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밀린다王問經)(제6회)
6. 불연佛緣
이보다 앞서 로하나 성자는 앗사굿다 장로에게 맹세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날마다 철발(鐵鉢; 스님들이 가지는 쇠로 된 식기)을 들고 바라문 소눗다라의 집에 걸식을 다녔습니다. 그러나 소눗다라의 집에서는 로하나 성자에게 단 한 번도 밥이나 죽을 준 일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인간적 상대로 부드러운 말 한마디 건네주는 일이 없었습니다. 때로는 도리어 모욕적 욕설까지 함부로 퍼 부었습니다.
그러나 로하나 성자는 그러한 가인家人의 냉대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열심히 매일 소눗다라의 집으로 다녔습니다. 이리하여 마침내 7년 10개월이라는 세월이 어느덧 흘러 어느날, 그날도 로하나 성자는 소눗다라의 집에 갔다가 빈 발우鉢盂를 들고 돌아오는 도중, 때마침 바깥 일을 보고 돌아오는 주인 소눗다라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소눗다라는 그날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성자를 보고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스님! 당신은 오늘도 내 집에 가셨습니까?" 무슨 뜻으로 묻건 주인에게 직접 이렇게 부드러운 말은 일찍이 7년 10개월 사이에 들어본 일이 없었으므로, 로하나 성자는 내심 이상히 여기면서 답했습니다.
"네! 갔다 오는 길입니다." "뭐라도 주던가요?" "네! 고맙게 잘 받았습니다.' " ..... " 소눗다라는 성자의 대답을 듣고 말할 수 없는 불쾌한 기분에 싸였습니다. 주인이 없는 여가에 가족들이 무엇을 준 모양이라는 것이 그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자 성낸 어조로 가족들에게 호령을 하였습니다.
"너희들이 매일 오는 저 걸식중에게 무엇을 주었느냐?" "네? 아무것도 준 일이 없습니다." 가족들은 바른대로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그놈의 중이 나를 속였구나! 내일 또 오면 단단히 혼을 내어 줄테다!" 날이 바뀌자 또 로하나 성자는 소눗다라 댁의 대문앞에 발우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소눗다라는 문간으로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당신은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으면서 나에게 잘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죠. 당신네 종교에서는 그런 거짓말을 해도 상관 없습니까?"
그러자 로하나 성자은 태연히 대답하였습니다. "소눗다라여! 당신이 하신 말씀은 옳은 것이 아니요. 내가 받았다고 하는 것은 밥이나 죽이 아닙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7년 10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귀댁에 탁발을 다녔습니다만 아무도 나에게 한 숫의 죽은 커녕 부드러운 말씀 한 마디 주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뜻밖에도 당신이 나에게 따씃한 말씀 한 마디를 건네 주었습니다. 이것은 나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고 또한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내가 받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
탁발승(좌)과 / 발우(주)
소눗다라는 이 말을 듣고 한참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겸허하고 지순한 탁발승이 있을까? 세상에 흔하게 쓰여지는 인사말까지 이 탁발승은 고마운 시주施主로 알고 있다. 만일 이 사람에게 진정으로 시주한다면 얼마나 깊은 감사를 할까?' 그래서 소눗다라는 자기를 위해 마련된 아침식사를 나누어서 로하나 성자에게 공양하고, "스님! 다음에도 그전처럼 매일 내 집에 오십시오. 앞으로는 매번 음식을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로하나 성자는 그 후로도 변함없이 소눗다라의 댁을 찾았습니다. 소눗다라는 성자와 친하게 됨에 따라 더욱 그 고결한 인격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그는 성자를 매일의 중식에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로하나 성자는 감사와 기쁨을 가지고 그 초대에 응하고 식사가 끝나 돌아갈 때는 언제나 부처님의 금언金言을 경건하게 독송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로하나 성자는 마침내 소눗다라의 집과 불연佛緣을 맺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어떻게 하면 저 나선에게 접근하고 그로 하여금 출가케 하며, 또 맡겨진 큰 사명을 완수해 내도록 이끌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 현자는 상호 대등한 입장에 서서 제기된 문제를 냉정히 토구討究하고, 토론이 끝나서 한편의 그릇됨이 밝혀진다면 상대의 주장이 옳고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즉석에서 인정하고 그 사이에 조금도 나쁜 감정을 품지 않는 것, 이것이 현자의 태도입니다. - 나선비구경 >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출처]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밀린다王問經)(제6회)|작성자 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