤에 장사지낸 것은 죄가
죽어서 장사 돼버렸다는 것이요. 다시 살아나신 것은 부활하셨음으로 영원히 사는 생명이 있게 되
었다는 것입니다.
죄가 죽어서 장사지낸 것,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 죄가 죽어서 장사지냈다는 것, 이것을 여러분이
믿습니까? 죄가 죽어서 장사된 것 믿어요? 정말 믿어요? 그래서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밤낮으로 고발하고 참소하던 마귀가 하나님 앞에 참소할 구실을 잃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는
법, 율법 아래 오셔서 죽었다가 살아나셨으니, 이제 걸리는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원죄와 자기의
지은 모든 죄까지 완전히 깨끗이 불에 타서 없어진 것처럼 없어졌으니 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여 참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마귀가 참소할 수가 없
게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형벌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 '너의 죄는 예수님이 대속했으니 너는 죄
없다' '너는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여 말씀을 따르는 이
들은, 이제 예수님의 피로 죄가 깨끗케 되었는데, 어느 정도까지냐? 완전히 불에 태워져 재로 날아
가 버려서 흔적 없게 되듯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용서가 이렇듯 완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망 깊숙이 사단의 보좌까지 들어가 육신의 죄와 죽음을 사단에게 던져버리고 살아나
셨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에 패배한 예수님을 우리가 믿는 것 아닙니다! 사단의 것은 사단에게 통쾌
하게 돌려줘 버리고 죽으실 수 없는 하나님의 권리로 살아나셨습니다. 죄는 죽고 예수님은 사셨다
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여러분이 그 예수님 믿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 뭐 믿으십니까? 자기
잘살게 해주시는 것? 병 치료해주시는 것? 자기 마음 좀 위로해주시기 원해서요? 죄는 죽고 다시
사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여러분이 믿는 것이지요?
아니 그 이야기는 나도 수도 없이 들어서 다 알고 있는데 뭘 자꾸 그 이야기만 하는가? 여러분 속
으로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알면 뭣합니까? 자기 안에 능력이 돼 있지 못하는데....? 자기 안에
자유가 되어 있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죄는 죽고 장사지내버리고 살아나신, 부활하신 그 예수님이
자기 안에서는 죽음에 패배하신 것처럼 되어 있는데 알면 뭐하겠는가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뭐라
고 했나요?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하고 탄식했는데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왜냐?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섬기기를 너무나 원하지
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김으로 탄식하는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법에서 해방해주셨
다는 그 놀라운 은혜를 외친 것 아닙니까?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
명의 성영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어떻게 했어요?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을 참으로 믿는 자는 이제 죄 때문에 정죄 받지 않습니다. 죄가 죄인으로 몰고 갈 수가 없
습니다. 이제 죄의 참소도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 진짜 예수님의 이 은혜를
믿습니까? 정말 아멘인가요? 그러면 자기에게 죄가 없는 것 확실합니까? 마음은 죄짓지 않기를 너
무나 원하지만, 자기 속에 죄가 살아서 주장하는 것에 탄식했으나, 이제 죄가 자기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믿고 자유 되었는가? 한번 보겠습니다. 죄가 없는지...,
저는 말씀을 듣고도 못 들은 척 감각 없이 죄를 짓는 사람, 또는 죄인 줄 알면서도 감각 없이 죄를
짓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참으로 죄 용서받은 자로 죄와 상관없이 죄짓지 않고
살고 싶은데, 죄 안 지으려고 결심하고 노력하는데도 무너지는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영혼에입니
다. 오늘 말씀대로 죄 용서받아 의롭다 함을 받은 자라는 것은 믿는데, 그래서 죄를 안 짓고 살려
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웬일인지 과거와 똑같이 미워하고, 화낼 일은 화내고, 분노할 것은 분노하고
싸울 것은 또 싸우고 아무튼 하나님의 말씀에 부딪히는 것들, 자기 양심이 불편한 죄들을 짓는 자
기 악함을 보고 마음에 실망이 자꾸 들어오는 겁니다. '아버지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고백하고는
또 무너지고 또 고백하는 일이 반복되고 이같이 반복되는 생활이 되니 마음의 평안도 없고 자기에
게 실망이 들어오는 겁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쁘기도 하지만 죄 때문에 마음이 움츠러들고 괴롭기도 합니다. 그래서 또 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또 몇 날 못가서 무너지는 자신을 보면서 실망만 커가는 겁니
다. 어떻게 믿어야 잘 믿는지도 혼란스럽고 의문만 마음에 가득 커가고 그러면서 죄를 이겨보겠
다고 자기 죄성과 함께 싸우는 것입니다. 성영님께 죄짓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도움을 청하고 또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니까 결국 자기 힘으로 이겨보려고 하는 겁니다. 만일에
이 경우에 있다면 생명의 성영의 법에 해방되지 않았습니다. 혼이 구원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과정이 바로 구원의 능력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요, 육신으로 할 수 없는 죄의
법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자기가 죄 안 지어보겠다고 자신의 죄성과 싸우는 일로, 바울이 탄식한
것과 같은 것에 속한 것으로서 곧 자기의 힘으로 해보려고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죄의 성품인 자
기를 자기가 이길 수 없습니다. 왜냐면 자기는 곧 또 육신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것
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여러분! 달걀로 바위를 깨뜨릴 수 있습니까? 그런데 자기가 자기 죄
성을 이길 수 있다고 해보는 것 아닙니까? 바위를 달걀로 깨뜨릴 수 없듯이 자기가 자기 죄성을
이길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켜낼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구약을 깨닫지 않고는 신약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율법의 정죄를 거치지 않고는 신
약의 능력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생명의 성영의 법이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에 들어갈 수 없
는 것입니다. 죄 때문에 고통 하는 것은 생명을 얻고자 하는 영혼의 목마름이요, 온전한 자유를
갈구하는 영혼이 겪는 고통으로 생명의 성영의 법으로 해방 얻게 되는 과정입니다. 그 증세 중의
하나가 마음이 죄책감에 붙들리는 겁니다. 그리고 마음에 참소를 받습니다. 마음이 무엇에 눌리는
것처럼 무겁고 괴롭습니다. 때로는 두려움에 붙들리기도 합니다. 하나님 구원의 뜻에 대해 바른
뜻을 알지 못하고, 그러니 확신에 거할 수가 없으니, 양심에 참소하는 소리를 받아들여 죄책감을
두는 겁니다.
생각에 마음에, 또는 사람들을 통해 계속 '너는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 죄짓는 것이냐? 하나님 자
녀라면서 어떻게 죄를 짓느냐? 죄를 이기지도 못하면서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느냐? 그건 거짓말이
다, 너 거짓말하는 거야! 하나님이 죄를 싫어하는데 죄짓고 어떻게 하나님께 나가느냐? 죄 용서받
았으면 죄를 지을 수 없지 않으냐? 그러고도 예수님 믿는다 할 수 있느냐?' 등등의 참소로 비웃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하지 못하게 하려는 그 같은 참소를 자기가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런 속임에
자신을 내주고 있으니 평안도 없고, 무력에 빠지고 어둡고 약하게 하는 대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 8장에 만일 사람의 약한 양심이 상하면 그는 침륜(멸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연약
하게 되어 무력에 빠지고 쓸모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양심에 참소를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속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
에 설 수 있는 것은 자기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야 설 수 있습니다. 참소로 속이는 것을 받아들이면
그것은 양심이 죄책감으로 손상을 입고, 손상을 입으니 하나님과 거리낌이 있게 되어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는 영혼을 만나시는 것이니 그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결국 자신
(사단)에게 지는 것이어서 영적 전투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정말 죄지었는데, 짓를 짓고
싶지 않은 데, 그런데 자꾸 죄를 짓고 마는데, 죄 짓는 것 사실인데,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내가
죄를 짓지 않아야 하나님께 면목이 서는 것이지, 죄를 지었는데 내 양심이 뻔히 아는데, 예수님이
내 죄를 담당해버리셨으니 이제 죄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했으니, 죄와 상관없으려면 내가 죄를
짓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니냐?'하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계12:10에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구원을 이루시기 전에는 사단이 율법을 들이대고 서서 하나님께 하나님의 백성이 율법을
범해 죄를 지었으니 속히 그 죄를 벌하라고 빨리 심판하시라고 밤낮으로 참소했는데, 예수님이 육
신의 죄로 정하여 심판을 받으시고 죽으셨다가 살아나셨으니, 사단이 이제 하나님 앞에서 참소할
근거가 없어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사단이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쫓겨나서 이
제 땅으로 내려와 뭐합니까? 예수님을 믿으러 나오는 사람들을 속이는 일을 하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여러분의 믿음에 아주 중요한 것이니 '듣는 귀가 되고 이해의 능력이 돼서 믿음의 능
력이 되게 해주시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듣기 바랍니다. 여기에 걸려있으면 여러분 종교 생활하
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율법에 머물러있는 거예요. 율법에서 해방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
방되어야 구원이에요. 자유에요. 하나님 보좌 우편 예수님 계신 곳에 함께 앉게 되는 겁니다. 그
러니까 하늘에서 쫓겨난 사단이 땅으로 내려와 뭐합니까? 믿는다는 사람들을 속이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밝지 못하여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죄지을 때마다 또 죄지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
하고 참소하는 겁니다.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려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참소하는 것입니다.
왜냐? 육은 사단의 것이요, 죄는 육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권리를 가지고 생
각 속에 참소하는 거예요. 악의 영이 속이는 일이 뭐에요. 생각에다, 양심에다 참소한다는 말입니
다. 그러면 속는 것 당연한 일이라고 했습니까? 속는 것도 죄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하나님께
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구원받은 그 즉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구원하신 것 아닙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육신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고, 할 수도 없는 그것을 먼저 깨달으라는 데 있습니
다. 깨달아 알라는 말이에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죄를 대속하신 그 은혜를 입으라는 겁니다. 그러
면 네가 죄 안 짓기 때문에 죄가 주장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네 죄를 대속해버렸으니
원죄, 자범죄, 미래의 죄까지도 온전히 대속하여 죄를 깨끗게 하시고 죄 없다 하셨으니, 죄 없다
하신 그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네가 믿으라' 말이지요.
물론 자기의 죄를 보고 애통은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이제 죄에서 나와 마음으로나
입으로나 행실로나 죄 안 짓고 살고 싶은데 정말 죄짓고 싶지 않은데 안 돼서 애통하고 자기 죄
성이 보이니 애통하고 하나님 앞에 애통해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애
통해하는 자가 복이 있다. 저가 그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잖습니까? 이같이 애통은 있어야
하되 속이는 것에 참소는 받지 말라는 말입니다. '네가 죄짓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참소를 받아
들이는 것이 문제'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참소 받아들이는 것 믿음입니까, 아닙니까? 아닙니
다. 마음에, 생각에 참소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 아니에요! 예수님을 믿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대속해버리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에요. 알아듣습니까? 자기 속에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에 실패하신 것처럼 믿음을 그렇게 갖는 겁니
다. 예수님이 자기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것을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죽음에
패배한 것처럼 믿음이 그렇게 돼 있는 거예요. 내가 안 그래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불쑥 화가 올
라왔어, 성질부렸어, 그런데 돌아서서 또 성질 냈네, '아이고! 아버지 잘못했습니다'하고 돌아섰
는데 '또 성질 냈네, 아이고 어쩌면 좋아! 내가 또 그랬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저의 이런 나쁜
것들을 다 용서하셨으니 감사합니다. 저를 고쳐주실 분은 성영님이시니 성영님 저를 다스려주세요'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제가 또 죄지었어요, 아버지 저 좀 도와주세요' 애통해하라는 거예요. 그때그때 기도하면서 애통
해하면 그가 거짓이 아니면 도우십니다. 그런데 '너 죄지었잖아! 너 그러고도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느냐? 너 그러고도 하나님의 자녀냐?' '맞아! 내가 죄지었는데? 하나님 앞에 나가기가
껄끄러워' 이런 것 받아들이지 말란 말입니다. 이것 믿음 아니에요. 내가 죄를 지었든 말든 그것
과 상관없이 예수님이 내 죄를 가져가 버리셨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내가 죄 없음을 붙잡는 것입
니다. 참으로 예수님이 내 죄를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자기가 혹 죄를 지었어도 이제
죄가 죽었기 때문에 '너 죄지었잖아'하고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가 산 것처럼 죄
를 붙잡으니 양심에 참소를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에 무슨 구원이 있겠습니까?
내가 지금 죄짓지 않으려고 몸부림하고 살고 있는데 또 죄를 짓게 되었어, 방금 혈기를 올렸는데
조금 있다가 또 자기도 모르게 혈기가 올라와 또 죄를 짓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곧 따라 '너 죄지
었잖아, 너 양심도 없느냐? 그렇게 죄짓고도 하나님께 나가느냐?'고 양심에 참소가 들어옵니다.
이제 이 같은 참소가 들어오면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참소 받아들일 것입니까? 참소 받
아들이고 구원은 버리겠다는 것입니까? 그런데 왜 대답이 약해요? 이 참소 받아들일 것입니까? 아
니 '예수님이 이미 내 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장사지내버렸으니 나는 죄 없어, 나의 죄는 십자가
에 못 박아버렸어, 미래의 죄까지 다 깨끗이 사해졌어, 그러니 나 죄 없어, 이 참소하는 악한 자
야 물러가! 네가 나를 속이는 것 이제는 속지 않아'하란 말입니다. '너 그렇게 자꾸 죄짓는데 어
떻게 구원받겠느냐?' '예수님이 다시 사셨으니 다시 사신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셨으니 나는 구원받
았다'하고 구원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이에요. 죄 용서를 붙잡고 구원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내 노력으로는 내 힘으로는 죄의 성품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자기가 경험하는 거잖아요.
경험함으로써 참으로 아는 바가 되었으니 자기를 내려놓는 겁니다. 자기를 내려놓고 성영님 의지
하여 기도하는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 내가 또 혈기 부렸습니다. 참으로 나 하는 짓 보니 얼마
나 큰 죄인이었는지를...., 정말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죄인이었음을 절감합니다.
이런 저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하면서 죄에서 나올 수 있도록 간절함으로 성영
님 도우심을 구하고 성영님을 의지하고 나를 맡겨드리는 겁니다.
제가 과거 오래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내 죄의 성품을 내가 보는 겁니다. 제가 그때까지도 성경의
지식이 약하니까 그냥 육신으로 행하다가...., 지금 이 바울의 탄식이 저의 탄식이었어요. 말씀에
부딪히는 그 죄들로 인해 마음이 늘 아프고 날마다 애통하며 애통하고 또 애통하며 끊임없이 몸부
림하며 살던 오랜 어느 날.... 말씀을 깨닫고 보니 그 과정이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
랴 하는 탄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후 어느 날 성영님께서 내 앞에 까만 흑지와 하얀
백지를 보이셨습니다. 그때 내 생각에 '둘 중 하나를 잡으라는 것이구나'를 직감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선뜻 무엇을 잡아야 할지 잡지를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잡기는 잡아야 하겠는데
잡는 것을 선뜻 못하고 있었어요. 순간 오늘 이 롬8:2의 말씀이 내 머리를 쾅 치듯 했습니다. 그
순간 '아! 이것이구나!'하고 하얀 백지를 얼른 잡았습니다. 그때 내 안에서 뭔가 쿵 하면서 제 느
낌에 검은 덩어리가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후에 깨달은 것은 내 육체에 거하면서 나를
늘 참소하던 귀신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그 기쁨!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몰려왔습니다. 아! 이거다 이거야! 이것을 몰랐구나! 이것을 모
르고 지금까지 내 마음이 헤매고 또 헤매고 다녔었구나! 아, 나는 자유다! 이것이 자유구나! 이
행복!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 행복을 가져야 할 텐데, 이것을 모르는데... 이것을 말해줘야
하는데...., 그러니 여러분이 알아듣기를 바랍니다. 죄에서 자유 얻는 것, 참소 받지 않아야 하는
이것, 아! 이것을 몰랐구나! 온 집을, 방만 서성거렸겠습니까?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 형언할
수 없는 이 기쁨, 엄청난 이 기쁨을 누구에게 어디 가서 말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알아들을까요?
제가 오랫동안 겪고 비로소 경험한 이 일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제가 내심 걱정을 하면서도 그래도
할 자는 합니다 아버지! 하고 외친 적이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망설이고 잡지를 못 했나? 왜 하얀 백지를 잡지를 못 했나? 생각해보니 죄책에 대한 죄
의식을 가지고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사단에게까지 참소를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참소를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그 속이는 참소를
받으면서 내가 나를 책망하고 항상 나를 내가 정죄한 겁니다. '너는 어떻게 그것밖에 안 되느냐?'
죄에 무너지면 또 나 자신에게.... '너라는 사람은 고작 그것밖에 되지 않니?'하고 나 자신을 정
죄한 겁니다. 또한,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나의 양심의 일인 줄 알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 최소
한의 겸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는 괴롭고 고통스러움을 겪는 것을 성영님께서 보
다 못해서 내게 "생명의 성영의 법으로 해방하였음"을, 참소 받지 않는 그 자유의 믿음이 돼야 할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 같이 역사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참소를 받아들이는 것은 '죄는 죽고 예수님이 다시 사신 용서의 피 흘리신 생명을
자기 안에서 거부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참소를 이기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계12:11에 분명히 말했습니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어린 양
의 피와 증거하는 말로 이긴다고 했어요. 그러므로 참소를 받지 말고 단호하게 증거해야 합니다.
'나의 미래의 죄까지 이미 다 용서하신 예수님의 피가 내게 증거로 있으니 이제 속이는 참소는 내
게서 떠나가라'하고 쫓아버리고 절대로 속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나는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다, 죄는 죽었고 죄가 나를 주장할 수 없다고 하셨으
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가 내 것이니 죄를 지었을지라도 나는 죄 없다! 내게서 참소를
가지고 떠나가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이 같은 자유를 주셨음을 믿고, 그때마다 명령하면
마귀가 '아이고 이제 아무래도 안 속네, 내가 졌다!'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속지 않는데 어떻게
속여요? 속으니까 속이러 들어오는 것이지 속지 않는데 어떻게 속입니까? 우리는 육체 가운데 있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이 죄지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자유 한 것이 아니고
바로 진리의 참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 믿음이 없어서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망
하는 거예요. 이 믿음이 없어서 나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주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믿는 자다'라고 단호하게 선포하는 겁니다. 이것이 증거하는 말입
니다. 하나님께는 그 즉시 자백하는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죄인을 용서해주세요'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의 죄를 용서받았음을 믿으면 이후부터는 죄인이라고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알고 있
지요? 만일 '이 죄인을 한다면' 이것은 아직 죄 사함의 은혜를 받지 않았다는 표시입니다. '죄인,
죄인'하는 것 자기를 죄인 취급하는 것 용서받지 못했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일입니다. 이제는 죄
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는 의롭다 하셨으니 자기가 이 죄인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죄용서의
은혜를 자기가 차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이러저러한 죄를 범했습니다. 죄지었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살기를 원하니 죄를 이길 수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하고 진
심으로 자백하면, 죄 사함의 피의 믿음을 가졌다면 그 피가 깨끗이 씻어버리는 것입니다. 날마다
용서받고 사는 겁니다.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한 내가....,예수님의
피로서 날마다 용서를 경험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버지 잘못했어요, 용서해주
세요'하고 진심으로 고백했으면 그다음 용서받은 것을 믿고 자유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내 안에 와있는데, 지성소 속죄소가 내 안에 와있는데 뭘 그렇게 불안해하겠습니까? 뭘 그렇게 고
민하겠습니까? 나는 자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유를 날마다 경험하고 사는 것입니다.
사단과 그 영들은 예수님 피의 능력을 믿고 영적인 사실을 선포하는 것을 제일 두려워합니다. 자기
할 일에 힘을 못 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 교리를 암만 말해도 사단은 그런 것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아요. 두려워할 일 없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뛰어난 그 이름과 피의 능력을 사람 앞에
서도 선포하는 것이지만, 또한 악의 영들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만 알고 있고, 가지고 있
으면 소용없어요. 악의 영들에 고의로 외쳐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마귀야! 예수님께서 너의 권세
를 이미 깨뜨셨다. 너는 그 죄요, 그 죄는 나와 상관없어, 이제 나는 죄 없어, 너는 내 발밑에 있
는 복종해야 하는 존재야! 네 모든 참소를 가지고 물러가라 나는 이제 속지 않는다' 하고 사단과
그 영이 듣도록 선포하는 것이 바로 증거하는 말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이 악한 영이 가져다준 참소나 죄책감 때문에, 죄의식을 가지고 죄인의 자리에 그
대로 있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믿고 죄가 없는 자로 양심에 흠이 없이 살기를 원
하십니까? 후자 것입니까? 죄를 안 짓기 때문에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죄를 다 가져
다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살아나셨으니 죄가 나에게 할 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라는 말이
에요. 그러기에 양심에 흠이 없는 것입니다. 왜요? 예수 그리스도 까닭에......, 그러면 여러분이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었을 때 그 죄가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피입니까, 사단의 참소입니까? 예수
님의 피입니다. 죄지었을 때 그것은 분명히 죄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이 더 큰 죄입니다. 더 큰 죄가 뭐라고요?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 그것이 죄예요.
오늘날 믿는다는 사람들의 상태가 어떤지 아세요? 예수님께서 백지를 내미시면서 '너는 이곳에 속
한 자다, 이제 검은 것이 네가 속한 곳이 아니다! 율법 아니다! 율법에 속지 마라, 사단에게 참소
받지 마라, 속지 마라''너 그쪽에 있으면 나와 상관없어 거기는 사단의 자리야! 이쪽으로 와, 해
방된 이쪽으로 와' 하시는데도 자꾸 고집스럽게 말입니다. '아이고 내가 뭘 한 것이 있어야지요,
내가 죄만 짓잖아요? 하나님께 죄송스러워서요'하는 겁니다. 이것이 겸손인 줄 착각하지 말란 말이
에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기어코 그 자리에 있겠다고 하는
일로써 은혜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죄입니다. 교만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이 깊은 은혜를 믿음으로
마음에 받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의 피를 힘 입은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 앞에 서기 바랍니다.
죄를 안 지어서 깨끗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죗값이 다 치러졌으니 그 믿음으로 자유하라
말입니다. 참소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도 방법 없으십니다. 저도 방법 없어요. 참소를 자기가 받
아들이니까, 받아들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모른다거나 부인하는 것이기에 그렇
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믿는다면 그 믿음이 분명하다면 참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참소 받는 것은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 직면해야 할 일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용서받은 것은, 피를 믿기 때문인 것처럼 계속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예수님의 죄 사함의 피를 믿고 나의 죄가 다 처리되었다고 믿는 사람 앞에
이제 죄가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오늘 이 질문을 몇 번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다음에 어
떻게 믿어야 할지 몰라 마음이 헤매고 고민스러워하는 것 진짜 없기를 바랍니다. 자, 어쩌다가 죄
를 지었습니다. 미워하지 않아야 하는 줄 알면서도 저 사람 하는 짓 보니까 미운 거예요. '아차,
내가 미운 마음을 가졌구나'"하나님 아버지, 제가 순간 누구를 미워했는데, 미움의 죄를 지었는데
용서해주셨으니 감사합니다"하면 이 죄는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죽었습니다. 자기가 죄지었는데
어떻게 죽은 것입니까? 예수님이 죄를 지고 못 박혀 죽으셨을 때 내 죄도 죽었기 때문입니다. 죄는
죽고 예수님은 살아나셨으니 이제 죄가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속는 것이지, 자기가 자기를 정죄하는 것이지, 예수님의 피가 그렇게 가치 없고 능력 없는
것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이제 죄에서 자유하게 하신 이 영적 능력을 확실히 이해했습니까? 원치
않는 죄를 지었을 때 '너 그것 죄다! 너 죄지었으니 죄인이다'하고 말할 자격 없다는 것 아셨습니
까? 그러나 자신은 반드시 죄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성영님께서 와계시니 바로 인식하게
하십니다. 인식하게 하시는 그때그때 하루에 열 번이 될지라도 자기를 보지 말고 하나님께 자복하
고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되었음을 믿고 마음에다가 절대 죄를 담아두지 말아야 합니다. 이 과
정을 겪으며 성영님과 함께 나갈 때 점차 성영님으로 지배를 받게 되기 때문에, 그때는 진짜 죄가
싫어지고 죄에서 놓여나는 능력으로 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으로 확실히 변화 받는 것입니
다. 그때는 죄지으라고 해도 안 지어요. 순간 내가 혈기를 냈다 하더라도 '아차! 내가 또 혈기 부
렸구나!' 순간순간 빨리 해결이 되어버리는 그런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결론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영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입니다. 아멘입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영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얻게 하신 삼위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큰 찬양을
올립니다. 아멘!!
2014년 (1)정죄=율법(사단의 참소)에 속지 말라.p273-p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