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담아 올리는 기도
- 이솔 「첼리스트를 위한 기도」, 김철교 「피아노 반주」 읽기
김철교(시인, 평론가)
1. 악기 속에 담긴 사랑
맑고 밝은 사랑을 마음껏 담을 수 있는 음악과 시는 한 몸이다. 모든 예술은 사랑 없이는 그저 빈 껍데기가 아닐까 싶다.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은 물론, 너와 나의 사랑, 생명이 없는 것조차 포함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 예술의 실재(實在)다. 특히 언어라는 틀 속에 갇힌 것이 아니라, 누구나 나름대로 수용할 수 있는 이미지로 다가오는 악기 소리는 사랑을 담아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작곡가가 작곡한 악보를 연주하는 것이지만, 연주자가 연주할 때는 나름대로 연주자의 감성이 해석해 내놓는 것이고, 이를 듣는 자도 나름대로 해석하여 수용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작곡자, 연주자, 듣는지 모두가 각기 다른 이미지로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아름다움이다.
2. 이솔 「첼리스트를 위한 기도」 읽기
첼리스트는 가장 큰 포옹을 할 수 있다
비스듬히 앉아 발끝을 세우고 포옹의 자세를 만든다
여인의 팔에 안긴 피에타
예수의 주검을 받쳐 안은 성모마리아
무릎에 안겨 늘어뜨린 손등의 그 못 자국을
비탄과 슬픔을
긴 활은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활이 미끄러지며
끓어오르는 소용돌이를 달랜다
- 아가야, 염려마라 -
자세를 다잡고 두 팔에 힘을 조여온다
- 너를 낳았다 -
모두 내어주고 한아름으로 받아 터질 듯
너를 낳았다
첼로의 현을 훑어 내리는 활
울림통을 흔드는 노래
달려가 포옹으로 안기는 황홀한 기도
- 이솔 「첼리스트를 위한 기도」
『한국문학의 100년을 열다』(시문학사 2021) 전문.
화자는 황홀한 기도를 연주하고 있는 첼리스트의 활을 통해서 예수와 성모마리아의 사랑을 느낀다. 인류를 사랑하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을 이기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인성과 신성을 함께 가진 예수님이기에, 죽음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예수가 안쓰러워, 인간 어머니로서의 눈물을 보인 것이다.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피에타를 떠올리고, 첼로의 부드러운 소리에서 간절한 어머니의 기도를 듣는 시인의 감성은 놀랍지 아니한가. 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있듯이 첼리스트가 첼로를 정성껏 안고, 곡을 연주하고 있는 그 순정한 마음은, 곧 마리아의 마음에 버금가리라. 첼리스트도, 아니 모든 악기 연주자들은 간절한 기도의 자세로 악기를 연주한다. 작곡가의 마음을 헤아리며 거기에 연주자의 영혼까지 불어넣은 음악은 듣는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3. 김철교 「피아노 반주」 읽기
건반 위
맑은 시냇물 흐르고
튀어 오르는
열 마리 은어들
색색 다른 소원들을
한데 모아
내님 새하얀
치마폭에 그리는
은밀한 산수화
한 점
정갈하다
김철교 「피아노 반주」 『나는 어디에 있는가』(창조문예사, 2009) 전문
화자는 피아니스트의 연주하는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고 있다. 예배 시간에 피아노 연주자를 바라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다름없다. 열 마리의 은어 같은 손가락 놀림이 건반 위에서 춤을 추면, 모든 예배자는 그 노래에 나름대로 가지각색의 소원들을 담아 올리고 있다. 기도하는 각자 모두 은밀한 나만의 소원을, 산수화처럼 정갈하게 그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