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출사표(前 出師表) 제갈량[諸葛亮] (A.D.181 ~ 234)
先帝創業未半, 而中道崩殂, 今天下三分, 益州罷弊, 此誠危急存亡之秋也.
(선제창업미반, 이중도붕조, 금천하삼분, 익주파폐,차성위급존망지추야)
선제(유비, 劉備)께서 왕업을 시작하신 지(나라를 세우신 지) 아직 반에도 미치지 못하였는데 중도에서 돌아가시고, 지금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우리 익주(당시 촉의 영토였던 사천성 일대)는 오랜 싸움으로 지쳐 있으니, 이는 진실로 국가가 위급하여 흥하느냐 멸망하느냐 하는 때입니다.
然侍衛之臣, 不懈於內, 忠志之士, 忘身於外者, 蓋追先帝之殊遇, 欲報之於陛下也.
(연시위지신, 불해어내, 충지지사, 망신어외자, 개추선제지수우, 욕보지어폐하야)
그러나 모시고 지키는 신하들이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 충성스런 뜻이 있는 무사들이 밖에서 자기 몸을 잊고서 애쓰는 것은, 모두가 선제(유비)의 특별히 두터웠던 대우를 추모하여 이를 폐하에게 보답하고자 해서입니다.
誠宜開張聖聽, 以光先帝遺德, 恢弘志士之氣, 不宜妄自菲薄, 引喩失義, 以塞忠諫之路也.
(성의개장성청, 이광선제유덕, 회홍지사지기, 불의망자비박, 홍유실의, 이색충간지로야)
폐하께서는 진실로 성덕을 열고 펴시어, 선제가 남긴 덕을 빛나게 하여 뜻있는 선비들의 의기를 더욱 넓히고 키우셔야 하며, 결코 스스로 덕이 엷고 재주가 없다 단정 내리셔도 아니 되며, 옳지 않은 비유로 의를 잃으셔서, 충성된 간언이 들어오는 길을 막으셔서도 아니 됩니다
宮中府中, 俱爲一體, 陟罰臧否, 不宜異同. 若有作奸犯科及爲忠善者,
宜付有司, 論其刑賞, 以昭陛下平明之理, 不宜偏私, 使內外異法也.
(궁중부중, 구위일체, 척벌장부, 불의이동, 약유작간버과급위충선자,
의부유사, 논기형상, 이소폐하평명지리, 불의편사, 사내외이법야)
궁중과 관원이 모두 일체가 되어야 하니 선과 악을 척벌함을 달리해서는 안 될 것이요, 간사한 짓을 하여 죄과를 범하는 자와 성실하고 선량한 일을 한 자가 있으면 마땅히 담당자에게 맡겨서 그 형벌과 상을 논하여 폐하의 공평하고 분명하신 다스림을 밝혀야 할 것이요, 편벽되고 사사로이 하여 내외로 하여금 법을 달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侍中侍郞, 郭攸之. 費褘. 董允 等, 此皆良實, 志慮忠純, 是以先帝簡拔, 以遺陛下. 愚以爲宮中之事, 事無大小, 悉以咨之, 然後施行, 必能裨補闕漏, 有所廣益.
(시중시랑, 곽유지.비위.동윤 등, 차개량실, 지려충순, 이이선제간발, 이유폐하, 우이위궁지사, 사무대소, 실이자지, 연후시행, 필능비보궐누, 유소광익)
시중과 시랑의 벼슬에 있는 곽유지·비위·동윤 등은 모두가 선량하고 진실하여 뜻과 사려가 참되고 순수합니다. 그러므로 선제께서 뽑으시어 폐하께 남기셨으니, 제가 생각건대 궁중의 일은 일에 크고 작음 없이 모두 이들에게 자문하신 연후에 시행하시면 반드시 폐하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여 넓히고 유익하게 하는 바가 있을 것이요,
將軍向寵, 性行淑均, 曉暢軍事, 試用於昔日, 先帝稱之曰..能. 是以衆議擧寵爲督. 愚以爲, 營中之事, 事無大小, 悉以咨之, 必能使行陣和睦, 優劣得所也.
(장군향총, 성행숙균, 효창군사, 시용어석일, 선제칭지일..능. 시이중의거총위독. 우이위, 영중지사, 사무대소, 실이자지, 필위사행진화목, 우열득소야)
장군 향총은 성품과 행위가 착하고 공평하여 군사를 잘 아는지라 예전에 시험 삼아 등용함에 선제께서 그를 칭찬하여 '유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 사람이 의논하여 향총을 천거하여 지휘관으로 삼았으니 어리석은 신은 생각건대 군영 중의 일은 대소 없이 모두 그에게 물으면 반드시 각 부대들로 하여금 화목할 수 있게 되어 우수한 자와 졸렬한 자가 각각 제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親賢臣遠小人, 此先漢所以興隆也, 親小人遠賢臣, 此後漢所以傾頹也.
(친현신원소인, 차선한소이흥륭야, 친소인원현신, 차후한소이경퇴야)
현명한 신하를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함은 이것이 선한(先漢)이 흥하고 융성한 까닭이요, 소인을 친근히 하고 어진 신하를 멀리함은 이것이 후한(後漢)이 패망한 원인입니다.
先帝在時, 每與臣論此事, 未嘗不嘆息痛恨於桓靈也.
(선제재시, 매여신논차사, 미상불탄식통한어환영야)
선제께서 계실 때에 매사 저와 함께 일을 논의할 적마다 일찍이 후한의 환제(桓帝)와 영제(靈帝)의 일을 탄식하고 몹시 원통하게 생각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侍中,尙書.長史.參軍, 此悉貞亮死節之臣也. 陛下親之信之, 則漢室之隆, 可計日而待也.
(시중.상서.장사.참군, 차실정량사절지신야. 폐하친지신지, 칙한실지륭, 가계일이대야)
시중·상서·장사·참군은 모두 곧고 어질며 죽음으로 절개를 지킬 신하들이오니, 요청하건대 폐하께서는 이들을 가까이 하시고 이들을 믿어 주시면 곧 촉한(則漢)의 황실이 다시 번창할 날을 헤며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臣本布衣, 躬耕南陽, 苟全性命於難世, 不求聞達於諸侯, 先帝不以臣卑鄙, 猥自枉屈, 三顧臣於草廬之中, 諮臣以當世之事.
(신본포의, 궁경남양, 구전성명어난세, 불구문달어제후, 선제불이신비비, 외자왕굴, 삼고신어초려지중, 자신지당세지사)
신은 본디 미천한 백성으로 남양에서 몸소 밭 갈며 지내며, 구차히 어지러운 세상에서 생명을 보존하고 제후에게 알려져서 출세할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선제께선 신을 비천하다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되게도 스스로 몸을 낮추시어 세 번이나 신의 초옥 안으로 찾으시어 신에게 당세의 일을 물으셨습니다.
由是感激, 許先帝以驅馳. 後値傾覆, 受任於敗軍之際, 奉命於危難之間,
爾來二十有一年矣.
(유시감격, 허선제이구치, 후치경복, 수임어패군지제, 봉명어위난지간, 이래이십유일년의)
이로 말미암아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를 도와 힘써 일하기로 하니, 그 뒤 선제의 세력이 엎어지고 뒤집히려 할 때 신은 싸움에 진 군사들 틈에서 소임을 맡고 위태롭고 어려운 지경에서 명을 받았습니다. 그 이래로 21년이 됩니다. (*서기 207~227)
先帝知臣勤愼. 故臨崩, 寄臣以大事也.
(선제지신근신. 고임붕, 기신이대사야)
선제께서는 신이 삼가고 조심함을 아시는지라 그러므로 돌아가심에 임하여 신에게 큰일을 맡기셨습니다.
受命以來, 夙夜憂慮, 恐付託不效, 以傷先帝之明. 故五月渡瀘, 深入不毛.
(수명이래, 숙야우려, 공부탁불효, 이상선제지명, 고오월도로, 심입물모)
명령을 받은 이래로 아침부터 밤까지 신이 우려해 온 것은 그 당부를 들어 드리지 못하여 선제의 밝으심을 다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5월에는 노수를 건너 그 거친 오랑캐 땅 깊이까지 들어갔습니다.
今南方已定, 兵甲已足, 當奬率三軍, 北定中原, 庶竭駑鈍, 攘除姦凶, 以復興漢室, 還于舊都, 此臣所以報先帝, 而忠陛下之職分也.
(금남방이정, 병갑이족, 당장솔삼군, 북정중원, 서갈노둔, 양제간흉, 이부흥한실, 환우구도, 차신소이보선제, 이충폐하지직분야)
이제 다행히 남방은 이미 평정되었고, 싸움에 쓸 무기며 인마도 넉넉합니다. 마땅히 3군을 격려하고 이끌어 북으로 중원을 정벌해야 하고, 노둔한 힘이나마 다하여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쳐 없애야 하며,
다시 한의 황실을 일으켜 옛 도읍지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신이 선제께 보답하는 방법이요 폐하게 충성하는 직분인 것입니다.
至於斟酌損益, 進盡忠言, 則攸之.褘.允之任也.
(지어짐작손익, 진진충언, 즉유지. 위. 윤지임야)
그 동안 이곳에 남아 나라에 이롭고 해로움을 헤아려 폐하께 충언을 올리는 것은 유지(곽유지)와 위(비위)·윤(동윤)의 일이 될 것입니다.
願陛下, 託臣以討賊興復之效, 不效則治臣之罪, 以告先帝之靈. 若無興德之言則責攸之.褘.允等之咎, 以彰其慢.
(원폐하, 탁신이토적부흥지효, 불효칙치신지죄, 이고선제지영, 약무흥덕지언칙책유지.위.윤등지구, 이창기만)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신에게 역적을 치고 나라를 되살리는 일을 맡겨 주시옵소서. 그리고 신이 만약 제대로 그 일을 해내지 못하면 그 죄를 다스리시고 선제의 영전에 알리옵소서. 만일 폐하의 덕을 흥하게 할 충언이 없으면 곽유지와 비위·동윤을 꾸짖어 그 게으름을 밝히옵소서.
陛下亦宜自謀, 以諮諏善道, 察納雅言, 深追先帝遺詔.
(폐하역의자모, 이자추선도, 찰납아언, 심추선제유조)
폐하 또한 자주 의논하시어 스스로 그 길로 드시기를 꾀하소서. 좋은 방도를 자문하시고, 좋은 말을 살펴 받아들여 선제의 남기신 말을 깊이 따르소서.
臣不勝受恩感激, 今當遠離, 臨表涕泣, 不知所云.
(신불승수은감격, 금당원리, 임표체읍, 부지소운)
신은 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이제 먼 길을 떠나거니와, 떠남에 즈음하여 표문을 올리려 하니 눈물이 솟아 더 말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지은이 제갈량[諸葛亮] (A.D.181 ~ 234)
자는 공명(孔明), 시호는 충무후(忠武侯)이며, 낭야군 양도현(瑯琊郡 陽都縣;山東省 沂南縣)에서 태어났다. 호족(豪族) 출신이었으나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형주(荊州;湖北省)에서 숙부 제갈현(諸葛玄)의 손에서 자랐다.
후한(後漢) 말의 전란을 피하여 출사(出仕)하지 않았으나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이라 일컬어졌다.
출사표 해설
출사표란 '군대를 일으켜 출정에 앞서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라는 뜻이다.
촉한(蜀漢) 제1대 황제 유비(劉備)는 위나라 땅을 수복하지 못하고 죽었으며, ‘반드시 북방을 수복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에 제갈량은 유비의 유언을 받들어, 군사를 끌고 위나라를 토벌하러 떠나는데, 떠나는 날 아침에 촉한의 제2대 황제 유선(劉禪) 앞에 나아가 바친 글이 '출사표'라 전해진다.
출사표에는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고, 각 분야의 현명한 신하들을 추천하며, 황제에게 올리는 간곡한 당부의 말이 담겨 있다.
이 때 이 때 그의 나이 47세이며 제갈량이 죽은 지 29년 후인 서기 263년에 촉나라는 위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비록 제갈량의 원대한 꿈은 실현되지 못했으나 나라에 대한 충성심, 선제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감격, 그리고 나라의 장래를 도모하고자하는 출중한 지혜가 출사표의 구구절절 묻어나 오늘날까지도 울림이 전해오고 있는데, 예로부터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는 충신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의 명문이다.
전후 두 편인데 전편은 서기 227년 작이고, 후편은 서기 228년 작으로 알려져 있다.
출사표는 《삼국지(三國志)》의 <제갈량전(諸葛亮傳)>, 《문선(文選)》 등에 수록되어 있으며, 진(晉)나라 이밀(李密)이 무제에게 올린 진정표(陳情表), 당(唐)나라 사상가 한유가 쓴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과 함께 중국 3대 명문 중 하나로 꼽힌다.