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나이에 갑자기 찾아온 중풍과 연이은 위암 선고를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 철인으로 우뚝 선 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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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으로 암이 치유되는 역사를 경험한 문영용 씨는 2002년부터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세계대회에서 우승해 "할렐루야"를 외치는 것이 소망이다. |
| 올해 한일장신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한 문영용 씨(48세, 영광교회). 인간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트라이애슬론대회'(철인 3종경기)에서 수차례 우승을 거머쥔 그의 이름 앞에는 '한국판 암스트롱'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33살의 나이에 그는 중풍으로 쓰러졌다. 1백kg이 넘는 거구에 학창시절 기계체조와 태권도 선수로 활동할 만큼 건강함을 자랑했지만, 허무하게 쓰러져 사지가 마비됐다. 삶은 하루아침에 황폐한 사막처럼 변했다. 건설업을 하며 해외에 골프여행을 다닐 정도로 화려했던 일상은 사라졌다.
"한마디로 충격이었죠. 육체적 고통보다 병이 생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저를 더 힘들게 만들었어요."
치료를 위해 유명한 병ㆍ의원을 찾아 다녔지만 허사였다. 하루 20시간 이상을 누워서 지내야만 할 정도로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사업도 정리해야만 했다.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은 치료비로 모두 털어 버리고 움직이지 못하니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 문 씨는 "언제 죽을지 몰라 유서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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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용 씨가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해 여러차례 우승을 거머쥐며 받은 트로피들. |
| 그 무렵 꿈속에서 성령의 위로하는 음성을 들은 뒤 그 길로 천근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교회로 향했다. 그가 당시 기록한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새벽예배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됐다. 연로한 부모님과 슬퍼하는 아내 모습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유일한 위안은 오직 하나님께 연약함을 고백하는 것뿐이다." 친형인 문병용 목사(서울노회 목왕교회)를 따라 기도원에서 살다시피한 것도 이때였다.
그런데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신체 기관에 노화가 진행돼 자연사(自然死) 상태에 이르는 희귀병 소견을 받은 데 이어 위암까지 겹쳐 실낱같던 희망도 꺾여 버렸다.
사망선고와 다름없었다. 정신이 멍했다. 그는 울부짖으며 집 근처 월명산에 올랐다. 군산 시내와 금강 하구가 내려다보이는 봉우리에 올라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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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용 씨는 신학대학원 입학 준비를 위해 운동 중간중간 성경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문 씨는 웰빙시대에 건강과 관련된 사역을 하고 싶다는 비전을 밝혔다. |
| "땅바닥에 엎드려 울면서 하나님께 매달렸죠. 살려달라고. 그리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잡아달라고...그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뛰어라'라는 소리였어요."
운동을 시작했다. 5년 가까이 병상에 누워있어 몸을 가누기 힘들었지만, 이를 악다물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예배를 드린 후 10시간 이상을 뛰었다. 쓰러져도 툭툭 털고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갈수록 위암의 고통이 엄습해 먹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루 종일 입에 들어가는 것은 고작 과자 몇 개와 호박엿 등 당분을 섭취할 수 있는 몇 가지와 인절미 한 쪽 정도였다.
문 씨는 내친 김에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 포도 한 알만 먹고 42.195km를 3시간 27분에 주파했다. 첫 도전에 놀라운 기록이었다.
달리기에 익숙할 무렵, 연골이 닳아 무릎 통증이 잦아들어 수영을 시작했다. 하루에 수영장을 7km 이상 왕복했고, 소화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자전거도 탔다.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도 하루 1천개 이상 반복했다.
문 씨는 "운동하던 중에 심장마비로 세 번 정도 쓰러졌다"며 "그 때마다 하얀 물체를 토해 내곤 했는데, 훗날 생각해 보니 몸 안에 있던 독소가 빠져 나간 것으로 추측된다"는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사회와 격리된 채 운동으로만 유지되는 삶이 계속됐다. 그 때까지 아내에게 암 투병을 숨겨왔지만, 마침내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됐고 결국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 떠나보내야만 했다.
"당시만 해도 언제 병이 나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젊은 아내를 내 욕심에 붙잡아 둘 수 없었어요. 부모님과 형제들로부터 조금씩 받는 생활비로는 밥 먹기도 힘들었으니까요."
부인이 떠나고 운동이 배로 힘들었지만, 신앙으로 극복했다. 기도는 운동과 더불어 그의 삶의 한 부분이다. 그러던 사이 그를 짓누르던 병마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운동으로 암이 치유되는 역사를 경험한 그는 2002년 철인 3종경기에 도전했다. 수영 3.9km, 사이클 1백80.2km, 마라톤 42.195km를 전체 6백명 가운데 18위로 소화해 냈다. 이후 그는 연이어 철인 대회를 참가했고, 젊은 선수들을 제치고 뛰어난 성적으로 입상을 거듭했다. 현개 그가 가진 기록은 국내 아마추어 가운데는 최정상급에 속하며 프로와도 실력 차이가 거의 없다. 전 세계 2천여 명의 철인들이 참가하는 '하와이 대회'에도 3년 연속 국내 대표로 참가해 상위권 성적을 기록했다.
문 씨는 현재 신학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에 있다.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다짐하고 뒤늦게 신학도의 길을 걷게 된 그가 병마의 그림자를 걷어내고도 운동에 매진하는 이유도 바로 사역과 관련돼 있다.
문 씨는 "철인 경기 세계대회에서 언젠가는 1등의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며 "시상식장에서 '할렐루야'를 크게 외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웰빙 시대에 건강과 관련된 특수사역을 하고 싶다는 비전을 밝혔다. 삶의 밑바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참 사랑을 나눠주는 목회자가 되길 그는 원하고 있다.
#취재 뒷 얘기
문영용 씨와 전북 군산 자택에서 인터뷰를 마친 후 매일 산악구보를 하는 월명산에 올랐다. 신앙고백과 함께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던 봉우리에 다다르자,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이 맺혔다.
강한 남자의 이미지를 풍기는 철인의 모습 이면에는 부드럽고 연약한 또 다른 본질도 있었다. 새벽녘에 집을 나서 교회에 들러 기도를 드리고, 하루 종일 운동에 매달리다 저녁 무렵 인기척 없는 적막한 집에 들어오는 기분은 어떨까 짐작이 됐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믿음으로 고독과 외로움을 털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적적하면 으레 성경책을 편다. 성경 완독도 숱하게 했다.
그는 "사람들이 병을 고치고 재기한 겉모습에만 관심을 갖는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느꼈으면 한다"며 "하나님의 놀라운 치료 역사와 사랑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신대원에 진학하려 했지만, 여러 이유로 1년을 미뤘다. 가장 큰 이유는 안타깝게도 재정적인 부분과 관련돼 있다. 학부 재학 시절에도 차비를 아끼려고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자전거로 통학했다.
유명세를 타며 돈을 제법 벌었을 것이라는 곱지않은 시선도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운동선수에게 필수인 스폰서도 없다. 성적은 프로급이지만 나이 많은 그를 반기는 기업은 없다.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 어짜피 그의 꿈은 유명 운동선수가 아닌, 목회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극기 휘날리는 목회자 문영용이 될 수 있도록 많이 기도해주시기 바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