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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를 한 지역의 골목길 스승으로 잊히게 두지 않고, 로마 제국의 황제나 신화 속 영웅을 넘어 “역사 한복판에 도래하신 참 하나님”임을 증언하기 위해 이 소박함(nuda)이라는 수사학적 옷을 입혔던 것입니다.
② ‘내부자’를 넘어 ‘외부인’을 향한 공공적 확장성
복음서 저자들은 신앙 공동체 내부 신자들의 믿음을 다독이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당대 로마 제국 사회의 지식인, 이방인 후원자(누가복음의 ‘데오빌로’ 같은 인물), 그리고 기독교 운동에 호기심을 갖게 된 넓은 의미의 외부인(Outsiders)까지 염두에 두고 글을 썼습니다. 그 결과, 가장 학식이 낮은 이부터 높은 교육을 받은 지성인까지 누구나 듣고 이해하며 설득될 수 있는 ‘공공의 언어’를 완성해 냈습니다.
2. 오늘 우리 시대의 설교와 담론을 향한 도전
1세기 복음서 저자들의 소통 방식은 오늘날 교회의 강단을 향해 대단히 선명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① ‘내수용 종교 사투리’에서 ‘공공의 언어’로
오늘날 수많은 설교와 교회의 담론이 내부자들만 겨우 알아듣는 ‘종교적 은어’나 개인의 축복 및 성공에 집착하는 ‘기복적 사투리’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교회 문턱을 넘어 들어온 세상 사람들에게 이러한 언어는 때로 소통 불가능한 암호가 되곤 합니다.
② 현학적인 수식을 버리고 ‘복음의 본질적 진실(Historia)’을 드러낼 것
설교를 화려하게 꾸미거나 과도한 영적 수사학으로 포장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복음이 가진 역사적 실존감과 진실성을 옅어지게 만듭니다.
3. 개인의 번영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공공선’으로
현장에서 성도들과 씨름하다 보면, 수많은 이들이 여전히 신앙을 ‘개인의 성공과 번영, 내 교회의 세력 확장’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이해하곤 합니다. 이러한 기복적 관점을 바꾸는 것은 너무나 고되고 때로는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1세기 복음서 저자들 역시 동일한 중력과 싸웠습니다. 제자들조차 십자가 직전까지 높이 될 생각만 했던 것처럼, 인간은 본능적으로 복음의 거대한 공공적 가치(하나님 나라, 공공선, 연대)를 자기 생존의 안전장치로 축소하려 합니다.
그러나 복음서 저자들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 환대, 생명, 부활이라는 핵심 가치를 당대 지중해 세계 전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던졌습니다.
이 소박하고도 거대한 공공의 언어가 마침내 사람들의 가슴을 때렸을 때, 개인의 성공에 매여 있던 영혼들이 비로소 세상과 타인을 위해 삶을 바치는 거룩한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 글을 마치며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설교와 목회는 ‘내부자를 단단하게 세우되, 담장 밖의 외부인에게도 명쾌한 진실로 다가가는 소통’입니다.
복음서 저자들이 1세기 지중해 한복판에서 이뤄냈던 그 위대한 소통의 실천처럼, 우리의 강단과 메시지가 이 시대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아픔을 보듬는 ‘가장 가까운 공공의 언어’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 함께 생각해 볼 질문 (Comment)
1.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의 언어는 교회 담장 밖의 이들에게 얼마나 친숙하고 명쾌하게 다가가고 있나요?
2. 오늘날 현대인들이 가장 갈망하는 ‘공공의 고민(고통, 연대, 삶의 의미)’에 대해 복음은 어떤 공공의 언어로 응답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