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하느님의 구원 계획
1. 구원은 너로부터 (3)
♣ 3단계 여행 : 복음 관상
이제 복음의 세계로 들어가 봅시다. 복음 관상은 상상을 통해 복음을 재현해 들어가는 작업입니다. 재현하는 동안 나는 복음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복음은 나에게 현재화되는 것입니다. 관상은 비록 복음이 2천 년 전의 사건이지만, 2천년이라는 시공간을 초월해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사건이 되게 합니다. 이것이 복음이 지닌 위대한 힘입니다. 복음은 관상으로 재현될 때 비로소 살아서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이제까지 두 번의 길잡이 묵상은 이 관상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관상의 세계로 여러분을 안내하겠습니다. 직접 들어가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십시오. 그리고 제 말의 진위를 직접 확인해보십시오.
복음을 관상하는 여러분의 입장은 연출자와 같습니다. 복음이라는 대본은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그 대본을 가지고 이제 당신은 장면을 재현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연출을 위해서는 대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복음의 장면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야하고 그 장면에 어울리는 소재들을 생각해 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관상에 필요한 시공간의 연출과 그 안에 들어갈 소재들은 모두 당신의 기억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선 두 번의 길잡이 묵상을 통해 이미 준비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만약 길잡이 묵상을 생략하고 복음관상을 하면 관상자는 관상하는 동안 늘 제 3자의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즉 관객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당신은 연출자이며 동시에 배우가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연기를 하면서 복음의 장면에 푹 빠져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복음을 관상하기 위해서는 복음이 언제 어디서 일어난 사건인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즉 시간과 공간의 재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공간은 마리아의 집이 되겠지요. 그런데 천사가 방문한 시간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복음에 때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때의 선택이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하루 중 어느 때 천사의 방문이 이루어졌을까요? 그런데 때를 찾는 우리의 작업을 도와주는 단서가 복음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천사의 출현이 바로 그것입니다. 천사는 영적 존재입니다. 천사와의 영적인 통교가 이루어지려면 마리아도 영적인 분위기 속에 있을 때일 것입니다. 따라서 하루 중 언제가 가장 영적인 때인지를 찾으면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때가 아침일 수도 있고 낮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저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때의 선택이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말을 기억하십시오. 이 말의 뜻은 이 질문이 이렇게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루 중 언제 당신은 가장 영적인 분위기를 느낍니까? "
내가 가장 영적일 때가 하루 중 언제인지를 알아보려면 마리아의 집을 저녁, 밤, 새벽, 아침, 낮으로 나누어 상상해보면 드러납니다. 그 중에 가장 마음이 끌리는 때가 언제인지 알아보십시오. 때가 정해지면 집중적으로 그때의 마리아의 집을 관상하십시오.
관상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도록 제 경우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나는 한밤의 마리아 집을 관상할 때 고요한 은빛 적막이 깔린 집안 분위기가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그것에 제일 마음이 끌려 한 밤의 마리아 집을 관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분위기에 머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재현해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재현한다는 말은 머문다는 말이고 머문다는 말은 재현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왜 내게 제일 먼저 떠올랐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어릴 때 경험한 겨울 밤 때문이었습니다. 한밤에 오줌이 마려워 일어나 마당에 나갔는데 사방에 은빛의 적막이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눈이 하얗게 내린 마당에 달빛이 고요히 사방을 밝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잠든 밤이었기에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습니다. 그 신비스럽고 경이로움이란 정말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한밤에 홀로 거기 있다는 것이 두려워 금방 방으로 돌아 들어갔습니다. 그때 그 분위기에 머문 시간은 내가 오줌을 누던 그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그 느낌은 마음 밑바닥에 늘 있었나 봅니다. 비록 머릿속에서는 이미 잊혔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나 보지요. 마음은 늘 그 분위기를 그리워하고 있다가 계기가 주어지자 이내 그때의 분위기를 불러낸 것입니다. 이 분위기를 재현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당시 그 상황에 오래 머물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분위기가 깊이 기억에 새겨져 있지 않다는 점과 그 옛날 경험한 그런 적막을 요즘 찾기가 힘들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어떤 영적인 교감이 일어날 때는 비록 한번 슬쩍 본 것이라고 하더라도 잊는 법이 없습니다. 기어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회귀본능이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기억해내고는 그것을 찾아내라고 아이처럼 아우성인 것입니다.
머물고 싶었지만 두려웠다는 것은 뭔가 내 안에 머물 수 없게 한 장애물이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내가 경험한 것이 영적인 것이었다는 증거가 되는 셈입니다. 마리아가 천사의 방문을 받았을 때 몹시 두려워했듯이 말입니다. 원래 영적인 것은 인간이 좋아하면서도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한 끝에 마침내 나의 심안이 그것을 포착해냈고 거기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은 깊은 안식 가운데 행복으로 가득했습니다.
심안으로 보는 것이 관상입니다. 마리아의 집을 상상의 눈으로 들여다 보다보면 뭔가 특별한 점이 느껴질 것입니다. 그것은 깊은 안식을 주는 무엇으로, 마음이 머물고 싶어 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것은 눈으로는 발견되지 않고 마음으로 발견되며 그것이 발견되는 곳에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있습니다.
관상은 그냥 상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림을 그리듯이 장면을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 순서에 입각해서 대화의 장면을 연출하려고도 마십시오. 다만 머물고 싶은 분위기를 발견하고 그 분위기에 머물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억지로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는 장면을 그리지 않아도 당신은 저절로 가브리엘의 메시지를 마음의 반대 없이 쉽게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발견하기도 쉽지 않고,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흡족할 만큼 깊이 머물기가 힘이 들것입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놀라운 변화가 당신에게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분위기를 재현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덧 내 마음은 밝아지고 행복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내면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존재(imago Dei)’의 모델인 것입니다. 그분의 하루 생활과 영적 분위기를 상상으로 재현하는 가운데 당신의 하루가 정리되고 하루의 영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얻은 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생각으로 깨달은 것이 살이 없는 뼈와 같다면, 이것은 뼈에 살을 붙이고 숨결을 불어넣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얻은 것도 아닙니다. 당신 안에 이미 있던 것이 마리아의 일상을 상상하면서 새롭게 재발견된 것입니다.
첫댓글 심안이라야 찾을 수 있는 문...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 그 문을 열고 복음 안에 오래 오래 머물 수 있기를, 제 안에 이미 마련되어 있는 복음 속 현실에서 주님이 열어주신 구원의 길을 찾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