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도(道)의 길로 들어서다
내가 신(神)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30대 초반이다. 나는 당시 근로장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준비하였는데 다행히 선발이 되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근로 장학생이란 일하면서 공부하는 조건유학이다. 평소에 일본에서 뭔가 이루고 싶었는데 늦게라도 가니 다행이였다. 지금에 와서야 깨닫는 것이지만 나는 정화(丁火)가 상신(相神)인 사람이다. 그러니 일본으로 가는 길은 운명적으로 내가 성공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가야 했던 코스였던 것이다. 그쪽으로 가면 나는 대박인 것인데 운명의 여신은 나에게 시련을 준비하였다. 생소한 일본에서 급작스럽게 일하다 병이 난 것이다. 일본 길을 뒤로 접고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시름시름 앓던 병환이 이상하게 안 낫는다. 기운이 빠지고 항상 힘이 없었다. 질환 병명은 B형간염이였다. 그런데 간염 증세보다는 이상한 초자연 현상들이 자주 나타났다. 지금은 그게 당연 빙의가 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았겠지만 어린 그 당시는 이게 무슨 병명인지도 잘 몰랐다. 누구하나 가르쳐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의사를 만났는데 이런 질병은 참선을 해보라고 권하는 것이였다.
그래서 간 곳이 소백사 구인사였다. 불교사찰에는 태어나 처음이였다. 사찰에 칠한 탱화 신장이 그렇게 무섭게 보였다. 발 걸음 하나 하나 조심스럽게 행동하였다. 그런데 간염증세가 심해서 그런지 추위와 더위가 반복이 되는 냉열 증세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기를 많이 느껴서 9월 초인데도 주머니 난로를 항상 주머니에 끼고 살았다. 구인사는 24시간 기도하는 참회 도량이였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4시간 기도하고 3시간 휴식하는데 이게 24시간 지속적으로 돌아갔다. 기도가 처음인 사람은 잠을 안재우는 동네에 가면 몸이 미친다. 하루는 그럭저럭 잘 참고 지냈지만 이틀이 지나자 이건 혼수상태로 고통이다. 저녁 8시 쯤에 한참 기도 중에 방을 몰래 빠져 나왔다. 도량 옆에 놓인 돌 의자에 걸터 앚아 침낭에 몸을 의지한 채로 잠깐 누웠다. 그런데 워낙 깊은 잠이 들었던 것일까? 옆구리에 무슨 통증이 일어나는데도 무시하고 나는 계속 잠을 청하였다. 그러다가 큰 통증이 일어나
“어이쿠 ! ”
하면서 몸을 숙이면서 잠이 깨었다. 너무 아파서 잠을 못 잘 정도였다. 그래서 옷을 열어 아픈 부위를 찾아봤다. 주머니 난로가 불에 탄 것이다. 옆으로 드러누운 자세로 잠 들었던 것이라 주머니 난로가 눌러 화재가 일어났구나. 생각하고 불에 탄 살결을 보았다. 둥그렇게 불이 났는데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자리가 얼얼해지면서 옆으로 퍼지는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이건 도대체 뭔가? 화상(火傷)이라고 보기엔 뭔가 이상했다. 파스처럼 탄 부위가 오히려 시원했다. 뜸 효과가 일어났다. 주머니 난로가 뜸 효과를 발생하여 갑자기 간염의 염증이 식은 듯이 나은 것이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주머니 난로가 불에 탔는데에도 잠바 주머니는 불에 탄 흔적이 전혀 없었다. 물론 간 부위의 불에 탄 흔적은 시퍼런 멍자국처럼 한 3년 동안 지워지질 않았다.
“여기에 뭔가 있구나”
하고 느낀 이후로는 해마다 방문하는 장소가 되었다. 기도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기도 응답이란 별 것이 아니다. 갑자기 내 마음속에 간절함이 생겨나면서 그 소원이 시원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알 게 된다. 이 시기가 그랬다. 내가 원하던 여자도 만나고 이상하게 운수가 열리더란 말이다. 나는 평소에 이런 저런 모습의 일본 여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구인사에서 내 생각과 일치하는 그런 일본 여자를 만났다. 참 기이한 일이였다. 기도하면 참 재미있다라는 사실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몸이 좀 나아지자 나는 친구와 함께 태백산으로 여행을 다녀 왔다. 기도 생활은 잊고 놀로 다니기에 바빴다. 태백산을 오르는 길은 험하지 않았다. 그런데 등반 길에 어느 처사를 만났다. 꽃을 들고 산으로 오르는 것으로 봐서 기도하러 가는 신자(信者)가 분명해 보였다. 어느 사찰을 방문 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무관심하게 지나갔는데 그 태백산 정상에는 만덕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었다. 손님들이 숙박하는 작은 방에서 그 신도하고 다시 재회한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나를 보면 하는 말이
자기는 무속인으로 서울 송파 삼전동에 법당이 있는 법사인데 기도가 막혀서 태백산에 기도하러 왔단다. 신명이 말씀하시길 태백산에 가면 귀인을 만날 것이고 그 귀인이 자기를 풀어줄 것이란 답을 듣고 급작스럽게 오게 되었단다.
거기도 2명 이였는데 충무로에 철학관을 하시는 태극도사라는 사람이였다. 그 처사 두명은 밤 12시에 기도하러 나간단다. 나보고 같이 가잖고 한다. 그 귀인이 나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때가 12월이니까 새벽공기는 영하 5도를 넘어 선 것으로 기억한다. 이 추위에 기도하러 나간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그런데 그 기도에 어느새 나와 친구가 함께 동참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그 기도터가 유명한 “한검배” 단군터였다.
거기서 4명의 기도하는 사람이 모여 거의 3시간을 떨떨 떨었다. 그런데 그 처사는 하나도 춥지 않는가 보다. 기도하는 목소리가 청량하게 울리더니 어느새 신명이 났는가보다 독경소리가 오히려 점점 크게 울러 퍼졌다. 그 순간 방언을 하듯 뭐라 말을 하였는데
“내려 왔다”
하는 소리를 들었다.
태백산의 단군 할아버지는 쉽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여기 과거 단군님과 일했던 인연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몰랐다. 주변을 둘러봐도 내 주변에 있는 것은 허공을 가르는 매서운 공기 바람 뿐이다. 나중에 나에게 찾아온 신명중에 한 분이 단군임을 알게 된 것은 베트남에서 알게 되었다. 곧 하롱베이에 가서 환검천황을 뵜을 때 단군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단군의 직계가 환검천황이라는 것도 그 때 알게 되었다. 단군이 쭉 나하고 동행했다는 사실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그분은 빨간 색의 룡의 어의를 입고 나에게 말했다
친구 나와 함께 가세나!
원래 군주가 진정으로 아끼는 신하를 보고 친구라고 부르기도 하는 법이다.
우리 짧은 지식으로는 단군할아버지만 알았지 배달 신시국의 존재는 모르는게 당연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 처사하고 기도 동거가 시작되었다. 내가 기도하는 법을 전혀 모르니까 하늘이 답답했던지 그 처사를 소개해 준 것 같았다.
그 처사로부터 기도하는 법 여러 가지를 배웠다. 그 처사는 나를 보고 귀인이라고 말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자기 제자처럼 부렸다. 나와 함께 같이 간 내 친구는 몇 일후 갑자기 취업이 되었다. 오래 동안 백수생활을 하던 그였기에 좋은 곳은 아니지만 다행이였다. 대학교 화학과에 위험물 화학 재료를 공급해주는 중소기업에 취업이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친구가 5년 후에 자꾸 태백산 태백산을 연발 하더라. 태백산에 같이 가자고 나를 달달 볶았다. 자신이 거기 간 공덕으로 신명들이 취업시켜 줬다고 믿는 것이다.
종교(宗敎) 공부를 하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가장 큰 공덕을 뽑으라 하면 기도하는 사람의 수발을 드는 것을 말한다. 기도하는 하늘 제자들을 도와준 복덕이 가장 커서 하늘은 당장 보답을 해주는 것이리라. 그 만큼 기도 공덕이 제일 크고 확실하다. 당장 좋은 일이 찾아온단다. 하여튼 그 친구는 그 이후로 하는 일이 순탄히 잘 풀렸다. 여자도 만나 결혼했다. 하루는 다른 대학 친구가 찾아왔다. 어렵게 9급 공무원에 합격했는데 중매를 40번은 본 것 같았다. 여자들이 남자 얼굴 보고는 안 만난단다. 대학 시절 그 친구 별명이 쿤타킨데, 캄보디아 ,크메르인이다. 키가 작고 얼굴은 어릴 적 한약을 잘못 먹은 탓인지 얼굴색이 시커멓다. 영락없이 동남아인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중매 볼 때마다 참패이다. 낙담한 그가 나를 찾아와 안 먹던 소주 잔을 들이키고 있었다. 나를 찾아와 하소연하는 것이다. 왜 나를 찾아 왔냐면 내가 하늘 기도를 통해 부적을 받았는데 시험 삼아 그 친구에게 주었던 일화가 있다. 그 친구는 내 부적을 받고 갑가기 흥행이 일어났단다. 자기가 평소에 승마를 취미로 배우는데 그 날도 승마복장을 입고 말을 타고 있었단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나가던 어느 사진작가가 촬영했다. 얼굴이 검고 키가 작은 모습이 영락없는 직업 승마인 기수로 여긴 것이다. 그 사진을 찍고 올해 달력으로 인쇄하려고 한단다. 초상권이 필요한 부분이라 허가를 받으러 왔단다. 당연히 승낙하였다. 나는 여기서 기분 나쁜 것을 느꼈는데 그 달력 나에게 가져와 고맙다고 한 줄 알았다. 그런데 나에게 한 장도 안 가져다 주더라. 그 걸 본인이 느꼈을까? 나중에 미안한지 말이 없었다. 그리고서는 누나와 매형을 만나게 해주더니 나보고 부적을 좀 써 주라는 것이다. 그것도 꽁자부적을 요청한 것이다. 나는 돈받고 부적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그런데 이번 건은 느낌이 다르다. 중매서 줄 여자를 부탁하러 온 것이다. 여자를 만나게 해달라는 속마음인 것이다. 이것은 본인은 모른다. 마음 속에 있는 자기의 영혼이 부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도와줘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이걸 어찌 말로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내가 여기서 약해지면 안 되는데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팔자에 없는 여자복을 만드는 방법은 내 복을 넘겨주는 것 뿐이 없다. 그럼 나는 막히고 그는 발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개운법이다. 내 복을 남에게 넘겨주면 된다. 그런데 누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겠는가? 내가 그랬다.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한 덕에 내 혼인 줄이 막혀서 나는 베트남에 왔던 것이다. 그는 정확히 일주일 후 결혼한다고 청첩장이 돌았다. 그런데 나를 기만한 사건이 생겼다. 그는 친하던 대학 친구인데 나에게 결혼 연락을 주질 않았다. 다른 친구를 통해 들었다. 내가 이런 무속적인 일을 하니 재수가 없다고 부르지 말라고 했단다. 상당히 충격을 먹었다. 그 이후부터 부적을 사용 하지 않았다. 크게 실망하는 나를 보고 하늘이 위로하는 것일까?
“그러게 목숨이 위태롭다고 생각할 적에만 부적을 사용하도록 해라”
함부로 장난삼아 부적을 쓰지 말라는 경고였다.
아무튼 나는 그 날 이후로 부적을 안 쓴다.
부적을 받던 날이 생각이 난다. 하늘을 보았을 때 천지에 나비떼처럼 금필이 날라다녔다
"금필의 대가!"
하는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이렇게 어렵게 받은 부적을 나는 이 친구 때문에 버린 것이다. 이런 배은망덕한 놈에게 부적을 써주어 구해준다면 나는 웃음꺼리 밖에 안되는 것이다. 나중에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동안 한 번도 연락 없던 놈이 이혼했다면서 나를 찾아오더라.
"뭐라 또 해달라고?"
자기에게 없는 배필 복을 남에게 꽁짜로 얻었는데 그 감사함도 모른체 살다가 그 복이 남의 복인지라 세월이 지나가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니 망가진 다음에 찾아온다. 나중에 말하길 누나와 매형의 집 보증을 자기가 서서 집 다 날라갔단다. 그리고 공무원 급여까지 반쪽으로 체납되었단다. 그러니 처가 멀쩡하겠는가? 그 집안 구석 정 나미 떨어진다면서 딸아이 데리고 뉴질랜드로 떠나갔단다. 남에게서 받은 복을 자기 복으로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싶다면 그 복을 받은 당사자에게 찾아가서 그 감사함을 표출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회향(回向)인 것이다. 회향은 간단하지만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복을 받았으면 당연히 그 신명(神明)을 찾아 감사하다고 사례를 올려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걸 모르니 복이 유지되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중생이 어리섞다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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