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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받은 자답게 사는 것은 십자가의 믿음입니다. / 2023년 3월 19일 주일 오후 예배
본문 / 빌립보서 3:17-21
과거에 제 자신을 돌아보면 목회자였지만 정말 믿음이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저는 믿음이 부족합니다. 목회자가 믿음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와 그 말씀을 듣는 성도들이 다 믿음이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도 저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한다고 다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가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와 그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성도들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들이 다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여러 번 말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믿음과 하나님이 보시는 믿음은 다른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며 주여 주여 하면 다 믿음이 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는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짜들이 훨씬 더 많은 것입니다.
물론 겉으로 볼 때는 다 믿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있고, 하나님을 만난 경험도 있고, 십자가의 은혜를 알고, 은혜를 체험 한 기적도 있고, 매주 나와 드리는 예배도 있고, 기도도 있고, 십일조와 헌금도 있고, 봉사와 선교와 구제도 있고, 성도들과 나누는 교제도 있고, 직분도 있으면 겉으로 나타난 이 종교적인 외모와 외형으로 인하여 다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 없는 그 마음과 영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과연 그 속사람까지 변화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얼마든지 겉으로 드러나는 그 육체의 종교적인 행위와 열심과 정성으로 자신을 믿음 있는 것처럼 꾸밀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외식과 가증스러운 위선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겉으로는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까? 모든 사람들은 다 속았습니다. 천국에 갈 사람들이 있다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기 자신까지 속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으로 충만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앞에서 핍박하고 멸시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사람의 마음과 영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께서 그들의 종교적인 외식과 위선을 아시고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화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겉만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의를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속은 썩고 더럽고 냄새나는 죄악들로 가득하다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의와 믿음이 부정당할 때 깨닫고 회개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오하며 죽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겉과 속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그들이 예수님을 죽임으로 스스로 증명한 것입니다.
정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겉으로 내놓은 그 열심과 행위가 믿음이었다면 하나님이 보내신 그 아들도 사랑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입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척했지만 그러나 그것이 마음과 영 즉 속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희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 즉 속사람 안에 하나님이 없는데도 겉으로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사람인 것처럼, 믿음이 있는 것처럼 포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겉사람이 행하는 행위를 보고 사람들은 다 속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줄 알고 말입니다. 그러나 속사람을 보시는 하나님은 외식하는 자, 가증스러운 위선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십자가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또 은혜를 받아도 그 은혜를 떠나거나 잊으면 성도들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됩니다. 제가 볼 때에 어떤 성도들은 은혜를 받았지만 믿음의 길을 가면서 서서히 은혜를 잊고 떠나는 사람들도 많고 또 애초에 은혜를 그 마음과 영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은 것입니다.
말씀을 귀로 듣고 머리로 이해하고 은혜를 받은 척만 하는 것이지 정말 한 번도 마음과 영으로 회개하지도 않고 그냥 다니는 사람들도 많은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합니다. 요즘 교회에는 가짜들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어떤 믿음이 가짜냐? 그 마음의 중심 즉 주인의 자리에 자신이 앉아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타락한 인간 이 죄인들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들고 창조하여 나를 세상에 보낸 것입니다. 당연히 사람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자기가 인생의 주인노릇을 하다가 십자가를 만나 회개하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교회에는 자신은 종의 자리로 내려가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적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으로 있으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사실은 다 나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자신들의 의를 위해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걸 보신 겁니다. 자기가 주인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을 섬기는 척하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주인노릇 하던 자신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하나님을 진짜 내 마음과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면 그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제가 앞에서 목회자이면서 믿음이 없었다는 것은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과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으로 있으면서 하나님을 나의 만족과 영광을 위하여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내 뜻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교회를 이용한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가 없었던 것입니다. 주인노릇 하는 내가 죽고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신 그 주님이 내 안에 주인으로 사시는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열심과 헌신을 통해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내 만족과 영광과 의라는 더럽고 냄새나는 자아숭배가 있었던 것입니다.
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했지만 정작 내 삶으로는 십자가의 원수로 살았던 것입니다. 바울에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왜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는 것입니까? 뭘 본받으라고 하는 겁니까? 내가 죽고 내 안에 주님만이 사는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인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인간의 육체는 땅 즉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육체가 되었고 그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신으로 숭배하는 자들은 땅(세상)에서 나오는 것을 제물로 삼아 자신의 자아를 숭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은 땅의 일에 소망을 두고 세상을 사랑하며 육신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한 육체는 땅과 즉 세상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세상의 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온 것이라.” 말씀하였고 야고보는 땅의 것은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말하면서 그 마음의 중심과 주인의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였기에 삶으로는 타락한 육체를 위하며 세상을 사랑하는 외식과 위선적인 삶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사랑하고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자신을 두 주인으로 섬기는 자들이 진짜로 섬기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 안에는 겉으로는 하나님을 속으로는 재물과 세상과 육신을 즉 자기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하지만 하나님만이 보시는 내 마음의 중심 그 주인의 자리에도 하나님이 계실까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내 마음과 영이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져 깨끗할까요? 주님이 내 안에 계십니까? 주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주님이 나의 주인이고 나는 주님의 종이 되어 주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느냐는 겁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가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내 마음의 그 중심에 십자가의 주님이 계시면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겉으로 믿음 있는 척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믿음의 행위와 열매인 순종이 나오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말입니다.
오른쪽과 왼쪽의 바퀴가 따로 움직이는 것은 없습니다. 좌우의 두 바퀴는 같은 방향과 동일한 속도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진짜 믿음도 그렇습니다. 속사람과 겉사람이 겉과 속이 같아야 하는 겁니다. 나무가 좋으면 열매도 좋다고 하셨고 열매가 좋으면 나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나무가 나쁜데 열매가 좋을 수 없고 나무가 좋은데 열매가 나쁠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죄를 대속해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만나 회개하여 속사람이 거듭난 사람들은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는 좋은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먼저 안을 깨끗이 한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 죄를 대속해주신 그 십자가에 날마다 나를 못을 박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의지하며 육체 안에 남아있는 죄와 지신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십자가의 믿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믿음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이 다만 은혜로 구원 받은 믿음인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어가는 성도는 십자가의 믿음이 없는 것이 두려운 겁니다. 입만 주여 주여 하면서 자신을 속이는 것 말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 적당히 순종하며 적당한 믿음으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자신을 속이고 있겠습니까? 믿음 있는 척 말입니다. 구원을 받은 척 말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합니까? 순종하고 싶지 않은 말씀은 말씀이 그렇다는 것으로 넘겨도 되는 겁니까?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삶으로 내놓는 열매가 썩고 냄새나는 성도들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불신자보다도 못한 것입니다. 인격과 상식도 없는 포악한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뻔뻔한 거짓말로 소설을 써서 사람을 모함하고도 양심의 가책도 없습니다. 사람의 인격을 죽이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삽니다. 하던 대로 계속 교회가 예배합니다. 오히려 직분은 더 높아집니다.
하나님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입으로 주여 주여 하며 교회에 나와 헌금을 하고 찬송을 부르며 전도까지 합니다. 영을 분별하는 능력이 없어도 십자가를 조금만 알아도 너무 가짜인 것이 금방 드러납니다. 그런데도 많은 가짜들은 자신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양심의 화인을 맞아 말씀을 들어도 감각이 없는 자들이 되었고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이 된 것입니다. 어둠에 붙잡힌 자들은 그렇게 심판대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를 만나 회개하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구원을 이루어가는 길에서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작은 죄에도 그 마음과 영이 괴로워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겁니다. 시간이 되면 교회에 나와 대충 믿는 게 아니라 그 마음과 영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에 자신의 삶이 부족하거나 따라가지 못할 때 심한 괴로움을 느끼고 결국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순종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낮은 자로 사는 겁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만이 은혜 받은 자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들만이 믿음으로 진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나를 낮추어서 남을 높이는 것이 정말 잘 안됩니다. 내가 높아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낮아지는 것은 내 육체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유익보다 남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것이 잘 됩니까? 잘이 뭡니까? 안 되는 겁니다. 음란과 탐심을 물리치는 것은 쉬운 일입니까?
십자가 앞에 엎드려 가슴을 치며 기도해도 현실로 돌아가면 안 되는 겁니다. 괴로워서 또 다시 눈물로 기도하는 겁니다. 결국 해도 해도 잘 안 되는 내 주제를 파악하고 그런 나를 대속해주신 주님의 십자가를 붙드는 겁니다. 그리고 또 다시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하며 힘을 내어 순종해 보는 겁니다.
이런 고통스런 싸움이 없으면 속사람과 겉사람은 너무 다르게 되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외식하는 자가 되는 겁니다.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겁니다. 그러나 잘 안 되어도 십자가를 붙들고 고통스럽게 싸우면 분명히 달라집니다.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는 겁니다. 죄를 끊어내고 더 치열하게 죄와 싸우며 승리하는 겁니다. 주님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겁니다. 나를 낮추어서 남을 높이고 내 유익보다 남의 유익을 먼저 구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무 의미도 없는 습관이 되어 앵무새처럼 주여 주여만 하는 자는 되지 맙시다. 나는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십자가에 앞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에 나를 날마다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십자가의 믿음으로 은혜 받은 자답게 살다가 나를 구원하신 주님 앞에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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