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별을 좋아하는 아저씨의잡다한이야기.
역옹패설(櫟翁稗說)은 고려말 학자 이제현 선생님이 쓰신 역사서로
학문,정치적으로 매우 뛰어난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을 낮추어 그저 늙은이의 잡다한 이야기로 제목을 지었음에
저에게 꾀나 마음에 와닿아서 인용하여 이 글의 제목을 "성옹패설"로 지어봤습니다.
저는 여지껏 까페에 글을 써본적도 없지만, 글을 써보라고 누가 시켜서 올리는것도 아니고
그저 선생님 활동을 준비함과 진행함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고, 느꼈던 감정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글을 써 봅니다.^^
-----------------본 문-----------
1.
작년 봄 아이가 입학을 하면서 서서히 마을 이웃들과 유대관계를 만들어가던 중
우연히 나는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했다라것을 말 할 기회가 있었다.
굉장히 신기해한다. 당연히 예상한 일이다. 내가 만난 사람의 99%는 똑같은 반응을 보였으므로...
(나머지 1%는 같은과동기 선후배이니...)
이 후 관장님이 선물로 주신 호숫가마을이야기를 읽어보니
마을의 엄마 아빠들이 선생님이 되어 재능기부 활동을 했음을 알 게 되었다.
아... 언젠가는 '나도 내 전공으로 선생님이 되어 볼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2.
그런데!!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까페에 겨울방학이 코 앞에 다가올 즈음 들어가보니 방학활동계획이 올라와 있었다.
무슨 활동들을 하나 보던 중... 헉! 활동 제목이 별헤는 밤? 뭐지?
별헤는 밤에 윤동주 시인처럼 시를 짓는 활동이길 바라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무슨활동인지 확인해본다.
역시나 예상대로 별 관측 시간이다.ㅎㅎ
헐.... 누가 추동선생님들에게 귀뜸이라도 해준건가 내가 숨어있는지 어떻게 알고
이런 활동을 생각을 계획하신거지? 피할수 없는 "운명의 데스트니" 겠군.. ㅎㅎ
웬지 조금씩 설레면서도 불안해진다. 전공 공부 해본게 20년이 지나서 다 까먹었는데...
심지어 공부도 안했는데.. 대학시절 총 평점이 B도 안된다.. 그냥 논거다 ㅎㅎ
막연한 상상이 현실이 되어 다가오니 심란해진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관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들이 선생님으로 초대할꺼라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터라 흔쾌히 활동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통화를 끝내고 뭐부터 해야될지 감이 안잡혀 아직도 공부,연구중인 박사님
동기들에 전화해 어떻게 수업을 하면 좋을지 조언도 구해본다..
머리속에서 오만가지 구상들이 떠돌아 다닌다....
3.
몇 주 후 시간적 여유도 생기고 해서
도서관에서 다른 활동중인 딸내미도 데리러 갈겸
별헤는 밤 활동을 신청한 고마운 아이들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싶어 오랜만에 도서관으로 향한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폐고속도로 대전터널을 지나 호수 전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마을 초입에 들어갈때 쯤이면
마치 가본적도 없는 웜홀을 지나 다른 세계로 입장하는 기분이 든다.
마을에서 1년의 시간을 살았음에도 들어갈때마다 새롭고 들뜨는 기분이 든다.
"그곳엔 물리적인 이웃이 아니라 심리적인 이웃이 있고, 그 이웃의 아이들이 있어서 그런가?"
라는 생각을 하며 도서관으로 향한다.
심호흡 한번 하고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간다.
선생님들은 읭? 누구지?하며 인사하고
아이들은 읭? 근데! 니가! 지금 거기서 왜 나와?(막 초대장을 완성했을때인지라)
라는 반응을 보이며 인사한다.
선생님이 성격이 급해서 더 빨리 친해지고 싶어서 '초대를 하고 받아줄까?' 걱정 할 필요없게
찾아오는 섭외를 했단다 얘들아 ㅎㅎ
간단히 내 소개를 했다.(나도 별명을 만들었다! 날 이제 '별누리'선생님이라 불러다오^^)
준비모임이에도 불구하고 몇몇 아이들은 질문폭탄을 던지기 시작한다.
아...무섭다. 급질문하면 선생님도 당황스럽단다 얘들아...선생님도 까먹은게 대부분이란 말이다...
어쨌든 도서관에 가끔씩 나타나서 유경이 데리러오는 배나온 아저씨가 아닌
선생님이 되어 처음 받게 되는 관심에 기분이 묘하다. 평소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었는데
구실이 생겨 조금은 더 가까워질거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나만 그런가...ㅎㅎ)
4.
수업날까지 아주 어릴적부터 가지고 싶어했던 천체망원경도 샀다.(장난감같은5만원짜리지만)
별 기대 안하고 샀는데 집에서 조립해서 가지고 노니 꽤나 재밌다. 옛날 생각도 나고...
아이들도 재밌어 할까? 걱정도 된다.(별 관심없는사람도 많기에..)
달변가가 절대 아니기에 어버버할까 싶어 대본도 만들어본다.
예능프로처럼 재밌게 해볼려고 오프닝 음악도 넣어보고 수업과 잘 어울릴만한 곡도 준비해본다.
이 곡을 개사를 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재밌을꺼같아 작사도 하고 노래연습도 해본다.
아니 이거 정신이 계속 안드로메다를 향해 나가고 있는거같다.
준비할 수록 나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더 신이 나는거 같다. 흐흐.
5.
드디어 수업을 시작하고 대본 만든데로 진행을 해본다. 노래도 불러주고 멘트도 쳐준다.
조크를 던질 때 썰렁해지지않고 웃어준다. 다행이다. 고맙다 얘들아ㅠ
일주일 내내 날씨예보만 계속 확인하며 기상상황이 안좋을꺼 같아 걱정이 많았는데
당일이 되니 구름이 지나가고 꽤 맑아져서 밖에 나가서서 관측을 할 수 있겠단 생각에 더 행복했다.
아이들과 아주 간단히 이론 및 오늘 무슨 별자리를 볼수있는지 알려준 뒤 밖으로 나갔다.
꽤나 춥긴 하지만 바람이 안불어 다행이다. 어디에 있는게 무슨 별자리인지 알려주고
오늘을 위해 준비한 망원경을 꺼내 제일 쉽게 관측할 수 있는 달을 맞춰 놓고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수백번을 본 나도 볼때마다 새롭고 신비롭고 경이로운데 아이들은 얼마나 신기할까?
아이들도 와~소리를 내며 재밌게 관측을 한다. 내 어릴적 꿈을 함께 공유하고 즐길 수 있음에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수십분 후 아이들은 추워서 먼저 들어가고 나는 계속 계획했던 관측을 조금 더 한다.
오랜만에 예전에 찾아보던 천체를 관측하니 너무 신이 난다.
불현듯 느껴졌다.
아이들에게 행복의 시간을 주기 위해 왔지만
정작 "지금 제일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나 자신임을.^^"
아이들 아니었으면 밤새도록 별 관측하고 있었을꺼 같다.
다시 실내로 들어와 아이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시간을 가진다.
잘 알고 있어서 설명해준것,
알고 있었지만 까먹어서 다시 찾아보고 설명해준것,
나도 몰랐던 지식에 대해 찾아보고 설명해준것들.
내가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이 되어 공부한것을 아이들에게 발표하는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만큼 이 시간이 누구에게 가르침이 아니라 나에게 배움의 시간이었던거 같다.
시간이 늦어지니 몇몇 아이들의 눈꺼풀이 깜빡이며 내려감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의 말에 귀기울이고 메모하고 있는
아이들 눈동자 하나 하나가 보이기 시작한다. 모든 아이들이 나에게 집중하며
누구를 쳐다봐도 한명 한명 다 아이컨택이 된다.
내가 이렇게 관심을 받았던적이 있었나? 첨 느껴보는 희열의 감정이 느껴진다.
와... 지금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건 나다!!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재능기부정도로만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짧았음을 깨우쳤다.
마을선생님 시간은 아이들보다 더 마을선생님을 위해서 만들어진 기획된 프로그램인것이다.
6.
여러분들도 밤하늘에 관심을 가져달라라는 말로 수업을 마무리 할때 즈음 갑자기 울컥하며 목이 메인다.
아이들이 나에게 어릴적 꿈과 열정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줄 기회를 줘서 감격했음에 기인함이라 믿는다.
조금만 더 못참았어도 울뻔했다.(큰일이다 갱년기가 벌써오나..)
이번 수업을 계기로 아이들과 좀 더 가까워지게 됨을 감사하고 기회가 된다면 다음 수업 또 그 다음 수업을 통해
별 아래서 좀 더 가까워지는 아이들과 나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글 재주도 없고 너무 두서없이 작성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첫댓글 너무아름다우시네요^^ 멋진수업감사합니다선생님
별누리 선생님의 글을 읽고 또 읽습니다.
코끝이 시큰합니다.
선생님, 글 읽으면서 피식피식 웃었어요^^
준비를 이렇게 많이 하셨구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아이들 손목에 별자리 팔찌가 하나씩 있어요.
아이들은 잊지 못할 별누리선생님 수업이였어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작년 여름 유경이랑 짝꿍활동 하는 날, 차안에서 선생님이 천문학을 전공하셨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 떠올라요.
그때 저도 언젠가 마을 아이들이 선생님께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네요.
너무 근사하고 멋져요. 그 수업을 듣지 못한 게 몹시 아쉬워요..
유경이가 아빠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했을까요..! 이 글을 보면서 제 마음도 따듯해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유경이가 추동쌤하면 하영선생님을 먼저 말할정도로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답니다.
나중에 시간되면 한번 놀러오세요 ㅎㅎ
애석하게도!! 울 딸내미는 아빠의 제안을 뿌리치고 사랑을 배우러 다른 수업으로 갔답니다 ㅠㅠ ㅎㅎ
하필 같은 날 같은 시간이라...
처음엔 꽤나 서운해 했었는데 한번 더 생각해보니 저한테 별에 관해 배울 시간은 앞으로 얼마든지 있을테고
사랑에 대해 잘 배우고 아주 귀한 시간 보내고 온거 같아, 더 잘 됬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