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화예술의 화두: 정체성과 다양성
김 철교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사장)
예술도 인생도 정체성과 다양성이 특징이다. 정체성(identity)의 사전적 의미는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은 바로 나의 정체성을 묻는 것이다. 각각 개인은 하나의 독립된 우주로 볼 때, 아무리 소수의 정체성이라 할지라도 중요하고, 인간 사회에서 정체성은 다양하기 마련이다.
정치적으로는 정체성과 다양성이 충돌하고 또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으나, 문화예술에서는 오히려 정체성을 다양한 작품으로 표현하며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역할을 한다. 정체성을 통해 각각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고유한 삶의 색깔을 가져야 하고, 이를 작품을 통해 남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남을 모방하기에 급급하거나 시류에 휘둘리는 예술작품은 그 생명이 길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정체성을 조화롭게 요리하여 풍성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것인가 하는 과제을 안고 있다. 그러나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리고 각각의 구성원에 따라 정체성이 워낙 다양하여 항상 ‘다수결’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다수결은 정체성을 무시하고 구성원을 평균적 인간으로 평가절하하지만, 아직은 신의 한 수가 없기에 선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선거의 결과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도 주위에서 너무 많이 보아 왔다. 만약 모든 구성원의 정체성과 다양성을 조화롭게 아우를 수 있는 현명한 지도자가 있다면, 절대적인 가치와 목표를 위해 통일적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소위 독재가 사회를 발전시키는 첩경이 될 수도 있다.
예술분야에서의 화두의 하나인 다양성과 정체성이 요즘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 최근에는 특히,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소수 민족, 이민자, 성소수자 등 기존의 주류 문화에서 배제되었던 집단들의 목소리를 작품에 담으려는 노력이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와일리(Kehinde Wiley: 1977~)는 오바마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리며 큰 화제를 모았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다. 행위예술가이자 비디오아티스트인 푸스코(Coco Fusco: 1960~)는 인종차별, 성차별 등을 다루는 작품을 통해 사회적 편견을 고발하고 있다. 디아스포라 예술가들도 자신들의 이중적 정체성과 고향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쿠바 출신의 행동주의 예술가 브루게라(Tania Bruguera: 2009~)는 난민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처럼 젠더, 인종, 성적 지향, 민족적 배경 등이 예술 작품의 중심 소재가 되고 있으며, 이는 소외된 목소리와 경험을 예술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환경문제, 빈부격차문제, 저출산 및 급속한 고령화 사회 문제 등에 대한 관심도 예술분야에서 포용해야 할 과제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