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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2. 藝術이 性情에 미치는 영향 1) 美(beauty) 란 무엇인가 2) 동양의 藝術美 발전 (1) 노자와 공자의 예술미 (2) 古代 藝術美 발전 3. 예술의 경제적 가치 1) 아름다운 삶과 예술 2) 예술은 나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부드러운 힘 3) 세계 각국의 문화와 예술정책 4) 우리나라의 문화와 예술의 발전 방향 4.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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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文化(Culture)라는 말은 라틴어 ‘Cultus’에서 유래된 것으로 ‘밭을 갈아서 경작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나중에는 이것이 자연적인 행동과 반대되는 문명화된 행동이라는 의미로 바뀌었고, 나아가 상류 계급의 행동을 의미하게 된다. 이어서 19세기에는 가장 훌륭한 예술, 음악, 사상을 가리키는 ‘고급문화’의 개념으로 등장하였고, 20세기에 들어와서 대중문화가 발달하면서 문화의 개념이 ‘세련된, 교양 있는, 고급스러운’의 의미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생활양식을 넓은 의미로 가리키는 것으로 사회학자들에 의해 정립되었다.
다시 말해서 문화란 정신적이고 물질적으로 진보된 상태나 세련되고 교양 있는 모습을 말하니 이는 문학이나 예술 분야에 관련되는 좁은 의미의 문화를 정의한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말하는 문화생활, 문화시설, 문화행사, 신문의 문화면, 문화인 등이다. 또한 사회 구성원들이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 공유하고 있는 행동 양식과 사고방식 등, 한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독특한 생활양식을 의미하는데 이는 넓은 의미의 문화에 대한 정의이다. 예를 들면, 한국 문화, 서양 문화, 전통 문화, 대중문화, 청소년 문화 등을 말한다.
위와 같이 문화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후천적으로 학습된 공통적인 생활양식 자체를 말하는데 이와 비슷한 말인 문명은 지식과 기술의 발전 단계를 말하며 평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문명은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발달된 사회에서만 존재하지만, 문화는 미개하고 야만적인 사회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듯 예술은 문화의 일면임을 알 수 있다.
藝術(ART)이라는 말은 라틴어아르스(ars)에서 유래하였다. 이 아르스는테크네(techne)를 직역한 것이다.(techne-ars-art) 그리스시대의 테크네는 아르스로 번역된 이후 르네상스시대 까지도 사용되어왔는데 그 당시 솜씨(Skill)즉 의류, 가옥, 조각상, 침대 등을 만드는 솜씨뿐만 아니라 이러한 솜씨로 하여금 관중들을 사로잡는데 건축가, 조각가, 도예가, 양복장이, 전술가, 기하학자 들의 아트로 지칭되었다. 그래서 플라톤은 예술은 넓은 의미의 기술에 속한다고 생각했고, 넓은 의미의 기술에서 모방적 기술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 즉 솜씨는 법식(Rules)이 있어야 했고, 또 이러한 법식이나 규율이 없는 한 아트란 발휘 할 수도 없었다.
르네상스를 맞이하여 근대 예술개념의 체계는 예술 그 자체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는 동시에 새로운 예술사상(철학)도 발흥되어갔다.① 그러나 예술과 철학은 다른 영역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또한 어떠한 문화 영역보다도 서로 가깝다. 이들은 종교와 달리 진리를 이미 고정된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여러 가지 요인들을 분석하면서 찾아간다. 과학과 달리 어떤 특정한 대상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전체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이다. 개성을 사용하는 철학이 이성에 호소한다면 형상을 사용하는 예술은 감정에 호소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철학과 예술은 독특한 방식을 달리할 뿐이다.
여기서 서양철학은 대체로 지식을 중요시하고 동양철학은 덕성과 지혜를 중요시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철학적 사상을 배경으로 한 동양 예술과 서양예술은 다 같이 자연주의 예술로서 자연을 영원한 존재가치로서 또는 至高至善의 미로서 보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서양철학이 ‘眞理’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면 동양의 철학은 ‘道’를 체득하고 실천하는 학문이다. ‘도’와 ‘진리’는 같은 말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진리’는 지식의 대상으로서 인간의 인식능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나 ‘도’는 실천의 원리로서 인식의 능력뿐만이 아니라 德性과 意志가 동시에 작용함으로서 얻어지는 것이다. 또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智的수련만 쌓으면 되지만 ‘도’를 얻기 위해서는 지적수련과 동시에 行的수련이 필요하다. ‘智’에 있어서도 동양철학은 그 목적이 聖人, 眞人, 佛에 도달하는 것으로 지식보다 ‘智慧’를 중요시 했다. ‘지혜’는 지식처럼 靜的, 客觀的, 分析的태도와 방법으로서만 얻어질 수 없다. 거기에는 動的, 直觀的, 綜合的인 태도와 방법이 더 필요한 것이다.
정적이며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태도를 중요시함은 논리가 정연하고 체계가 서고 설명이 상세하여 이해하기가 쉽다. 그러나 동적이고 직관적이며 종합적인 것은 그 외관이 비논리적이고 비체계적이며 상세한 해설 대신에 함축성이 풍부하여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때로는 지식을 초월하여 논리를 무시하기 때문에 신비성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 서양철학은 인체를 최고의 미적 대상으로 보았음에 반하여 동양철학은 자연 그 자체를 만물의 근원으로 생각하고, 영원한 존재 내지 정신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인 다음 그것을 미의 대상으로 추구했다.
본고에서는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내면적인 성정에 미치는 영향과 외부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2. 藝術이 性情에 미치는 영향
1) 美(beauty) 란 무엇인가
플라톤(Πλάτων, Plátōn)②에 의하면 모든 美的 대상은 ‘美’의 이데아를 分有함으로써 비로소 아름답다고 하였다. 美는 개체의 감각적 성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미적 대상에 不變不動의 ‘형태’로 나타나는 초감각적 존재이며 균형 ·절도 ·조화 등이 美의 원리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美는 감각적인 보거나 들음을 매개로 얻어지는 기쁨 ·쾌락의 근원적 체험을 주는 아름다움으로 이것이 존재할 수 있는 원리는 조화나 균형에 있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고전적인 이념과는 달리 19세기의 낭만파 사람들은 고대인들이 추구한 조화의 이상을 버리고, 내면적 부조화 속에서 감정의 충일과 자아의 열광에 의해서 새로운 예술미가 창조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19세기 말의 예술가들에게는 美라는 것이 이미 일정한 규범에 입각한 영원부동의 원리가 아니라 그것은 오히려 관능의 도취를 가져오는 생명의 연소(燃燒)이며 찰나적인 감각의 충족감에 지나지 않았다.
예술에 있어서 서양예술은 기본적으로 종교예술이다. 종교예술이란 곧 기독교예술인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의 모든 근 ․ 현대예술의 발전도 결국 이 기독교의 뿌리와의 관념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동양에서도 샤머니즘이나 유교의 제식주의나 불교의 신비적 열정이나 모두 종교예술이라고 아니할 수도 없지만 그 성격이 순교정신을 주도한 기독교와는 전혀 다르다. 불교도 중국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유 ․ 도교와 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불교라는 종교의 비 배타적인 초탈한 성격, 그리고 현지에 적응하는 놀라운 개방성과 융통성 때문에 초기 기독교와 같은 순교의 역사를 연출하지는 않았다.
기독교는 순교의 종교이며 순교로서만 위대해지고 강대해졌으며 강력한 ‘배타’와 ‘희망’을 특징으로 하는 종교가 되었다. 그들이 갈구한 것은 암흑속의 빛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존재를 빛을 통하여 확인하는 그러한 인식론의 기반위에서 그들의 예술행위를 전개해 나갔던 것이다. 빛으로 확인되는 존재의 모습은 명암이다. 그리고 이러한 명암은 반드시 빛의 일정한 방향성에서 태어난다. 캄캄한 지하 동굴의 한 바늘구멍에서 빛이 새어 들어올 때 인식되는 존재의 모습처럼 반드시 일정한 방향을 전제해서 그 실존성과 입체감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빛에 의한 명암의 인식은 線이 아니라 面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美는 원래 ‘眞 ·善 ·美’로 병칭되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로 여겨왔다. 美는 특히 善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플라톤은 美와 善이 하나가 된 상태로서 ‘아름답고 선한 것’라는 이상을 내세우고 있다. 인생에 유용한 것, 목적에 합치된 것이 선인 동시에 미라고 여겼다. 이에 반해서 근대 미학에서 미는 오로지 우리들의 감성에 照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미를 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경향을 나타냈다.
칸트(Kant, Immanuel, 1724~1804)③에 의하면 미는 단순히 감성적 인식으로서 주어지는 것이므로, 아름다움의 쾌감은 존재에 대한 무관심성에서 성립된다. 그것은 일반적인 쾌락과 같은 경향성에 의한 속박도 없고 존경에 의한 명령도 없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형성되는 만족감으로서 자유스러운 놀이의 상태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선이나 유용성이 요구하는 합목적성으로부터 해방되어 있다. 쾌락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이지만 미적 판단은 보편성 ·객관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 보편성은 眞이나 善의 판단에서 요구되는 것과 같은 개념의 보편성은 아니다. 따라서 미는 ‘개념 없이 보편적으로 만족을 주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미를 진이나 선에서 분리시키고 감성에 대응하는 면에서만 추구해갈 때에 미는 악과 결부되는 경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미가 진이나 선과 단절되면, 반대로 부조리나 악과 결합된다. 그만큼 미의 자율성을 확립하기란 곤란한 일이다.
이처럼 美나 아름다움에 대한 의미는 명료한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다. `美란 쾌감을 동반한 하나의 감정'이라고 과학적인 정의를 내린다 해도 美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美의 어원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아름다음의 근원과 개념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說文』에 ‘美’를 설명하기를 “美는 甘으로 羊은 六畜중에서 주로 고기를 공급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羊大則美’는 맛의 의미를 나타낸다. 또한 ‘美’와 ‘善’은 같은 뜻으로 쓰였다. ‘美與善同’이라 하여 '희생심과 같이 도덕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말의 ‘아름답다’는 ‘한 아름처럼 두팔 가득 차는 풍부한 촉감’에서 왔다는 국문학자들의 견해와, ‘앎, 즉 知의 정상’과 관련이 있다는 고유섭씨의 해석이 있다.
이와 같이 美의 개념은 동양은 정신과 인간의 도를 강조하고 서양은 물질과 기술을 강조하는 등 풍토와 사상 등의 서로 다른 영향으로 그 근본에 있어서 차이를 보인다. 물론 같은 동양에서도 각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공통적 견해는 ‘물적 대상이 동반하는 쾌감의 감정상태이기 때문에 다분히 추상적인 개념’ 이며, 일반적으로 ‘좋은 것(善)과 쓸모(有用)있는 것’이 아름다음과 통한다는 것이다.
2) 동양의 藝術美 발전
(1) 노자와 공자의 예술미
미감을 보는 태도로 실용적 태도와 과학적 태도 그리고 예술적 태도가 있다. 그리고 ‘미’에도 자연미가 있고 예술미가 있는데 동양에서 예술미의 시작은 中和의 미이다. 아래는 선진시대의 전적에서 ‘中和美’의 전거를 살펴보겠다.
『老子』58장에 “성인은 광택이 있어도 빛을 뿜지 않는다.”④
『論語』에 “즐겁되 음탕하지 말아야하고 슬프되 다치지 말아야 한다.”⑤
『淮南子』에 “백옥도 다듬지 아니하면 미주를 꾸미지 아니한다.”⑥
『韓非子』에 “군자는 뜻을 취하되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⑦
위 구절들은 고전의 심미이상이며 인격미의 이상을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이는 특히 예술에 포함된 정감은 반드시 절제가 있고 한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老子』제1장에 ‘道’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이미 ‘도’가 아니다. ‘이름(名)’ 할 수 있는 ‘이름’은 이미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음은 천지의 처음이요, ‘이름’ 있음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늘 욕심 없음에서 그 오묘함을 보려 하고, 욕심 있음에서 그 현상을 보려고 해야 한다.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나왔으나 ‘이름’만 달리할 뿐이니 이를 일러 현묘하다고 하는 것이다. 현묘하고 또 현묘하여, 모든 묘함이 나오는 문이다⑧고 했다.
여기서 노자는 현란한 문명을 추구하는 도시 생활보다는 소박하고 단순하며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농촌을 중시하고 그 자연을 동경하는 절제의 철학이었음을 알 수 있다. 노자에 있어서 자연이란 것은 도의 본연의 형태로 여기서 ‘玄’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妙와 徼를 함께 말하면 현이다. ‘玄’이란 원래 어둡고 확실치 않는 것, 어렴풋해서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을 뜻하며 빛깔로 말하면 약간 붉은 빛을 띤 검은색, 즉 동양예술의 먹색이다.
먹의 빛깔은 검은색 단 한 가지이지만 그것은 여러 가지 변화와 무한한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다. 먹은 잡다한 색으로는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필요 없는 것, 장식적인 것, 현란한 아름다움이 모두 제거되고, 본질적인 것, 본래적인 것만이 나타나 있다. 이는 밖을 향해 분산해 나가는 것이나 근원적인 것이 아니고 안을 향해 통일되어 가는 소박함이다.
여기 공자의 심미표현을 한 글자로 말한다면 ‘和’로 대표할 수 있다.
고전에 “中이란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것이다. 和라는 것은 어그러짐이 없고 위배되지 않는 것이다.⑨”고 했다. 史伯은 和와 同을 구별하여 말하길 ‘和’는 성질이 다른 물건들이 결합하는 것이고 ‘同’은 성질이 같은 물건들이 결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和란 矛盾의 통일을 말한다.
공자는 사람의 주관의식 수양은 ‘詩’로부터 개시되고, ‘樂’을 이용하여 완성되는 것으로 보았고 정치풍속의 이상적 경계는 심미적 경계에서 비롯된다고 인정하고 있다.⑩ 이는 美育을 중시함으로 “제나라에서 韶를 듣고는 3개월을 고기 맛을 몰랐으며 樂이 이와 같이 지극할 줄을 알지 못하였다”⑪고 하였다. 또한 공자는 韶를 논평하기를 “美를 다 나타내었고 또한 善을 다 나타내었다. 武를 논평하여 美는 다 나타내었으나 善을 다 나타내지 못했다.”⑫고 했다. 이로부터 공자는 ‘미’와 ‘선’의 통일을 최고의 예술미로 인정하였다. 이는 형식미에 도덕적 요구를 함이요 어떤 의미로 형식과 내용의 통일을 바랬다. 다시 말해서 예술의 형식은 미적이여야 하고 내용은 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論語』「雍也」에 “質이 文보다 勝하면 野하게 되고, 文이 質보다 勝하면 史하게 된다. 文質이 彬彬하여야 군자다.”⑬고 한다. 이는 사람의 수양을 말한 것으로 문과 질이 통일되어야 군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 문질의 통일은 곧 미와 선의 통일이다.⑭
中和의 美란 사람과 자연, 주체와 대상, 주관과 객관, 감정과 이성, 정감과 이지 등의 소박함과 조화의 통일을 강조하는 심미의식이다. 그러므로 예술의 중화미는 감정과 이성의 결합을 요구하고 감정과 이성의 통일을 요구한다.
위에서 살펴보듯이 老子는 美와 善을 구별하였고, 孔子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이런 구별의 기초 위에서 예술에서 美와 善은 統一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공자는 예술은 사람의 주관의식 수양에 적극적 작용을 미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어떤 예술이건 모두 이 같은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仁의 요구에 부합되는 예술만이 이 같은 작용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자는 미와 선의 통일을 강조하고, 예술이 도덕적 내용을 포함하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니 이는 완전히 그 자신의 사상적 논리와 부합하는 것이다.
(2) 古代 藝術美 발전
앞서 살펴보듯이 유가 도가를 막론하고 자연을 이탈하고서는 따로 인간이 ‘安心立命’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유가에서의 도는 인류 도덕 실천의 근본이며, 도가에서의 도는 자연의 질서 자체를 인간 정신의 근원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동양인들은 예술을 창조함에 있어서 인간의 정신과 자연을 대상으로 한 예술을 이성화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러한 자연재료의 완결성에 대한 사상적 배경은 불교의 如來藏사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여래장 사상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것들 사이에 우열과 등급을 거부한다. 자연의 모든 존재를 똑같이 인가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똑같이 인가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인공적 조탁을 가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본래의 자리에 그대로 제대로 있는 것이 최고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래장의 가르침을 거시적 차원으로 확장하면 현실 그 자체가 佛土라는 佛國사상과도 같아진다. 불국사상에서도 중생들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이것을 直心이라는 개념으로 가르친다. 불토는 중생을 제도하려는 下化衆生의 大願에 따라 취해지는 것이다. 중생들이 사는 곳의 모양이 일정하지 않더라도 그 모든 곳이 그냥 그대로 불토일 뿐이다. 직심이 곧 불국의 정토라고 했다.
동양에서는 형식미가 전체의 내용 중에 조화롭게 흐르고 있으므로 미적 가치나 그 실용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정신 즉 ‘氣’에 관해서만 언급했다. 그리하여 이러한 정신이나 기의 표현을 예술적 구상화의 측정치로 삼았다.
여기서 ‘氣’를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단지 현실세계에 있는 모든 존재물의 근원이다”라고 할 수 있다. 氣는 곧 존재물을 구성하는 가장 極微한 原子的 요소이다. 뿐만 아니라 氣는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다. 생명체는 동양철학에서 氣가 취합된 것이라 한다. 가령 인간의 몸 안을 끊임없이 돌고 도는 생체의 기능을 가동시키는 氣, 즉 정기가 순환하고 있기 때문에 생명이 유지된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자연계의 만물의 생성, 변화, 소멸도 결국은 氣의 動靜이라고 했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 기능을 지배하는 마음의 활동도 氣였다. 정신의 기능자인 氣는 心氣, 意氣, 神氣등으로 말한다. 현대에는 “氣는 에너지 이다”라는 주장도 있다. 氣만큼 親和性이 풍부한 글자도 없다.⑮
이러한 氣의 개념이 전개된 것은 춘추 전국시대이다.⑯ 마침내 魏, 晉, 南北朝에서 당대에 걸쳐 불교가 들어오자 習氣라는 새로운 말이 만들어져 논의되었다. 여기에서 습기란 사람이 가진 煩惱를 가리킨다. 또 이 시대에는 不老不死를 추구하는 神仙 方術과 융합된 도교가 활발했다.⑰
宋나라시대는 정감과 이성의 통일에서 이성을 추구하는 심미원칙이 지배해 오다가 정감의 요소가 차츰 주도적인 위치를 확보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정감을 위주로 하면서 주관을 중시하고 개성을 숭상하는 것이 이 시대의 총체적인 특징이다. 이는 개인의 취향과 정감을 자유롭게 펴내는 것을 시대적인 특징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품과 수양을 중시하였다. 미적 형태에 있어서 음유의 미를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평온하고 조화로운 中和美 틀에서 벗어나 추함을 긍정하였다. 사물의 형상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자연적인 것을 반대하기도 하였다.
郭熙는 “몸소 산천에 가서 이를 취한다.”란 명제는 화가가 여하히 심미관조를 통해서 자기의 흉중에 심미의식을 구성하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말한 것이다. 이런 곽희의 명제에 蘇軾은 더 나아가 “成竹在胸”과 “身與竹化”란 명제를 제출하였다. 화가가 흉중에 심미의상을 구성한 후, 성공적으로 필묵을 통하여 그 심미의상을 표현해 낼 것에 대해 말한 것이다.
훗날 淸대의 鄭燮은 화가의 창작과정을 “眼中之竹--胸中之竹--手中之竹으로 개괄하였다.
3. 예술의 경제적 가치
1) 아름다운 삶과 예술
우리 인간의 삶은 예술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가? 공자는 『論語』에서 “안다는 것은 좋아함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⑱고 했다. 물론 이는 ‘仁’의 실천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仁이란 무엇인가? 공자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仁을 설명하고 있으나 범박하게 정의해 본다면, ‘착한 본성(心)으로부터 우러나는 참된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흔히 ‘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는 이 말은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다. 요즘 세상에 법이 없다면 착한 사람은 살기 어려울 것이다. 여기 법이란 글자의 원형을 통해서 이를 살펴보면; ‘삼수변(氵)’에 ‘갈거(去)’ 또는 ‘외뿔소 치(廌)’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벌을 내린다는 의미이다. 공평함이 물과 같아야 하므로 ‘水’가 의미부분이 되는 것이다. ‘외뿔소(廌)’는 올바르지 못한 사람을 머리로 받아 쫒아낸다. 그러므로 ‘廌’와 ‘去’는 모두 의미부분이 된다.⑲ 물이란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찾아가는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흘러가도 웅덩이가 있으면 그곳을 채우고 나아간다. 건너 뛰어넘음도 없고 높은 곳에 머물기를 자처하지도 않는다.
노자는 이러한 물을 두고 ‘上善若水’라고 하였으니, 최고로 높은 善(본성)은 물과 같은 본성과 특성을 지닌다고 지적하였다. 물은 겸양과 利他를 지향하고 남을 올라타고 넘어서는 법이 없다.
仁을 실천함과 예술도 법자에 담긴 의미와 같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법이 마음에 있으니, 그 물과 같은 본성이 바깥으로 드러난 것이 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仁이 드러남은 물과 같은 겸양과 나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인이란 마음에서 우러나는 마르지 않는 착한 샘(心泉)이라고 하겠다. 이렇듯 우리네 삶속에서 즐긴다는 것이야 말로 예술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처럼 유학의 핵심은 ‘仁’이며, ‘敬天愛人으로 道의 실천적 덕목이다. 공자는 심미와 예술은 사람이 ‘仁’이란 정신경계에 도달하기 위하여 主觀修養을 진행하는 특수한 작용을 할 수 있다고 인정하였다. 예술은 ‘仁’의 요구에 부합하여야 하며, 도덕적 내용을 포함하여야 한다고 인정하였다. 그래서 그는 美와 善의 통일을 강조하고, 文과 質의 통일을 강조하며, ‘樂而不淫’, ‘哀而不傷’한다는 ‘和’라는 심미표준을 강조하였다.
공자의 핵심사상인 ‘仁’이란 노예제의 등급사회에서 ‘禮’ 준수하는 것을 ‘內心自覺’의 요구로 삼는 것이니 “스스로 극복하여 禮로 돌아가는 것이 仁이다”고 하였다. 또한 “군자이면서 不仁者는 있으나, 소인이면서 仁者는 없다”고 말하며 仁은 비록 천부적 도덕속성이지만, 이는 가능성일 뿐으로 현실성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어렵게 무엇이 仁인지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고, 仁을 애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못하며, 오히려 仁에 대하여 반드시 감정적 愉悅이 생겨날 수 있고, 심미적 향수(享受)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主觀意識의 수양중에서 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을 해 가는 가운데 審美의 경계는 지식의 경계에서 높아진다는 것이다.
2) 예술은 나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부드러운 힘
예술은 대체로 새로움. 공감. 아름다움의 세 가지 성분을 갖고 있다. 즉 주요한 성분인 새로움(창의)과 공감(재미 감동), 그리고 아름다움(미)은 그 함량이 각기 다르다.
다시 말해서 어떤 예술은 새로움이라는 성분이 아주 많다면, 새롭다 보니 낯설고 어려울 때가 많다. 동시에 새롭다는 것은 ‘남들 다 하는 방식으로는 하지 않는다.’라는 의지를 담아 개성이 강하며, 익숙한 기존 질서를 깨트리고 베어버리는 힘이 셀 때가 많다.
예를 들면, 마르셸 뒤샹이라는 예술가가 20세기 초 뉴욕의 한 전시장에 남성용 소변기를 갖다 놓고 '샘'이라는 제목을 붙였을 때, 모두가 경악했지만 결국 이 사건이 현대미술의 새 흐름을 만들었던 일화가 그것이다.
새롭거나 아름답지 않지만, 재미만큼은 넘치는 대중예술의 작품도 있다. 이 세 가지 성분가운데 어떤 것을 높이 평가할지는 결국 향유자의 몫이다. 그러나 예술작품을 다룰 때, 이 세 가지 성분 말고 절대로 뺄 수 없는 요인이 있다. 바로 작품을 접하는 사람 안에서 생기는 변화이다. 감상자 또는 향유자에게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예술이라는 인류 최고의 자산은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예술의 쓸모는 그것을 정성스럽게 접한 '나'에게 작든 크든 '좋은 변화'가 일어나는 데 있다고 본다. 그게 예술에서 얻는 성찰과 감동의 요체이다. 반짝하고 사라져도 좋고 인생이 바뀌는 변화도 좋다.
예를 들어 우리의 전통음악인 국악은 수천년간 민족과 함께 하며 우리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음악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더욱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국제사회가 이미 그 예술성을 인정한 우리의 판소리를 정작 우리는 모르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판소리만이 훌륭한 우리음악은 아니나 민요와 함께 발전되어 오면서 그 안에 우리의 사상이 녹아 있다. 다시 말해서 민요가 서정시라면 판소리는 서사시이다. 춤을 추며 함께 따라 부르는 것은 민요이며 서양의 오페라와 같이 감상하며 듣는 것은 판소리이다.
이러한 우리 판소리에는 서양음악과 다르게 高, 底, 淸, 濁이 있다. 전통적인 서양음악은 맑음 음만을 취하나 우리음악에는 탁한 음(째진 소리)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父子有親은 심청가, 君臣有義는 수궁가, 夫婦有別은 춘향가, 長幼有序는 흥부가, 朋友有信은 적벽가에서 나타난다. 이렇듯 우리의 전통문화에는 우리의 정신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악은 우리의 호흡과 맥을 같이 하며 어느 음악보다 편안함을 주지만 아직 생활주변에서 친숙하게 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국악의 벽을 낮추기 위한 차별화된 공연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국악을 널리 알리는데 주안점을 둔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교육, 그리고 국악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이 우리가 나아갈 바가 아인가 생각한다.
3) 세계 각국의 문화와 예술정책
과거에는 순수예술만이 예술의 영역으로 인정되었었다. 그러나 현재는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 함께하고 있다. 예를 들면, 클래식이라 일컬어지는 고전음악은 일부 부유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였다. 왕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층들이 즐기는 음악이었기에 지금도 클래식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격식에 맞는 드레스를 입고 나와 공연을 한다. 이러한 구분은 서양의 전통이나 우리나라의 전통에서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서민들에 이루어지는 창작 활동은 실생활과 연관된 것으로 민예나 공예 정도의 지위만을 인정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산업화로 인한 시민 계급의 부상과 대중 매체의 발전은 새로운 예술의 대중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산업 사회에 들어서면서 소수의 고급문화의 자리에 다수의 대중문화가 들어서게 되어 대중문화가 문화의 주류로 등극한 것이다. 클래식 음악은 보다 이해하기 쉬운 팝에 주류의 자리를 내주었고 순수 미술은 상업미술로 분화되어 나갔다. 그런데 그 양상은 순수 예술의 대중화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대중적인 관심을 끄는 창작 활동의 상업화로 나타났다.
문화예술 활동의 동력원은 가치를 창조하는 창작자와 수준 높은 창작물을 향유할 줄 아는 심미안을 갖춘 향유자다. 심미안을 갖춘 향유자는 창작자의 가치를 인식하고 창작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지원을 통하여 창작자가 창작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고, 경제부문은 심미성을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여 더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선순환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선순환을 위해서 창작자를 위한 정책적 배려와 함께 국가의 문화와 예술의 거시적인 정책이 요청된다.
한양대 윤재근명예교수는 “문화와 예술은 생존의 기호품이 아닌 필수품이다. 이들은 눈썹 같은 것이 아닌 앞을 내다보는 눈과 같다. 문화교류는 겉치레이고 그 실속은 치열한 전쟁이다”고 했는데 이는 현실의 국제 문화와 예술계를 볼 때 틀림없는 말이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우리와 유관한 국가의 문화와 예술의 정책을 살펴 우리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세계 최초로 본격적인 예술지원은 영국의 대영예술진흥원에서 시작이 되었다.
프랑스의 경우엔 전제군주에 의한 절대왕정으로 수백년간 예술에 대한 지원이 갖춰져 왔다. 1959년 드골 대통령에 의해 분산되어있던 예술문화를 문화부로 집중시켰다. 드골 정부의 초대 문화부 장관은 앙드레 말로다. 높은 신임을 통해 10년간 문화부장관을 맡았고 "문화의 민주화" 정책을 진행했다. 거의 모든 나라들이 이러한 정책을 중심으로 정부예술지원정책의 틀을 갖추었다.
미국은 유럽과는 달리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시켰고 비영리기관 등 민간 주도를 권장했다. 이 과정에서 연방차원의 예술지원을 꾸준히 진행했다. 1965년에 이르러서 국립예술인문재단법에 의해 국립예술기금 국립인문기금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연방정부가 직접 나서서 예술지원을 펼치기 시작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문화를 통해 국가브랜드를 키우고,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문화예술 지원에 뛰어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은 제조업 강국에서 문화 강국으로 국가정책 방향을 바꿨다. 1997년 토니 블레어 총리가 집권하며 1998년 ‘미래의 창조: 문화, 예술, 창조적인 경제를 위한 전략’이라는 정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현재 영국의 창조산업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⑳
1992년부터 문화와 예술분야의 발전을 위해 갖가지 사안별 진흥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중국은 2003년 전후로 문화와 예술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본격적으로 자국 문화예술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2009년 9월 26일 국무원은 중국의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문화산업진흥규획’이라는 종합적이고 야심 찬 로드맵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참신한 아이디어, 영상물 제작, 출판·인쇄, 광고, 공연예술, 전시, 디지털 콘텐츠,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중점적으로 지원 역량을 강화하고 영화, 드라마, TV프로그램 등 영상물 제작 분야의 생산력을 제고함으로써 제작, 발행(유통), 방영, 파생상품 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멀티미디어, 멀티 단말기로 대표되는 디지털 콘텐츠 욕구를 만족시키도록 하는 강한 의지들이 내재되어 있다. 기간(骨干)문화기업 육성과 현대화된 문화예술시장 시스템 구축, 신흥문화 업종 개발, 문화예술 산업기지 건설의 가속화 등의 정책으로 문화와 예술의 소비와 대외무역 확대를 꾀하고 있다.
2015년 1월에는 중국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400억 위안(한화 약 7조 2,000억 원)을 유치하여 문화와 예술 산업 육성에 강력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21)
이처럼 각국 정부들은 국가브랜드 홍보, 창조산업 육성 등 적극적인 문화예술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 역시 이미지 제고 및 홍보 등을 위해 문화예술 지원 사업에 적극적이다.
4) 우리나라의 문화와 예술의 발전 방향
스페인의 빌바오는 바스크 지방의 주도로서 스페인의 4번째 도시이다. 빌바오는 15세기 이래 제철소·철광석· 조선 사업으로 부를 누리던 스페인의 부유층이 운집한 공업도시였다. 그러다가 1980년대 철강산업이 사양길로 들어서면서 도시의 기능이 점차로 침체되어 갔다. 더욱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로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하고 날씨마저 최악으로 우중충한 회색 도시로 변해가서 여행자들이 피해가는 곳이었다.
이에 1991년 바스크정부는 빌바오를 몰락의 늪에서 구하기 위해 도시 재개발 계획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1억5천만달러를 들인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 프로젝트였다. 미국의 유명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지은 미술관은 1997년 개관했을 때, 40만명의 방문을 예상하였으나 130만명이 방문하여 세계가 놀랐고 유럽의 빌바오행 항공편이 모두 마비되기도 했다. 그 후 지금까지 해마다 100만명이 다녀가는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이처럼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은 공업도시 빌바오를 세계적인 문화관광 도시로 격상시킨 것이다. 미래학자들이 역설하다시피 미래는 문화산업이 모든 산업의 중심에 있음을 증명하는 본보기이다. 다시 말해서 기존의 산업경제가 ‘有形의 價値’라면 문화예술은 ‘無形의 가치’로, 이제는 가격경쟁력보다는 품질경쟁력 나아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경쟁력, ‘무형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문화부 출범이후 문민정부(~97년)까지는 국가 성장 동력으로서의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00년을 준비하는 성장산업으로 문화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1993년에는 문화발전 5개년계획이 수립·추진되었다.
국민의 정부(98~02년)에서는 문화가 중심가치가 되는 지식정보사회를 강조하였다. 참여정부(03~07년)는 콘텐츠산업의 핵심역량을 강화하고자 하였으며, 우리문화의 전략적 세계화를 추진하고, 국민 문화향유 확대로 문화적 가치를 사회전반에 확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명박 정부는 문화부 설립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온 문화정책 영역을 ‘선진화’라는 기조 아래 효율화하고 체계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따라 여러 조직으로 분리, 분산되어 있던 기관들을 효율성의 원칙에 따라 통합하고, 기능이 중복, 혼선되는 영역에 대해서는 이를 조정, 정책의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서는 4대 국정기조 중 하나로 문화융성을 천명하고 우리 정신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사회 곳곳에 문화의 가치가 스며들게 하여 국민 모두가 문화가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를 정리하여 말하면 ‘무형의 가치’가 내포하는 또 다른 의미로는 ‘무한의 가치’가 될 수 있음이다. 우리가 주의할 점이 여기에 있다. 모든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와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문화와 예술을 접목시켜 세계를 향해 나가야 할 때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을 창조적이며 창의적인 인간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문화와 예술교육을 강화해야하며, 이러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힘써야할 것이다.
4. 나오는 말
예술의 힘은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변화시킨다. 그래서 우리 삶과 문화와 예술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산업근대화 방식을 택한 지 반세기 밖에 안 되는 시대로 전통사회, 압축형 근대화 사회, 지식정보화로 가는 탈근대주의 사회를 한꺼번에 경험하는 공시적 사회이다.
우리 삶의 예술은 본래 삶의 전체로부터 나왔다. 인류 예술문화인 예를 들면. 歌舞樂, 詩書畵, 문학과 음악, 신화와 의례와 상징 등은 인문과 예술이 본래 융합성, 통섭성을 가지고 전해온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 문화와 예술계는 마치 인간의 몸을 다양한 분과목별로 치료하려는 서양의학이 몸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려는 노력을 놓쳐버린 경우처럼 예술전통을 무조건 세분화함이 대세인 듯하다.
그러므로 ‘서로 끌어 당겨서 함께 도약’하는 통섭(Consilience)으로 예술과 타 예술, 예술과 과학, 예술과 인문학, 예술과 기술, 예술과 산업, 예술과 사회 등이 함께 도약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예술과 학문과 지식과 사회의 수평적 소통을 촉진하는 통섭을 취해야 한다. 또한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및 사회적 책임에 대한 수행과 더불어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한 마케팅 활동의 수단으로서의 ‘메세나 활동’이 장려되어야 한다.
기업들의 메세나 활동은 마케팅 측면의 목적성과 더불어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공의 이익과 연결되는 결과물 또한 필연적이다. 이에 기업의 메세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와 국회의 관심도 절대적이다. 그리고 관건은 기업의 의지다. 장기성을 띄고 문화와 예술계를 후원함은 국가와 기업의 이익 제고는 물론이요 이를 통한 공공의 이익으로의 연결이 가능하리라 믿는다. 이에 창의적인 콘텐츠 개발에 체계적인 전략과 실행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주석
① 주로 이탈리아에서 조형예술에 관한 이른바, 시학을 중심으로 하여 단테(Dante)와 같은 인문주의자들의 연구가 크게 행해져 다음과 같은 변화가 있었다.
② 서양의 다양한 학문에 영향력을 가진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사상가였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었고, 현대 대학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인 아카데메이아(academia)를 아테네에 세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③ 독일의 계몽주의 사상가로 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르네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합리론과 프랜시스 베이컨에서 시작된 경험론을 종합했다. 인식론·윤리학·미학에 걸친 종합적·체계적인 작업은 뒤에 생겨난 철학들에 큰 영향을 주었다.
④ 是以聖人--光而不耀
⑤ 樂而不淫, 哀而不傷
⑥ 白玉不琢, 美珠不文
⑦ 君子取情而去貌
⑧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此兩者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⑨ 中也者, 無過不及是也. 和也者, 無乖不戾是也
⑩ <論語․ 泰佰> 興于詩 立于禮 成于樂
⑪ <論語․ 述而> 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至 于斯也
⑫ <論語․ 八佾> 子謂韶 盡美矣 又盡善也 謂武 盡美矣 未盡善也
⑬ <論語․ 雍也>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⑭ 질(質)이란 사람의 내재적 도덕 품질을 말하고 문(文)은 사람의 문식(文飾)을 말한다.
⑮ 寒氣, 天氣, 殺氣, 血氣, 精氣, 狂氣, 勇氣, 和氣 등 이것은 모두 기의 친화성의 모습이다.
⑯ 인간의 기, 자연의 기, 원리의 기가 이 시대에 나왔다.
⑰ 호흡법, 房中術 체조법 같은 의학적인 것과 기를 연마하여 연금술이 성행했고, 땅의 기를 점쳐서 주거나 묘지로 알맞은 곳을 정하는 풍수술이 활발하게 유행했다.
⑱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⑲ 『說文解字』 廌部 : 刑也. 平之如水, 從水, 廌所以觸不直者去之. 從廌 · 去. 法. 今文省.
⑳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4년 발표한 ‘영국 창조산업의 경제적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영국 창조산업의 총 부가가치는 714억 파운드로 2008년에 비해 15.6% 증가했다. 또한 영국 창조산업의 활성화는 수출 증가로 이어져 창조산업 분야의 서비스 수출액은 2009~2011년 사이 16.1% 증가했다.
21) 예를 들면, 지금은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한 ‘베이징798’은 뉴욕의 소호와 유사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1995년 圓明園 화가촌이 정리되면서 화가들이 이주해 만든 ‘宋庄’ 등이 있다. 또한 베이징에는 1999년 中國電影公司 등 8개 공사를 통폐합해 만든 국가광전총국 소속의 중국 최대 국유 영화 기업인 ‘中國電影集團公司’가 있다. 이외 지방에도 광둥성 深圳의 ‘大芬油畵村’를 비롯하여 많은 문화예술 단지를 조성하였다.
22)
첫댓글 엇그제 숙명여자대학교 경영대학원의 두서없는 특강 내용입니다.
동양문화의 정수인 서예를 인식시키고픈 마음에서 나온 넋두리답니다. 이해하옵길 빕니다.
원당 선생님! 아주 훌륭한 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교수님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귀한 글입니다^^
감사하는마음 전합니다...
이 카페에서도 공부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