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서예 에세이 한글 서예를 읽다-10
임천 이화자의 궁체 정자와 반흘림
신웅순 │시조시인ㆍ평론가ㆍ서예가, 중부대 교수 신웅순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임천하면 궁체 정자와 반흘림이 떠오른다. 오후의 창가에 그윽히 나래 접은 적요, 가을 잠자리 같은……. 어쩌면 저리 아정하고 아름답게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어떤 분이 저런 글씨를 쓰실까 늘상 궁금했었다. 2012년 필자의 한국한글서예 정예작가개인전에서 그 분을 처음 뵈었다. 글씨의 격조는 바로 님의 품격 그대로였다.
2004년 임천의 개인전 작가 노트에 이런 시가 있다.
우리집은 서남향이다
점심을 먹고야
햇빛이 내 방에 쫘악-
들어온다
조심스레 먹물을 살펴보니
얼른 써야지
먹물에 비친 창 낮게 들어온 가을 햇살, 생각만 해도 숨이 멎을 것만 같다. 묵색은 검은 빛깔이 아니다. 시의 빛깔이며 사색의 빛깔이다. 임천의 먹빛이 그렇다.
님은 궁체를 주로 쓴다. 그것은 전통에 대한 그만의 자존심일 것이다. 궁체라고 해서 다 똑 같은 글씨체가 아니다. 백이면 백 다 다르다. 그는 ‘이’자 하나를 쓰면서 ‘o’와 ‘l' 두 획이 끝나지만 변화무쌍하게 쓸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이 궁체의 매력이자 어려움이요 궁체를 쓰는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궁체의 전범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중학교 시절부터 꽃들 선생님께 사사했으니 님의 궁체 필법이야 말해서 무엇하야.
꽃들 선생님께선 “임천은 꾸준히 자기 글씨를 수시로 되돌아보면서 공부해왔으며 고전 연구를 바탕으로 지금은 자기만의 임천 글씨를 이루어냈다”고 평한 바 있다. 이미 임천의 글씨는 우리 전통의 커다란 맥을 이어온 강물이며 후대를 이어가야할 큰 물줄기이다.
그의 궁체는 차라리 물소리요 솔바람 소리요 가야금 소리, 대금 소리이다. 궁체의 정자 반흘림은 군계일학이라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이화자의 「김국자의 사랑」
임천의 대표작이라면 12곡풍 「마태복음」일 것이다. 깊은 신앙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그런 장문의 글씨를 쓸 수 없으리라. 그의 글씨 대부분은 성경 말씀이다. 성경을 필사하면 마음이 저절로 정화되고 맑아진다. 그래서 그런지 님의 글씨는 흐트러짐 없이 꼭 있어야할 그 자리에 가을 잠자리 같이 앉아 있다. 외에 시조, 가사, 농가월령가, 현대시, 찬송가, 기도문, 편지글 등 고전과 현대의 글들이 시공을 초월해 조요로이 묵상하고 있다.
현대 시조를 쓰시는 몇몇 서예가들이 있는데 임천도 그런 분 중의 하나이다.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자작시조「돌절구」3수와 「한강리」등이 있다. 남의 글보다 자기 글을 쓰면 왠지 그 사람이 향기가 있고 따뜻하게 보인다. 문향과 묵향이 만나면 빛을 발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돌절구 쑥개떡이 담을 넘던 그 옛날엔
절구에 보리대껴 무쇠 솥에 밥지으면
한나절 김매던 어른들 밥맛 구수했었지
- 이화자의 「돌절구」첫수
한글을 쉽고 단조로운 모차르트 곡에 비유한 임천. 어린이들도 많이 연주하지만 노련한 대연주자들은 되도록 피한다는 모차르트곡. 쉬운 악보를 가슴으로 연주하여 청중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우회적으로 한글 궁체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그것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천착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실바람도 폭풍우도 어떻게 처리해야 아늑한 여백으로 남는 것인지 안다는 말일 것이다.
한글은 단순하고 정아한 모차르트 피아노곡인지 모른다. 한문은 화려하고 다이나믹한 베토벤 교향악 같은 것인지 모른다. 서로를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되는 이유들이 임천의 궁체 건반 속에 고스란이 녹아 있다.
잘 쓴 글씨, 아름다운 글씨, 혼이 있는 글씨. 무엇이 우리를 감동케하는가. 화영재의 주인 임천의 글씨를 보면서 이제와 새삼 생각해보는 것이다. 궁체 한글 정자와 반흘림을 감상하면서 옛 여인들의 모습을 묵상해 본다. 미인 앞에서 말 못하듯 님의 궁체 앞에서 이리도 펜끝은 무딘 것인가.
-『 월간서예문화』(9·10월호),29쪽.
첫댓글 귀한 자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귀한 자료 잘 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