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구절은 보살(菩薩), 즉 깨달음을 구하며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자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한다. 반야바라밀다는 지혜의 완성을 뜻하며, 모든 현상에 대한 통찰을 통해 실체가 없음을 깨닫는 지혜를 일컫는다.
비유: 고요한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와 같다. 보살은 지혜의 바다, 즉 반야바라밀다라는 지혜의 바다 위에서 항해하는데, 그 바다는 평온하며 어디에도 거칠 것이 없다. 이 바다는 무한한 통찰과 깨달음으로 이루어져 있어, 보살은 이 바다 위에서 어떠한 험난함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지혜는 마치 바람을 가르는 돛과도 같은 역할을 하여, 보살이 방황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게 한다. 이처럼,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라는 궁극적 지혜에 의지하여 삶의 바다를 평온하게 항해한다.
心無罣礙(심무가애)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의 지혜에 의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다는 상태를 경험한다. 이는 모든 현상이 본질적으로 공(空)함을 깨닫고 집착에서 벗어난 상태이다. 마음이 더 이상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고정된 실체에 대한 미혹에서 벗어난다.
비유: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하늘과 같다. 창이 깨끗할 때, 우리는 그 너머의 하늘을 가로막음 없이 투명하게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보살의 마음은 어떠한 장애나 왜곡된 시각도 없이 모든 현상을 그대로 명확히 본다. 마음이 맑고 투명하면, 더 이상 그 어떤 편견이나 왜곡도 걸림돌이 될 수 없다. 마치 어떤 먼지나 오염 없이, 완전히 투명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명료하게 인식하는 상태와 같다.
無罣礙故,無有恐怖(무가애고, 무유공포)
마음에 걸림이 없기에, 두려움도 없다. 두려움은 고정된 자아와 실체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지만, 이 집착이 사라짐으로써, 보살은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난다. 즉, 고통과 두려움은 집착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집착이 없을 때 두려움도 사라진다.
비유: 절벽 위에서 날아오르는 독수리와 같다. 절벽 끝에 서 있으면 아래로 떨어질까 두려워하지만, 독수리처럼 날아오를 수 있다면 두려움은 없다. 보살은 마음에 걸림이 없기에, 마음이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와 같고 더 이상 아래로 떨어질까 하는 공포에서 벗어나 있다. 지혜를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깨달은 상태이기에, 어떠한 위험이 다가와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직면할 수 있다.
遠離顛倒夢想(원리전도몽상)
잘못된 생각과 꿈같은 망상에서 벗어난다. 전도몽상(顛倒夢想)은 진리를 바로 보지 못하고 왜곡된 생각을 일컫는다.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지혜의 완성)의 지혜를 통해 이런 왜곡된 생각들을 바로잡고, 실체가 없는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본다.
비유: 물결이 사라진 잔잔한 호수의 표면과 같다. 물결이 일면 호수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비추지 못하지만, 물결이 사라지면 그 표면은 마치 거울처럼 모든 것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보살은 잘못된 인식, 즉 전도몽상(顛倒夢想)에서 벗어나, 모든 현상을 왜곡 없이 본다. 이는 왜곡된 감정과 생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상태를 나타낸다. 그 마음은 깨끗하게 정제된 의식과 같아서, 외부의 왜곡된 시각이나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다.
究竟涅槃(구경열반)
보살은 결국 궁극의 열반(涅槃)에 이른다. 열반은 고통과 번뇌로부터 완전히 해탈한 상태로, 깨달음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영원한 자유와 평화의 상태에 도달함을 의미한다.
비유: 완전한 고요와 평화에 도달한 대양의 심연과 같다. 바다의 표면은 바람과 파도에 의해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바다의 깊은 심연은 언제나 고요하다. 궁극의 열반은 마치 대양의 심연처럼, 외부의 변화나 고통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완전한 평온의 상태이다. 모든 외부적 소란과 내면의 불안에서 완전히 벗어나,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얻는 것이 바로 궁극의 열반이다. 이는 더 이상 어떤 욕망이나 고통에 얽매이지 않고, 완전한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를 상징한다.
종합 및 핵심 내용
이 구절은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 지혜의 완성)에 의지하여, 보살이 어떻게 모든 집착과 걸림에서 벗어나고, 궁극적으로 열반(涅槃)에 이르는지를 설명한다. 반야바라밀다는 모든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혜를 뜻하며, 이 지혜를 통해 보살은 세속적 집착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마음의 걸림이 없고, 집착으로 인한 두려움이 사라지며, 왜곡된 생각과 꿈같은 망상에서도 자유로워진다. 보살은 결국 모든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궁극적인 깨달음과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보살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할 때, 마음이 걸림이 없어진다는 것은 그가 일체의 집착과 편견에서 벗어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이는 마치 거울이 먼지 없이 맑아질 때 비로소 사물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과 같다. 보살의 마음이 맑아졌을 때, 더 이상 두려움이 없으며, 집착에서 자유로워진 상태가 된다. 두려움은 마음의 집착에서 비롯되므로,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
또한, 전도몽상(顛倒夢想), 즉 잘못된 생각과 망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며 왜곡된 시각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보살은 지혜를 통해 꿈같은 환상에서 벗어나, 궁극적 진리를 깨닫고, 이로 인해 궁극의 열반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열반의 경지는 모든 번뇌와 고통을 초월한 평화와 완전한 자유의 상태를 의미하며, 더 이상 생로병사의 고통에 얽매이지 않게 되는 경지이다.
이 구절에서 중요한 가르침은, 반야바라밀다(지혜의 완성)를 통해 집착과 왜곡된 생각을 내려놓고, 두려움과 잘못된 관념에서 벗어나 궁극적인 자유와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고정된 실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변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로써, 우리는 더 이상 삶의 고통과 혼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궁극적으로, 이 구절은 지혜를 통해 고통과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평온과 자유를 얻는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집착과 두려움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해탈의 길을 걷게 되며, 진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고의 경지인 열반으로, 모든 괴로움과 번뇌에서 완전히 해방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겠다.
이번 연재는 여기서 줄입니다.
다음 연재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양학박사 담원(영묵) 김성수 합장
원문을 링크합니다.
[붙임]
본 게시글은 20여년전 법륜회 상임법사를 하면서 강론하였던 원고를 첨삭하여 게시합니다.
연재가 끝나면 그간의 사유와 단상을 덧붙여 전자출판을 통해 무료로 법보시 할 계획입니다.
1차적으로 가장 많이 독송하는 반야심경을 연재하고, 이어서 금강경, 천수경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원이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