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문명이 고도화되면서 과거에 비해 살기에 매우 풍족한 세상이 되었다.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겪었던 보릿고개나 절대 빈곤은 사라졌으며, 의료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백 세 시대가 우리들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그런데 삶이 풍족해지고 수명이 연장된 만큼 사람들의 마음도 풍요로워졌을까? '역지사지'(易地思之)란 '자신과 남의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라는 뜻의 한자성어이다. 얼핏 보기엔 쉬워 보이는 이 말이 실제 삶에서 실천하기는 어려울 때가 많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상사와 부하 직원 간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개 이 갈등의 원인은 서로의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상사의 입장에서 보면 한 부서를 이끌어야 하고 더 높은 상사와 수직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이 복잡하다. 부하 직원의 입장에서 보면 상사는 부담스럽고 어려운 존재이다. 아침에 조금만 늦어도 상사의 눈치를 보게 되고, 이름을 부르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꾸지람 들을까봐 마음이 위축된다.
상사의 경우 낙하산 인사로 내려오지 않았다면, 거의 다 말단 사원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지위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누구보다 평사원의 입장을 잘 안다. 자리가 달라졌다고 과거를 잊고 고압적으로 명령하고 닦달하기보다는 어깨라도 한번 두드려주고 칭찬 한번 더 해준다면 아랫사람이 상사를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부하 직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회사도 말단 사원이 5년, 10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 머무는 경우는 없다. 누구나 세월이 흐르고 경력이 쌓이면 대리․과장․부장으로 승진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언제까지나 부하 직원인 것처럼 상사에게 불평․불만을 제기하고 뒷담화를 즐기면 승진만 늦어질 뿐이다. 한번쯤은 상사의 입장이 되어 자기 자신을 돌아볼 필요도 있는 것이다.
부부 관계도 마찬가지다. 맞벌이가 대세인 이 시대는 남편도 힘들고 아내도 힘들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남성들이 구시대적인 가부장적 고정 관념에 갇혀 아내를 힘들게 하고 있다.
똑같이 직장 생활하면서, 가사는 아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직장 생활 마치고 밀린 가사 일을 하려면 많이 힘든데, 퇴근한 남편은 집안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TV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꿔가며 즐기면서도 설거지 한번 해주지 않는다. 이런 상태가 장기화되면 부부 관계는 금이 가게 된다.
아내의 경우도 남편에게 불만이 있다고 지나치게 들볶거나 닦달해서는 안 된다. 남자와 여자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관점이나 생각이 다르다. 만약 아내가 지혜롭다면 남편이 스스로 부끄러워하게 만들어 자발적으로 가사를 도울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전 세대와 달리 이 시대의 부모들은 자식 키우기가 상대적으로 힘들고 부담이 크다. 세상이 변해가는 속도가 빨라져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은 점점 커져가고 사교육비 부담은 줄지 않고 계속 늘어만 간다. 반면에 자신의 노후 대비는 그 만큼 어려워졌으며, 설상가상으로 현재 60대 이하의 부모들은 노부모는 부양해야 하면서 자식에게는 한 푼도 의지할 수 없는 세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부모가 자신의 어려운 점만 생각하고 자녀를 대하면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줄지 않는다. 한번쯤은 자식의 입장에서 자신을 돌아봐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식들의 경우도 동일하다. '부모는 무조건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 떼쓰면 다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부모․ 자식 간의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자신도 언젠가는 부모가 된다고 생각하고 한번쯤은 부모의 입장이 되어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 문제 해결의 열쇠를 손에 쥘 수 있다.
음식점을 이용하는 손님과 종업원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손님 중에는 '고객은 왕'이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여 종업원을 마치 자기 하인 다루듯이 마구 대하는 경우가 있다.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경우가 많으며, 강자 앞에서는 비굴하고 자기보다 약해보이는 사람에게는 마구 대하는 '찌질이'들이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매우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도 가정에 가면 엄마고 누구의 딸이며 아들이고 누나고 오빠다. 손님이 종업원을 인격적으로 대하면 종업원은 그 손님을 왕으로 대한다.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이다.
진보와 보수․ 노년과 청년․ 장애인과 비장애인․ 부자와 서민 등 우리 사회에는 많은 갈등이 있다. 이런 갈등을 푸는 열쇠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인 것이다. 서로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풀리지 않는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한번 해보자. 그러면 더 밝고 행복한 세상이 손짓하며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